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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폭포,운장바위골,운장바위,영신봉,좌고대지리 산행기 2023. 8. 16. 11:15
# 언제: 2023년 08월 15일 화요일
# 산행지: 한신계곡, 오층폭포, 한신폭포, 운장바위골, 운장바위, 영신대, 좌고대, 바른재능선(한신능선),
지리의 품속에서...ㅎㅎㅎ
# 산행거리: 13.32km 08시간00분
# 산행루트: 백무동 - 한신계곡 - 한신폭포 - 운장바위골 - 운장바위 - 영신봉 - 좌고대 - 한신계곡 - 백무동
백무동 유래(百武洞 由來)
백무동은 무속인들이 많아 붙여진 이름입니다. 반야봉이 문수보살이 자리한 불교의 성지라고 한다면 천왕봉은 그보다 먼저 자리잡은 우리 고유의 민속신앙의 보고라 할까요, 지리의 산신령은 용유당부터 시작하였을 겁니다. 거기서 기돗발이 안 받을 경우 그들은 이 하당下堂인 이 백무동까지 올라옵니다. 조금 더 영험함을 받으려면 다시 중당中堂인 제석봉 까지 올라가고...오후에 용담(龍潭)에 도착하였고, 용당(龍堂)에 모여서 묵었다.(정경운, 고대일록, 1604) / 용유담에서 동남쪽으로 조금 치우친 곳에 용왕당(龍王堂)이 있었는데,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외나무다리를 설치해 왕래하는데…(박여량 1610) / 외나무다리를 건너 허물어진 사당 안으로 뛰어들어가 기다렸다.(유몽인 1611) / 못의 서쪽 비탈에는 옛날 사당이 있었는데, 무당들이 신령스러운 용에게 기도하던 곳이었다… 삼남의 무당들이 봄과 가을이면 반드시 산에 들어와서, 먼저 용유담의 사당에서 기도를 올리고 그 다음에 백무당과 제석당에서 차례로 기도하였다.(이동항 1790) / 용유당(龍遊堂)(박장원 1643) / 용당(龍堂)이 건너편 언덕에 있어 나무를 엮어 다리를 만들었는데 - (조구명 1724)
거기서도 여의치 않을 경우 상당上堂인 천왕봉까지 올랐다고 하죠, 그러니 이 백무동은 그들의 베이스 켐프 역할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곳들은 유교에 쩌들은 선비들에게는 음사淫祠였고 질시疾視의 대상에 불과했을 겁니다. 이 낯설기만 한 곳이 청계도인 양대박(1541~1592)에게는 삼가하고 멀리해야만 하는 곳이었습니다.
다시 산길 10여 리를 가서 백문당(白門堂: 혹 백무당(百巫堂)이라고도 한다.)에 도착하였다. 이 집은 길가 숲 속에 있는데, 잡신들이 모셔져 있고 무당들이 모이는 곳이다. 밤낮없이 장구를 치고 사시사철 부채를 들고 춤을 춘다. 사당 안에는 초상이 걸려 있었는데 이루 말할 수 없이 희한하고 괴이하였다. 이곳은 얼른 떠나야지 오래 머무를 수 없는 곳이었다. 밥을 재촉해 먹고 얼른 신을 신고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한신계곡(韓信溪谷)
지리산은 통일신라시대의 오악 중 하나로
영험하고 신비로운 산으로써 산신이 거주한다고 여겼으며
해마다 제를 올리면서 신성스럽게 예(禮)를 다하였다.
오악을 나열하면 동악은 토함산, 서악은 계룡산(鷄龍山), 남악은 지리산(智異山), 북악은 태백산(太伯山),
그리고 중앙은 부악《父嶽 : 팔공산(八公山)》으로 그 중심이 되는 곳이다.
한신계곡은 뱀사골, 칠선계곡과 함께 지리산의 3대 계곡 중 하나이며
한여름에 냉기가 감돌고 사나운 물보라가 굽이굽이 내리친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구전되는 전설에 의하면
한신이라는 사람이 농악대를 거닐고 세석고원으로 가다가
급류에 휘말려 죽음으로써 그 사람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한신계곡이 되었다는 설이 있고,
수많은 소(沼)와 폭포가 이어지며 급류와 한여름에 한기가 서리는 차가운 기운이 맴도는 한심계곡이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한신계곡으로 변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하늘장벽을 이루는 연하봉, 촛대봉, 그리고 영신봉으로 이어지는 천각들의 계곡물을 담아
서북방향으로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는 이 곳은
그 옛날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지금도 많이 산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첫나들이폭포
아주 오래전 바람이 없는 날에도 이곳에 떨어지는 폭포수로 인해
바람이 일어나 "바람폭포"라 하였고, 어느 때부터인지 알 수 없으나
지금은 백무동에서 오르면 첫 번째 폭포라고 하여 "첫나들이 폭포"로 불리고 있다.
가내소폭포
가내소에 얽힌 전설
먼 옛날 한 도인이 이곳에서 수행한지 12년이 되던 어느 날 마지막 수행으로
가내소 양쪽에 밧줄을 묶고 눈을 가린 채 건너가고 있었다.
그러나 도중에 지리산 마고 할매의 셋째 딸인 지리 산녀가 심술을
부려 도인을 유혹하였고, 도인은 그만 유혹에 넘어가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도인은 ‘에이~!, 나의 도(道)는 실패했다.
나는 이만 가네.’하고 이곳을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 ‘가내소’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가내소는 15m높이의 폭포이며 50여평의 검푸른 소를 만들고 있어
우선 그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사철 수량이 변함없어 전설에 의하여 옛날 마천면 주민들은 심한 가뭄이 들면
이곳 가내소를 찾아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기우제 방법도 특이해서 부녀자들이 홀치마 바람으로 앉아 방망이를 두드리거나
돼지를 잡아 바위에 피를 뿌리고 가내소에 머리를 던졌다던가?
전자는 통곡과 동일시한 방망이 소리로 지리산신인 마고할매의 통곡을 유도하여
대지를 적시게 한다는 주술적 방법이고,
후자는 돼지를 잡아 계곡을 더럽히면 산신이 산을 씻어내기 위해
비를 뿌릴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란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그럴듯하게 빗댄 선인들의 생각이 소박하고 재미있다.
오층폭포
경남 함양군 마천면 강청리 한신계곡에 위치. 지리산 백무동탐방지원센터에서 세석방향으로 3.0Km거리. 가내소폭포의 0.3Km상부, 한신폭포에서 0.7Km 하부에 위치.
5개의 폭포가 계단식으로 형성된것이 아니고 (이렇게 되었으면 오단폭포였을듯) 하나의 폭포가 떨어져 소를 이루고 흐르다가 또다시 새로운 폭포가 만들어지고 소를 이루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슴. 실제로는 7개의 폭포로 구성.
오련폭포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폭포의 총길이는 855미터라고 합니다. 폭포가 험해서 가까이 다가갈수없기에 오층폭포를 전체로모두 볼 수는 없습니다.
한신폭포
운장바위골
운장바위
운장바위 상단,
공간이 좁아 아찔한 느낌도 들지만 조망이 기막히다.
동쪽으로 상봉을 비롯한 하봉, 제석봉 일대가 선명하다.
서쪽으로는 반야봉, 노고단까지 아스라이 조망된다.
발아래 마천 일대의 내지리 조망
영신봉영신봉 해발1.652m
영신봉,靈神峰 - 지리산 영신봉은 높이 1,651.9m로 백두대간 낙남정맥의 출발점이다. 서쪽으로 칠선봉[1,576m]·삼각고지[1,470m], 동쪽으로 촛대봉[1,703.7m]·천왕봉[1,915m], 남쪽으로 삼신봉[1,284m]과 이어지는 주요 능선들이 영신봉에서 갈라지며, 남쪽 비탈면에 산청군 시천면 거림골, 하동군 화개면 큰세개골·대성계곡, 북쪽 비탈면에 함양군 마천면의 한신계곡이 있다.
추강암(秋江巖)
추강 남효온 선생이 올라서 좌고대를 감상한 바위를 일컫는다.
<추강 남효온_지리산일과 1487년>
나는 가섭전 뒤쪽에서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산의 한 봉우리를 올랐는데, 좌고대(坐高臺)라고 하였다. 거기에는 상, 중, 하 3층이 있었는데 나는 중층까지 올라가서 멈추었는데 심신이 놀라고 두근거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다. 대의 뒤에는 위험한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좌고대보다 더 높았다. 나는 그 바위에 올라 좌고대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기이한 풍경이었다. 의문은 좌고대 아래에 앉아서 두려워하면서 더 이상 올라오지 못하였다.좌고대(坐高臺)
영신봉 서쪽 해발 153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요. 전체가 3단으로 이뤄져 있으며 1단은 둥글고, 2단은 하늘 높이 솟아있고, 3단은 판석으로 2단 위에 밥상처럼 평평하게 올려져있고, 높이는 10m쯤 됩니다.
이곳에 올라 소원을 빌면 이루워진다네요. 위험하니 좋은 날만 오르세요.1. 1463년 8월 이륙 선생의 유지리산록
뒤쪽의 봉우리에는 기이한 바위가 돛대처럼 솟아 있는데 북쪽으로 만 길이나 되는 벼랑에 맞닿아 있고 상처럼 생긴 돌을 그 위에 또 이고서 반야봉을 향해 조금 기울어져 있다. 부여잡고 올라 사방을 향해 절하는 자는 근기가 잘 잡혀 있다고 여겨지는데 해낼 수 있는 자는 천 명 중에 한 두 명이 있을까 말까할 정도이다.
2. 1472년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
○ 8월 17일, 신사일<중략> 가섭전(迦葉殿)의 북쪽 봉우리에는 두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데, 이른바 좌고대라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밑은 둥글게 서리었고 위는 뾰족한 데다 꼭대기에 네모난 돌이 얹혀 져서 그 넓이가 겨우 한 자 정도였는데, 승려의 말에 의하면, 그 위에 올라가서 예불(禮佛)을 하는 자가 있으면 증과(證果)를 얻는다고 한다. 이 때 종자인 옥곤(玉崑)과 염정(廉丁)은 능란히 올라가 예배를 하므로, 내가 절에서 그들을 바라보고는 급히 사람을 보내서 꾸짖어 중지하게 하였다.
3. 1487년 남효온 선생의 지리산일과
○ 10월 정묘일 <중략> 나는 가섭전 뒤쪽에서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산의 한 봉우리를 올랐는데, 좌고대(坐高臺)라고 하였다. 거기에는 상, 중, 하 3층이 있었는데 나는 중층까지 올라가서 멈추었는데 심신이 놀라고 두근거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다. 대의 뒤에는 위험한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좌고대보다 더 높았다. 나는 그 바위에 올라 좌고대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기이한 풍경이었다. 의문은 좌고대 아래에 앉아서 두려워하면서 더 이상 올라오지 못하였다. 이 날 서쪽 방면은 전날보다 훨씬 청명하여, 서해와 계룡산 등의 여러 산을 두루 분별할 수 있었다.
4. 1489년 김일손 선생의 속두류록
○ 4월 24일, 임자일. 영신사(靈神寺)에서 묵었는데, 이 절 앞에는 창불대가 있고 뒤에는 좌고대가 있는데, 천 길이나 솟아 있어 올라가면 눈으로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동쪽에는 영계(靈溪)가 있는데, 대나무 홈통을 따라 물이 흘러들었고 서쪽에는 옥청수(玉淸水)가 있는데, 매가 마시는 물이라고 승려가 말하였다. 북쪽에는 석가섭상이 있었다. 당 안에는 찬(贊)이 적힌 가섭도(伽葉圖)가 있는데, 비해당의 삼절(三絶)이었다. 연기에 그을리고 비에 젖은 흔적이 있으나 이 진귀한 보물이 빈산에 버려진 것을 안타깝게 여겨 가져가려 하였다. 그러자 백욱이 말하기를, “사가(私家)에 사사로이 소장하는 것이, (어찌)명산에 공적으로 보관해두고 안목을 갖춘 사람들이 유람하며 감상하게 하는 것만 하겠습니까?”라고 하여 가져가지 않았다.
5. 1611년 유몽인 선생의 유두류산록
○ 4월 5일 갑술일.<중략> 이어 만 길이나 되는 푸른 절벽을 내려가 영신암(靈神菴)에 이르렀는데, 여러 봉우리가 안쪽을 향해 빙 둘러서 있는 것이 마치 서로 마주보고 읍을 하는 형상이었다. 비로봉은 동쪽에 있고, 좌고대는 북쪽에 우뚝 솟아있고, 아리왕탑(阿里王塔)은 서쪽에 서 있고, 가섭대(迦葉臺)는 뒤에 있었다.
도솔산인님의 좌고대 관련자료
바른재 능선,
영신봉과 칠선봉 사이의 주능선에 머리를 기대여
좌우에 한신계곡과 큰새골을 거느리고 백무동골로
뻗어내린 지능선이다.
# 산행영상
가내소 폭포
오층폭포
한신폭포
운장바위
# 산행지도
#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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