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 산행기

대원사(유평,대원사)계곡 트레킹 산행

꺼비♡꺼비 2019. 8. 18. 21:43

 

 

# 언제: 2019년 08월 18일 일요일

# 산행지: 경남 산청 대원사(유평,대원사)계곡 트레킹 산행

# 산행거리: 8.47Km   04시간44분

# 산행코스: 대원사주차장 - 소막골야영장 - 대원교 - 일주문 - 대원사계곡 - 대원사 - 유평계곡 - 유평마을회관

                원점회귀산행

 

# 대원사계곡&유평계

기암괴석을 감도는 계곡의 옥류소리, 울창한 송림과 활엽수림을 스치는 바람소리,산새들의 우짖는 소리가 어우러지는 대자연의 합창을 들을 수 있는 계곡이 대원사계곡이다.

 

30여리에 이르는 대원사계곡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중봉과 하봉을 거쳐 쑥밭재와 새재, 왕등재 밤머리재로 해서 웅석봉으로 이어지는 산자락 곳곳에서 발원한 계류가 암석을 다듬으며 흘러내린 조그만 샘에서 출발한 물길이 낮은 곳을 향해 흐르면서 신밭골과 조개골, 밤밭골로 모여들어 새재와 외곡마을을 지나면서는 수량을 더해 대원사가 있는 유평리에서부터 청정 비구니가 독경으로 세상을 깨우듯 사시사철 쉼없이 흐르는 물소리로 깊은 산중의 정적을 깨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은 대원사계곡을 일컬어 남한 제일의 탁족처(濯足處)로 꼽으면서 “너럭바위에 앉아 계류에 발을 담그고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먼데 하늘을 쳐다보며 인생의 긴 여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가질 수 있다면 이 보다 더한 행복이 있으랴” 했다.

 

행정 지명을 따라 유평계곡이라 하지 않고 통상 대원사계곡으로 부르는 연유가 된 대원사 역시 수난의 지리산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의 대원사는 옛스러움과 정갈한 산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청정 비구니 도량답게 소나무와 대나무로 둘러싸인 주변 경치하며 대웅전 앞의 파초, 원통보전(圓通寶殿)에서 산왕각(山王閣)에 이르는 돌계단과 절 뒤편의 차밭, 그리고 추사 김정희의 힘찬 글씨가 돋보이는 요사채는 피서지 사찰답지 않은 청결함을 보여준다.

 

대원사 계곡에 있는 선녀탕, 세신대, 세심대, 옥녀탕 등의 지명도 대원사의 탈속한 기풍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대원사계곡의 깊은 맛은 이러한 외형적인 모습에 있지 않다.

 

대원사계곡에서 유래한‘덕산 유독골' 과‘골(계곡)로 갔다’라는 말 속에 우리 민족의 현대사와 지리산을 바라보는 민초들의 심성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죽었다’는 뜻으로 흔히 쓰는‘골(계곡)로 갔다’라는 말 역시 골짜기의 깊음과 골짜기에 들어갔다 하면 죽어서야 나올 수 있었던 현대사의 단면을 느낄 수 있다.

 

빨치산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 토벌을 하기 위해 골짜기에 들어갔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빨치산이 되었건 골짜기에 들어가기만 하면 살아서는 못나왔기에‘죽는다’는 말‘골짜기로 갔다’의 줄임말인‘골로 갔다’를 동의어로 썼다.

 

이렇듯 대원사계곡은 그 골짜기가 깊다 보니 변환기 때마다 중요 피난처이자 역사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화전민이 있었던 이곳은 1862년 2월 산청군 단성면에서 시작해 진주로 이어지면서 전국적인 규모로 발전한 농민항쟁에서부터 동학혁명에 이르기까지 변혁에 실패한 사람들끼리 모여 그들만의 세상을 꿈꾸며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일제시대에는 항일의병의 은신처가 되었고, 한국전쟁에 이어 빨치산이 기승을 부릴 때는 낮에는 국군의 땅이 되고, 밤에는 빨치산의 해방구가 되었다.

 

이런 사연을 가진 대원사계곡도 이젠 자동차로 한달음에 계곡의 끝인 새재마을까지 오를 수 있으니 차창 밖으로 보이는 계곡이야 여름이면 더위를 씻어 주는 피서지이고, 가을이면 단풍 구경가는 길일 뿐이다. 계류의 물소리와 바람이 흔들고 가는 나뭇가지의 몸짓에 한많은 역사의 넋풀이를 보는 발걸음이 있다면 옛 화전에서 나는 유평 꿀사과의 향기도 입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대원사,大源寺 - 평원사(平原寺), 대원암(大源庵) 위치: 경남 산청군 삼정면 유평리 1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이다.

 

548년(진흥왕 9) 연기(緣起)가 창건하여 평원사(平原寺)라 하였다. 그 뒤 폐사가 되었던 것을 1685년(숙종 11)운권(雲捲)이 옛터에 절을 짓고 대원암(大源庵)이라 하였으며, 1890년(고종 27)구봉(九峰)이 낡은 건물을 중건하고 서쪽에 조사영당(祖師影堂), 동쪽에 방장실(方丈室)과 강당을 짓고 대원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1913년 12월 화재로 소실되자 주지 영태(永泰) 등 50여 명이 16,000원의 시주를 얻어, 1917년 전(殿)·누(樓)·당(堂)·각(閣)과 요사채 등 12동 184칸의 건물을 중건하였다. 1948년 여순반란사건 때 공비들의 약탈 방화로 소실된 뒤 8년 동안 폐허가 되었으나, 1955년 승려 법일(法一)이 다시 중창한 뒤 비구니선원(比丘尼禪院)을 개설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의 선원은 석남사(石南寺)·견성암(見性庵)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도량으로 손꼽힌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원통보전(圓通寶殿)·응향각(凝香閣)·산왕각(山王閣)·봉상루(鳳翔樓)·천왕문(天王門)·범종각·주지실·대방·객실·창고 등이 있으며, 절 뒤쪽에는 사리전(舍利殿)이라는 암자가 있어 다른 지방에서 수도하러 온 여승들이 기거하고 있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1112호인 다층석탑이 사리전 앞에 있다. 646년(선덕여왕 15) 자장(慈藏)이 세웠다는 이 탑은 돌이 철분을 많이 함유한 탓으로 붉은 물이 스며 나와 강렬한 인상을 풍기고 있으나 조각은 소박하다. 하단 네 귀퉁이에는 신장상(神將像)을 세우고 사면에는 연화문(蓮花文)을 조각하였으며, 체감의 비율은 거의 완벽하다. 옥개석은 둔중하며 제9층의 사우(四隅)에는 작은 종을 달았다.

 

200년전 이 탑을 개축할 때 72과의 사리가 나왔다고 하는데, 큰 것은 녹두알 만하였고 작은 것은 기장알 정도의 크기였다고 하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나라에 경사가 있으면 탑전에서 서광이 비치고 향내가 경내를 진동시켰다고 하며, 몸과 마음이 맑은 사람은 곁 연못의 물에 비친 탑의 그림자 속에서 탑 안의 사리를 보았다는 말도 전해지고 있다.

이밖에도 절 입구에는 부도와 방광비(放光碑)가 있고, 절 부근에는 옛날 선비들이 수학하였다는 거연정(居然亭)·군자정(君子亭) 등이 있다.

 

인생은 한번이다

흐르는 인생처럼
모든 것에 느끼고 싶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인생은 한번이다..
연습도 복습도 없는 인생
꼭! 한번 사는 인생.

힘들고 고단한 삶일지라도
단 한번의 인생이기에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순간 순간의 행복을
온 몸으로 느끼는 삶이고 싶다.

죽도록 노력해도 안되는 일도 많고
죽도록 일해도 형편 좋아지질 않는
인생이라도 순간 순간의 행복은 있다.

늘 인생의 마지막 삶처럼
최선을 다해 살았다면
후회 없이 살고 있는 것이다.

인생 하나하나에 모든 것을 느끼며
자연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인생도 자연처럼 순응하며
받아 들이며 살고 싶다.

인생은 아름다웠다...중에서

 

# 산행지도

 

 

 

 

 

 

 

 

 

 

 

 

 

 

 

 

#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