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智異 빗점골과 이현상지리 박물관(역사,문화,) 2022. 8. 23. 04:48
1 .격랑의 시대
나는 훗날 토벌 군경들 혹은 지리산 주변 주민들 사이에서 이현상이 축지법을 쓰느니 몇 길 담장을 훌훌
뛰어 넘느니 하고 무슨 신통력을 가진 사람처럼 전해지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는 그냥 중후한 인상을 주는 평범한 중키의 사나이였다. 그냥 묵직하고 과묵한 중년신사 일 뿐이었다.
그는 모든 남부군 대원들로부터 지극한 흠앙을 받고 있었으며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언제나 절대적인
신의 계시처럼 대원들에게 받아들여 지고 있었다. 누구도 듣는 데서나 안듣는 데서나 그의 이름은 커녕
직함조차 부르는 법이 없었고 그저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그가 사용했던 노상명, 혹은 노명선
(산중에서 사용)이라는 가명조차 아는 대원이 거의 없었다.
말단 대원이던 나로서는 그와 대화할 기회는 거의 없었지만, 진회색 인조털을 입힌 반코트를 입고
눈보라치는 산마루에 서서 첩첩 연봉을 바라보고 있던 이현상의 어딘가 우수에 잠긴 듯하던 옆 모습은
지금도 선명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 이태 "남부군" 중에서 -
이현상에게 더 잘 어울리는 호칭은 선생님이었다. 그 수많은 대원들이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려 갈구했던 그래도, 큰 바위처럼 기대고 싶었던 선생님이었다.
적군이라도 교전 중이 아닌 이상 절대 죽이지 못하게 하고, 동지의 주검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던,
눈보라치는 겨울 산중의 걸인 움막 같은 천막 속에서 추위에 떨며 홀로 책을 읽다가 스르르 지쳐
잠들곤 하던 영원한 선생님이었다.
- 안재상 "이현상 평전" 중에서 -
그 어떤 일 앞에서도 화를 내는 일이 없고, 그 어떤 문제를 놓고도 장황하게 말하는 법이 없고,
당 이론에 관한 것이면 안 읽은 게 거의 없으면서도 토론을 즐기지 않았다는 분.
지쳐 쓰러진 대원의 짐을 손수 짊어지고, 대원들의 시체를 볼 때마다 땅속 깊이 묻어주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고, 유일한 반찬으로 마련된 고추장 한 보시기를 굳이 가져오게 해 손수 나뭇가지를 꺾어
일일이 찍어 먹였다는 분.
- 조정래 "태백산맥" 10권 중에서 -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저 라틴아메리카의 혁명가 체 게바라는 알아도 조선의 혁명가 이현상은 모른다.
마오쩌뚱? 호치민? 티토? 카스트로? 그리고 김일성은 알아도 이현상은 모른다.
게바라를 넣어서 위에 든 반제국주의 혁명가들은 모두 혁명에 성공해서
자신들이 꿈꾸었던 새 세상을 열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름답고 훌륭한 새 세상을 만들고자 30년 동안 밤을 낮 삼아 뛰어다녔던
불요불굴한 우리 조선의 혁명가 이현상은 그 꿈을 펼쳐보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 김성동 “남부군을 위한 변명” -
빨치산하면 이현상이요 이현상하면 곧 빨치산이 연상될만큼 이현상은 빨치산의 대명사이다.
자신이 신봉하는 이데올레기를 따라 북에서조차 외면 당하면서 고립무원속에 끝까지 버틴 외로운
빨치산 이현상
- 차길진 "차일혁 수기" 중에서 -
53년 2월 말의 어느 이른 새벽, 취사원들을 도와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데 마실 동무가 그녀를 부르러 왔다.
"옥자 동무! 문서 비장하러 갑시다." 전투부대는 60여 명의 대원을 끌고 분산투쟁 나가고 이현상과 본부
요원, 호위대 30여 명은 토끼봉 밑 빗점골에서 숙영 중이었다. 원래 문서 비장이란 당의 기밀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자수하거나 투항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말하자면 당성이 가장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기는
일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문서를 어떻게 비장하는지 알지도 못했는 그녀가 그 중한 문서 비장을 해야
할 만큼 소중한 동지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간 것이다. 이현상과 그의 부관 김환명, 그녀, 이렇게
세 사람은 숙영지를 벗어나 마땅한 장소를 찾아 토끼봉 쪽으로 작은 능선 하나를 넘어갔다.
토끼봉 바로 아래 커다란 바위들이 듬성듬성 솟아 있고 그 틈 사이에 사람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만한
기묘하게 생긴 바위굴이 있었다. 틈새는 작지만 안으로 깊숙이 파여 있어서 비가 들이칠 것 같지는
않았다. 비닐이라도 흔했다면 손쉽게 비장할 수도 있었으련만 비닐은 고사하고 종이도 제대로 구하기
힘들 때였다. 서류봉투 두 개 분량쯤되는 서류를 누런 밀가루 푸대로 겹겹이 싼 후 솥에 넣고 바위틈으로
들이밀었다. 전투 와중에도 무슨 보고서와 문서가 그렇게 많았던 것인지, 아마 그 몇 년간 지리산에
비장한 것만 해도 한 트럭분이 넘을 것이다.
- 정지아 "빨치산의 딸" 중에서 -
- 1925년 6.10만세운동에 참여해 첫 감옥살이에 들어간 이현상(좌)과 그가 남긴 글 -
2. 이현상
이현상..
일제시대, 조국독립의 일념으로 공산당운동에 뛰어든 이래,
평생을 민족해방, 계급해방, 인간해방을 위해 투쟁하다 지리산에서 최후를 맞이한 빨치산의 전설적 지도자.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아니었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혜택을 버리고 혁명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며,
춥고 배고픈 산속에서 죽어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젊은 시절을 바친 그의 여러 행적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빨치산 투쟁 전적만으로
그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잔혹하다.
인간에 대한 사랑, 민족에 대한 사랑, 약자에 대한 동정심과 인명존중의 정신이라는 거대한 수림 속에서
그것은 그저 작은 관목 한 그루일 뿐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그는 가장 고독하고 외로운 영웅이자,
자신의 삶을 불태운 비운의 혁명가였다.
오늘까지도 이현상은 극단적으로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한편에서는 일제시대부터 해방 후까지 삼십 년 세월을
민족의 독립과 계급해방을 위해 투쟁한 전설적인 영웅으로 떠받드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비현실적인 이념에 경도되어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 공산주의자로서 그 이름을 꺼내는 것조차 범죄시해왔다.
그러나 이현상은 한국 현대사의 격류를 건너갈 때 반드시 딛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전설적인 민중혁명가이다.
일제 치하에서는 모진 고문과 회유, 12년간의 옥살이에도 불구하고 단 한순간도 변절하지 않았으며,
해방 후 더욱 가혹해진 탄압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어느 누구보다 민족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삶을 꿈꾸었던 철저한 사회주의자이자 휴머니스트였던 그는
오직 민족의 독립과 자립을 위해 외세와의 투쟁에 모든 것을 바쳤던 진정한 애국자요, 영웅이었다.
지리산에서 고군분투하던 이현상의 모든 직위와 명예를 박탈했던 북한은
이현상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섬진강에 뿌려지자 다시 영웅으로 복권시켰다.
북한은 그가 죽기 전인 1953년 2월 날짜로 이현상에게 영웅 칭호를 내렸으며
지리산으로 영웅훈장을 보냈다고 발표했다.
1968년에는 평양 신미동에 조성된 애국열사릉에 이현상의 묘지를 제1호로 만들었다. 시신 없는 가묘였다.
이후 북한이 제정한 제1호 열사증을 추서 받았으며 사망 삼십칠 년 만인 1990년 8월에는 다시 조국통일상을 받았다.
60여 컷의 화보 속에는 1990년대 중반, 최초로 공개된 이현상의 직계가족들 사진도 수록하였다.
북한의 대표적인 월간지 중 하나인 『금수강산』에 수록되었던 것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양 방문 시,
안내를 맡았던 이현상의 막내딸 이상진을 비롯한 후손들의 현재 모습을 담았다.
빗점골..
자신이 꿈꾸던 세상을 위해 종국엔 비극적 삶을 살다 남과북 모두에게서 버림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현상과 남로당의 흔적들이 곳곳에 아직도 여전히 남아있는.
아마도 우리 현대사의 가슴 아픈 영혼들이 수없이 구천에서 방황하고 있을.
智異의 수많은 계곡 가운데 아마도 가장 깊고 은밀하게 숨어있는 계곡중 하나이다.
주릉의 토끼봉과 덕평봉 사이에서 부채살처럼 발원한 왼골,산태골,절골,천내골,오리정골이 한데 모여
빗점골 물길로 이어지고,
이 물줄기는 큰세개,작은새개골, 세양골, 수곡골의 물길이 합쳐진 대성골과 다시 모여서
화개천으로 흘러가 花開洞天을 이룬다.
우리가 오는 7월 3일에 스며들 빗점골은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눠야했던 아픈 역사의 골이다.
즉, 하나의 민족이 해방과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군과 적군으로 나눠 피로 흥건했던 골과 능선에서부터 시작된 물줄기인 셈이다.
3. 오늘날의 과제
이른 아침 들판에 나가
일하는 농부에게 물어 보라.
공산주의가 무엇이며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지리산 싸움에서 죽은 군경이나 빨치산에게 물어보라
공산주의를 위해 죽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죽었다 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
그들은 왜 죽었는지
영문도 모른다고 할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이 싸음에서 어쩔 수 없이 하지만
후에 세월이 가면
다 밝혀질 것이다.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 사이에 끼여 벌어진
부질없는 골육상쟁
동족상잔이었다고
- 서남지구 전투경찰대 제2연대장이었던 차일혁 총경이 전북일보에 기고한 ‘이 땅의 평화를 기원하며’ -
"지리산. 그 아름다운 능선과 계곡에 피가 얼룩졌던 시절의 얘기는 이제 까마득한 전설이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청춘들이 그 산중을 방황하면서 죽어갔다.
이제 이름조차 기억하는 이 없는 그 주검들은 풍우 속에 흙이 되었으나
그들이 불태웠던 허망의 정열에는 한가닥 장송곡도 없었다.
사랑도 미움도 환희도 분노도 마침내 모든 것이 투명으로 돌아간 역사의 강물 위를 인간은 또 흘러간다."
- 이태 "남부군 회상기" 중에서 -
“이제 해원(解寃)의 때가 무르익었으니 천하의 영봉(靈峰) 지리산(智異山)을
생사(生死)의 터로 삼아 동족상잔(同族相殘)의 피어린 원한(怨恨)을 풀어
그 본연(本然)으로 돌아감이 옳거니. 여기 근본법륜(根本法輪) 화엄사(華嚴寺)
청정도량(淸淨道場)에 한 사람의 자취를 돌(乭)에 새겨 기리도록 함이라.
‥중략‥
새삼 그의 유덕(遺德)을 길이 전하는 까닭을 이에 밝혀 놓으니
지나는 길손이여 한 겨를 머물러 주소서.
산(山)은 여기 있고 물은 먼 데로 흘러감이라.”
- 고은 "차일혁경무관 공덕비문"(화엄사 소재) 중에서 -
남한의 국립공원 제1호가 되어 사시사철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지리산 구석구석에는
지금도 이현상과 동료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토벌대에 쫓기느라 제대로 파묻지도 못한 채,
꽁꽁 언 땅을 숟가락으로 긁어 눕히고 눈과 낙엽으로 덮어놓았던 시신들은 오십 년 세월 동안 부패하여
흙이 되었지만 아직도 곳곳에서 나무 부스러기처럼 산화된 뼈조각들이 발견된다.
그들이 사용하던식기도구며등사기의 잔해가 발견되기도 하고 삭아버린 종잇장에
그들의 혼이 담긴 구호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기도 하다.
조국통일, 민족해방, 노동계급의 영용한 전사들이라는 그 빛바랜 단어들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영하 이십 도가 넘는 혹한의 산중에서 보온장비라곤 없이 맨몸으로 총을 끌어안고 졸음을 쫓던
이들의 영혼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이현상과 동료들의 전쟁은 이제 끝났는가? 아니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가?
- 안재성 "이현상 평전" [끝나지 않는 전쟁] 중에서 -
이현상, 내 마음속의 빗점골
- 이원규 -
내 마음속의 지리산 빗점골
어느 모퉁이엔가 웅크리고 앉은 사람
성큼성큼 검은 산으로 들어간 산사람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흔들리며 일어서는 검은 산 지리산
그 아래 아카시아 뿌리 내린 돌무덤속
하얀 발가락 마디마다 꿈꾸는 별
절망하거나 다시 절망할 때
혁명의 날개를 잃어 가 닿을 수 없는 독백들이
끝내 바둥거리다 곤두박질 치는 지점마다
지고 또 피는 홀아비바람꽃들
고단한 분단 반세기의 표류 속에서 끝내
서러운 꿈 하나 낚아 올릴 수 없는 밤
별의 꼬리를 부여잡고 한없이 꿈틀대며 승천하는
내 남루한 기억 속의 빨치산
지금 여기는 어디 쯤인가
언제나 혁명을 꿈꾸면서도
지순한 노예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지금
눈물 속으로 다시 눈물이 고여 오고
허물을 벗겨 보면 다시 허물이 도사리는
지금 여기는 어디 쯤인가
곳곳에 하나씩의 비밀 아지트를 남겨 두고
모두들 살해당한 지리산 빗점골
그곳에서 나는 무련, 그대를 만난다
도리어 새장 밖으로 갇혀 있는 세상을 위해
새장 속의 새는 결정적으로 날개를 버린다
무덤 밖으로 묻혀 있는 세상을 대신해
잠들지 못하는 주검의 두 눈에도
마침내 눈물이 흐른다
비틀거리는 나의 그림자를 밟으며 바짝 뒤따르는
음울한 바람의 눈초리
그대 이십세기의 꿈은 새로워지는가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하늘은
이내 무너져 내리고 내 회상의 지리산 빗점골
어느 모퉁이엔가 웅크리고 앉은 산사람이
더 깊이 고개 숙이는 늦가을 저녁 무렵
뜨거운 나의 이마를 떠나
끝없이 질주하는 한줄기 별빛
나는 정녕 나의 얼굴을 기억하는가
나는 정녕 나의 목소리를 들어보는가
여태 매듭 하나 풀지 못한 예지의 더듬이를 보듬고
여백으로 비워둔 내 오랜 잠의 속살
그 속으로 수많은 잔뿌리를 내리며
먼저 나무처럼 굳게 서는 법을 배우며
뒤늦게 빨치산 위령제를 올린다
그대 산사람의 타는 듯 메마른 입술 사이로
한국 현대사의 하루를 돌아보며
오늘도 내 심장의 자물쇠를 잠근다 열쇠를 버린다
산 너머 산이 있고
바람의 끝에서 다시 바람이 분다'지리 박물관(역사,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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