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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바위(와운카페),삼정산

꺼비♡꺼비 2024. 6. 10. 08:24

# 언제: 2024년 06월 09일 일요일

# 산행지: 벌바위(와운카페),삼정산,삼정산능선,지리의 품속으로...ㅎㅎㅎ

# 산행거리: 13.42km  05시간56분

# 산행루트: 반선 - 와운마을 - 천년송 - 영원북서능선 - 벌바위(와운카페) - 영원봉 - 삼정산능선

                   빗기재 - 삼정산 - 약수암 - 실상사

 

천년송 - 智異山 千年松

2000년 10월 13일에 천연기념물 제424호로 지정되었다. 수령은 약 500년으로 추정된다. 나무 높이는 20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는 4.33m이다. 수관 폭은 동서 방향이 17.8m, 남북 방향이 24.2m이다. 반송형으로 일부 가지의 끝 부분이 부분적으로 고사하기는 하였으나 대체로 수세가 양호하고 나무 모양도 우산형으로 수려한 편이다.

천년송은 지리산 뱀사골 계곡의 와운마을 위쪽, 명선봉에서 영원령으로 흘러내린 능선부 해발 약 800m에 위치한다. 지상 약 4m 높이에서 남북 방향으로 분지하였으며 두 가지가 대등하게 잘 조화되어 있다.

 

천년송은 와운마을 뒷산에 임진왜란 전부터 자생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m 간격을 두고 한아시(할아버지)송과 할매(할머니)송이 이웃하고 있는데, 이중 더 크고 오래된 할매송을 마을주민들은 ‘천년송’이라 불러오며 당산제를 지내왔다고 한다.

 

벌바위(와운카폐)

 

영원봉 서쪽에 위치한 거대 바위를 벌바위라고 하는데

현재 원지명과 동떨어지게 산행기에서 와운카페로 자주 언급되고 있는 곳입니다

중북부능선상에는 별바위등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아마 이것도 지형도상의 오기로 생각됩니다

 

벌바위의 유래에 대해 조만간 산행기에서 밝히려 했는데

연두연하 님이 별바위등에 대한 질문을 하셨기에 참고가 될 것 같아 미리 적게 됩니다

 

어떤 분은 바위의 생김새가 벌이 새끼를 칠 때 서로 뭉쳐있는 모양새를

닮았다고 하여 벌과 관련하여 벌바위, 벌통바위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실은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전설은 벌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듯합니다

그 전설의 내용을 들은 대로 적어보면 이러합니다

 

먼 옛날, 그러니까 천오백년도 더 된 마한시대 때의 사건과 관련된 것인데

와운 마을이 세 번째 옮겨져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기 전에 단 두 가구만 거주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한 집은 부인이 좀 못 생긴데 반해 다른 집의 부인은 정말 절세가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제가부터 못 생긴 부인을 가진 남자가 감히 가져서는 안될 흑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두 남자가 석위버섯을 따러 벌바위로 함께 갔다고 해요

석위버섯이란 게 바위 벼랑에 많이 달리는 것이란 건 잘 아실 테고...

못 생긴 부인을 가진 남자가 위에서 줄을 잡고 미인을 거느린 남자가 그 줄을 잡고

바위 아래로 내려갔는데 고의로 줄을 끊어 추락사를 시켜버립니다

 

흑심의 남자는 사건의 전모를 숨긴 채 절세가인을 새부인으로 맞아 가정을 꾸립니다

세월이 흘러 둘 사이에 아들, 딸이 생기고 아무 문제없이 잘 살아 가던 중

소나기가 억수로 퍼붓던 날 우수에 잠겼음인지 이 남자는 부인의 전남편을

살해한 과거의 사건에 대해 어느새 털어놓게 됩니다

자식까지 생긴 마당에 뭔 별탈이 있을까 하고 생각한 거죠

 

전설이 어찌 `선녀와 나뭇꾼`에서 나뭇꾼의 고백과 유사하기는 합니다만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부인은 바로 벌바위로 달려갑니다

벌바위 아래에서 전남편의 유해를 수습한 후 곧장 관청으로 달려가 사건의 전말을 고하게 되죠

관청에서는 이 남자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함무라비 법전에 해당하는 형벌을 내립니다

이 남자를 벌바위에서 떨어뜨려 죽게합니다

 

즉 벌을 내린 바위란 의미에서 벌바위란 지명이 생긴 전설입니다. 

 

-퍼온글-

 

와운(臥雲)마을

천년송을 품은 와운마을( 臥雲里)은 전라북도 백두대간 줄기 끄트머리에 머물며, 해발 800m로 고산 준령 아래다. 구름도 쉬어 간다는 뜻이며 일명 눈골, 누운골로도 불린다. 1595년경 영광정씨(靈光丁氏)와 김녕김씨(金寧金氏)가 국난을 피해 피난처로 삼은 곳이라 전해 온다.

 

구름이 누워 간다고 해 '와운(臥雲)'이다. 첩첩산중 고지대라 구름마저 곧추서 넘지 못하나보다. 이 마을 참 고요하고 운치 있다. 사람들 터 잡고 산 지 1,300년이 됐다. 뒷동산 우람한 소나무는 1,000년이나 마을을 굽어보고 섰다. 연봉이 병풍처럼 에둘렀고 계류는 유리처럼 맑다. 후미져 인적마저 드무니 여름 한철 푹 쉴 요량으로 찾아들기 딱 좋다.

 

1,300년 역사의 산중마을

와운마을은 행정구역상 전북 남원 산내면 부운리에 속한다. 지리산에서 찾자면 와운골 들머리다. 뱀사골 왼쪽 옆으로 뻗은 골짜기가 와운골이다. 뱀사골을 따라 요룡대 방향으로 오르다 와운교에서 길이 갈린다. 다리 왼쪽으로 난 길이 마을로 이어진다. 요룡대에서 약 20여분 걸으면 닿는다.

 

'구름이 누워 간다'고 한 데는 이유가 있다. 지리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 관계자에 따르면 와운마을은 해발 650~700m의 고지대에 위치한다. 구례 상동면에 속한 심원마을(해발 약 750m)을 제외하면 지리산 자락에서 이처럼 고지대에 자리 잡은 마을을 찾아보기 어렵단다.

 

심원마을은 지리산 일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불린다. 와운마을은 '하늘 아래 두 번째 동네' 쯤 되지 않을까 싶다. 살기는 괜찮았나 보다. 이 마을 정판석(58) 이장은 "서리가 와서 밑에 동네는 호박잎이 다 죽는데 이곳은 그럴 일 없다"고 했다. "옛날에는 이 마을 땅 한 마지기를 팔면 아랫마을 땅 다섯 마지기를 살 수 있었다"고도 했다.

 

와운마을은 후미져서 무서움을 느낄 만큼 고요하다. 첩첩산중인 터라 정착 초기 호랑이와 마주친 얘기들이 지금도 주민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여순사건이나 한국전쟁의 여파로 마을사람들이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요룡대 인근에 '석실'이라는 지명을 가진 곳이 있다. 큰 바위들이 자연 동굴을 형성한 이곳은 빨치산들이 신문, 기관지 등을 인쇄하던 곳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마을 사방으로 반야봉(1,732m), 명선봉(1,586m), 형제봉(1,115m) 등 연봉이 에둘렀다. 연봉은 문명을 차단한다. 대신 바람소리 선명하고 물소리 참 또렷하게 들린다.

 

와운마을에는 모두 열 세 집이 있다. 이 가운데 일곱 집에 사람이 살고 나머지는 외지인들이 별장처럼 쓴다. 마을 상주 인원이래야 열 네 명이 전부다. 그렇다고 마을로 들고 나는 사람이 많지도 않다. 관광객 대부분은 뱀사골만 오르내리다 돌아간다. 애써 20~30분씩 옆길로 빠져 마을까지 들르기 쉽지 않다. 이러니 피서철이라도 마을이 시끌시끌 할 일은 적다.

 

와운마을이 형성된 것은 통일신라시대의 일이다. 주민 이완성(49) 씨에 따르면 현재 지리산북부사무소 자리에 송림사가 들어서며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단다. 송림사는 남원의 대표 고찰인 실상사보다 100여 년 전 앞서 창건한 것으로 전한다. 암자를 네 개나 거느릴 만큼 규모도 컸다. 실상사 창건연대가 828년, 이러니 송림사는 적어도 700년대에 지어진 셈이다. 이렇게 따지면 와운마을 유래는 약 1,300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잠깐 송림사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짚고 넘어간다. '뱀사골'이란 지명이 송림사와 관련 깊다. 당시 송림사에는 해마다 칠월칠석날 법력이 높은 승려 한 명을 뽑아 선인대에서 불공을 드리게 하는 행사가 있었다. 이렇게 하면 승려는 신선이 된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 행사를 이상하게 여긴 한 고승이 그 해에 뽑힌 승려의 옷자락에 독을 묻혀 올려 보냈다.

 

다음날 마을 사람들과 선인대에 가보니 이무기가 승려를 반쯤 삼킨 채 죽어 있었다. 송림사에서 해마다 승려 한 명씩을 이무기에게 제물로 바쳐 온 것. '이무기가 죽은 골짜기'라 해 이때부터 일대 계곡이 '뱀사골'로 불렸다. 억울하게 죽은 스님의 넋을 기리기 위해 '절반의 신선'이란 의미를 닮아 뱀사골 들머리 마을을 '반선(半仙)'이라 불렀다.

 

삼정산'三政山   높이: 1.182m   위치: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산 아래 마을인 하정·음정·양정을 합쳐 삼정(三丁)이라고 부르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국토지리정보원 발행지도엔 삼정산'三政山 으로 표기되어 있다. 

 

특징'볼거리

지리산 산자락에 있는 봉우리이면서 '봉(峰)'이 아닌 '산(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상에 솟아 있는 봉우리를 통상적으로 '봉'이라 부르고 있으며 주능선을 기점으로 써레봉, 삼신봉, 왕시루봉 등 동, 남, 서쪽의 곁가지 봉우리들도 모두 봉으로 부르고 있다.

 

 

지리산 주능선에서 북쪽 곁가지에 있는 봉우리는 삼정산 이외에도 '산'으로 표시된 곳이 많다. 백무동의 오송산(669.4m), 창암산(923.3m)이 있으며, 만복대에서 북동쪽으로 뻗어 나간 줄기에 있는 세걸산(1,207m), 덕두산(1,114.9m) 등 지리산 주능선의 북쪽 산자락의 봉우리만 '산'을 달고 있다.

 

뱀사골의 동쪽 산록에 해당되며, 만수천(川)과 덕전천(川)의 분수계를 이루는 봉우리이기도 하다. 산세가 부드럽고, 곳곳에 기암과 고사목·노송들이 어우러져 있어 경관이 빼어나다. 함양군지에는 한자가 삼정산(三丁山)이라고 되어 있으나,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삼정산(三政山)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삼정산이란 이름은 동쪽 산기슭에 자리잡은 하정,음정,양정이란 세 마을의 이름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지리산국립공원 내에는 20여개가 넘는 사찰과 암자가 있다.

 

삼정산 산기슭에는 그 중 3분의 1쯤 되는 7개의 암자가 자리잡고 있다. 산아래 부터 실상사, 약수암, 삼불사, 문수암, 상무주, 영원사, 도솔암이 차례로 모습을 들어낸다. 실상사(實相寺)에는 보물 제33호인 능가보월탑을 비롯해 보물 8점을 간직하고 있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 견성골 문수암 암자 옆에는 임진왜란때 1천명의 주민이 난을 피했다고 하여 '천인굴'이란 이름이 붙여진 동굴이 볼 만하다.

 

삼정산 등반코스는 일명 '암자순례길'이라고 한다. 남원 쪽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실상사 산내암자인 약수암을 거쳐 차례로 삼불사, 문수암, 상무주암에 이를 수 있고, 삼정산을 지나 영원령 쪽으로는 영원사·도솔암이 있다.

 

실상사   위치: 전북 남윈시 산내면 입석리 50

대한불교조계종 금산사(金山寺)의 말사로, 통일신라시대 828년(흥덕왕 3) 증각대사(證覺大師)홍척(洪陟)이 세운 절로 교학보다 참선을 중시한선종(禪宗)의 여러종파가 전국 명산에 세운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으뜸 사찰이다.

 

구산선문은 신라말에서 고려초까지 형성된 선종(禪宗)의 아홉 갈래 선파(禪派)로 신라말에 이미 가지산(迦智山),실상산(實相山),동리산(桐裡山),성주산(聖住山),사굴산(闍堀山),사자산(獅子山),봉림산(鳳林山) 등에 일곱 선파(禪派)가 있었고 고려 초 수미산(須彌山),희양산(曦陽山)에 두 개선파가 세워짐으로써 구산선문이 형성되었다.

 

정유재란(1597)때 폐허가 되어 오래도록 방치되  다가 1700년(숙종 26)에 36동의 건물을 세워 복구하였으나 1882년(고종 19)에 또다시 소실되어현재의 규모로 복구되었다. 국보와 보물 등 중요문화재 11점외에도 지방유형문화재외 중요민속자료 등이 있으며 산내암자로 약수암이 있다.

 

# 산행지도

 

#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