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 산행기

종석대(鍾石臺),우번대(牛飜臺),상선암(上禪庵) 지리,智異의 품속에서 놀다.

꺼비♡꺼비 2020. 12. 7. 14:23

 

# 언제: 2020년 12월 06일 일요일

# 산행지: 종석대(石臺),우번대(牛飜臺),상선암(上禪庵) 지리,智異의 품속에서 놀다.

# 산행거리: 13.23Km  08시간 10

# 산행코스: 천은사 - 천은사계곡 - 마을터 - 장태골 - 목교 - 상선암 - 우번대(우번암) - 태극(주)능선 - 종석대

                차일봉능선 - 차일봉 - 법성봉재 - 상일암 - 천은사주차장 (원점회귀)

 

# 종석대(石臺),우번대(牛飜臺),상선암(上禪庵) 이번 지리 산행에는 우번대,牛翻臺(우번암,牛翻庵),상선암(上禪庵),울력 산행하기로 하고 각자 등산배낭에 무거운 생필품 준비 하여, 매고 산행 길 울력을 한 의미 있는 소중한 시간을 만들었다. 

 

종석대,石臺

돌종이란 의미를 지닌 종석대(石臺·1361m), 정상 암봉이 종 모양을 닮아서라거나 바람이 바위에 부딪칠 때 돌종 소리가 나서 그렇게 부른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우번조사가 도를 통하던 그 순간, 이곳에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석종소리가 들렸다고 하여 이곳을 종석대라 부른다. 명칭도 여러 개다. 우번조사가 도를 깨쳤던 곳이라 하여 ‘우번대’라고도 하고 관음보살이 현신했던 곳이라 하여 ‘관음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종석대(石臺), 이곳에 오르면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번대 법종 스님의 말로는 예전 지리산 빨치산들이 이곳 종석대에 올라 사방을 파수했다고 한다. 구례들판과 섬진강, 노고단 방면, 주능선 쪽, 만복대 등의 북쪽 능선 등 동서남북 보이지 않는 곳이 없으니 지리산 서쪽 방면에서 토벌대의 이동을 파악하기에는 이곳만 한 곳도 없었을 것이다. 흔히 지리산 주능선의 서쪽 끝 봉우리를 노고단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종석대가 서쪽 끝이다.

 

우번대,牛翻臺(우번암,牛翻庵)의 전설

옛날 신라 때 젊은 스님 우번이 조용한 상선암을 찾아 10년 동안의 좌선 수도를 결심하고 혼자서 열심히 불도를 닦기 시작했다. 우번이 정진하던 9년째 되는 어느 봄날이었다. 선녀처럼 아름다운 절세미인이 암자 앞에 홀연히 나타나 요염한 자태로 우번에게 추파를 던지는 게 아닌가. 그녀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우번에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정답게 손짓을 했다. 유혹에 홀린 우번은 젊은 피가 끓어올라 자신이 수도승이란 것도 잊은 채 그 여인의 뒤를 따라 나섰다.

그 미모의 여인은 보일 듯 말 듯 앞서가며 온갖 기화요초가 만발하고 산새들이 즐겁게 노래하는 아름다운 수림 속을 나는 듯 가볍게 지나쳐 상봉을 향해 높은 곳으로 올라만 갔다. 우번도 놓칠세라 그 여인을 따라 숲속을 헤치며 정신없이 허겁지겁 따라 올라가다 보니 어느덧 종석대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눈앞에서 요염하게 웃으며 손짓하던 그 여인은 갑자기 사라지고 난데없이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고 위엄스레 서 있었다. 우번은 깜짝 놀라 정신을 가다듬었다. 관세음보살이 자기의 도심을 시험하기 위해 미녀로 변신한 것임을 비로소 깨닫고 그 자리에 꿇어 엎드려 자신의 어리석음과 허튼 마음을 뉘우치고 참회했다.

우번이 다시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니 관세음보살은 간데없고 그 자리에 큰 바위만 우뚝 서 있었다. 우번은 자신의 수도가 크게 부족함을 깨닫고 이때부터 더욱 분발하여 수도정진하기로 결심했다. 상선암으로 다시 내려가는 대신 그 바위 밑에 토굴을 파고 수도정진을 계속했다. 우번은 수 년 동안 수도를 한 끝에 마침내 성불하여 신라의 이름난 도승이 되었다 한다.


그런데 우번 스님이 도통하는 순간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석종(石鐘) 소리가 홀연히 들려왔다. 바로 이 석종 소리가 울렸다고 하여 이 산봉우리를 '종석대'라 부르게 된 것이다. 종석대는 다른 이름도 함께 갖고 있는데 우번 조사가 토굴을 파고 수도정진한 곳이라 하여 '우번대(牛翻臺)', 관세음보살이 현신(現身)하여 서 있던 자리라고 하여 '관음대(觀音臺)'라고도 불린다.

그 후에도 이곳에서 수도하여 도통한 고승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예부터 우번대와 상선암을 불도의 이름난 영지(靈地)로 손꼽았다. 종석대의 종소리는 지금 들리지 않으나 이곳의 일몰은 황홀경이다. 서쪽의 낙조를 보고 있으니 천 년 전 종소리가 능선 굽이를 넘어 은은히 들려오는 것만 같다.

 

상선암(上禪庵)(해발약780m)

상선암과 수월 스님

상선암은 지리산의 서쪽 종석대 아래 해발 780미터 고지에 있다. 천은사의 산내암자로 나옹 스님이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의 건물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 세운 것이다. 상선암은 그 옛날 우번조사뿐만 아니라 경허, 수월, 진응, 용성, 용하, 호음 등 수많은 선승들이 수행하던 곳이었다. 지금은 진명 스님과 다른 한 분의 스님이 있다. 수월 스님이 조실로 있을 때 입승(절에서 기강을 맡은 승려)으로 있었던 용성 스님 당시(1896년)에만 해도 대중이 서른 명쯤 되었다고 하니 지금과는 달리 그 규모가 상당했던 모양이다.

뛰어난 수행력과 방광불사로 세상을 뒤흔든 수월 스님은 마흔둘이 되던 1896년에 지리산 천은사와 상선암, 그리고 우번대에서 봄, 여름, 가을 한철을 보냈다. 수월 스님은 염불을 한번 듣고 암기 한 뒤 염송(念頌)에 몰두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문자를 몰라 경전을 읽거나 쓰지는 못했지만 어떤 물음에도 막힘이 없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으나 수월 스님은 천수삼매를 얻은 후 평생 잠을 자지 않고 정진한 도인으로 알려졌다.

수월 스님은 젊어서 머슴살이를 하다가 1884년에 충남 서산군 천장암으로 출가하여 한국 근현대 불교를 개창한 경허(1846~1912) 스님의 제자가 됐다. 경허 스님의 제자로는 '삼월(三月)'이라 불리는 수월(1855~1928), 혜월(1862~1937), 만공(1871~1946) 스님이 있었다. 그의 세 제자 또한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선승들이다. 경허는 '만공은 복이 많아 대중을 많이 거느릴 테고, 정진력은 수월을 능가할 자가 없고, 지혜는 혜월을 당할 자가 없다'고 했다. 수월 스님은 금강산에서도, 지리산에서도, 두만강을 건너 생을 마친 간도에서도, 일하는 수행자로 일생을 살았다.

 

모든 갈망을 버려라.

입술 위에 곰팡이가 피도록 하여라.

스스로 완전히 한 가닥의 흰 실과 같이 하여라.

이 일념을 영원히 고착시켜라.

스스로 차갑고 생명 없는 식은 재처럼 되어라.     

 

# 산행지도

 

 

 

 

# 산행사진

천은사 주차장 산행시작 - 저 멀리 간미봉 능선

 

 

대한민국 참 돈 만은나라 - 조금씩 만 보수 관리해도 될 듯한데  - 불 필요한 곳에 너무 세금 낭비 - 천은사 일주문

 

수홍루垂虹樓 - 잘난 너 루樓를 보고,소나무 숲 계곡의 물소리와 솔숲에 숨어 우는 새소리를  들으며 무지개虹 처럼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아  가는것을 드리우고(垂나타내고) 있는 곳이니,건강을 지키고 살아 가는것을 깨닫고,건강을 지키고 무지개虹 처럼 아름다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아 가라는 메세지를,우리조상님중에 선지식인분께서 "수홍루垂虹樓" 이름으로 주고 있는 것(드라마 미스터션샤인 촬영지)

 

 

수홍루에서 천은제

 

 

 

 

 

 

 

천은사,泉隱寺(감로사,甘露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이다. 화엄사·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의 하나로서, 828년(흥덕왕 3) 인도 승려 덕운(德雲)이 창건하였으며, 앞뜰에 있는 샘물을 마시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하여 감로사(甘露寺)라 하였다.

 

그 뒤 875년(헌강왕 1)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건하였고, 고려 충렬왕 때에는 남방제일선찰(南方第一禪刹)로 승격되었다가 임진왜란의 전화로 완전히 불타버렸으나, 1610년(광해군 2)에 혜정(惠淨)이 중창하였고, 1679년(숙종 5)에 단유(袒裕)가 중건하여 천은사라 하였다. 중건 당시 감로사의 샘가에는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났으므로 한 승려가 이를 잡아 죽였더니 그 뒤로부터는 샘이 솟아나지 않았고, 샘이 숨었다 해서 천은사로 개명하였다 한다.

 

절 이름을 바꾼 뒤 이상하게도 이 사찰에는 원인 모를 화재가 자주 일어나서 절에 큰 걱정거리가 되었지만, 재화가 끊이지 않자 주민들은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 주는 뱀을 죽였기 때문이라며 두려워하였다. 그 때 조선 4대 명필의 한 사람인 이광사(李匡師)가 수체(水體)로 물 흐르듯 ‘智異山泉隱寺’라는 글씨를 써서 수기를 불어 넣은 현판을 일주문에 걸게 한 뒤로는 다시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새벽녘의 고요한 시간에 일주문에 귀를 기울이면 현판 글씨에서 신운(神韻)의 물소리가 연연히 들린다고 전하여 내려온다. 1774년(영조 50)에 혜암(惠庵)이 그 전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던 전각을 남원부사 이경륜(李敬倫) 등의 도움을 얻어 중창하였고, 1996년에는 천왕문·종각을 지어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들은 대부분이 1774년에 중건한 것으로, 보물 제2024호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팔상전(八相殿)·응진당(應眞堂)·칠성각·삼성전(三聖殿)·첨성각(瞻星閣)·감로전·불심원·회승당(會僧堂)·보제루(普濟樓)·방장선원(方丈禪院)·종무소·일주문·수홍문(垂虹門)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수홍문은 무지개가 드리워 내린 듯 계곡과 함께 아름다운 운치를 띤다. 극락보전 그외 문화재로는 보물 제924호 극락전아미타후불탱화․보물 제1340호 괘불탱(掛佛幀), 보물 제1546호 금동불감(金銅佛龕), 보물 제1888호 삼장보살도(三藏菩薩圖), 보물 제1889호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및 대세지보살좌상(大勢至菩薩坐像) 등이 있다.


 

 

 

 

 

 

 

 

 

 

 

 

300년 된 천은사 멋진 노송

 

 

 

 

 

 

아른다운 천은사 산책 길

 

구름다리도 지나고

 

오늘 뚜벅 동생 배낭에 메어있던 저 바람막이 산행 하며 일어 버렸다...

 

천은사 골 계곡

 

가야할 길이 있는데 어찌 할까

 

 

천은사 계곡 의 돌 탑

 

 

 

 

나(남)무아비타불 각자바위

 

 

 

천은사 골

 

 

마을터 - 성삼재오르는 도로와 만나기 직전 넓은 분지 곳곳에 흔적이 산재하고.

 

성상재 도로 - 도로 건너서 상선암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 일제의만행 송진채취자국

 

 

 

상선암 입구 목교

 

장태골

 

갈림길 - 목교 바로 윗 지점 좌측 상선암 으로 우 직진길은 우번암으로 직등 상선암 토굴에서  오르면 두길은 우번암 직전 능선에서 다시 만나고...

 

상선암 가는길 - 암자터

 

 

 

상선암 가는길 - 노송과 수백년 수령이 짐작되는 전나무가 즐비한 전형적인 지리산길...

 

 

 

 

 

 

 

상선암  오르기 전 단체 사진 한장

 

상선암(上禪庵)(해발약780m)

천년의 역사와 많은 명승들의 수도처였던 곳, 그 역사와 유례가 심오한 산중암자입니다.  근래 유명한 외국계 파란눈의 현각스님께서 지리산빨치산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100일동안 솔잎가루와 약간의 과일만 먹으며 매일 1천3백배와 묵언수행으로 기도를 올려  더욱 알려진 암자...


 

 

 

 

 

 

상선암 채마밭

 

 

 

 

상선암 조망 - 구례와 남원을 휘감아 도는 견두지맥길이 뚜렷하게 조망되고...

 

상선암 각자

 

 

 

상선암 토굴

 

 

우번암 가는 길 - 우번암 까지 약간 경사진 길

 

우번암 입구 삼거리에서...종석대와 우번암으로 갈리는 삼거리 조망바위

 

내려설 차일봉 정상과 그 뒤로 구례읍 섬진강, 오산이 오롯하네요.

 

간미능선 성삼재 길 조망

 

우번대(우번암) 들어가는 입구 길

 

우번대(우번암) 해우소

 

 

우번대(우번암,牛飜庵) - 종석대 아래 양지에 자리잡은 명당터 우번암

신라 승, 우번은 지리산에 입산, 상선암에서 10년 수도를 결심하고 9년째 수도를 하던 어느 봄날, 아름다운 미녀가 나타나 그를 유혹했다. 여인에 홀린 우번은 그녀를 따라 나선다. 그 여인은 기화요초 만발한 아름다운 숲을 지나 산 정상으로 오른다. 우번도 여인을 놓칠세라 정신없이 차일봉 정상까지 따라 올랐는데, 여인은 간데없고 관음보살이 굽어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우번, 관음보살이 시험한 것을 알그 자리에 엎드려 참회하니 관음보살은 간데없고 바위만 우뚝 서 있다. 우번은 수도가 크게 부족함을 깨닫고 차일봉 자락에 토굴을 파고 수도정진하여 도승이 되었는데, 우번대사가 도 통하던 순간, 석종소리가 들여왔다고 한다.

 

우번대(우번암)의 소박한 산신각 - 자그마한 바위에 산왕지위(山王之位)가 반듯하게 새겨져 있고


우번대(우번암) 채마밭 - 이곳이 본시 토굴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우번대(牛飜臺)는 우번조사의 전설과 함께 '소가 몸을 바꾼자리'라는 뜻도 있다. 신라때 문수보살과 함께 길을 가던 길상동자가 어느 밭에서 조 세알을 따 먹은 후, 그 빚으로 길상동자가 소로 변했다. 소로 변한 길상동자는 3년 동안 밭 주인에게 일을 해주고 다시 동자로 화신했다는 전설도 있다. 우번조사 이후로도 많은 고승들이 우번대에 머물렀는데 열심히 기도하여 깨우침을 얻은 스님들은 종석대에서 울러퍼지는 돌종소리를 들었다고 전한다.


 

 

법종스님 과 훈훈한 담소 나누며 - 79년도 약관의 20대에 이곳에 입산

 

 

우번대(우번암) 요사채

 

 

우번암(우번대)에서 맛있는 점심식사

 

 

 

 

 

 

 

 

돌확 - 경상도에선 도구통이요, 전라도에선 확독이라던가, 그리고 우번암 샘터

 

식사후 갈림길 삼거리 - 간봉능선, 성삼길, 조망 후 종석대로 고고싱

 

 

드디어 종석대 조망

 

 

 

종석대 오르기전 조망터에서 내려가야 할 차일봉능선 과 뒤로 형제봉 능선 조망

 

간미봉능선 성삼재 길 조망

 

멋진 조망 그리고 사진 찍기 놀이

 

 

 

 

 

 

 

 

 

 

 

 

 

 

 

 

 

 

 

 

 

 

 

 

 

 

 

 

 

여기서 부터 태극(주)종주길  - 만복대 조망

 

노고단 배경으로  형님 사진 한장

 

노고단, 종석대, 배경으로 사진 한장 형님

 

태극(주)종주길 걸으며, 종석대로 고고싱

 

 

 

 

 

종석대,石臺

돌종이란 의미를 지닌 종석대(石臺·1361m), 정상 암봉이 종 모양을 닮아서라거나 바람이 바위에 부딪칠 때 돌종 소리가 나서 그렇게 부른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우번조사가 도를 통하던 그 순간, 이곳에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석종소리가 들렸다고 하여 이곳을 종석대라 부른다. 명칭도 여러 개다. 우번조사가 도를 깨쳤던 곳이라 하여 ‘우번대’라고도 하고 관음보살이 현신했던 곳이라 하여 ‘관음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종석대(石臺), 이곳에 오르면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번대 법종 스님의 말로는 예전 지리산 빨치산들이 이곳 종석대에 올라 사방을 파수했다고 한다. 구례들판과 섬진강, 노고단 방면, 주능선 쪽, 만복대 등의 북쪽 능선 등 동서남북 보이지 않는 곳이 없으니 지리산 서쪽 방면에서 토벌대의 이동을 파악하기에는 이곳만 한 곳도 없었을 것이다. 흔히 지리산 주능선의 서쪽 끝 봉우리를 노고단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종석대가 서쪽 끝이다.


차일봉능선과 구레읍

 

만복대, 바래봉, 조망

 

종석대 정상

 

 

 

 

 

 

 

 

 

종석대 정상에서 노고단 조망

 

앞으로 하산 해야 할 차일봉 능선

 

 

 

 

하산 길 차일봉 능선 고고싱

 

갈림길 삼거리 - 우번대(우번암), 종석대, 차일봉능선 길

 

하산길에 큰 암석

 

샘터도 있다

 

 

차일봉 1048m

차일봉(종석대) 전설차일봉은 그 모양이 마치 차일을 쳐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우번대, 종석대, 관음대 등 여러 이름을 갖고 있는데 정상에 암불이 솟아 있어 자연전망대로서 구실도 톡톡히 하고 있다. 차일봉 남쪽 천은사 계곡 상류 깊은 곳에 상선암이란 이름난 선원이 있었다. 신라의 고승 우번조사가 젊은 시절 조용한 상선암을 찾아 10년 수도를 결심하고 혼자 수도 정진하기를 9년째 되던 어느 봄날, 절세미인 한사람이 암자에 나타나 요염한 자태로 우번을 유혹하였다.
여인에게 홀린 우번은 수도승이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여인의 뒤를 따라 나섰다. 그 여인은 온갖 기회요초가 만발하고 아름다운 수림속을 지나쳐 자꾸만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우번은 여인을 놓칠까봐 산속을 헤치며 정신없이 올라 가다 보니 어느덧 차일봉 정상에까지 오르게 됐다. 그런데 우번을 유혹하던 여인은 간데 없고 난데없이 관음보살이 나타나 우번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우번이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 보니 이는 필시 관음보살이 자기를 시험한 것이라 깨닫고 그 자리에 엎드려 자기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참회하니 관음보살은 간데 없고 대신 큰 바위만 우뚝 서 있었다. 자신의 수도가 크게 부족함을 깨달은 우번은 그 바위 밑에 토굴을 파고 토굴속에서 수도하여 후일 도승이 되었다 한다.

우번도사가 도통한 그 토굴자리를 우번대라 부르게 됐으며, 또 우번조사가 도통한던 그 순간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석종소리가 들려왔다하여 이곳을 종석대라 부르며, 관음보살이 현신하여 서 있던 자리를 관음대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차일봉 정상에서 종석대, 노고단, 조망

 

하산 길 폐사지 가 있었는데, 자나치고 - 지리는 어디까지 공부 일까

 

하산길 조망 되는 연기암

 

법성봉재 도착전 발 맛좋은 솔밭길...

 

 

법성봉재 - 법성봉(762m)를 눈앞에 두고 만나는 사거리, 직진은 법성봉, 원사봉을 거쳐, 화엄사초입 상가지로 이어지고, 우측은 삼일암이나 중허리길로, 좌는 XX암을 거쳐 연기암 화엄사로...

 

 

법성봉재에서 삼일암으로가는 큰 암석

 

이 바위는 흔들바위 까 - 움직이지는 않는다.

 

861번 지방도 - 성삼재 길

 

삼일암

 

 

오늘 산행 마무리 하며 단체 사진

 

 

 

861번 지방도 - 성삼재 길

 

♬ Caravan Sary - T.S N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