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 산행기

향운대(香雲臺),최마이굴,두류능선, 지리,智異의 품속에서 놀다.

꺼비♡꺼비 2020. 12. 21. 14:44

# 언제: 2020년 12월 20일 일요일

# 산행지: 향운대(香雲臺),최마이굴,두류능선, 지리,智異의 품속에서 놀다.

# 산행거리: 12.2Km  08시간 13

# 산행코스: 광점동 - 지산대 - 어름터(독가촌) - 향운대길 - 향운대(香雲臺) - 두류능선 - 최마이굴(Back) - 두류능선

                두류봉팬션 - 광점길 - 광점동(주차장) - 원점회귀

# 산행루트 광점동 에서 시작 어름터 가기전 벽송사능선 갈림길 확인(추성둘래길 좌측으로), 추후 점필재 길 2구간 구롱길(아홉모랭이길) 산행하기위해 답사 하고, 오늘 루트인 향운대(香雲臺),최마이굴,두류능선, 지리,智異의 품속으로 들어간다. 전 지리 산행에서는 세찬 바람으로 산행 길 추위를 느꼈는데, 오늘 산행 길 포근하다 우리나라 계절의 특정 상 사계절 산행을 해야 하고자 한 루트 산행 맛을 알것이다. 루트인 향운대(香雲臺),최마이굴,두류능선, 행복하고 즐거운 산행 했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첫 번째 방법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이다.

사람들이 나를 만나 인사를 안 할 수도 있고,

내 욕을 할 수도 있고, 날 싫어할 수도 있고,

내가 최선을 다했음을 못 알아 줄 수도 있고,

오히려 비웃을 수도 있다는 것.


나아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그 사람의

사정에 따라 그를 만나고 싶은

순간에 못 만날 수도 있고,

그에게 나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생길 수도 있고,

그러면 잠깐 내 존재를 소홀히 여기거나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가 나를 만나도 피곤하고 지친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가 날 싫어해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일에 지쳐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때로 “힘들겠구나” 한 마디 외에는

어떤 위로도 도움이 안 되는

순간이 있음을 받아 들여야 한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의해 그럴 수 있다는 것.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

날 완벽하게 사랑해 줄 사람도 없고,

단지 사람들은 현재 그 시점에서 자기에게

더 중요한 것에 마음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받아 들이면 어떤 경우에도 상처를 덜 입을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애적인 존재다.

 

하지만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인해

조금 더 인간 다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상처는 치유되고 사랑도 굳건해지지 않을까.

 

양창순,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 산행지도

 

 

 

 

 

 

 

# 산행사진

광점동 주차장(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서 바라본 벽송사,(상내봉)능선...

 

 성안(국골)과 허공달골을 가르는 광점동

 

광점동 고개를 지나 어름터(독가촌)방향으로 걷는다.

 

어름터골 철다리 - 2011년 8월 지리산 일대를 휩쓴 태풍 무이파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는데, 통행에 별 지장이 없어서 그런지 제대로 복구가 되지 않은 채로 있으며, 그전엔 두 가닥의 비상활주로용 철판(동그랗게 구멍난 철판, 아나방)이 설치되어 수십 년 동안 다리 역할을 했다는데, 허공다리골이라 부르기도 하는 허공달골, 골짜기가 넓어 허공에 걸린 달이 아름답게 보이는 골, 이라 허공달골이라 하다, 허방다리(구멍난 다리)가 생기면서 허공다리골과 허공달골로 뒤섞어 부르지 않았을까...?

 

다리를 지나며 바라본 허공다리골(허공달골)

 

 

법종 왜 방치 해 있을까

 

산수유

 

 

 

멋진 정자

 

頭流菴 - 柳夢寅

虛壁脩縑繟 : 텅 빈 절벽은 긴 비단을 드리운 듯하고

淸光碎石縫 : 맑은 햇빛은 부서진 바위를 꿰맨 듯하네

傳聲通翠筧 물소리는 푸른 대숲을 통해서 들려오고

飛注作寒舂 : 떨어지는 폭포는 차갑게 절구질을 하네

雙柏西僧老 : 두 그루 잣나무 서쪽 승방 가에서 늙었고

層壇北斗封 : 층층의 법단은 북두성인듯 우뚝하구나

長風生萬籟 : 긴 바람 불어와서 온갖 소리 일으키니

深省寄前峰 : 깊이 성찰하며 앞산 봉우리에 기대 섰네.

* 1구 맨 끝자 +은 자전에 없어 느슨할 단, 계속될 선(다른 표현: 띠 늘어질 천)으로 보았고 ()이 아니고 : 찧을용이 맞음,

 

 

頭流庵(두류암) 관련 유람록과 기행시(181006)

두류암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두류암터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없다가,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에 나오는 두류암 관련 자료를 읽고 지리 99에서 발표한 쑥밭재 아래 '두류암 승탑'을 찾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선인들의 유람록과 천령지에 부합(符合)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1611년 유몽인의 두류산록을 좇아 용류담에서 마적동-송대-장구목-두류암 코스를 답사하게 되었고, 승탑 연구가 임병기(善果님) 선생님의 답사 자료(*)를 읽어보고 임 선생님께 자문을 구하니, 부도의 형태는 조선 후기의 양식이고 어떤 유람록에도 부도에 대한 기록이 없고, 승탑이 있는 곳은 유람록에 나오는 두류암 터의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곳이 두류암 터는 아니다. 부도가 있지만 화전민터로 본다.'라고 하였다.

 

두류암 관련 선인들의 유람록은 1580년 변사정(邊士貞)의 유두류록, 1611 유몽인(柳夢寅)의 두류산록, 1867년 김영조(金永祚)의 유두류록, 1871년 배찬(裴瓚)의 유두류록 등이 있는데, 1656년 정수민이 편찬한 천령지(1888년 간행)에 '두류암은 군자사 동쪽 삼십 리에 있다. (두류암) 동쪽으로 송대가 있는데 운치가 그윽하고 한가하다. 지금은 없다.'라는 기록으로 미루어, 1871년 이후와 1888년 이전의 시점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어쨌거나 두류암지에 대한 나의 견해는 선답자들과는 달라서, 지산대 아래 정자와 석축이 있는 부근을 두류암터로 추정하고 있다.

 

감수재가 두류산일록에 云『무릇 천하의 만물 가운데 욕심을 가진 놈은 남에게 제압되지 않은 것이 없다.(凡天下之物。有欲者無不見制於人)』라고 하였다. 선답자들이 지리산 인문학을 先占(선점)한 공로(功勞)는 있지만, 지리 99가 아무런 검증도 없이 성급하게 즉흥적으로 발표한 세석산장 앞 습지의 영신사지와 가짜 청학연못이 국회 전자도서관에 전자문서로 영구 보존된 박사 학위 논문[조선시대 유람록에 나타난 지리산 경관자원의 명승적 가치 = (The)scenic site value of scenic resources in Mt. Jiri documented in the Joseon era travelling records / 이창훈 이용률 높음]에도 버젓이 실려있으니,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문제의 파급성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그동안 자신들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끝.

 

* 옛 숨결 그정취를 찾아(함양...지리산 두류암지 부도) : http://blog.daum.net/12977705/8725603

 

1. 1580邊士貞의 유두류록

[원문] 早食發行. 過龍遊潭. 至頭流庵. 層崖削出. 壁立萬仞. 百花爭發. 襲香一洞. 竟日坐玩. 不覺其暮遂入禪房. 共宿焉.

# 4月 初七日, 아침에 일찍 밥을 먹고 출발하여 용유담(龍遊潭)을 지나 두류암(頭流庵)에 도착하였다. 층층의 벼랑이 깎아지를 듯 솟아 있고 절벽이 만 길 높이로 우뚝 서 있었다. 온갖 꽃이 다투어 피어나니 꽃향기가 계곡을 온통 뒤덮었다. 하루 종일 앉아서 완상하니 날이 저무는 것도 몰랐다. 마침내 선방(禪房)에 들어가 함께 잤다.

 

[원문] 晨朝促喫. 紫眞洞. 攀巖飛杖. 登天王峯. 是日也天氣淸朗. 極目無碍. 精神灑落.  

# 四月 初八日. 아침 (두류암에서) 일찍 밥을 먹고 자진동(紫眞洞)을 지나 바위를 잡고 지팡이를 날리며 천왕봉(天王峯) 에 올랐다. 이 날은 날씨가 매우 맑고 화창하여 시계가 막힘이 없었고 정신이 씻은 듯 상쾌하였다.

 

紫眞洞(자진동) : 어름터 주변으로 추정함.

 

2. 1611 柳夢寅의 두류산록

[원문] 遂入頭流菴. 菴之北有臺. 直南而望之. 有飛瀑瀉于巖間. 如懸玉簾數十仞. 雖竟夕坐玩. 不覺其疲. 而會雨新晴. 谷風淒緊. 以爲過爽不可久淹. 遂入禪房安頓焉.

 

# 43, 드디어 두류암(頭流庵)에 들어갔다. 암자 북쪽에 대()가 있어 그곳에 올라 정남쪽을 바라보니, 바위 사이로 폭포수가 쏟아지고 있는데 마치 옥으로 만든 발을 수십 길 매달아놓은 것 같았다. 저녁 내내 앉아 구경하더라도 피곤하지 않을 듯하였다. 마침 비가 그치고 날이 활짝 개었다. 골짜기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매우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어 선방으로 들어가 편히 쉬었다.

 

지산대,芝山臺  지리 10대는 아니지만 지리 50대엔 그 이름을 올렸다...!

 

 

 

 

 

어름터(독가촌)가는 길

 

 

어름터(독가촌)

 

 

 

독가앞 계곡을 건너서 계곡 안으로 접어들며 갈림길이 있는 합수부로 향한다. 독가에서 합수부까지는 40여분 소요된다. 등로는 계곡 우측을 걷다가 다시 좌측으로 건너서 이어지고, 다시 계곡 우측으로 건너서 합수부까지 이어진다. 합수부, 우측에서 흘러드는 우골을 건너 우측으로 사면을 오르면 진주독바위 쪽과 청이당고개 쪽으로 등로가 분기된다.

 

어름터 골짝 주변 지형에서는 특히 계곡을 건너는 횟수가 중요한데, 첫번째 건너면 향운대 가는 길이 우측으로 갈리고, 두번째 건너면 바로 넘어 대판골이 있고, 세번째 건너면 쑥밭재 올라가는 두 산길이 있고, 네섯번째 건너면 사립재골.

 

첫번째 계곡 건너면 향운대 가는 길 우측 오늘의 산행 루트 고고싱

 

아마 옛 화전민 집터 석축

 

향운대길 걷다보니

 

 

얼마나 오랜 시간 이 길 지켰을까

 

 

향운대 가기전 산죽 길

 

 

향운대 가까워 질수록 걷는 길에 하얀 눈 겨울 산행 만끽한다

 

향운대 상단 길

 

 

 

사면길에서 향운대(香雲臺) - 거대암벽

 

 

 

 

 

향운대(香雲臺) 도착

 

향운대(香雲臺) - 구름향기란  뜻이니 즉 부처님의 말씀을 뜻한다.

지리10대 기도터 중의 하나인 향운대(香雲臺), 온화한 양지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거대암벽, 온몸으로 그 기운이 팍팍.

 

 

 

 

 

 

 

향운대 석축

 

 

향운대 기도처

 

 

20m는 족히 넘을 석벽아래 위치한 너른 터로 석벽 아래에 샘터가 하나 있는데, 관리가 되지 않아 그냥 마실 수준은 아닌 듯하다.

 

운막을 지던 위치

 

향운대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옹암(진주(산청)독바위), 초령(새봉)

 

향운대 상단 거대한암석

 

 

옹암(진주(산청)독바위)

 

향운대 상단에서 조망되는  옹암(진주(산청)독바위), 초령(새봉)

 

두류능선 길 도착 위치는 국골사거리, 성안, 추성, 최마이굴, 향운대 갈림길

 

 

두류능선에서  최마이굴, 성안, 추성, 방향으로 걷다보면 멋진조망터가 나온다. 말봉, 국골사거리, 두류봉, 영랑대, 하봉, 소년대, 중봉, 상봉, 조망, 멋진 풍광이다.

 

 

 

 

국골, 초암능선, 칠선계곡, 조망

 

 

 

 

 

 

 

 

멀리 반야봉, 서북능선, 가까이 창암산 조망

 

 

 

 

석문

 

 

 

 

수리등능선, 성안, 추성, 최마이굴 갈림길

 

 

 

이지점 조망위치도 멋진 지리 풍광을 볼수 있다.

 

 

 

 

 

 

 

 

 

 

 

 

최마이굴 갈림길

 

최마이굴 암벽

 

 

해발 1,130m 정도에 위치한 최마이굴,

 

최마이굴의 어원이 지역민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사실이 다르다는 것을 감지하고  수소문을 한 결과 광점동에서 대대로 살아오다 지금은 부산으로 이주해서 병상에 계시는 한 어르신으로부터 당시 국골이 한바탕 난리가 났었고, 수 일이 지난 후 격전의 현장(최마이굴)을 둘러보러 갔더니 석벽 앞에 시체가 있어 부근에 대충 묻어주었다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일간지 기사와 증언을 토대로 추정을 해 보면 석벽 앞의 시체가 ‘최덕만’이라는 자이며, 지역민들 사이에서 ‘최만이굴’이로 회자되고 불리어져왔음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한편 현장에서 사살된  ‘최덕만’과 생포된 그 일행들의 출신 지역 및 활동근거지를 보면, 49년 하반기에 인민유격대 2병단(병단장:이현상)을 편성하여 지리산에서 무장투쟁을 벌여오던 동부 지리산 담당 제6연대(연대장:이현상) 소속의 빨치산 대원이었든 듯합니다. -퍼온글-

 

 

굴앞에는 식수로 사용할수 있는 작은 샘

 

 

석실 안 살림 도구

 

석실 안 아담하다. - 댓명은 느끈하게 숙식을 할 수 있겠다. 옛날에는 온돌도 깔은 듯 하다. 안쪽으로 하늘이 바라뵈는 천연 습도조절용 바위틈 숨구녕도 있다. 괜찮은, 쓸만한 천연 석실이다.

 

 

최마이굴 앞마당, 마당바위

 

 

 

최마이굴 앞쪽 마당바위

 

 

 

 

 

 

하산 길 걷다보면 능선주변 살펴보면 능선상의 성벽 에전에 이곳이 추성이라는 성이었으며, 능선이 자연성벽이었고 중간중간에는 성벽을 쌓았던 흔적도 있다.


신라시대때의 토기 조각이라 함.

 

 

 

  ♬ Bir Baska Gun(Another Day) - Evanthia Reboutsi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