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통골(연동골)
# 언제: 2023년 03월 18일 토요일
# 산행지: 목통골(연동골), 지리 봄 맞이 산행....ㅎㅎㅎ
# 산행거리: 16.18km 07시간 32분
# 산행루트: 칠불사주차장 - 독가 - 목통골(연동골) - 합수부1 - 합수부2 - 화개재 - 삼도봉
흰듬등 - 불무장등 - 통꼭지봉 - 뒷당재 - 목통마을 - 칠불사주차장
목통골(연동골) : 삼도봉, 화개재, 범왕능선 등에서 물줄기가 시작됨
목통골(연동골)
섬진강변의 화개장터에서 화개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신흥마을이 나온다. 여기서 왼쪽으로 따라가면 범왕리 목통마을이란 곳이 있다. 물레방아 도는 지 리산의 전형적인 산간마을이다.
목통마을을 휘감고 도는 물줄기가 있는데 이 골짜기가 연동골(일명 목통계곡)이다. 골짜기 안에 40여년 전까지만 해도 연동마을이란 곳이 있었다고 해 연동골이라고도 불린다. 지금은 오히려 목통마을의 이름을 따 목통계곡으로 더 알려져 있다. 연동골은 화개재 가는 길목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그 물줄기는 화개재를 좌우로해 두 봉우리를 타고 이어지는 두 줄기 능선에서 흐른다. 해발 1,360m의 화개재 동쪽으로는 1,533m의 토끼봉 정상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1,550m의 삼도봉이 솟아있다. 토끼봉 정상에서 흘러내린 능선은 칠불사까지 내려와 목통마을에서 꼬리를 감춘다. 이 능선을 칠불사 능선으로 부른다. 삼도봉에서 뻗어내린 능선은 불무장등(1,446m), 통꼭봉(904m), 당재를 거쳐 황장산(942m)으로 이어진뒤 화개장터가 있는 탑리까지 내려와 섬진강에 닿는다. 불무장등 능선이라 부른다. 칠불사 능선과 불무장등 능선 사이의 골이 연동골이다. 물론 연동골은 화개동천의 지류에 해당된다.
목통마을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목통마을 목통교, 삼도봉과 토끼봉에서 흘러내린 목통골의 물이 화개천으로 흘러가는 곳으로, 그전엔 으름덩굴(木桶, 목통)이 많아 화개골 주민들은 (먹통밭)으로 불렀다는데, 으름을 이 고장 방언(사투리)으론 먹통이라 한다는, 언제부터인가 행정관서에서 (목통마을)이란 이름을 붙였다.
연동마을 터
화개재
화개재花開 1320m, 화개재는 삼도봉과 토끼봉 사이 잘록한 고개마루. 지리산 주릉에서 가장 고도가 낮은 花開재 이다. 화개(花開)재는 우리말로 풀이하면 '꽃피는 고개마루.' '화개장터와 같은 물물 교환의 장였다.
화개재(1320m)는 지리산 주능선의 고개 중 해발고도가 가장 낮은 고개이다. 화개재는 동서로 토끼봉(1535m)과 삼도봉(1501m) 사이에 위치하고 남북으로 목통골과 뱀사골을 끼고 있다.
남쪽으로 화개동천이 내려다보인다고 해 이름이 연유된 화개재는 해안과 내륙의 문물이 넘나들던 땀의 고갯길이기도 했다. 섬진강변 화개장의 소금이나 해산물이 목통골을 거쳐 화개재를 넘어 뱀사골을 통해 남원 등 내륙으로 흘러갔고 내륙의 농산물, 삼베 등이 이 고개를 넘어 화개장으로 유입됐다. 남쪽의 목통골과 북쪽의 뱀사골이 문물교류의 통로였던 셈이다. 특히 소금이 주요 품목이었는데, 소금을 지고 뱀사골을 내려가던 소금장수가 그만 소금 가마니를 물에 빠뜨려 ‘간장소’라는 이름이 유래되기도 했고, 인근의 운봉무덤과 소금쟁이 능선도 소금 물류와 관련 있는 지명들이다.
삼도봉
삼도봉의 옛이름은 낫날이봉이었다고 한다.
양쪽으로 절벽을 이룬 험한 봉우리가 마치 풀을 베는 낫의 날처럼 날카롭고 위험했다는 의미였는데 세월이 지나며 날나리봉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봉우리가 삼도가 맞물려있다고 해서 삼도의 대표들이 만나 삼도봉으로 개명하는데 합의하고 정식 국립지리원에 개명신청 하며 원래 이름은 퇴출되고 삼도봉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이곳 지리산 삼도봉은 경상남도 하동군, 전라북도 구례군, 전라북도 남원군이 맞물려있는 곳이며 오늘 지나는 불무장등 능선은 전라북도 구례군과, 경상남도 하동군의 2개도의 도계가 되는 능선이다.
흰듬등
흰듬등, 사전에서 찾아보니
듬이란 벼랑, 낭떠러지기를 뜻하는 경상남도지방의 방언이라고 한다.
그러면 흰바위가 있는 벼랑의 꼭대기를 뜻하는 것 같은데 쉽게 풀면 흰바위절벽봉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 듯하다.
사전을 찾아보면 흰듬등의 어원을 쉽게 알 수 있는데 이 능선을 지난 사람들은 보면 언제 흰듬등을 지났는지도 모르게 지나쳤다고 기록하기도 하고 흰듬등의 어원이나 뜻에 대해서는 아무런 표현이나 기록도 하지 않는다.
불무장등!
우리나라 산봉에는 특별하거나 특이한 이름이 제법 있다.
지리산에도 몇 곳이 있는데 그중 불무장등을 빼놓을 수는 없다.
불무장등,不無長嶝
무슨 뜻일까? 아무리 되새겨 봐도 알 수가 없다.
해답을 찾기 위해 한국농어민신문에 연재되는 「조용섭의 지리산 이야기」23편 불무장등이야기를 보면 그런대로 답이 될 만한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이 ‘불무장등’이라는 특이한 이름은 백과사전 등에 한자어로 ‘不(아님)’과 ‘無(없음)’의 長嶝(장등, 길고 높은 봉우리 혹은 고개)으로 표기되고 있다. 이중으로 부정되는 이 이름은 단순한 한자어 풀이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구례 화엄사 강사를 지냈던 백운스님이 1988년 10월1일 불일회보에 기고한 ‘지리산의 내력-지명에 나타난 불교’ 글을 보면 그 이름에 대한 의문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백운스님은 1930년대 화엄사의 진응강백이 지은 ‘지리산지’를 번역 소개하며 자신의 견해를 밝혔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지리산은 문수보살의 일신이며, 팔만 권속과 더불어 항상 머물며 설법하는 곳이다. 나는 이에서 여러 해를 두고 의심했던 것을 일시에 떨쳐버렸으며 지이(智異)라고 일컬은 것을 깨달았다.
문수는 오로지 반야(般若)를 주관하며, 반야는 제불의 어머니(諸佛之母)이다.”그래서 문수보살의 지혜를 상징하는 ‘반야’로 봉우리의 이름을 취했으며, 반야가 의미하는 ‘제불의 어머니’에서 따온 ‘불모(佛母)’에서 불무장등 이름의 의문이 풀리게 되는 것이다. 즉 반야봉에서 이어지는 높은 산인데, 반야와 같은 의미인 불모로서 이름이 지어졌고 불모는 불무로도 읽기에 불무장등이 되었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지리산 자체는 문수이고, 문수는 곧 반야를 주관하고, 반야는 제불의 어머니, 즉 佛母로 반야봉에서 이어지는 긴 능선의 봉우리라는 것 같다는 것이며 불모는 오랜 세월이 흐르며 불무로 불리게 되어 오늘날 불무장등으로 불린다는 그런 뜻이다.
통꼭지봉
삼도봉에서 시작된 능선을 따라 내려서며 이름을 가진 3개의 봉우리를 지나는데 흰듬등. 불무장등, 통꼭지봉이 모두 이름이 특이하다.
통꼭지봉의 유래에 대해서는 선답자들 산행기록에 많이 나온다.
대부분 찾으려는 흔적이나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 기록을 그대로 카피해서 퍼 나른 기록에 불과하다.
「정유재란(1597년) 때 인근 의병, 승병들이 왜병들에게 쫓겨 이곳까지 올라와 패전의 슬픔으로 통곡했다하여 통곡봉으로 불렸다고 하기도 하고, 불무장등 능선 전체로 보면 이곳이 여인의 젖가슴이 되는 곳에 해당된다고 하여 통꼭봉이라고 한다,」고, 그런가 하면 화개 사람들은 「목통골 배나루 평전을 꼭지가 달린 통을 타고 올라왔다가 꼭지가 걸린 곳이라고 해서 통꼭지봉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어떤 유래가 맞는 것인지 모르지만 모두 누군가가 지어 낸듯한 말 같다.
뒷당재
당재
당재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아보지를 않았는데 성황당이나 당집이 있던 고개에서 비롯되었을 것 같다.
지금은 당집이나 성황당이 없어 졌지만 예전에는 곳곳에 성황당이 있었는데 성황당은 고갯마루가 대부분이었으며 큰 고목나무 또는 당집이 있고는 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돌 하나를 던지고 소원을 빌고 지나다 보니 큰 돌무더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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