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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후산 - 24년 갑진년 해돋이 산행
    전국 산행기 2024. 1. 1. 16:18

    # 언제: 2024년 01월 01일 월요일

    # 산행지: 전남 화순 모후산 해돋이 조망 산행

    # 산행거리: 8.36km   04시간07분

    # 산행루트: 주차장 - 유마사 - 집계봉갈림길 - 용문재 - 모후산 - Back - 주차장(원점회귀)

     

    2024년 갑진년( 甲辰年)

    푸른 용(靑龍)띠 의미(意味)

    갑진년은 10개의 천간과 12개 지지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육십 간지 조합에서 41번째로

    푸른색의 ‘갑(甲)’과 용을 의미하는 ‘진(辰)’이 만나 “청룡(靑龍)”을 의미, “푸른 청룡의 해”입니다.

    예로부터 한자 문화권 상상의 동물인 용(龍)은 요사(妖邪)스러운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와 수호

    (守護)의 능력을 갖춘 신령스러운 존재로 여겨져 왕실은 위엄과 권위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일반인은

    영험한 동물로 인식했습니다.

     

    해돋이 - 이종환

     

    새벽 동녘에

    알몸 불덩어리로

    치솟아 오릅니다

     

    거대한 빛

    온누리에 가득

    영광의 탄생 입니다

     

    비할것없는

    위대한 탄생

    감격의 탄생입니다

     

    오 ! 해돋이의 감격이여라.

     

    모후산, 母后山  해발918m

    순천시에서 가장 높은 산.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주암면, 화순군 사평면, 동복면 일원의 진산. 전남지역에서 지리산 노고단, 백운산 상봉 다음으로 높은 모후 지맥의 최고봉이다. 등산로에는 모노레일, 정상에는 강우레이더가 존재한다.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의 개경침공으로 피신을 해야 했던 공민왕은 왕의 처가쪽인 화순 동복 오씨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피신처를 찾던 중 화순 동복 사람인 "김도"의 안내로 지금의 순천시 송광면 삼청리 모후산 자락 왕대마을 쪽에 안착하게 된다. 아들인 공민왕은 경상도 안동으로 가게 되고, 어머니와 처가쪽 사람들이 이곳 송광면 삼청리 왕대마을에 머무르면서, 모후산에서 자생하는 산삼을 먹으며 기력을 회복하게 된다. 그후 홍건적의 난이 어느정도 진압된 이후 어머니를 모시러 온 공민왕이 이곳 순천 송광면 삼청리 왕대마을에 도착하여 기이하고 우람한 산세를 보고 곁에 있던 김도에게 "이산이 무슨 산이냐?"라고 물으니, 김도는 "예, 라복산이라 하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고 나서 다시 왕이 말하기를 "과연 덕여모후로다."라고 말하였다.

    순천 역사 중 송광면 삼청리에 전해 내려오는 오랜 전설로 전해지고 있으며 왕이 머무른 장소라 하여 마을 이름도 '왕대' 라 칭하였고, 왕족이 피신한 임시수도라 하여 그 아랫마을 이름은 '유경'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도 이곳 송광면 왕대, 유경 마을에는 공민왕의 이야기와 함께 산넘어 주암면 대광리 용문마을에 존재하던 '대광사'란 큰절이 존재했었고 대광사 관련 불교유적들이 송광면 삼청리, 후곡리 주암면 대광리 주변으로 남아있으며 대표적인 대광사의 유적에는 대한민국 명승 25호로 지정된 '초연정원림'이 있고 후곡리 모후산 중턱에는 유마사 운성암절터가 현재에도 남아있다.

    과거에는 후곡리 절터, 삼청리 절터로 불렸던 곳이다. 이렇듯 모후산은 화순군과 함께 순천시 주암, 송광면 의 진산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대광사 이야기와 함께 기록되어있는 명산임에도 불구하고 1991년 광주권 상수도 공급을 위해 이곳을 중심으로 주암댐 담수가 시작되고, 수몰되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상수원보호구역과 함께 자연환경보전구역 으로 묶여있는 탓에 순천 쪽 명성보단 화순군의 산으로 알려진 산이다.

     

    유마사, 維摩寺  627년(백제 무왕 28)

    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627년(무왕 28)에 중국에서 건너온 유마운(維摩雲)과 그의 딸 보안(普安)이 창건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부속암자인 귀정암(歸靜庵)·금릉암(金陵庵)·운성암(雲城庵)·사자암(獅子庵)·오미암(五味庵)·은적암(隱寂庵)·남굴암(南窟庵)·동암(東庵) 등과 함께 수많은 승려들의 수행도량으로 이용되었다.

     

    17세기 무렵 경헌(敬軒)이 중건하였고, 그로부터 약 50년 뒤에 가안(可安)이 나한상을 조성하였다. 1889년(고종 26)에는 전라도관찰사 김규홍(金奎弘, 1845∼?)이 중수하였다. 그러나 6·25전쟁 때 이 절과 부속암자들은 모두 소실되었고, 그 뒤에도 오호연·김해은 등의 승려들이 중수하였다. 최근에 주지 박상규가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마사 해련탑, 和順維摩寺海蓮塔

    199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2.5m. 승탑은 유마사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절에서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석재가 무너져 흩어져 있던 것을 6·25전쟁 뒤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고 한다. 몸돌 앞면 윗부분에 ‘해련(海蓮)’, ‘지탑(之塔)’이라고 새긴 2행 4자의 글자가 있어서, 승탑의 주인공이 해련임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승탑을 ‘해련탑’이라고 부른다.

     

    승탑은 단면이 8각인 바닥돌 위에 8각의 받침돌을 놓고, 그 위에 8각 몸돌과 지붕돌을 차례로 올린 전형적인 8각원당형(圓堂形) 부도이다. 받침돌은 아래받침돌, 가운데받침돌, 윗받침돌로 구성되었다. 아래받침돌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는데, 맨 아래에는 각 면에 안상(眼象)을 새긴 돌을 놓았고, 그 위의 돌에는 덮개돌 모양을 새겼으며, 맨 위의 돌에는 꽃잎이 아래로 향한 복련(覆蓮)의 연꽃 무늬 8개와 귀꽃이 각 모서리마다 조각되어 있다. 아래부분에 두툼한 굄을 새긴 가운데받침돌에는 각 면에 큼직한 안상이 1구씩 새겨져 있다. 윗받침돌은 아래받침돌의 윗부분과 반대로 꽃잎이 위로 솟은 앙련(仰蓮)의 연꽃 무늬를 돋을새김한 모습인데, 연꽃잎 안에는 또 다른 꽃 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몸돌의 각 모서리에는 기둥이 있고, 앞면과 뒷면에는 문비(門扉)가 조각되었다. 특히 앞면의 문비에는 귀신의 얼굴과 함께 문고리가 장식되었고, 뒷면의 문비 안에는 자물쇠 밑의 문고리만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널찍한 편인데, 밑면에 낮은 3단의 받침이 있고, 평박(平薄)한 낙수면에는 내림마루인 우동(隅棟)이 각 모서리마다 두툼하게 표현되었다. 전각(轉角)은 대체로 수평이며, 여덟 모서리에는 귀꽃이 장식되었지만 넓고 큰 지붕돌에 비해서 작아 보인다. 상륜부의 석재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이 승탑은 통일신라시대 이래 전형적인 승탑 양식으로 전승된 8각원당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안상과 연꽃 무늬가 잘 표현되었으며, 문비를 비롯하여 귀신의 얼굴, 문고리 등의 장식도 눈에 띈다. 각 세부의 조각과 조성 양식 등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마사 보안교

    화순 유마사 보안교는 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마리, 유마사에 있는 돌다리이다. 2007년 1월 5일 화순군의 향토문화산 제30호로 지정되었다.

     

    보안교는 절에 들어가는 입구 계곡 위에 위치하고 있는데, 현재는 그 옆에 일주문이 지어져 있다. 다리는 좁지 않은 계곡을 하나의 큰 돌로 가로질러 놓아 계곡의 동서 양편을 연결하고 있다. 재질은 화강암으로 크기는 가로가 가장 좁은 동쪽은 200cm이고 넓은 서쪽은 315cm에 이른다. 세로는 약 310cm이고 두께는 약 35cm로 윗면은 잘 다듬어져 있다. 다리 위에는 두개의 명문이 있는데, 계곡 아래쪽에 '維摩洞天普安橋'가 계곡의 북쪽에 '觀世音普薩 梁蓮浩'라고 쓰여 있다. 글씨의 크기는 17~24cm이다. 관세음보살의 옆에는 한글로 '관세음보살'이라고 쓰여 있고 그 밑에 작은 글씨로 '白雲居士書'라고 쓰여 있다.

     

    보안교는 형태는 널다리 양식이지만 여러개의 돌을 결구하지 않고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돌다리와는 다르다. 따라서 건립시기를 추정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보안교에는 유마사의 창건주 유마운의 딸인 보안이 놓았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보안교가 유마사 기록중에 나타난 것은 1919년에 쓴 '동복군유마사봉향각창건상량문'에서이다. 따라서 보안교는 1919년 이전에는 놓여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19년에 김영운 주지가 현재 다리의 서쪽에 있던 좁은 절터에서 더 너넓은 편평한 땅(현재 유마사 위치)으로 건물터를 옮긴 것은 다리를 건너기 용이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산행영상

     

     

     

     

     

    # 산행지도

     

     

    # 산행사진

    모후산

    모후산(母后山)대한민국 전라남도 순천시(주암, 송광면) 과 화순군(동복, 사평면) 사이 경계를 이루는 높이 918m의 산이다.

    무등산 북쪽 지맥의 한 봉우리이나 규모가 크고 산세도 험한 편이다. 정상에 오르면 동복호 와 주암댐, 무등산, 백아산, 조계산 등이 보여 전망이 트여있다.

     

    본래 라복산(蘿蔔山)이라고 부르다가 고려 공민왕 10년인 1361년에 홍건적 의 고려침공이 있었을 때 공민왕 부부가 태후와 함께 피난해 산 것을 계기로 모후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조선선조 25년인 1592년에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동복현감인 김성원이 노모를 구하기 위해 싸우다 죽었다 하여 모호산(母護山)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모후산 남쪽 계곡에는 당나라의 유마운이 창건했다는 대한불교조계종 사찰 유마사 가 있다. 한국전쟁 중 조선로동당 전남도당이 유마사에 숨어들어 백아산과 연계하여 활동한 일이 있다. 공산주의자들의 소굴이라는 이유로 당시의 유마사 건물은 소각되었다. 새로 지은 유마사를 기점으로 산행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인적이 드물었으나 현재는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주변에 화순 적벽, 김삿갓 유적지, 남도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오지호의 생가와 기념미술관이 있다. 조계산도립공원, 화순온천과도 가까운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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