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 산행기

지리산 칠암자 길 & 삼정산'三政山 산행

꺼비♡꺼비 2018. 5. 29. 12:48

 

 

#.지리산 칠암자 길 & 삼정산'三政山 산행

 

 

 

#.지리산 칠암자

지리산 북쪽능선에 위치해 지리주능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곳 삼정산이다. 지리산이면서 어떻게 삼정산이란 이름을 명명받았는지 궁금하다.지리산 우측으로 지리주능에 갈라져 내려앉은 중봉과 하봉을 바라보고 좌측으로 반야봉을 세우고 다시 노고단을 거쳐 종석대에서 섬진강을 바라보면 다시 달려 만복대를 지나 바래봉과 덕두봉을 솟구치게 한다. 그것이 지리삼신할매가 지키고 있는곳이 칠암자다.   지리산 주능선 삼각봉(1462m)에서 북서로 뻗어내리며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도계를 이루는 능선이 지리산 중북부능선인데 중간에 삼정산이 솟아 일명 삼정산능선이다. 이 주능에서 내려앉은 도솔암(1165m),영원사(895m),상무주암(1162m),문수암(1060m),삼불사(990m),약수암(560m),실상사(330m)가 있는 곳이 지리산 칠암자이다.   도솔암과 상무주암,문수암은 영원사에 부속된 암자이면서 고산지대의 기암절벽을 등지고 천왕봉을 향해 거침없이 조망권을 자랑하는 곳이다. 삼정산 끝자락에 위치한 약수암은 실상사에 부속된 암자로써 보광전의 목조탱화(보물421호)가 유명하고 맑은 약수가 또한 유명해서 약수암이라고도 한다.

#.산행코스: 음정삼거리 - 작전도로 - 도솔암 - 영원사 - 삼정산 - 상무주암 - 문수암 - 삼불사 - 약수암 - 실상사 - 입석리(마을주차장)

 

#.산길

 

산길은 산을 닮아 있다.

산을 닮은 산길은 산을 배반하지 않는다.

산이 둥글면 둥글게 길을 열고

산이 각지면 각지게 길을 열고

산의 높이만큼

산의 깊이만큼

오르내리면서 산과 함께 하고

 

산길은 나무를 사랑할 줄 안다.

나무를 사랑할 줄 알아

나무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몸을 낮추고 겸손하게

나무들의 자리를 탐하지 않고

비어 있는 곳으로 다니고

 

산길은 사람을 알아본다.

사람을 알아보기에 사람을 대할 줄 안다

성질 급한 사람은 급하게 걷다

지치게 만들어 천천히 가게 하고

차분한 사람은 차분하게 걷다

산 깊은 맛을 보게 하고

사람에 맞게 길을 가게 하고

 

산길은 산을 닮아아서 좋고

산길은 나무를 사랑할 줄 알아서 좋고

산길은 사람을 알아봐서 좋고

그래서 산길은 있는 그대로가 좋다.

 

#.산행지도

 

 

#.산행사진

 

 

 

 

 

 

 

 

 

 

 

 

 

#.나도 수정초  

숲 속의 토양이 비옥한 곳에 자라는 부생식물로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높이 10-30cm이고 기둥 모양으로 곧추선다. 잎은 비늘 모양이며

빽빽하게 어긋난다. 끝은 둥글고 육질이다. 꽃은 4-8월에 흰색으로 피며, 줄기 끝에 1개가 종 모양으로 밑을 향해 달리는데, 열매가 성숙할

때는 곧추선다. 꽃받침조각은 일찍 떨어진다. 꽃잎은 5장, 씨방은 한 칸이다. 열매는 타원상 구형인 장과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에 자생한다.

러시아, 일본, 중국 및 인도차이나, 히말라야 등지에 분포한다.

 


#.도솔암

 

 

 

 

 

 

 

 

 

 

 

 

 

 

 

 

 

 

 

 

 

 

[영원사]

영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해인사의 말사로 신라 진덕여왕(재위 647∼645) 때 영원(靈源)이 창건하였다 해지며, 1948년 여수·순천사건

당시 아군의 공격에 쫓긴 반란군이 이곳을 아지트로 삼자 아군이 작전상 태워 완전 소실되었고 지금의 법당은 그 후 1971년에 중창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이름난 수행처로서 109명의 고승이 안거하였다 하며,  이 사찰의 조실안록(祖室安錄)에따르면 영관(靈觀:1485∼1571),

휴정(休靜:1520∼1604), 인오(印悟:1548∼1623), 유정(惟政:1544∼1610),상언(尙彦:1707∼1791) 등의 큰스님이 열거되고 있다.

 

건물은 인법당만 남아 있고, 암자는 도솔암과 상무주암(上無住庵), 문수암 등이 남아 있는데,  그중 도솔암은 인오가 수도하던 곳이고, 

상무주암은 지눌(知訥)과 혜심(慧諶) 등이 머무르던 암자이며, 문수암 뒤에는 임진왜란 때 마을사람 천명이 피난하였다고 전해지는

천인굴(千人窟)이 있다.  유물로 영암(靈巖)과 상언, 중봉(中峰), 청계(淸溪), 벽허(碧虛), 인오의 부도 6기가 전해진다.

 

 

 

 

 

 

 

 

 

 

 

 

#.상무주암

 

 

 

 

 

 

 

 

 

 

 

 

#.삼정산'三政山  높이: 1.182m   위치: 경남 함양군 마천면

높이 1,182m의 고산으로 지리산에 속해있지만 천왕봉 능선을 바라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건너편 삼봉산등 지리산 주변과 실상사를 포함한

산내면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주변에 실상사를 필두로 약수암, 삼불사, 문주암, 상무주암, 영원사, 도솔암 등 일곱 개의 사찰과 암자가 자리하고 있다. 이 산릉을 오르는

길은 등산길이라기보다는 사철순례의 길이라 할 정도이다. 실상사, 약수암을 제외한 암자나 사찰들이 주로 이 능선의 남동사면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남원에서는 실상사에서 약수암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오르거나 반선에서 와운마을로 들어가 영원령으로 올라 삼정산으로 내려오는 길이

있다.

 

 

 

 

 

 

 

 

 

 

 

 

 

 

 

 

 

 

 

#.문수암

 

 

 

 

 

 

 

 

#.삼불사

 

 

 

 

 

 

 

 

 

 

 

 

 

 

 

 

#.약수암

 

 

 

 

 

 

 

 

 

 

 

#.실상사'實相寺    위치: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33-3외

828년(흥덕왕 3)에 홍척(洪陟)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실상산문(實相山門)을 개산(開山)하면서 창건하였다.

홍척은 도의(道義, 道儀)와 함께 당나라에 들어가 선법(禪法)을 깨우친 뒤 귀국하였다. 그 후 도의는 장흥 가지산에 들어가서 보림사

(寶林寺)를 세웠고, 홍척은 이 절을 세운 뒤 선종(禪宗)을 전파하였는데, 풍수지리설에 의거하여 볼 때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고 하여 이 절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그 뒤 2대조 수철(秀澈)을 거쳐 3대조 편운(片雲)에 이르러서

절을 크게 중창하고 선풍을 더욱 떨치게 되었다.

 

그러나 1468년(세조 14)에 화재로 모두 불타버린 후 200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고, 승려들은 백장암(百丈庵)에 기거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왔다. 그 뒤 1679년(숙종 5)에 벽암(碧巖)이 삼창(三創)하였고, 1684년 계오(戒悟)가 현재의 극락전(極樂殿)인 부도전(浮屠殿)을

지었다. 1690년에 침허(枕虛)를 중심으로300여 명의 수도승들이 조정에 절의 중창을 상소하여 1700년(숙종 26)에 36동의 건물을 세웠다.

 

또한 1821년에는 의암(義巖)이 다시 중건하였으나 1882년(고종 19)함양 출신 양재묵(楊載默)과 산청 출신 민동혁(閔東赫)에 의해

사찰건물들이 불타 없어지는 수난을 겪었으며, 1884년에 월송(月松) 등이 중건하였다. 1903년(광무 7) 익준(益俊)이 승당을 지었으며,

1932년 칠성각을 세웠다.특히 불상에는 보화(寶貨)가 많이 들어 있다 하여 일찍이 도굴꾼들에 의해 훼손된 적이 있었다.

그 불상의 복장(腹藏)에는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원문(願文)과 사경(寫經) 및 인경(印經)이 수백 권이나 들어 있었고, 고려판 화엄경소

(高麗板華嚴經疏) 등 보기 드문 서적도 몇 가지 있었다고 한다. 그 중 일부는 도난당하였고, 나머지는 건물과 함께 불타 버렸다고 한다.

1986년 요사로 사용 중인 선리수도원(禪理修道院)을 건립하였고, 1989년 천왕문을 세웠다. 1991년 범종각을 짓고, 1996년 화엄학림

(華嚴學林) 강당과 학사를 건립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