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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곡골,은정대, 오두인(吳斗寅),유람 1651년11월-6일(5박6일),두류산기(頭流山記)오두인 길지리 산행기 2020. 12. 27. 19:12
# 언제: 2020년 12월 25일 금요일
# 산행지: 오두인(吳斗寅),유람 1651년11월-6일(5박6일),두류산기(頭流山記)오두인 길, 지리,智異의 품속에서 놀다.
# 산행거리: 11.66Km 09시간 03분
# 산행코스: 의신 - 원통굴 - 대성주막 - 수곡폭포 - 수곡골 - 양진암 - 수곡마을터 - 은정대 - 수곡능선길 - 염소막터
수곡골 -대성주막 - 의신(원점회귀)
# 369년 전의 오두인(吳斗寅), 흔적을 찾아 수곡골 은정대(隱井臺)에 찾아 오르다. 오전 겨울비, 그리고 약간의 눈, 산행에 지장 없길 바라며, 목적지인 의신마을 출발, 고속도로 달리는 동안에도, 비,눈 내린다. 그런데 산행 시작 목적지인 의신마을 도착 전혀다른 날씨다. 화개동천의 끝 마을 의신, 아침 공기부터 다르다. 냉기 속에 청량함이 묻어난다.
오늘은 조선중기의 선비, 오두인(1624~1689)이 올랐던 수곡골과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 은정대(隱井臺)를 찾아 떠나본다.
오두인(吳斗寅, 1624~1689)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원징(元徵), 호는 양곡(陽谷). 병마절도사 오정방(吳定邦)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오사겸(吳士謙)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오상(吳翔)이다. 어머니는 고성이씨(固城李氏)로, 이효길(李孝吉)의 딸이다. 숙부 오숙(吳䎘)에게 입양되었다. 1648년(인조 26) 진사시에 1등으로 합격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650년(효종 1) 지평(持平)을 거쳐 1656년 장령(掌令), 1661년(현종 2) 헌납(獻納)·사간이 되었다. 이듬해 정조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1667년 부교리(副校理)·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679년(숙종 5) 공조참판으로서 사은부사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호조참판, 1682년 경기도관찰사를 거쳐 다음해 공조판서에 올랐다. 1689년 형조판서로 재직 중에 기사환국으로 서인이 실각하자,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에 세번이나 임명되고도 나가지 아니하여 삭직당하였다. 이해 사직(司直)을 지내고,
5월에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閔氏)가 폐위되자 이세화(李世華)·박태보(朴泰輔)와 함께 이에 반대하는 소를 올려 국문을 받고, 의주로 유배 도중 파주에서 죽었다. 그 해에 복관되었다. 1694년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파주의 풍계사(豊溪祠), 광주(光州)의 의열사(義烈祠), 양성(陽城: 지금의 경기도 안성)의 덕봉서원(德峰書院), 의성(義城)의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양곡집, 이 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頭流山記 南臺寺 1651년 오두인 두류산기의 은정대와 오두인 석각
오두인(吳斗寅, 1624~1689)은 본관이 海州, 호는 陽谷, 시호(諡號)는 충정(忠貞)이다. 父는 이조판서를 지낸 오상(吳翔)이고 백부인 오숙(吳䎘)의 양자(養子)로 들어갔다. 1648년 진사시에 1등으로 합격하고 1649년 별시 문과에 장원 급제한 후, 1650년 사헌부 지평(持平)으로 있으면서, 1651년 공무로 경상도 지방의 재상(災傷)을 살피러 내려왔다가, 11월 1일~11월 6일까지 5박 6일 동안 경상우도의 수령들과 선고(先考)와 계부(季父)의 유람길을 좇아 지리산을 유람하였다. 1631년 오두인의 선고(先考:돌아가신 아버지) 오숙(吳䎘)이 화개동천과 불일암을 유람하였고, 1647년 계부(季父:막내숙부) 오핵(吳翮)이 다녀갔다. 이 세 사람은 특이하게 불일암에서 옥소암과 영대암을 거쳐 쌍계사로 내려왔다. 1647년 이곳을 유람한 계부(季父) 오핵(吳翮)은 불출암과 쌍계사 사이 계곡 바위에 장원암이라는 시를 묵서(墨書)로 남겼는데, 5년 후 오두인이 이 묵서를 발견하고 화답 시를 읊었다고 한다.
장원암(狀元巖) 吳翮(오핵 : 1615∼1653)
靑鶴峯前路 : 靑鶴峯(*)의 앞길을 따라서 내려오니
澄潭影翠杉 : 맑은 연못에는 비취빛 삼나무 그림자
羽仙探勝處 : 우선(羽仙)이 찾은 경치 좋은 곳이라
仍號狀元巖 : 이에 장원암(狀元巖)이라고 부른다네
(*)청학봉은 비로봉(백학봉)을 가리킴. 우선(羽仙) : 오숙(吳䎘,1592~1634)
오두인(吳斗寅, 1624~1689)의 유람 일정은 1651년 11월 1일 진주 관아를 출발하여 옥계사에서 자고, 11월 2일 악양을 거쳐 쌍계사에 도착, 11월 3일 불일암과 불일폭포 일원을 둘러보고 쌍계사 적묵당에서 자고, 11월 4일 아침에 쌍계사를 출발하여 거석교 -홍류교(삼신동 각자)-신흥사터-능파각(세이대)-사자곡을 지나 기담(妓潭)에서 쉰 후, 능인사(能仁寺)에서 점심을 먹는다. 저녁 무렵에 능인사(能仁寺)를 출발하여 은정대(隱井臺)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11월 5일 은정대(隱井臺)를 출발하여 수국현(水國峴)넘어서 거림으로 내려가 남대사를 거쳐 신계촌에서 유숙하고, 11월 6일 신계를 출발하여 덕천서원에 들렀다가 진주 관아로 돌아갔다. 이때 오두인과 동유(同遊)한 일행인 진주 소촌 찰방 김정(金釘), 진주 목사 이상일(李尙逸), 하동 태수 이진필(李震馝), 오두인(吳斗寅), 곤양 소모장(召募將) 김집(金緝)의 이름을 은정대(隱井臺) 뒤 은정(隱井)의 바위벽에 새겼다. 이 성명의 석각이 '지리산국립공원 역사문화조사단'에 의해 368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651년 오두인 두류산기의 은정암 관련 발췌
1651년 11월 4일 <중략> 저녁 무렵에 작별하고 다시 10리를 가서 작은 암자에 이르렀는데 은정대(隱井臺)라고 하였다. 이 암자는 산 정상에 있어 속세와 일찌감치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학승(學僧) 담희(淡熙)가 그곳에 거처하고 있었는데, 그를 따라 공부하는 자가 10여 명이라고 하였다. 암자 뒤쪽에 바위가 있는데, 바위 아래에 샘이 솟았다. 이른바 은정(隱井)이라는 것이 바로 이 샘터이다. 마침내 그 바위에 함께 유람 온 이들의 성명을 김정(金釘), 이상일(李尙逸), 이진필(李震馝), 오두인(吳斗寅), 김집(金緝)의 순으로 적었다. 첫 번째가 찰방 김정(金釘), 그다음이 진주 목사 이상일(李尙逸), 그다음이 하동 태수 이진필(李震馝) ,내가 네 번째였는데 나이순으로 정한 것이다. 그대로 바위에 새기게 하여 훗날의 표지로 삼았다. 이날은 은정대(隱井臺)에서 묵었다.
臨夕而別。又行十里。至一小菴。名曰隱井臺也。菴在絶頂。去塵宸最遠。經僧淡熙居焉。從而遊者。十餘人云。菴後有巖。巖下出泉。所謂隱井。必此也。遂題同遊姓名於其巖曰。 金釘 李尙逸 李震馝 吳斗寅 金緝。其一督郵。其次晉牧。其次河東。余居第四。序以齒也。仍命刻之。以爲他日識焉。是日。仍宿于此寺。
1651년 오두인의 두류산기,頭流山記에 나오는 은정암과 오두인 일행들의 성명 석각이 368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로부터 김정(金釘), 이상일(李尙逸), 이진필(李震馝), 오두인(吳斗寅), 김집(金緝) 辛卯 仲冬
隱井(은정)
죽을만큼 사랑했던 사람과 모른체 지나가게 되는 날이 오고,
한때는 비밀을 공유하던 가까운 친구가 전화 한 통 하지 않을 만큼 멀어 지는 날이 오고,
또 한때는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던 사람과 웃으면 볼 수 있듯이 시간이 지나면 이것 또한 아무것도 아니다.
변해버린 사람을 탓하지 않고 떠나버린 사람을 붙잡지 말고, 그냥 그렇게 봄날이 가고 여름이 오듯
내가 의도적으로 멀리하지 않아도 스치고 떠날 사람은 자연이 멀어지게 되고,
내가 아둥바둥 매달리지 않더라도 내 옆에 남을 사람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 알아서 내 옆에 남아준다.
나를 존중하고 사랑해주고 아껴주지 않는 사람에게 내 시간 내 마음 다 쏟고상처 받으면서 다시 오지 않을 꽃 같은 시간을 힘들게 보낼 필요는 없다.
비 바람 불어 흙탕물을 뒤집어 썻다고 꽃이 아니더냐 다음에 내릴 비가 씻어준다.
실수들은 누구나 하는거다.
아기가 걸어다니기까지 3000번은 넘어지고야 겨우 걷는 법을 배운다.
난 3000번을 이미 넘어졌다가
일어난 사람이 뭘 별 것도 아닌 일에 좌절하나.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너무 일찍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고,가장 불행한 것은 너무 늦게 사랑을 깨우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잘났다고 뻐긴다 해도 결국 하늘 아래에 놓인 건 마찬가지인것을.
높고 높은 하늘에서 보면 다 똑같이 하찮은 생물일 뿐인 것을 아무리 키가 크다 해도 하찮은 나무보다도 크지 않으며,아무리 달리기를 잘한다 해도 하찮은 동물 보다도 느리다.
나보다 못난 사람을 짓밟고 올라서려 하지 말고,
나보다 잘난 사람을 시기하여 질투하지도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하늘 아래 있는 것은 다 마찬가지니까...
# 산행지도
# 산행사진지리역사관 주차장에 주차
아름다운 대성길
대성동길 등로에서 바라본 단천지능, 지네능선
소나무 연리지
원통굴(圓通窟)가는 길.
청량한 석간수로 목을 축이고
원통굴(圓通窟) - 고요한 암자를 지키던 노견은, 사람이 그리운 듯 온 몸으로 반기내
원통굴과 남부능선
원통굴 처사님 맛있는 홍시 따서 주시내
노견과 잠시 놀고, 처사님 노견이 잡은 멧돼지만 수도 없었다 하신다.
다시 길을 이어 간다.
언제나 이 자리를 지키는 노송
대성주막
막걸리 한잔
수곡골 접어 들기전 대성골,
대성골을 건너 수곡골을 향해 언덕을 넘어서며, 바라본 대성동 마을
수곡골로 접어드니, 겨울답게 냉기가 골을 타고 흐르고, 수곡폭포도 반 쯤 얼어 붙었다네.
수곡폭포
수곡골은 지리산 영신봉과 삼신봉 사이의 남부능선, 깊고 깊은 험지에 자리하고 있는 계곡이며, 대성골의 지류이다.
화전민터
양진암에 오르기 전 양진암 앞 바위
암벽위에 양진암이 있다
양진암 - 양진암에 도착한다. 조용한 겨울 산사에는 온기가 가득 머물고 있다.
뒤로는 남부능선이 흐르고, 좌우로 수곡능선, 단천지능이 둘러싼 길지, 양진암은 온화한 겨울 햇살 아래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양진암에서 한시간 가량 점심식사, 여유를 부린다.
올랐던 길 되돌아 수곡마을터로 향한다.
사면을 넘어 수곡마을터에 이른다. 폐허의 마을터, 곳곳에 남은 석축 만이 마을터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켠에는 절구통이 나뒹굴고 있고 ...
수곡마을터 석축
마을터를 가로질러 오르며 은정대로 향한다.
수곡마을터 윗쪽의 은정대,
오두인(1624~1689)은 조선조, 인조에서 숙종조에 걸쳐 고위 벼슬을 한 선비로 사헌부 지평을 거쳐 경기도관찰사와 공조,형조판서를 지내고 사후에는 영의정으로 추대되었던 인물이다. 자료에 의하면, 그가 젊은 시절인 1651년 11월1일부터 11월6일까지 5박 6일간, 지리산 유람을 하고 산행기인 '두류산기(頭流山記)'를 남겼다. 두류산기는 그의 저서 양곡집(陽谷集)에 실려 있다. 그는 경상우도 지역, 재해 시찰을 마치고, 진주목사와 하동태수 등을 대동하고 평소 꿈꾸던 지리산 산행에 나섰다. 진주관아를 출발하여, 하동을 거쳐 쌍계사,불일폭포 일대를 돌아보고 대성계곡, 수곡골을 통해 남부능선을 넘었다. 그리고, 자빠진골을 통해 거림,내대로 하산, 덕산을 거쳐 진주관아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그들이 은정대에 하루 묵으며 암자 뒤 바위에 일행들의 이름을 나이 순으로 새겼는데... 김정, 이상일, 이진필, 오두인, 김집 등 이다. 당시 일행들의 면면은 진주 목사 이상일(李尙逸)/ 진주 소촌 찰방 김정(金釘)/ 하동 태수 이진필(李震馝)/ 사헌부 지평 오두인(吳斗寅)/ 곤양 소모장(召募將) 김집(金緝) 이었다.
옛적, 이곳에는 은정대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지리산 유람에 나선 오두인 일행이 하루밤 머물기고 했고 ...
암자가 위치했을 법한 널찍하고 평평한 터, 또 그 한쪽에는 큼직한 바위가 있다.
은정암(隱井巖) - 바위 아래에는 '은정(隱井)'으로 불리는 작은 샘도 있다.
은정(隱井)/샘
은정바위에는 오두인 일행의 이름을 새긴 각자도 보인다. - 바위에 함께 유람 온 이들의 성명을 김정(金釘), 이상일(李尙逸), 이진필(李震馝), 오두인(吳斗寅), 김집(金緝)의 순으로 적었다. 첫 번째가 찰방 김정(金釘), 그다음이 진주 목사 이상일(李尙逸), 그다음이 하동 태수 이진필(李震馝) ,내가 네 번째였는데 나이순으로 정한 것이다. 그대로 바위에 새기게 하여 훗날의 표지로 삼았다. 이날은 은정대(隱井臺)에서 묵었다.
수곡능선 헬기장
염소막터 - 염소를 키우던 곳
하산하며, 대성동길 등로에서 바라본 단천지능, 지네능선
의신마을
바람부는 날에는 너에게로 가고 싶다 -심진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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