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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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암(대),서진암,백장암,지리산 이야기 2023. 12. 4. 11:26
# 언제: 2023년 12월 03일 토요일 # 산행지: 금강암(대),서진암,백장암, 겨울 맞이 서룡산&투구봉 조망 산행 지리의 품속으로...ㅎㅎㅎ # 산행거리: 12.77km 06시간08분 # 산행루트: 제일제당(서룡산주차장) - 수청봉 - 범바위 - 서룡산 - 투구봉 - 서룡산 - 금강암(대) - 서진암 - 백장암 - 제일제당(서룡산주차장) 삼정산 아래에 있는 실상사 소속으로 828년에 실상사와 같이 세워졌고 국보 삼층석탑과 보물 석등을 간직하고 있는 백장암, 창건 연대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역시 실상사의 산내 암자인 서진암(세진암), 청화스님이 기거하며 수도했던 금강암(금강대)을 일컬어 지리산(서룡산) 3암자라고 한다. 금강암(대) 금강암은 청화스님과 그의 상좌 성본스님이 수행한 토굴수행처였다.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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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시 모음지리산 이야기 2023. 11. 5. 12:49
지리산 시 모음 - 권경업의 '지리산' 외 지리산 오를수록 가슴 저린 산 서럽게 서럽게 눈물나는 산 쫓기던 이 좇던 이 영문 없이 끌려간 핏덩이까지 아물어간 상혼에도 고통은 남아 유월 짙푸른 한을 삭이고 용서하고 용서받을 하나됨을 바라 초로에 반백이 다 되도록 골마다 영마다 바람으로 흐느끼는 지리산은 서러운 산 (권경업·산악인 시인, 1952-) 행복 지리산에 오르는 자는 안다 천왕봉에 올라서는 천왕봉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천왕봉을 보려거든 제석봉이나 중봉에서만 또렷이 볼 수 있다는 것을 세상 살아가는 이치도 매한가지여서 오늘도 나는 모든 중심에서 한발 물러서 순해진 귀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행복해 하고 있다. (허형만·시인, 1945-) 지리산 詩 - 천왕봉 산은 冠을 쓰고 의젓하게 앉아 있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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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智異山) 관련 시지리산 이야기 2023. 11. 5. 12:46
지리산(智異山) 지은이= 김돈중(金敦中) 제(오를 제)擧直上最高峰(제거직상최고봉) 산을 올라 곧바로 최상봉에 이르러, 回首塵寰一片紅(회수진환일편홍) 풍진 세상을 돌아보니 한 조각 구름일세. 徙倚烟霞得幽趣(사의연하득유취) 연하 속 배회하여 그윽한 정취 얻으니, 風流不愧晉羊公(풍류불괴진양공) 풍류는 진나라의 양공에게 부끄러울 것 없네. 1) 김돈중(金敦中, ?-1170) : 고려 의종 때 명신. 지리산 청학동(智異山靑學洞) 지은이=류방선(柳方善) 瞻彼智異山穹隆(첨피지리산궁륭) 둥그스름한 저 지리산 쳐다보니, 雲烟萬疊常溟濛(운연만첩상명몽) 겹겹이 낀 구름연기에 늘 컴컴하구나! 根盤百里勢自絶(근반백리세자절) 뫼뿌리가 백여리 서려 산세가 자연이 절묘하니, 衆壑不敢爲雌雄(중학불감위자웅) 기타의 뭇 계곡들이야 감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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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암,四聖庵 & 오산사(鼇山寺) - 23.08.22지리산 이야기 2023. 8. 24. 10:29
사성암,四聖庵 & 오산사(鼇山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華嚴寺)의 말사이다. 544년(성왕 22) 조사 연기(緣起)가 창건하여 오산사(鼇山寺)라고 했다. 그 뒤 신라의 원효(元曉)와 연기도선(烟起 道詵), 고려의 진각(眞覺) 국사혜심(慧諶)이 이 절에서 수도했다 하여 이들 네 스님을 기려 이름을 사성암이라 고쳐 불렀다. 1630년(인조 8) 중건하였으며, 1939년 이용산(李龍山)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 일원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3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물로는 인법당(因法堂)만이 있으며 유물로는 도선이 조각했다고 전하는 마애불이 있다. 쌍산재 위치 전라남도 구례군 장수길 3-2 쌍산재는 지리산권 전남 구례군 소재 고택 한옥으로 그 의미는 운영자의 고조부님의 호(쌍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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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재지리산 이야기 2022. 8. 9. 11:43
지안재 - 옛날 내륙지방과 남해바닷가 사람들이 생필품 물물교환을 위해 넘어야 했던 고개로 제한이라는 마을이있었으며, 제한이라는 명칭이 지안재로 개칭되어 불리우게 되었으며, 내륙지방과 남해바닷가 사람들이 생필품 물물교환을 위해 하고자 지리산 장터목으로 가기위해 반드시 넘어야 했던 고개 길.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지안재 풍광 조망. 24번 도로에서 1023번 도로로 들어오는 입구에 지안마을이 있어 지안재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1 「〈화개장터〉의 냇물은 길과 함께 흘러서 세 갈래로 나 있었다. 한 줄기는 전라도 땅 구례 쪽에서 오고 한 줄기는 경상도 쪽 화개협(花開峽)에서 흘러내려, 여기서 합쳐서, 푸른 산과 검은 고목 그림자를 거꾸로 비춘 채, 호수같이 조용히 돌아, 경상 전라 양도의 경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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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바위지리산 이야기 2022. 8. 9. 11:37
벌바위 어떤 분은 바위의 생김새가 벌이 새끼를 칠 때 서로 뭉쳐있는 모양새를 닮았다고 하여 벌과 관련하여 벌바위, 벌통바위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실은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전설은 벌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듯합니다 그 전설의 내용을 들은 대로 적어보면 이러합니다. 먼 옛날, 그러니까 천오백년도 더 된 마한시대 때의 사건과 관련된 것인데 와운 마을이 세 번째 옮겨져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기 전에 단 두 가구만 거주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한 집은 부인이 좀 못 생긴데 반해 다른 집의 부인은 정말 절세가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제가부터 못 생긴 부인을 가진 남자가 감히 가져서는 안될 흑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두 남자가 석위버섯을 따러 벌바위로 함께 갔다고 해요 석위버섯이란 게 바위 벼랑에 많이 달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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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정골지리산 이야기 2022. 8. 9. 11:10
오리정골 오리정골에 관한 문헌상 정보를 보면 [하동군지명고]에 아래와 같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1632년도 간행된 [진양지]의 화개현리의 기록을 보면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의 화개마을 이름들이 적혀있다. [동서가 15리요 남북이 20리며 속방(속한 마을)이 10 이다. 속방은 오리촌, 가정자촌, 신현촌, 쌍계촌, 황전촌, 배혜촌, 범왕촌, 대비촌, 법가촌, 화개현구지 이다.] 오리촌은 전라도 내륙지방과 지리산 남쪽의 해안지방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교통로에 위치하여 일찍이 발달한 고산 마을로 지금은 주민이 살지 않는 잊혀진 마을이다. 정리를 해보면,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에는 의신이나 신흥 보다도 아주 큰 마을이었으며 지리산의 남북을 잊는 교통로 상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리촌이 큰 마을이었다는 것은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