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 산행기

왕등재습지, 성북골(금바위골)

꺼비♡꺼비 2022. 2. 28. 09:58

# 언제: 2022년 02월 27일 일요일

# 산행지: 왕등재습지, 성북골(금바위골), 임인년(壬寅年) 시산제 산행

# 산행거리:

# 산행루트: 수철마을 - 고동재 - 왕등재습지 - 성북골(금바위골) - 수철마을

 

금바위골 : 왕등재습지 주변 지리태극종주 능선에서 물줄기가 발원되며 수철마을 좌측으로 흐름

성북골 : 왕등재 주변 지리태극종주 능선에서 물줄기가 발원되며 금바위골에 합수 수철리로 흐름

왕등재습지 : 해발 970고지에 위치하며, 고산습지엔 숫잔대, 뻐꾹나리, 사초기둥, 산조개등이 서식

금바위골에 합수되는 아흔아홉골 : 성북골, 바람골, 천시골 이 합수되어 수철리 좌측으로 흘러내림

고동재-수철리 : 지리산둘레길로 차가 통행 가능함 임도길로 GPS상 3.7Km이며 완만한 경사도 유지

 

# 산행지도

 

# 산행사진

수철마을은 옛날 무쇠 솥, 무쇠 농기구를 만드는 철점이 있어서 ‘수철동, 무쇠점’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고동재’ 수철리에서 방곡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로 지형이 고동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근처 습지에 사는 산고동이 우는 소리가 자주 들리는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으니 참조한다. 이 고개는 수철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낸 국군(11사단 9연대 3대대)이 빨치산 토벌을 명목으로 지났던 길이기도 하다. 이들 군인들에 의해서 가현마을과 방곡마을, 점촌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왕등재습지 가기전 가락국 토성터

 

[가락국10대구형왕1500년역사속으로] 왕등재로부터 이어지는 능선에 토성 흔적

삼장 왕보더미에서 6km 거리의 유평마을 왕지재를 넘어 왕등재 능선에서 성을 쌓고 추격하는 적들을 대비하였다는 전설 식수로 사용한 왕등재 습지는 생태의 보고.

 

삼장면 석남리 왕보더미에서 휴식을 취한 구형왕과 군사들은 왕보덤으로부터 6km 거리의 삼장면 유평마을로 진입하여 왕지재를 넘어 왕등재 능선의 성재에서 성을 쌓고 진지를 구축하며 추격하는 적들을 대비하였다고 하는데, 왕등재로 불리어지는 왕지재는 현재에도 유평에서 금서면 수철리로 넘어가는 소로길이 형성되어 있다.

 

왕등재는 산청군 금서면 지막리에 소재하고 있으며, 왕듸기재라고도 하며 왕등재, 왕등티라고도 불리어진다. 산청군 금서면 지막리 절골에서 삼장면 대원사로 넘어가는 한재로 해발 1040.1m로 산등성이는 넓게 평원을 이루고 있으며, 구형왕이 전쟁 중에 군사들을 이끌고 머물렀던 곳, 또는 왕의 발길이 닿았다하여 왕지재(王地峙) 또는 왕등재(王登峙)라는 지명이 붙여져 있다.

 

왕등재 아래 해발 960m 지점 분지에 길이 120m, 폭 50m의 습지가 있는데 군데군데 웅덩이가 분포되어 있고, 이를 따라 전체적으로 습지가 형성되어 있다. 웅덩이는 당시 가락국 군사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응덩이 전제가 습지로 형성되어 현재 지리산 왕등재 습지로서 생태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왕등재로부터 이어지는 능선에 있는 성재는 산청군 금서면 수철리와 삼장면의 경계를 이루며 유핑리 외재로 넘어가는 한재로. 방대한 지리산 산맥이 북으로 흐르는 곳 해발 930m 지점인 산 정상 부근에 토성을 쌓았던 흔적이 있다. 이 성은 가락국 구형왕의 군사들이 쌓았다고 하여 산 이름 역시 성재로 불리이지고 있는데, 산의 형상이 요새와 같이 형성되어 있으며, 그 옛날 구형왕의 군사들이 성을 쌓아 전쟁을 하였다는 전설이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구형왕의 유적지로 지명 또한 성지이다.

 

성재는 고동재로 연결이 되는데 고동재는 왕등재, 성재, 필봉산, 왕산 등 해발 1000m에 달하는 한재들 가장 가운데 있는 산이다. 산청군 금서면 수철마을에서 고동재를 넘어 방곡리로 가는 고갯길로 현재 해발 600m 한령이다. 고동 속 같이 길고 깊숙이 형성되어 있어 고동재라 불리어지고 있는 산은 구형왕의 가락국 군사들이 은신하였던 곳이라 전해 내려오는 전설의 산으로 현재에도 고동재라는 지명이 그대로 블리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구형왕과 근사들은 한동안 은신하였다고 하는데, 적들의 침입이나 위급 시에는 고동 나팔을 불어 군사들에게 알렸다는 것에서 그 지명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에도 주민들로부터 고증받을 수 있는 이곳 일대 구형왕의 전설들은 1500년 전의 역사라는 사실을 무색케 할 만큼 생생하게 전해들을 수 있다.

 

온통 참나무로 이루어진 고동재의 숲속은 그 옛날 가락국 군사들에게 은신처 제공 뿐 아니라 참나무 열매가 군사들의 식량이 되었던 듯 싶고, 녹음이 짙은 활엽수들은 사시사철 아름다운 산의 형상을 만들며, 고동재, 쌍재, 중재, 깃대봉, 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는 산의 경이로움을 엿볼 수 있다.

 

이곳 주변에는 유독 ‘왕(王)’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다.

왕등재란 ‘왕이 오른 고개’란 의미이다. 가락국의 마지막 왕, 제10대 구형왕(양왕)이 신라군에 쫓겨 지리산 자락으로 피신해 궁을 세우고 항전했다는 설도 있다. 이곳 왕등재 습지 주변에도 토성과 석축의 흔적이 남아 있고 동쪽 약 4km 밖에는 깃대를 꽂아 놓았다는 깃대봉(일명 동왕등재)과 망을 봤다는 ‘망덕재’, 그리고 대원사 인근에는 말을 사육했다는 ‘맹세이골’이 있다. 뿐만 아니라 왕등재 북쪽 자락에는 ‘왕의 산’ 왕산(王山)이 있고 그곳에는 가야 왕궁 수정궁 전설이 전해오고 있으며, 그 아래 골에는 구형왕의 무덤으로 알려진 구형왕릉이 있기도 하다.

 

 

왕등재습지

 

우리나라 대표적 이탄습지로 348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왕등재 습지는 외곡습지와는 아주 대조적이다. 키 큰 참억새와 달뿌리풀이 울창한 외곡습지와는 달리 왕등재 습지에는 키 작은 사초류가 습지를 장악하고 있다. 그래서 습지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든다. 왕등재 습지는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산 51의 해발 973m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약 6000㎡이고 이탄층의 깊이는 0.5~1.5m, 지질은 알칼리성을 유지하고 있고 습지의 주요 수원은 강우와 지하수라고 한다.

습지는 그 자체로 유기물의 보고이다. 오랜 세월 동안 동식물이 죽고 분해되어 퇴적된 유기물 속에서 수많은 기초생물들이 재탄생하고 또 기초생물들을 먹이로 해 고등생물들이 살아간다. 이탄층은 고산지대의 낮은 온도 때문에 죽은 식물들이 제대로 미생물 분해가 이뤄지지 않은 채 쌓여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런 이탄층으로 형성된 습지를 이탄습지라고 하는데 왕등재 습지가 대표적인 이탄습지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자료에 의하면 이곳 습지에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까막딱따구리와 원앙, 소쩍새 등 72종의 조류와 뻐꾹나리, 꽃창포, 흰제비난, 동의나물 등 58종의 식물류가 자라고 있고 삵, 담비, 멧돼지 등 13종의 포유류를 비롯해 꼬리치레도롱뇽 등 8종의 양서 파충류와 큰땅콩물방개, 산골조개 등 무척추동물 39종, 그리고 물먼지말류 등 담수조류 158종 등 전체 348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임인년(壬寅年) 시산제

 

 

시산제 후 산행거리 너무 짧아  외고재 방향 절터를 가는 중 낙엽 싱크홀 지재에서...?

 

 

절터 자리 였는데, 묘 자리로...?

 

 

절터 였던 흔적

 

 

절터에서 조망되는 중봉, 상봉, 조망

 

 

단체 사진도 한장 남기고

 

 

하산지점 성북골(금바위골)

 

 

성북골(금바위골) 분위기

 

 

금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