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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산(320m) 전남 보성전국 산행기 2022. 12. 28. 09:16
# 언제: 2022년 12월 11일 일요일
# 산행지: 전남 보성 오봉산(五峰山), 칼바위, 조망산행...ㅎㅎㅎ
# 산행거리: 9.71m 04시간 12분
# 산행루트: 득량초 - 도새등 - 조새바위 - 칼바위 - 오봉산 - 용추폭포 - 칼바위주차장 - 해평저수지주차장
오봉산(五峰山)
전남 보성 득량면에 위치한 오봉산(五峰山 320m)은 남해바다 다도해 풍경과 많은 기암괴석을 조망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역사적 발자취와 아름다운 기암괴석에 원효대사가 넋을 잃었다는 설화가 있다.
다섯개의 봉우리가 모여 있는 오봉산은 산 아래 다가설 때까지도 그리 독특하지 못하지만 파고 들면 점입가경, 신비스럽기 그지없다.설악산 천불동계곡에 들어서는 듯 가야동 계곡의 협곡을 보는 듯하고, 산등성에 솟은 암봉과 암벽은 날카로운 칼날을 세워놓고 병풍을 펼쳐놓은 듯 작은 산의 심오한 자연미에 감탄한다.
남쪽으로 펼쳐진 드넓은 바다, 점점이 떠있는 다도해 섬들과 수인산, 제암산, 존제산, 모후산, 조계산, 금전산, 제석산, 천관산 등이 조망된다. 오봉산은 우리 민족의 아픔이 서려 있는 산이기도 하다.
1949년10월초 빨치산 보성지구부대는 보성경찰서를 습격하려다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경찰의 매복에 걸려 격전 끝에 100여명이 군경저지선을 뚫고 오봉산으로 도망쳤으나 뒤쫓아 온 군인, 경찰들에게 다시 발각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결국 빨치산 잔당들은 30여명의 사상자를 낸 뒤에서야 오봉산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전해진다.
산길 곳곳에 형성된 너덜지대에 쌓여 있는 돌들은 여느 너덜과 다른데 모두가 널찍하고 반듯반듯하여 한때 이곳 주민들은 이 구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할 만큼 질 좋은 구들이 많이 나오던 곳이다. 오봉산의 참 멋은 오봉산에 다가들어야 알 수 있는데, 오봉산의 으뜸은 칼바위다. 매끈하면서도 힘차게 뻗은 능선과 그 끝에 날카롭게 치솟은 바위는 강함과 부드러움의 조화를 보여준다.
칼바위는 통일신라 때 고승 원효대사가 수도터로 삼고 불도를 닦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기암이기도 하다. 원효는 용추폭포에서 몸을 깨끗이 씻고 칼바위에 올라 수도를 닦았다 하는데 30여m의 칼바위는 참으로 기묘하여 마치 손바닥을 위로 세우고 손가락들을 모아서 45도 각도로 굽힌 모양 같기도 하고, 선 채로 깊숙이 허리굽혀 인사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끝이 날카로운 칼 모양이기도 해서 보통 칼바위라 부른다.
그러나 칼바위 일대는 거대한 바위들이 엉켜 있고 바위봉우리들이 솟아 있기 때문에 개구리바위, 호랑이바위, 버선바위 등 갖가지 바위들이 있으며, 조선 태조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해서 태조바위라 부르는 바위도 있다. 큰 바위들이 많이 엉켜 있기 때문에 돌을 던져 넣으면 득량만 바다로 나온다는 마당굴과 정재굴, 독굴 등 굴도 많다. 또 칼바위 아래는 사방을 높은 바위벽이 둘러싼 공간이 있다.
50여명이 들어설 수 있는 넓이로 바위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외부와 단절된 독방과 같다. 기남천을 막아 만든 해평저수지 골짜기는 협곡을 이루고 있고, 탕건바위, 각시바위 등의 이름이 붙은 바위들이 있어서 경관이 좋다. 또 이 골짜기의 막바지에 있는 용추폭포는 양편과 앞이 바위벽을 이루고 있는 통속 같아 신기하다.
용추폭포는 10여m 높이로 그 아래는 소를 이루고 있으며, 여름 장마철에는 장관을 이룬다 한다.
득량(得糧)이란 양식을 얻는다는 뜻으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이 이 지역에서 군량미를 얻은 일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1914년 군면 통폐합 전에는 송곡면과 도촌면으로 나뉘어 있었다는 것으로 볼 때 바다(득량만)를 막아 넓은 간척지가 생기고 많은 곡식을 얻게 되어 생긴 이름이라는 것이다. 칼바위 바위벽에는 석실에서 10여m 높이에 희미한 화상이 새겨져 있는 바 이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다.
원효대사가 처음 칼바위를 보고 그 신비스러움에 감탄하고 여기에 자리잡은 뒤 용추폭포에서 목욕재계하고 여기 석실에서 수도했으며, 이곳을 떠날 때 칼바위 주변의 신비스러운 경관을 못내 아쉬워하면서 새긴 불상이란 이야기도 있다. 또 주민들은 태조가 등극하기 전에 왜구를 물리치러 이곳에서 머물며 성을 쌓고 그의 화상을 바위에 새겼다해 태조바위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여 희미하기는 하나 마애불이 확실한 모양이다.
우리나라에는 오봉산이라는 이름의 산이 여러 개 있다. 소양호에 있는 청평의 오봉산을 비롯해서 횡성과 평창의 오봉산, 경남 양산의 오봉산, 함양의 오봉산, 임실의 오봉산이 있고, 도봉산에도 오봉이 있다.
# 산행영상
# 산행지도
# 산행사진
전남 보성군 득량면의 득량남초교 입구에서 산행시작
득량 남초등학교
득량남초교 옆의 들머리
득량면 지명이 "양식을 얻는다(得糧)"이니 이 들녘을 보니 그 뜻을 알 수 있을 듯 하다...
바다(득량만)를 막아 생긴 넓은 간척지에서 많은 곡식을 얻게 되어 "得糧"이란 지명이 유래된 듯도 하다...
한편으론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적과 싸울 때 이 지역에서 군량미를 얻은 일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고도 한다.
도새등에서 득량만 방조제 방향, 조망, (예당평야)
득량만 간척지
곡식이 풍부하다는 자비와 풍요의 득량(得糧)의 너른들판. 보기만 해도 배가 든든 하다.
득량(得糧)이란 양식을 얻는다는 뜻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적과 싸울 때 이 지역에서
군량미를 얻은 일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1914년 군.면 통폐합 전에는 송곡면과 도촌면으로
나뉘어 있었다는 것으로 볼 때 바다(득량만)를 막아 넓은 간척지가 생기고
많은 곡식을 얻게 되어 생긴 이름이라는 것이 옳다 한다.
데크 전망대
도새등에서 득량만 방조제 방향, 조망, (예당평야)
득량만 간척지
곡식이 풍부하다는 자비와 풍요의 득량(得糧)의 너른들판. 보기만 해도 배가 든든 하다.
득량(得糧)이란 양식을 얻는다는 뜻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적과 싸울 때 이 지역에서
군량미를 얻은 일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1914년 군.면 통폐합 전에는 송곡면과 도촌면으로
나뉘어 있었다는 것으로 볼 때 바다(득량만)를 막아 넓은 간척지가 생기고
많은 곡식을 얻게 되어 생긴 이름이라는 것이 옳다 한다.
도새등, 오봉산 갈림길
259봉 돌탑
돌탑만해도 약 45개 정도가 된다는데, 제각각 모양이 비슷하지만 다르다.이 돌탑들은 오봉산 아래있는 기남마을 이장님(이춘선)이 보성군의 지원을 받아 2002년부터 약 4년간에 걸쳐서 완성했다고 한다.
259봉에서 득량만방향 방조제 조망
아래 보이는 마을은 조양(朝陽) 마을이다.
이곳 조양마을은 1937년도 득량만 간척사업으로 인하여
지금은 농경지로 변하였으나 예진포라 하여 예진창이 있었던 곳이며
이곳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이조 말엽까지 보성지방의 국세 및 진상품을
수납 보관 하였다가 선박으로 인천을 통하여
서울 경창(京倉)으로 옮길 세미(歲米)를 쌓아두는 창고가 있어
마을의 지명을 해창이라 하였고 그 이후 간척사업으로
바다가 농토로 바뀌어 지면서 본헌 아후 조양이라고 개명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마을이며,
일제시대에는 수탈의 창구로 이용된 아픈 역사도 함께 간직한 마을 이기도하다.
마을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는 영조 갑오년에 장흥군 장흥읍 행원에서
장흥위씨 위기조란 분이 입향하고 정조2년 장흥군 장동면 전곡에서
김해김씨 김우성이란 사람이 들어와서 형성하였다고 전하여 지고 있다.
259봉에서 해풍저수지 방향 조망, 뒷쪽은 작은 오봉산이다.
조새바위
조새바위..?? 새의 모양인가..?? 어느 쪽에서 봐야 제대로 된 새의 모습일까...??
새의 부리를 닮은 듯도 하고... 쥬라기시대의 익룡부리를 닮았다는 게 더 어울릴 듯도 하다...
근데... 이 바위는 '새'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단다...
이 바위가 굴을 까는 도구인 "조새"를 닮았다 하여 바닷가 마을인 이곳 주민들이 "조새바위"라 불렀다구...ㅋ
봇등마을.
비닐하우스가 보이는 어업과 농업이 공존하는 마을이다.
삼형제 탑
칼바위 해발310m
통일신라 때 고승 원효대사가 수도터로 삼고 불도를 닦았다는 전설의 기암
보성 오봉산 칼바위
칼바위의 모습은 마치 새의 부리 같기도 하고 아가리를 벌리고 위협하는 코브라를 연상한다. 코브라의 목덜미 부분에 희미하게 마애불상이 새겨져 있다. 높은 바위에 올라가서 어떻게 마애불을 조각하였을까 신비스러울 따름이다. 칼바위는 중생대 백악기 화산 폭발 때 화산재가 쌓아 이루어진 응회암이다. 칼바위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풍화되고 물의 침식작용에 의해 암석이 풍화되어 떨어져 나가 절벽이 되었다. 절벽에 새겨진 희미한 마애불상은 풍화와 침식작용에 의해 점점 흔적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칼바위 아래 바위틈(장재굴이라 부른다)
바위 틈 굴로 들어가니 넓은 석실이 나온다.
대 여섯은 거주하며 수도를 할 수도 있을만한 공간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원효대사가 칼바위를 보고 그 신비로움에 감탄하여 용추폭포에서 목욕재계하고 이 석실에서 수도했다 한다.
장재굴 넓은 석실
칼바위 마애불상(磨崖佛像)
석실에서 칼바위 바위벽을 자세히 보면 10여m 높이에 희미한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원효대사가 여기에서 수도하고 떠날 때 신비스러운 경관을 못내 아쉬워하며 새긴 불상이란 이야기도 있고, 주민들은 조선조 태조가 등극하기 전에 왜구를 물리치러 이곳에서 머물며 성을 쌓고 그의 화상을 바위에 새겼다 해서 태조바위라 하기도 한단다.
풍혈지
오봉산
봉우리가 다섯 개 모여 있는 오봉산은 산 아래 다가설 때까지도 그리 독특하지 못하다. 하지만 파고들면 점입가경, 신비스럽기 그지없다. 설악산 천불동계곡에 들어서는 듯 가야동 계곡의 협곡을 보는 듯하고 , 산등성에 솟은 암봉과 암벽은 날카로운 칼날을 세워놓고 병풍을 펼쳐놓은 듯하다. 작은 산이 어찌 이토록 심오한 자연미를 펼칠 수 있을까 감탄할 정도다.
오봉산은 한민족의 아픔이 서려 있는 산이다. 1949년 10월초 빨치산 보성지구부대는 보성경찰서를 습격하려다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경찰의 매복에 걸려 격전 끝에 100여 명이 군경저지선을 뚫고 오봉산으로 도망쳤으나 뒤쫓아온 군인, 경찰들에게 다시 발각돼 격렬한 전투를 벌였고 결국 빨치산 잔당들은 30여 명의 사상자를 낸 뒤에서야 오봉산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전해진다.
산길 곳곳에 형성된 너덜지대에 쌓여 있는 돌들은 여느 너덜과 다른데 모두가 널찍하고 반듯반듯하여 한때 이곳 주민들은 이 구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할 만큼 질 좋은 구들이 많이 나오던 곳이다. 산행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칼바위쪽으로 뻗은 오봉산 주릉이다. 매끈하면서도 힘차게 뻗은 능선과 그 끝에 날카롭게 치솟은 바위는 강함과 부드러움의 조화를 보여준다. 칼바위는 통일신라 때 고승 원효대사가 수도터로 삼고 불도를 닦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기암이기도 하다. 원효는 용추폭포에서 몸을 깨끗이 씻고 칼바위에 올라 수도를 닦았다 한다.
용추폭포
하나의 물줄기가 폭포 상단에서 두줄기로 갈라진 뒤 떨어진다.
옛부터 마을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낸 곳인데 120년 전 6월 몹시 가뭄이 들어 유원규보성군수가 기우제를 지내기위해 용추폭포를 찾았으나 큰 뱀이 길을 막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산 아래로 내려가서 목욕재계(沐浴齋戒)한 뒤 기우제를 지냈더니 비가 내렸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 문인 오봉 정사제는 이곳에서 정진하면서 용추석벽이라는 시를 남겼다. 협곡에 들어가면 옹기 속에 앉은 것처럼 하늘이 조막만해진다. 이 험한 곳에도 고운 최치원이 다녀갔던 모양이다. 암벽 오른쪽에 고운의 시가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생경한 이름들만 보일 뿐 찾을 수가 없었다.보성군에 확인해도 모르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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