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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악산,月岳山,월형산月兄山(영봉1095m)
    전국 산행기 2019. 5. 26. 10:51


    # 언제: 2019년 05월 25일 토요일

    # 산행지: 충북 제천 월악산,月岳山,월형산月兄山(영봉1095m)100명산 조망산행

    # 산행거리: 11.00Km   06시간00분

    # 산행코스: 송계2교(통나무집) - 보덕굴 - 보덕암 - 하봉 - 965 - 중봉 - 월악산(영봉) - 신륵사삼거리

                    송계삼거리 - 마애봉(마애불) - 덕주골 - 덕주사 - 덕주휴계소


    # 월악산,月岳山,월형산月兄山(영봉)   높이: 1095m   위치: 충북 제천시 덕산면 수산리

    월악산의 높이는 1,095.3m이며, 소백산맥이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산악지대이다. 충주호(忠州湖)에 바로 인접하여 있고, 산의 동북쪽에는 소백산국립공원이, 남서쪽으로는 속리산국립공원이 있다. 지질은 주로 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남쪽과 북서쪽으로는 약간의 퇴적암층이 있다.


    신라 시대에는 월형산(月兄山)이라 불렸다.


    상모면 미륵리에는 신라 56대 경순왕의 말년에 금강산에 입산하였던 마의태자(麻衣太子) 남매가 도중에 머물러 사찰과 미륵, 탑 등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는 미륵리사지(彌勒里寺址)가 있다.


    이곳에는 괴산미륵리석불입상(보물 제96호)·괴산미륵리오층석탑(보물 제95호)·중원미륵리석등(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중원미륵리삼층석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3호)·큰 돌거북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석불입상은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미륵사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산 남쪽 기슭에는 마의태자와 동행하던 누이 덕주공주의 이름을 딴 덕주사(德周寺)가 있는데 윗산에는 망국의 한을 품은 덕주공주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는 덕주사마애불(보물 제406호)이 있다. 미륵리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약 3.5㎞ 지점에 넓은 암반과 맑은 물이 아름다운 팔랑소가 있다.


    다시 약 1㎞ 북쪽에는 용추(龍楸)와 농바위[籠巖], 와룡대(臥龍臺)가 있으며, 그 서쪽 언덕의 빈신사터[頻迅寺址]에는 고려 현종 때 세워진 사자빈신사지석탑(獅子頻迅寺址石塔, 보물 제94호)이 있다. 농암 건너편에는 덕주산성의 남문이 산비탈을 타고 내린 석성과 연결되어 있다. 이곳 산성은 이웃한 조령관성(鳥嶺關城)과 더불어 소백산맥의 중요한 군사 요충지였다.


    또한, 월악산의 동쪽 산록에는 신륵사(神勒寺)가 있으며, 산의 동쪽을 흐르는 광천은 대미산(大美山)·문수봉(文繡峰)·하설산(夏雪山)에서 흘러나와 월악리를 거치면서 송계계곡 못지 않은 신륵사계곡을 전개한다.


    공원 내에는 문수봉·황정산(皇廷山)·용두산(龍頭山)·금수산(錦繡山) 등이 포함된다. 월악산 동북쪽의 남한강 건너편에 있는 금수산은 용담폭포·도화동천(桃花洞天) 등 별천지를 연상하게 하는 비경이 많은데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여기에는 단양팔경의 일부가 포함되는데 하선암·중선암·상선암·구담봉·옥순봉 등이 그것이다. 월악산은 소백산과 속리산의 중간에 있고 문경새재도립공원과도 연계되어 있어 주요한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서남쪽의 수안보온천과도 인접하고 있어 중부 내륙의 대청댐·수안보·충주로를 잇는 내륙 순환 관광권을 형성한다.


    신단양에서 월악산 북쪽 한수(寒水)나루에 이르는 수상 관광로는 월악산 관광로의 새로운 통로이며, 널리 알려진 단양팔경은 물론 충주를 포함한 중원문화권(中原文化圈)과도 연계되어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특징및볼거리


    월악산은 자못 험준하며 정상의 봉우리는 마치 석상을 둘러친 듯 바위봉으로, 주봉인 국사봉으로도 불리는 영봉(1,094m), 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다는 하설봉, 용두산, 문수봉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영봉은 거대한 암봉으로 이 꼭대기에 서면 월악산 산 그림자를 담고 있는 충주호가 한 눈에 들어온다.월악산은 신라의 마지막 태자 김일과 그의 누이 덕주공주가 망국의 한을 품고 은거한 산이다. 이들 남매에 얽힌 전설은 월악산 곳곳에 남아 있다.


    덕주골에는 덕주사, 마애불과 더불어 이들을 기리는 시비가 있고, 미륵리 절터에는 보물 95호와 96호로 지정된 오층석탑이 유명하다.


    월악산은 사계절 산행지로 다양한 테마 산행을 할 수 있다. 산나물이 많아 봄에는 산나물 산행, 여름에는 송계계곡 및 용하구곡 등 폭포, 소와 담이 어우러진 계곡산행, 가을에는 충주호와 어우러지는 단풍산행과 호반산행으로 인기 있다.

    겨울철에 비교적 눈이 많이 내리므로 눈 산행, 인근에 수안보 온천이 있어 온천산행, 달이 뜨면 주봉인 영봉에 걸린다 하여 「월악」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을 정도로 달맞이 산행 또한 일품이다.


    월악산 산행의 묘미는 충주호와 어우러진 절경들을 감상하는데 있다.정상에 서면 충주호 물결을 시야 가득히 관망할 수 있고 사방으로 펼쳐진 장엄한 산맥의 파노라마를 가슴 가득히 품게 된다.


    월악산에는 용하계곡과 송계계곡이라는 비경이 있다. 영봉을 동서로 8㎞의 송계계곡과 16㎞의 용하계곡과 쌍벽을 이루면서 맑은 물과 넓은 암반, 그리고 천연수림이 잘 어울려 천하절경을 이룬다.


    송계계곡은 자연대, 월광폭포, 수경대, 학소대, 망폭대, 와룡대, 팔랑소, 한국의 마테호른으로 불리우는 해발 1097미터의 월악 영봉을 합쳐, 송계8경으로 부르고 있다. 용하계곡은 폭포와 맑은 계곡물, 소, 담, 너른 반석, 울창한 숲이 잘 어우러져 서쪽 송계계곡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지닌 비경지대이다.


    그외에 덕주계곡, 미륵사지, 덕주사, 빈신사지사자석탑, 덕주산성, 5층 석탑과 석불입상 등 볼거리가 많고 , 인근에 수안보 온천 및 문경새재 3관문이 수안보온천에서 불과 10~15분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 한국의산하 인기 명산(18위)

    월악산은 충청 북도 제천시 한수면과 덕산면 경계에 있는 산이다. 높이는 1,094m로, 충주호에 바로 인접하여 있다. 주위에 주흘산 · 문수봉 · 하설산 등이 함께 솟아 있으며, 남한강 줄기인 광천과 달천이 산의 동쪽과 서쪽을 흐르고 있다. 속리산 · 수안보 온천 · 충주 댐을 연결하는 곳에 자리잡아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월악산은 월광 폭포 · 망폭대 · 학소대 · 수경대 · 자연대 · 수렴대 등의 8경과 정상인 국사 주봉에서의 풍광이 예로부터 유명하다. 특히 달천이 흐르면서 만든 계곡을 월악 계곡 또는 송계 계곡이라 하는데, 7km에 달하는 이 계곡은 경치가 무척 아름답다. 상모면 미륵리에는 마의 태자가 머물러 사찰과 미륵 · 탑 등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는 절터 미륵사지가 있다. 이 곳에는 괴산 미륵리 석불 입상 · 괴산 미륵리 오층 석탑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또한 미륵리 북쪽에 있는 팔랑소도 넓은 암반과 맑은 물로 유명한 곳이다. 이 밖에 산성지 · 동문 · 남문 등의 문화 유적이 있다.


    1984년에 월악산을 중심으로 충청 북도의 제천시 · 충주시 · 단양군, 경상 북도의 문경시 일부를 포함하여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월악산 국립 공원에는 월악산 이외에 하선암 · 중선암 · 상선암 · 구담봉 · 옥순봉 등 단양 팔경의 일부와 용두산 · 금수산 등이 포함된다. 금수산은 용담 폭포 · 도화동천 등 별천지를 연상케 하는 비경이 많은 산이다.


    #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산세가 험준하고 기암이 어우러져 예로부터 신령스런 산으로 여겨졌으며 송계 8경과 용하 9곡이 있고 국립공원으로 지정(1984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신라말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마주보고 망국의 한을 달래고 있다는 미륵사지의 석불입상, 덕주사의 마애불 및 덕주산성 등이 유명하다.


    # 블랙야크 선정 100대 명산


    # 덕주사 마애여래입상 (마애불,보물406호)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월악산에 위치한 덕주사 법당지의 동쪽 암벽에 부조되어 있는 고려시대 마애불입상은 보물 제406호로 높이 13m의 거대한 마애불상의 양 어깨 위에는 목조전실이 있었던 가구공(架構孔)의 흔적이 남아 있다 얼굴 부분은 약간 도드라지게 조각되었으나 두 손이나 신체 표현 및 법의의 옷주름 등은 선각으로 간략하게 처리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길고 턱이 진 얼굴에는 양감이 별로 없고, 목부분의 표현이 생략되어 얼굴과 몸체가 거의 붙어 있으며 가슴 쪽으로 삼도(三道)가 새겨져 있다 통견(通肩)의 법의가 양 다리 위로 갈라져 표현된 타원형의 옷주름은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법의 형식이 도식화된 것으로, 만복사지석불입상같은 고려시대 석불에서 간혹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가슴 앞으로 올린 두 손은 유달리 크고 투박한 느낌을 주며 오른손은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이 맞대어 있고, 왼손은 손등이 밖으로 향해 있어 아미타불의 구품인(九品印)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법의자락 밑으로는 군의(裙衣)의 옷주름이 규칙적인 세로선으로 표현되어 있고 그 아래에는 옆으로 크게 벌린 두 발이 거대한 몸체를 안정감있게 받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말 마의태자의 여동생인 덕주공주가 이 불상을 조성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 덕주사,德周寺    위치: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산3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587년(진평왕 9)에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창건자 및 창건연대는 미상이다. 다만, 신라의 마지막 공주 덕주공주(德周公主)가 마의태자(麻衣太子)와 함께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마애불이 있는 이곳에 머물러 절을 세우고, 금강산으로 떠난 마의태자를 그리며 여생을 보냈다는 전설이 전한다.


    원래의 덕주사는 보물 제406호인 덕주사마애불(德周寺磨崖佛) 앞에 있었는데, 1951년 군의 작전상 이유로 소각하였다. 창건 당시의 절을 상덕주사, 지금의 절을 하덕주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상덕주사는 지금의 덕주사에서 1.7㎞ 지점에 있었는데, 1951년 무렵 까지만 해도 고색창연한 기도사찰이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


    상덕주사는 1622년(광해군 15)에 중수되었음이 옛 극락전 자리에서 발견된 명문기와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지금의 덕주사에서는 1206년(희종 2)에 조성된 금구(禁口)가 발견되어 고려시대 덕주사의 정황을 짐작할 수 있다. 1963년에 중창되었고, 1970년과 1985년에 각각 중건하였다. 덕주사에는 어느 때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우탑(牛塔) 1기와 조선시대의 부도(浮屠) 4기가 있으며, 우탑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이 절의 승려들이 건물이 협소하여 부속건물을 지으려고 걱정할 때 어디선가 소가 나타나서 재목을 실어 날랐다. 소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니 현재의 마애불 밑에 서므로 그곳에다 부속건물을 지었고, 소는 재목을 모두 실어다 놓은 다음 그 자리에서 죽었으므로 죽은 자리에 우탑을 세웠다고 한다.

    또, 부도에는 환적당(幻寂堂)·부유당(浮遊堂)·용곡당(龍谷堂)·홍파당(洪波堂)이라고 음각된 명문이 기록되어 있다. 1985년 중창 당시에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는 한수면 역리에 있던 고려시대 석조 약사여래 입상을 덕주사로 옮겨 봉안하였다. 이밖에도 덕주사 전방 약 2㎞ 지점에 있는 빈 신사 터에는 보물 제94호로 지정된 사자빈신사지석탑(獅子頻迅寺址石塔)이 있으며, 덕주사 주변의 덕주계곡·송계계곡(松界溪谷)·월악계곡(月岳溪谷) 등은 풍치가 좋다.


    내가 두 귀로 들은 이야기라 해서


    내가 두 귀로
    들은 이야기라 해서
    다 말할 것이 못되고

    내가 두 눈으로
    본 일이라 해서
    다 말할 것 또한 못된다

    들은 것을 들었다고
    다 말해 버리고

    본 것을 보았다고
    다 말해버리면

    자신을 거칠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궁지에 빠지게 한다.

    현명한 사람은
    남의 욕설이나 비평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또 남의 단점을
    보려고도 않으며
    남의 잘못을 말하지도 않는다.

    모든 화는 입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입을 잘 지키라고 했다.

    맹렬한 불길이
    집을 다 태워버리듯이

    입을 조심하지 않으면
    입이 불길이 되어
    내 몸을 태우고 만다.

    입은 몸을 치는 도끼요
    몸을 찌르는 칼날이다.

    내 마음을 잘 다스려
    마음의 문인 입을 잘 다스려야 한다.

    입을 잘 다스림으로써
    자연 마음이 다스려 진다.

    앵무새가
    아무리 말을 잘한다 하더라도

    자기소리는
    한마디도 할 줄 모른다.

    사람도 아무리
    훌륭한 말을 잘한다 하더라도

    사람으로써 갖추어야 할
    예의를 못했다면
    앵무새와 그 무엇이 다르리요!

    세 치의 혓바닥이
    여섯자의 몸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법정 스님-


    # 산행지도





    #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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