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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후산'母后山&(나복산'蘿蔔山&모호산'母護山)&유마사'維摩寺
    전국 산행기 2018. 9. 23. 11:43


    # 모후산'母后山&(나복산'蘿蔔山&모호산'母護山)  높이: 944m  위치: 전남 화순군 남면,동복

    일명 모후산'母后山&(나복산'蘿蔔山&모호산'母護山)불린다.


    # 언제: 2018년 09월 24일 (토요일)

    # 산행지: 전남 화순군 모후산'母后山&(나복산'蘿蔔山&모호산'母護山)&유마사(維摩寺)산행

    # 산행거리: 7.78Km   04시간08분

    # 산행코스: 모후산관광안내소주차장 - 유마사갈림길 - 집계봉갈림길 - 중봉갈림길 - 용문재 - 모후산 - 중봉 - 철철바위 -

                    중봉,집계봉,유마사,갈림길 - 유마사 - 주차장(원점회귀산행)


    # 모후산'母后山&(나복산'蘿蔔山&모호산'母護山)  높이: 944m  위치: 전남 화순군 남면,동복

    일명 모후산'母后山&(나복산'蘿蔔山&모호산'母護山)불린다.


    고려 공민왕이 난을 피하여 이곳으로 왔는데, 어머니의 품 속 같이 그 덕(德)이 모후(母后)와 같다고 하여명칭인 나복산을 모후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또 임진왜란 때 서하당 김성원은 이곳의 동복현감으로 부임하였다. 이때 김성원은 노모를 구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싸우다가 순절하였다고 하여 나복산모호산'母護山이라 부르고, 마을 이름도 모호촌이라 하였다고 한다.


    호남 읍지에 본래 이름은 나복(蘿葍)으로 현 동쪽 15리에 있다.고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모후산은 현의 동쪽 10리에 있는 진산(鎭山)이고, 유마사(維摩寺)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 “관아의 동쪽 10리 순천부와의 경계에 있다. 백야산에서 시작하여 송현(松峴)·운알령(雲戛嶺)을 지나 뻗어 나와서, 고을의 으뜸이 되는 산줄기를 이룬다.”고 수록되어 있다.


    특징'볼거리

    모후산(母后山)은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과 남면, 순천시 주암면과 송광면의 경계를 이루는 높이 919m의 산으로 지리산을 제외하면 광주 무등산 , 광양 백운산에 이어 전남지방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며 섬진7지맥의 한 봉우리로 백아산의 산줄기를 타고 내려와 동복천을 앞에 두고 멈춰 선 곳으로 주암댐의 담수와 더불어 삼면이 푸른 물줄기로 둘려 있다. 산세가 험하고 지리적으로 요충지이기 때문에 6·25전쟁 당시 빨치산 전라남도 도당이 유마사에 은거하면서 모후산과 백아산을 연계하여 활동하였으며 지금도 당시에 파놓은 참호(塹壕)가 발견된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무등산,조계산,백아산과 동복호와 주암댐 및 득량만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모후산은 일명 나복산(蘿蔔山) 또는 모호산(母護山)이라고도 불린다. 고려 공민왕이 1361년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으로 왔는데, 어머니의 품 속 같이 그 덕(德)이 모후(母后)와 같다고 하여 원래 명칭인 나복산을 모후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또 임진왜란 때 서하당 김성원이 이곳 동복현감으로 부임하였는데 노모를 구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싸우다가 순절하였다고 하여 나복산을 모호산이라 부르고 마을 이름도 모호촌이라 하였다고 한다. 모후산 남쪽 계곡에는 당나라의 유마운이 창건했다는 대한불교조계종 유마사가 있으며 주변 관광지로 물염적벽ㆍ주암댐ㆍ고인돌공원ㆍ영롱대ㆍ백민미술관ㆍ오지호화백 생가 및 기념미술관ㆍ한천농악전수관ㆍ임대정ㆍ사평폭포ㆍ사평휴양림ㆍ조계산도립공원 등이 있다.


    # 한국의 산하 인기명산(280위)

    화순 모후산'母后山(944m)은 ‘임금의 어머니 산’이라는 이름이 걸맞다. 원래는 모호산母護山, 나복산羅福山으로 불렸지만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왕비와 태후를 모시고 내려와 가궁을 짓고 환궁할 때까지 1년 남짓 머물렀기 때문에 모후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무수산無愁山으로도 불렸는데, 송광사의 한 스님이 어머니의 소원을 풀어 주려고 수도하다 말고 과장에 나가 장원급제를 하여 어머니의 근심을 없애 주었기에 ‘근심이 없는 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설도 있다.


    모후산은 ‘어머니의 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산세가 후덕하고 모나지 않다. 또한 1824년(조선 순조 24년) 편찬된 개성부의 읍지인 <중경지中京志>와 조선 후기의 시인 김택영이 지은 산문집 <소호당집韶護堂集>의 기록을 근거로 화순군에서는 고려인삼의 시배지로 주장한다. 이를 입증하듯 지금도 약초꾼들이 귀한 천종산삼을 발견해 화제가 되기도 한다. 실제 지난해 7월에는 한 약초꾼이 50년 이상 된 양각삼 10뿌리를 발견하기도 했다. 양각삼은 약성이 뛰어나 일반 산삼보다 2배 이상 비싼 가격에 팔린다고 한다.


    # 유마사'維摩寺  건립: 627년(백제 무왕 28)  위치: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유마리 321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627년(무왕 28)에 중국에서 건너온 유마운(維摩雲)과 그의 딸 보안(普安)이 창건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부속암자인 귀정암(歸靜庵)·금릉암(金陵庵)·운성암(雲城庵)·사자암(獅子庵)·오미암(五味庵)·은적암(隱寂庵)·남굴암(南窟庵)·동암(東庵) 등과 함께 수많은 승려들의 수행도량으로 이용되었다.


    17세기 무렵 경헌(敬軒)이 중건하였고, 그로부터 약 50년 뒤에 가안(可安)이 나한상을 조성하였다. 1889년(고종 26)에는 전라도관찰사 김규홍(金奎弘, 1845∼?)이 중수하였다. 그러나 6·25전쟁 때 이 절과 부속암자들은 모두 소실되었고, 그 뒤에도 오호연·김해은 등의 승려들이 중수하였다. 최근에 주지 박상규가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3칸의 대웅전과 산신각·백운당(白雲堂)·종각·요사채 2동이 있다. 원래 이 절에 있던 범종은 구례 화엄사로 옮겨졌으며, 현재 종각에는 종이 없다. 절의 서쪽 계곡에는 널따란 바위다리가 놓여 있는데, 그 바위 한쪽 편에는 ‘維摩洞川普安橋(유마동천보안교)’라고 새겨져 있다. 이 보안교는 보안이 옮겨온 것이라고 전해진다. 보안교를 놓기 위하여 모후산 중턱에서 많은 인부들이 이 바위를 운반하려고 온 힘을 기울였으나 험한 산길이라 작업 진도가 부진하였을 때 보안이 치마폭에 이 바위를 싸더니 유유히 들고 와서 놓았다는 전설이다. 보안은 적벽근처에 보안사를 창건하였으며, 유마사의 약수인 제월천(濟月泉)에 얽힌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보안교 건너 서쪽으로 150m 지점에는 해련탑(海蓮塔)과 또 하나의 부도가 있는데, 모두 도괴되어 있던 것을 1981년화순군에서 복원하였다. 이 중 해련탑은 보물 제111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창건자 유마운의 부도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 밖에도 절 입구에는 높이 1.5m의 경헌대로사리탑(敬軒大老舍利塔)이 있는데, 대석의 네 모서리에는 사자·호랑이·돼지의 조각과 이름을 알 수 없는 동물들이 새겨져 있다. 또한, 옛 절터에는 많은 기와조각들이 산재하고 있어 거찰이었던 옛날을 말해주고 있다.


    돈보다 소중한것


    험준한 산을 넘는 남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산을 넘으면서 힘이 들고 숨이 차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준비했던 거래를 성공시키고 큰돈을 벌어서 돌아오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날씨가 점점 흐려지면서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눈보라까지 몰아쳤습니다.

    삽시간에 눈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 속에서
    우왕좌왕하던 남자가 작은 동굴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하늘이 도운 행운이었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이미 눈보라 속에서 온몸이 흠뻑 젖어 그대로

    있으면 추위에 동사할 것이 뻔했습니다.

    필사적인 노력으로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모은 남자는 불을

    붙이려고 노력했지만,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불쏘시개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품속에서 자신이 그동안 고생해서 모은 돈다발을

    꺼내 주저 없이 불쏘시개로 사용했습니다.

    덕분에 따뜻한 모닥불을 만들 수 있었고,

    무사히 아침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밤새 심하게 불었던 눈보라는 그쳤고,

    산에서 고립된 사람을 찾던 구조대는

    모닥불의 연기를 보고 남자를 구조 할 수 있었습니다.

    남자는 가지고 있던 돈을 불에 태웠지만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 생명과 미래를, 아주 싼 값에 살 수 있었으니
    나에게 이보다 더 큰 이득은 없구나.'

    사람들은 착각합니다.

    인생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자신의 꿈으로 설정하고,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를 성공의 척도로 삼습니다.

    또한,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여기듯,

    물질 또한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살면서 어느 것 하나 내 것은 없습니다.

    잠시 살아있는 동안 내게 주어진 것을 보관하고,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 산행지도






    #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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