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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곡성군 봉두산'鳳頭山(동리산'桐裏山) 해발754m 산행-2018년06월13일(수요일)
    전국 산행기 2018. 6. 14. 10:55


    #. 산행지: 전남 곡성군 봉두산'鳳頭山(동리산'桐裏山) 해발754m 산행


    #. 전남 곡성군 봉두산'鳳頭山(동리산'桐裏山) 해발754m 번개산행


    #. 언제: 2018년 06월 13일 (수요일)

    #. 산행지: 전남 곡성군 봉두산'鳳頭山(동리산'桐裏山) 해발754m 산행

    #. 산행거리: 9.9Km   (04시간56분)

    #. 산행코스: 조태일시문학기념관(주차장) - 반야교 - 해탈교 - 태안사계곡 - 주차장 - 능파각 - 성기암 - 외사리재 - 묘지 - 갈림길 - 전망대

                      봉두산(동리산) - 절재 - 태안사 - 경찰충혼탑 - 태안사계곡 - 조태일시문학관주자장(원점회귀산행)


    #. 봉두산'鳳頭山(동리산'桐裏山)  높이: 754m   위치: 전남 곡성군 죽곡면 고치리

    산의 높이는 754m이다.

    산봉우리가 봉황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봉두산이라고 한다.

    산기슭에는 태안사()가 자리잡고 있는데, 대안사()라고도 한다.

    일주문(전남유형문화재 83)의 현판에는 ‘동리산() 태안사'라고 되어 있다.

    태안사를 둘러싼 산세가 봉황이 즐겨 앉는 오동나무의 줄기 속처럼 아늑하다고 해서 동리산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 언제부터 봉두산이라고 불렀는지는 알 수 없다.

    태안사는 신라 경덕왕 때 창건되었으며, 대안사 광자대비사(보물 275)'대안사 광자대탑사(보물 274) 등이 있다.


    특징,볼거리

    지형도에는 봉두산이라 표기돼 있지만, 이 산 안에 깃든 태안사 일주문 현액에는 '동리산(棟裏山) 태안사'라 되어 있다. 산 이름이 언제

    바뀌었는지는 몰라도 두 이름에 연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봉황이 서식하는 나무가 오동나무이고 태안사가 자리잡은 곳을 둘러싼 주변산세가 오동나무 줄기 속처럼 아늑해서 동리산이라 불렀으며

    둘러싼 주변산세의 최고점을 봉황의 머리 즉 봉두산이라 불렀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봉두산 주변에는 곡성 특유의 내륙산지를 이루고 있어 정상에 올라서면 순천쪽 황학리의 작은 들판을 제외하고 주변 조망이 온통 산뿐이다.

    남서쪽으로 삼산과 희아산 능선 넘어로 모후산이 오똑하고 북서쪽으로는 통명산 넘어 무등산까지 시야가 트인다.


    동쪽으로는 둥주리봉과 자라봉, 그리고 지리산이 장막을 치고 있다.이러한 내륙산지 조망이 산행의 맛으로는 제일이지만 봉두산은 태안사

    여행에 초점을 맞추어도 좋을 것이다.


    봉두산 산행은 태안사를 기점으로 산을 한 바퀴 도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태안사 기점 일주산행 코스는 계곡은 그다지 가파르지 않고

    안부에 올라서는데 약 30분 걸린다. 안부에 올라서면 오른쪽(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줄곧 서릉을 따라 오른다. 능선은 다소 가파른

    구간이 길게 나타나지만 1시간 이상 소요되지 않는다. 산은 온통 잡목 숲길이다.


    #. 태안사'泰安寺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에 있는 신라시대 절

    대안사라고도 한다. 839년(신무왕 1) 적인선사 혜철이 선풍을 크게 일으키면서 구산선문의 도량으로 이름이 났다.

    신라 말기에 2대 조사인 광자대사가 불도를 펴다가 945년 입적했다.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집으로 6·25전쟁 때 불탄

    것을 1969년 중수했다. 경내에는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 곡성 태안사 광자대사탑, 곡성 태안사 광자대사탑비가 남아 있다.


    동리산 자락에 위치한 태안사는 신라 경덕왕 원년 (742년)에 신승 3인에 의해 중창되었다. 이후 문성왕 9년 (847년) 혜철 국사에 의해

    선종사찰로 거듭 개산되어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파를 형성하게 된다. 그 뒤에 고려 태조 때 혜철대사가 머물면서 132칸의 건물을 짓고

    대규모 절을 이룩하여 동리산파의 중심 도량이 되었다. 고려 초에는 송광사, 화엄사가 모두 이 절의 말사였다. 1925년에 최남선이 찾아와

    신라 이래의 이름있는 절이요, 또 해동에 있어 선종의 절로 처음 생긴 곳이다. 아마도 고초(古初)의 신역(神域) 같다고 평했다. 6.25 때에

    대웅전을 비롯하여 15동의 건물이 불탔다. 그 뒤 다시 수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혜철국사 사리탑(보물 273호), 광자선사탑(보물 274호) 등 보물 5점이 있으며 동리산 계곡 절묘한 자리에 세워진

    능파각(지방유형문화재 제 82호)고 볼만하다. 특히 절 진입 2.3㎞구간의 도로 좌우로 우거진 숲속과 계곡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며 가을 오색 단풍은 가히 장관을 이룬다. 현재 태안사에는 보물 등 문화재 9점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태안사로 들어가는

    1.8km의 계곡은 봄에는 신록,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과 울창한 녹음, 가을에는 짙게 물들은 단풍이 아름다운 산책로로 알려져 있다.


    #. 조태일 - 197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문학가

    소주에 밥을 말아 먹는다. 는 소문이 나돌 만큼 문단의 호주가로 이름이 높고, 듬직한 몸집에 걸맞은 남성적 기개가 드높아 사람과 시가

    하나이던 시인. 대지의 강인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시대의 폭력에 ‘식칼’ 같은 시로 당당히 맞서 한국 시사에서 이육사나 유치환의 맥을 잇는

    시인으로 자리매김되기도 하는 조태일(趙泰一, 1941-1999). 조태일은 1941년 전남 곡성군 죽곡면 원달1리에 있는 ‘태안사’에서 태어난다.

    그의 아버지는 태안대처승이었다. 이런 까닭에 어린 조태일은 한 번도 입 밖으로 아버지를 불러본 적이 없다. 그는 열두 살 나던 해에 혈육의

    끈끈한 정도 나누지 못한 채 아버지를 여의고 만다. 그의 가족은 고향 곡성에서 여순사건을 맞아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가산을

    다 팽개치고 광주 시내로 나와 산다. 전남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1962년 경희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며 시인의 꿈을 키웠다 한다.


    동리산에서

    날이 샐 무렵
    어둠 더불어 빨치산들이 산으로 오른 뒤,
    골짜기 대밭에서
    죽순 서로 키재기하는 걸 보고
    나는 무럭무럭 자랐다.

    어린 짐승새끼
    어미 읽고 집 잃어 밤새 울어쌀 때
    동리산 품 같은 어머니 가슴 파고들며
    속으로 꺼이꺼이 울며
    나도 밤을 샜다.

    홍시감 익어갈 때,
    홍사초롱 수천 새씩 가지 휘어져라
    매달릴 때,
    아랫집 남순이랑 얼굴 붉히며
    왼종일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그 빨치산들 다 어디 갔나
    그 어린 짐승 자라서 다 어디 갔나
    그 죽순 자라서 어디 갔나
    그 홍시 다 어디 갔나
    그 남순이 어디 갔나.


    -시인 조태일-


    #. 산행지도








    #.산행사진





























    #. 곡성 태안사'泰安寺 (능파각'凌波閣)

    정면 1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건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2호. 태안사사적기(泰安寺事蹟記)에 의하면 1737년(영조 13)에 건립하고

    1776년과 1809년(순조 9)·1861년(철종 12)·1923년의 4회에 걸쳐 중수를 거듭하였다.


    이것은 일종의 다리 역할을 겸한 건물로서 계곡의 양측에 자연암반을 이용하여 약간의 석축을 쌓고 그 위에 두개의 큰 통나무를 받쳐

    건물을 세웠다. 통나무 위로는 1단의 각진 침목(枕木)을 두고 기둥을 올렸는데 기둥은 민흘림이다. 공포는 주심포식으로 내외 1출목이며,

    특히 행공첨차(行工檐遮)의 간략한 결구를 볼 수 있다.

    창방(昌枋) 위에는 평방(平枋)을 생략하고 창방과 외목도리, 그리고 화반[花盤 : 주심도리 밑 장혀를 받는 초새김한 받침] 사이에 여러 형태의

    동물상을 조각하여 흥미 있는 의장(意匠)을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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