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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산대사길,대성골(지리옛길)
    지리 산행기 2018. 7. 30. 10:34

     

     

    # 산행지: 경남 하동 지리(옛길)'서산대사길'대성골' 트레킹

     

     

    # 언제: 2018년 07월 28일 토요일

    # 산행지: 경남 하동 지리(옛길)'서산대사길'대성골' 트레킹

    # 산행거리: 10Km  (06시간37분)

    # 산행코스: 신흥교 - 서산대사길 - 의자바위 - 의신마을 - 대성교 - 대성마을(주막) - 의신마을

     

    # 대성골

    세석 남서쪽 덕평골, 큰세개골, 작은세개골, 수곡골,이 모인 계곡, 대성골은 지리산 남부능선의 물이 모두 모여든다 해서 붙여진 이름, 큰 大, 이룰 成. 골짜기마다 모인 위치에 있는 마을 이름 역시 대성골(옛 원대성마을을 작전상 이주하게 한 곳이 대성골)

     

    원래 대성동은 지금 있는 곳에서 4km 정도 더 들어가 있는 위치. 60년대 후반에 지금 있는 곳으로 옮겨졌기에 원 위치는(원대성)

    원대성은 무당골이라 불릴 만큼 무속인들이 모여든다. 세석 음양수가 발원지인 이곳 개울은 여름 피서객 휴양지.
    남향의 용왕소 주변은 돌탑 제단에 울긋불긋 천 조각 흔적들. 득도하려는 구도자 무속인을 비롯한 현실 도피자들의 은둔처. 

    대성골은 백선엽 장군이 이끄는 토벌대에 의해 빨치산이 몰살 당한 곳.

    기록에 의하면, 1952년 1월 17일과 18일이 최대 격전기 그 해 1월 한달 동안이나 야전 사령부의 3기 토벌작전이 시작


    1월 17일 무렵 지리산 온 골짜기는 함박 눈이 퍼붓는 가운데 날이 저물자 빗점골, 거림골, 신흥의 빨치산이 몰려든 대성골. 1,000 명 - 1만 명에 이르는 빨치산이 몰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52년 1월 남은 빨치산은 이기형 작 '죽음의 골'에 나오는 800 명. 빨치산 몰살 사건이 대성골에서 이뤄진 것은 지형적 특성 때문이었다. 지리산 계곡 중 대성골이 가장 산세 깊은 협곡이고 궁지에 몰린 집결지.


    18세 정순덕 여인이 4-5일 불바다에서 생쌀 한줌으로 버틴 곳. 잠 한숨 못자고 혹한 속에서 뜬눈으로 서서 버틴 사투 끝에 생존.

     


    그녀의 증언에 의하면 토벌대의 작전으로 모든 도주로가 차단되고 대성골로 가는 길만 터놓아 쫓기던 빨치산들이 이곳에 몰려 들었고, 항공기를 동원한 기름통 투하 및 소염탄 폭격으로 눈밭 위엔 불바다.

     

    대성골의 비극

    1951 12 2일 시작된 백야전 사령부의 제1차 동계토벌작전. 빨치산들에게 많은 타격을 주었는데, 그 타격 중 대표적인 사례 대성골 빨치산들이 입은 타격은 아래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다.

    1952 1 17일은 온 골짜기를 가득 메워버릴 것처럼 함박눈. 날이 저물며 빗점골, 거림골, 신흥 등지에서 몰려든 빨치산들 다음날 새벽 즈음 어디서 그렇게 많이 모여 들었는지 인산인해

     


    정순덕 여인이 가늠하기에도 1만 명의 대병력이 들어찬 것이다. 빗점골 의신부락 뒤쪽의 토벌대가 언제 야포를 끌어다 놓았을까, 대성골로 포탄이 날아들기 시작했고 스무 발 이상씩 동시에 작렬.

    귀청이 찢어질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귀가 달아나는 듯.

    시간이 지날수록 희생자는 불어났고 점점 좁혀지는 포위망. 토벌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훤히 내려다보며 토끼몰이 포위망을 좁히며 포격을 퍼부어대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동작 빠른 전사들은 토벌대와 맞부딪치며 포위망을 탈출. 대다수는 독 안에 든 쥐처럼 빠져나가지 못하고 죽어갔다. 하루 종일 퍼부어대던 포격도 총격도 해가 지면서 주춤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쪽 하늘에서부터 비행기 소리. 머리 위에 떨어지는 물체들은 휘발유가 가득 찬 (드럼통) 비행기 편대는 네 다섯 번 마개 빠진 드럼통을 떨어트렸다.

    그러다가, 마지막 편대가 주먹만한 소이탄을 곳곳에 뿌렸다. 그 순간부터 하얀 눈으로 덮혀 있던 대성골은 시뻘건 불바다...

     

     

    대성골/김순철( 통영시청 공무원 문학회 작가)

    1951년 12월 동족상잔 한창일 때
    지리산으로 숨어 든 빨치산 잡는다며
    사흘 낮 사흘 밤 퍼부은 포탄으로
    대성골 온 마을 불바다가 되었고
    그 맑던 계곡물 붉은 피로 물들었다
    세개골, 세양골, 자빠진골, 수곡골

    골골마다 이데올로기의 희생양들
    통곡소리 끊이지 않던 죽음의 골짜기
    그 모진 세월 견뎌낸 원대성골, 대성골 사람들
    모두 다 의신으로 쫓겨 가고
    빈집 몇 채만 대성골을 지키고 있었다

    60년 세월 꿈같이 흘러 2012년 2월 29일,
    밤길 더듬어 대성골 당도하니
    육이오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십남매 중 막내인 남성 씨가 우리를 반긴다
    한잔 두잔 그나하게 된 남성이는
    각시 허락도 없이 대성골 약초술 죄다 내 놓는다

    천왕봉 산신령이 점지하여 의정부 처녀를 만나
    떡두꺼비 같은 아이를 둘이나 낳은 그이는
    누가 뭐래도 넉넉한 지리산 산사나이

    세상 근심 다 내려놓고 곤하게 잠들었던
    뜨끈뜨끈한 흙담집 구들방은 그때 그대로인데
    이념의 푯대 끝에 매달린 깃발 온 데 간 데 없다

    세상일 까마득 잊고 앵글 속으로 들어간
    자족과 평화와 화해의 땅 대성골
    머지않아 돌북숭아꽃 지천으로 피어나고
    하늘을 찌를듯한 후박나무 꽃봉오리 터지면
    꿈속의 무릉도원 찾아 해맬 일 없겠다

     

    # 서산대사길

    섬진강 동쪽 하동 화개장터, 십리벚꽃 터널과 쌍계사 옆을 지나 지리산(智異山) 계곡 상류 신흥마을 입구에서 산언저리로 드러난 서산대사 유적지 복원 및 정비사업으로 출발한 의신 옛길. 신흥마을에서 의신마을까지 계곡을 끼고도는 산행길은 지리산의 옛길이며 서산대사(西山大師)의 길이다.

     
    약 4.3km 의신 옛길은 서산대사가 지리산(智異山)에 머무는 동안 오가던 길로 서산대사에 얽힌 유적과 설화를 만날 수 있다. 의신마을은 신(神)이 머물고 갔다고 할 정도로 경치가 수려하고 자연그대로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다. 불교문화의 산지인 의신사, 서산대사가 출가한 원통암, 의병묘, 당산제 등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지리산(智異山) 의신계곡 옆구리를 끼고도는 산행길은 산 중턱에 조성되었지만 비교적 완만하고 큰 경사가 없어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걷기에 어려움이 없는 길이다. 산행길 내내 우거진 숲 너머로 계곡 물소리가 끊이지 않고 바람도 불어 힐링, 치유의 길로는 지리산 구룡계곡과 쌍벽을 이룰만큼 아름다운 곳이어서 적극 추천해드린다.

     

    더구나 아직은 사람 때가 덜 타서인지 주변도 깨끗하고 산행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아 자연과 교감하며 사색하기 좋은 길이다. 산행길과 계곡이 접점하는 상류 출렁다리까지는 물소리 끊이지 않고 길 끝에는 마을이 있으니 시간에 쫒기지 않고 여유있게 걷다가 쉬다가, 쉬다가 걸어도 전혀 길을 잃을 염려도 없으니 동네 앞산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은 한없이 평화롭다. 떡갈나무 소나무, 밤나무 등 빽빽히 우거진 숲 때문에 모자도 필요 없고 이따금 언뜻 비치는 햇살이 오히려 고마울 정도로 무성한 산림지대 길이다.

     

    의신마을로 가는 산행길 숲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는 영덕 노물과 오보 앞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닮았다. 물이 합수하여 에너지를 발산하며 '우우' 힘차게 들려오는 계곡 물소리는 보이지 않는 계곡 위 산행길을 지날수록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우렁차 때로 섬뜩하기도 하지만, 이따금 드러나는 계곡의 물을 보노라면 소리만 웅장하지 한없이 순한 양처럼 졸졸 흐른다.

     
    산행길 내내 계곡 물소리 끊이지 않고 아득한 과거로 침잠된다. 신흥마을에서 의신 마을까지 계곡 옆구리 산행길은 나무와 바람 그리고 물과 바위 4대 요소가 합쳐져 웅장한 자연의 오케스트라 합주곡을 연출한다.

     
    평이한 길을 가다가 갑자기 산행길은 각도를 꺾어 다소 가파른 길을 만든다. 서산대사가 지나던 길이 밋밋해서일까 수직으로 꺾은 길은 오분도 안되어 고도만 높이며 평이한 길을 만드니 서산대사의 놀라운 신통력으로 길은 평평하다가 서너 군데 수직으로 올라가지만 대부분 뭇 대중들이 쉽게 걸을 수 있도록 평이하여 서산대사의 대중사랑을 산행 길에서 조금 맛보는 것 같다.

     

    지금 걷는 이 길은 힐링 치유의 길만이 아니라, 무형의 역사가 흐르는 의미있는 옛길이다. 평이한 길의 끝자락에는 서산대사의 도술 (의자바위)가 그럴 듯하게 놓여있다.

     
    서산대사의 의자바위 에서 고단함을 풀고 길은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산행길은 의신계곡 옆구리에 바짝 달라붙어 상류까지 동행한다. 티없이 맑고 깨끗한 물이 크고작은 바위 사이로 돌돌 구르며 흘러간다. 조그만 바위와 바위 사이로 물이 서로 빠져나가려고 병목 현상을 일으키고 아우성을 지른다.

     
    산행길 옆에는 뱀딸기, 산딸기 등이 돋아있고 야생화가 가득 피어있다.

     
    의신계곡에는 모양도 가지가지 풍파와 비바람에 깎인 바위가 기묘한 형상을 두르며 계곡(쿵쿵소, 용소, 배나무소, 선녀암, 두꺼비 바위 등)을 뒤덮고 있다. 물은 바위를 타고 혹은 바위 옆을 지나 낮은 대로 한없이 흐른다. 지리산(智異山) 약초를 머금은 물은 계곡 바위를 타면서 옥류가 되어 지리산을 적시고 섬진강의 젖줄로 흐른다. 

     
    서산대사 힐링 길 끝자락이 다가오자 계곡 너머로 멀리 의신마을이 한 폭의 그림처럼 산자락에 자리하고 그 위로 온통 연둣빛으로 치장한 산 위로 뭉게구름이 걸려 있다. 

     
    서산대사(1520-1604)는 의신마을에 위치한 원통암에서 출가(1540)하여 휴정이라는 법명을 얻었다. 신흥-의신 주변에는 쌍계사, 칠불사, 의신사 등 지리산에서 가장 많은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도 여러 흔적이 남아있다. 신흥사가 있었던 신흥마을과 의신사가 있었던 의신마을을 연결한 길은 서산대사가 지리산에 머무르는 동안 오가던 옛길로 자동차 도로가 개설하기 전까지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던 길이었다.


    의신계곡 상류 끝 지점에 출렁다리를 건너면 아담히 포개어진 의신마을과 원통암이 있다. 원통암은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끄는데 크게 기여한 서산대사가 출가한 절로 15세 때 지리산을 유람하던 중 원통암에 들렀다가 숭인장노의 법문을 듣고 출가했다. 서산대사는 삼철굴암, 의신사, 원통암 등에서 수행하던 어느날 인근 구례 성촌마을을 지나가다 대낮에 닭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지리산 덕평봉 남쪽 아래 해발 700m 고지에 자리한 원통암은 신라말 고려초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온다.

     

    의신마을에서 벽소령산장을 지나면 대성골로 가는 길이다. 

     
    의신마을에서 대성골 가는 시멘트 길은 이내 사라지고 좁은 외길 산행길이다. 의신 마을에서 대성동까지는 왕복 5km 정도로 골 깊은 마을만큼이나 구절양장(九折羊腸)처럼 산허리를 따라 길은 구불구불 몇 개의 산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무성한 숲 사이로 난 오솔길에는 금방이라도 멧돼지가 튀어나올 형세로 등산객이 다니지 않는다면 산중의 심심(深深) 골짜기로 오지중의 오지다.

     

     

    산 愛 들 愛

     

    산을 끼고 강물은 흘러간다 들길따라 바람도 떠나 간다
    멀리멀리 떠나간 듯 아주 멀리 떠나간 듯
    눈에 익은 그 모습 그 뒷모습 귀에 익은 그 노래 그 목소리
    잎새바람 춤을추 듯 향기로움 넘치는 듯
    사랑하리 싱그러운 바람결.사랑하리 붙잡고픈 세월을.
    -박노열-

     

    # 산행지도

     

     

     

     

     

     

     

    #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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