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 산행기

문수골,큰진도사골,문수대(문수암),월령봉능선

꺼비♡꺼비 2020. 11. 30. 14:18

# 언제: 2020년 11월 28일 토요일

# 산행지: 지리 품속(문수골,큰진도사골,문수암(문수대),월령봉능선)에서 놀다.

# 산행거리: 11.95Km  07시간 42

# 산행코스: 신율마을 - 문수골 - 큰진도사골 - 문수대(문수암) - 월령봉능선 - 맥막등 - 밤재 - 신율마을(원점회귀)

 

모든 갈망을 버려라.

입술 위에 곰팡이가 피도록 하여라.

스스로 완전히 한 가닥의 흰 실과 같이 하여라.

이 일념을 영원히 고착시켜라.

스스로 차갑고 생명 없는 식은 재처럼 되어라.

 

# 산행지도

 

 


# 산행사진

신율마을 쌍둥이 민박집 앞 주차장

 

구례군 토지면 문수리 쌍둥이 민박집 앞 신율마을주차장, 문수골과 큰진도사골로 해서 노고단 아래 자리 잡은 문수암(문수대)으로 올라, 노고단에서 뻗어내린 월령봉능선을 따라가다 밤재에서 내려서서 돌아오기로, 지리 품속으로 들어 간다.

 

 

 

첫번째 갈림길 왼쪽은 정상적인 등산로, 오른쪽은 문수골 이다. 우린 오른쪽 문수골로 고고싱

 

여기도 출입금지 우린 간다 지리 품속으로

 

저 멀리 왕시루봉능선 과 질매재

 

 

산간계곡자동우량경보시설이 설치된 공터가 나오면서 산길이 이어받는데, 국립공원특별보호구역이라면서 출입금지란 안내판이 떡하니 버티지만, 진도사의 발자취를 더듬고 또 문수암으로 가자면 어쩔 수가 없다. 문수골 가까이로 꽤 뚜렷한 길이 나 있으며, 논밭의 흔적인지 돌로 쌓은 축대도 더러 보인다. 아마 여기도 화전민 살던 터 였을 것이다.

 

居然我泉石(거연아천석)'이란 글씨가 새겨진 너럭바위

 

오늘 함께한 형님, 친구, 동생, 너럭바위 에서 고부 시작한다.

 

居然我泉石(거연아천석)'이란 글씨가 새겨진 너럭바위, 초서체(草書體)라 뭐가 뭔지 알아볼 수도 없지만,  주자(朱子)의 시 정사잡영(精舍雜詠) 12수 중 한 구절이라는데, '물과 돌이 어우러진 자연에서 편안하게 사는 사람'이란 뜻으로, 함양 화림동계곡의 거연정(居然亭)도 같은 맥락이라나?

 

 

 

 

 

 

너럭바위에서 단체사진

 

 

 

 

 

갈림길 질매재, 문수골, 지점

 

문수골의 아름다운 풍광

 

 

형님께서 내년 여름 삼겹살 파티 하자 하신다 - 계곡 너무 아름답다.

 

 

 

 

 

 

 

 

 

문수골을 따라 골치기를 하다보면 구멍바위라고도 부르는 진도사바위, 나온다. - 진도사와 얽힌 전설이 있다는데, 옛날도 아주 먼 옛날, 진도사가 도를 닦던 중 해가 지려 하자, 큼지막한 바위에다 구멍을 뚫고 나무를 박아 해가 지지 못하게 매달아 놓고, 그날 몫의 도를 다 닦고 나서야 해를 풀어줬다나 어쨌다나?

 

 

단체 사진 남기고

 

아름다운 계곡 걸으며

 

 

 

 

 

 

갈림길 왼쪽 작은진도사골, 오른쪽 큰진도사골 이다.

 

작은진도사골 방향

 

우린 큰진도사골 문수암으로 이어지는 큰진도사골을 치오르기로?

 

큰진도사골 걷는다 고고싱

 

 

 

큰진도사골 여긴 문수골하고, 전혀 다른 멋을 가지고 있는 계곡.

 

 

 

 

계곡 걸으며, 얼음 과자 먹어본다 - 겨울이다.

 

 

 

 

석문에 걸친 막대기를 들추고 들어선 문수암, 노고단 아래 자리 잡은 문수대가 병풍처럼 버티는 가운데, 왕시루봉능선 너머론 삼신봉과 형제봉을 잇는 산줄기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문수대는 지리 10대의 하나이자 우번대, 서산대, 무착대, 묘향대와 더불어 반야 5대라 부르기도, 화엄사의 부속암자인 문수암, 땅주인은 서울대학교이고 관리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한다는데, 문수대에서 흘러나오는 석간수로 컬컬한 목을 축이고, 우린 오늘 석간수 앞자리에 점심 식사자리를 만든다.

 

문수대(문수암) 석문

 



 

 


 

1960년 문수대(문수암) 초막풍경

문수대 - 왜 문수대일까. 문수대가 자리한 노고단은 예전에 길상봉으로도 불렸다. '(묘)길상'은 문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암자가 있는 골짜기도 문수골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 이 일대는 문수보살의 화신인 것이다. 문수(文殊)란 무엇인가. 이름 그대로 지혜를 상징한다.

백두산이 흘러내려 이루어진 산이 지리산이다. 지리산은 원래 대지문수보리보살(大智文殊師利菩薩)에서 '지(智)'와 '리(利)'를 따왔다고 한다. 중생을 제도하는 문수 보살의 지혜가 깃든 산이라는 의미이다. 말 그대로 지리산은 지혜의 산이다.

문수대는 정남향이었다. 고도계는 해발 1310 미터를 가리켰다. 왕시리봉을 바라보고 있다. 지리 10대 기도처 - 우번대, 문수대, 묘향대, 서산대, 무착대, 향운대, 문창대, 영신대, 향적대, 금강대 지리 반야 5대 - 우번대, 문수대, 묘향대, 서산대, 무착대

 

문수암 돌 식탁

 

 

 

 

 

 

문수대 암자를 4년 동안 지키고 계신 대원스님의 말씀 중 문수대 설화에 대한 이야기를 옮겨 보겠습니다.

문수대는 자료에 의하면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수행한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대원스님의 말씀처럼 천년을 내려온 수도처인 셈입니다.

이곳이 문수대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한참 후의 일입니다. 100여년전 두 젊은 스님이 고승이 수행한 자리에서 수행에 용맹정진하고자 동안거를 계획하였습니다. 이때 남루한 차림의 노승 한분이 함께 수행할 것을 제안하여 젊은 스님들과 함께 동안거에 들었습니다. 동안거란 겨울 석달 동안 외출을 삼가하고 한곳에서 수행에 전념하는것을 말하죠.

첫 일주일 동안은 노스님이 계속하여 조는 바람에 젊은스님이 죽대로 노스님의 잠을 깨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후 남은 기간은 젊은 스님들이 졸게 되어 노스님이 죽대로 젊은 스님의 수행을 도와주게 되었죠.

무사히 동안거를 마치고 마지막날 노스님은 홀연히 사자의 상을 하고 하늘로 사라지셨다고 합니다. 젊은 스님들이 생각하기에 문수보살께서 현신하여 젊은 제자의 수행을 도와주셨다고 하여 이후 이곳을 문수대라고 하였답니다.

출입구의 돌담은 위에서 보면 만(卍)자를 만들고 있다고 하네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어서 그런지 돌담 하나에도 의미를 담고 있는것 같습니다.

대원스님의 말씀으로는 지리산에는 반야봉을 중심으로 8대가 있는데 금강대가 제1대였다고 하나 그 흔적을 찾지 못하여 현재는 문수대가 제1대의 의미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무허가란 이름으로 하나둘 사라져 가는 옛 수도처의 모습도 가슴아프고 토굴에서 수행에 정진하는 노력을 버리고 큰 절에서 행정일을 보는것을 우선으로 하는 현재의 불교 모습도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구례의 옛 읍지인 「봉성지(鳳城誌)」에는 “신라 경덕왕(742∼764) 대에 왕의 명으로 화엄사를 크게 중수하고 8당우와 81암자를 세웠다.”고 하였으니 문수대 역시 이 암자들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문수대는 신라의 원효 성사와 의상 대사가 주석했던 곳이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승장(僧將) 청매 선사(靑梅禪師)와 이 충무공의 군사(軍師) 자운 선사(慈雲禪師)가 머물렀고 화엄사 중창주이신 벽암 선사(碧巖禪師)와 그의 제자들의 발자취가 드리워져 있다. 「구례군사(求禮郡史)」에도 고종 4년(1867)에 화엄사의 초운(楚雲) 스님이 수도하셨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토굴터로도 제법 알려져 있던 모양이다.
 
문수대는 화엄사에서 산등을 넘어 질매재를 지나 연곡사로 오고가던 옛 스님네들의 길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문수대 전설 - 문수대는 신라시대 원효 스님이 수행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암자가 터만 전해지고 있다가 약 100년 전에 두 젊은 스님이 토굴을 짓고 수행하면서부터 문수대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문수대라고 이름 붙여진 사연을 이렇다. 
어느 날 두 스님은 원효 스님이 수행하였던 지리산 한 터에서 용맹정진하자고 약속하였단다. 마침 겨울철이어서 두 스님은 겨울을 날 정도의 식량을 서로 등에 지고 산에 올랐다. 눈이 내리면 산길이 끊어져 버리므로 식량을 조달하러 화엄사를 오르내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두 스님은 잠을 자지 않고 화두를 붙들었다. 식사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참선 정진하는 것이 일과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머리는 산발하고 눈물 콧물 흘린 자국으로 얼굴이 지저분한 노인이 나타났다. 그 노인의 부탁인즉 두 스님과 같이 수행하자는 것. 처음에 두 스님은 거절하였다. 우선 먹을 식량이 두 사람 몫뿐이고, 방도 비좁아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두 스님은 노인이 자꾸 부탁하니 난감하였다. 눈 쌓인 험한 산으로 노인을 내쫓는 것은 살생의 짓이나 마찬가지였고,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노인이 나무하고 밥해 준다고 하니 세 끼를 두 끼로 줄이면 될 것도 같아서였다.

결국 두 스님은 노인과 함께 용맹정진에 들어갔다. 스님이 졸면 노인이 나무막대기로 치고, 또 노인이 졸면 두 스님이 그의 등을 치며 졸음을 이겨 나갔다. 그렇게 한겨울이 지나갈 무렵, 노인이 두 스님을 불렀다. 그러더니 “수행 잘하시오”라고 한 마디 한 후, 옷 속에서 짧은 지팡이를 꺼내 허공에 던졌다. 그러자 지팡이는 푸른 사자로 변하였고, 노인은 사자의 등에 탄 뒤 남해 바다 쪽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물론 노인은 문수보살이 두 스님의 정진을 돕기 위해서 화현(化現)한 것이다. 보살은 법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나타나 뜻이 간절한 사람을 돕는다. 거룩한 모습이 아니라 우리보다 조금 낫거나 천한 모습으로 말이다. -경봉스님말씀-

 

문수대에서 흘러나오는 석간수(石間水)

 

 

 

문수암 해우소

 

즐거운 점심식사

 

동생이 준비한 내장모듬국밥

 

 

 

 

 

 

 

 

 

 

 

 

 

 

 

 

 

 

 

 

앞이 트이는 너덜지대,

 

하동 형제봉 일대와 섬진강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문바우등과 왕시루봉, 그 뒤엔 광양 백운산 일대가 마루금, 조망된다.


KBS노고단중계소, 노고단에 상고대 피어있네.

 

저기 있는 바위 월봉능선 들머리 전망바위다

 

가야할 월령봉능선, 뒤로 형제봉 능선

 

 

 

 

겨울이다

 

 

 

 

 

 

 

 

전망바위에서 저 멀리 섬진강, 구례읍, 형제봉능선, 월령봉능선, 멋지다.

 

 

 

왕시리봉, 광양 백운산, 조망

 

 

 

 

 

 

 

 

 

노루궁뎅이 버섯

 

종석대

 

차일봉 능선

 

반야봉 상고대 보이네

 

 

 

 

 

 

왕시루봉, 문수골, 신율마을, 조망

 

 

 

밤재 사거리, 월령봉능선은 여기서 이제 그만, 바로는 형제봉과 월령봉이요 오른쪽은 화엄사 쪽이라는데, 우린 밤재마을을 거쳐 신율마을로 내려간다.

 

 

밤재마을

 

명품소나무 보이고, 이제 오늘 산행 마무리,

 

♬ Caravan Sary - T.S N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