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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淸凉山(장인봉'丈人峰 해발870m)&경북 봉화100대 명산 산행기 2018. 7. 18. 14:42
# 청량산'淸凉山(장인봉'丈人峰 해발870m) 위치: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 청량산'淸凉山(장인봉'丈人峰 해발870m) 위치: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淸凉山(장인봉'丈人峰 해발870m)이다. 태백산맥의 지맥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문명산·만리산·투구봉 등이 있다. 주봉인 장인봉을 비롯하여 금탑봉·연화봉·축융봉·경일봉 등 30여 개의 봉우리가 있다.
기반암은 편마암이다.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불렸으며, 우리나라 3대 기악의 하나로 꼽혀왔다. 퇴계 이황은 청량산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 산을 예찬하여 후세인들이 그를 기념하여 세운 청량정사가 남아 있다.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낙동강 상류가 서쪽 절벽을 휘감아 흐른다.
조선 후기의 불전건물인 청량사유리보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이 있다. 1982년 8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아슬아슬한 암봉·망굴 등의 자연경관을 비롯하여 내청량사·외청량사 등의 고찰과 유적이 많다. 특산물로 춘양목·송이버섯·대추가 유명하다.태백산맥의 줄기인 중앙산맥의 명산으로서 산세가 수려하여 소금강(小金剛)이라고 한다. 최고봉인 장인봉(丈人峰)을 비롯하여 외장인봉(外丈人峰)·선학봉(仙鶴峰)·축융봉(祝融峰)·경일봉(擎日峰)·금탑봉(金塔峰)·자란봉(紫鸞峰)·자소봉(紫宵峰)·연적봉(硯滴峰)·연화봉(蓮花峰)·탁필봉(卓筆峰)·향로봉(香爐峰) 등의 12개의 고봉이 치솟아 절경을 이룬다.
그 가운데에서도 금탑봉 오른쪽의 절벽인 어풍대(御風臺)는 최고 절승으로 꼽히고 있다. 그 밖에도 신선이 내려와서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대, 선녀가 가무유희를 즐겼다는 선녀봉을 비롯하여 신묘한 절승지가 많다. 지질은 편마암으로 되어 있다. 낙동강이 이 산의 서쪽 기슭을 흐르며, 반곡폭포(盤谷瀑布)·산북폭포(山北瀑布) 등의 폭포가 이 산의 풍광을 더하여주고 있다.
이 산세를 조선 시대의 이중환(李重煥)은 (택리지) 복거총론(卜居總論) 산수도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안동 청량산은 태백산맥이 들에 내렸다가 예안(禮安) 강가에서 우뚝하게 맺힌 것이다. 밖에서 바라보면 다만 흙묏부리 두어 송이뿐이다. 그러나 강을 건너 골 안에 들어가면 사면에 석벽이 둘러 있고 모두 만길이나 높아서 험하고 기이한 것이 형용할 수가 없다.
이 산에는 27개의 절과 암자의 유지(遺址)가 있고, 신라 시대 이후 선현들이 수도한 유적이 다수 남아 있다. 원효(元曉)가 건립하였다고 하는 내청량사(內淸凉寺)와 외청량사(外淸凉寺),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유리보전(琉璃寶典), 신라 시대의 명필 김생(金生)이 글씨를 공부하던 김생굴(金生窟), 최치원(崔致遠)이 수도한 고운대(孤雲臺)와 독서대(讀書臺),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은신한 유명한 오마대(五馬臺)와 공민왕당(恭愍王堂) 등이 있다.
여기에는(신증동국여지승람)에 “돌로 쌓았다. 둘레가 1,350척이고 안에 우물 7개소와 시내 2개가 있다. 지금은 폐하였다.”라고 기록된 청량산 성지도 있다. 이황(李滉)은 도산서원을 근거로 하여 후학을 가르치며 학문을 연구하다가 수시로 청량산으로 들어가 수도하였다고 한다.
그는 청량산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 산을 매우 사랑하여 이 산에 관한 51편의 시를 남겼고, <청량산록발 淸凉山錄跋>이라는 글도 썼으며, 또 청량산을 오가산(吾家山)이라고도 하였다. 이황이 거처하며 학문을 연구하던 자리에 후인들이 기념으로 세운 청량정사(淸凉精舍)라는 건물이 지금도 남아 있다.
수려한 경관과 유서 깊은 문화유적이 곳곳에 있어 봉화군 및 안동시 일대의 48.76㎢가 1982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의 특산물로는 송이버섯과 대추가 있으며 예로부터 대궐이나 사찰 건축재로 이용된 춘양목(春陽木)이 있다.
# 언제: 2017년 10월 29일 (일요일) 경북 봉화 청량산'淸凉山(장인봉'丈人峰 해발870m)산행
산행거리: 13.02Km (05시간53분)
산행코스: 청량산상가지구(주차장) - 청량교 - 공원괸리사무소 - 퇴계선생시비 - 643봉 - 축융봉 - 산성 - 공민왕사당 - 밀성대 -
산성입구 - 입석 - 응진전 - 총명수 - 청량정사 - 청량사(Back) - 어풍대 - 금탑봉 - 김생폭포 - 김생굴 - 연적고개 - 자소봉 -
탁필봉 - 뒷실고개 - 자란봉 - 하늘다리 - 선학봉 - 청량산(장인봉) - 금강대 - 금강굴 - 공원관리사무소 - 청량교 -
청량산상가지구(주차장)&(원점회귀산행)
특징'볼거리
청량산은 기암괴석이 봉을 이루며 최고봉인 의상봉을 비롯해 보살봉 금탑봉 연화봉 축융봉 등 12개의 암봉이 총립해 있고 봉마다 대(臺)가 있으며 자락에는 8개 굴과 4개 약수, 내청량사(유리보전)와 외청량사 (웅진전), 이퇴계 서당인 오산당(청량정사)등이 있다.
청량산은 우선 산 곳곳에 깎아지른 듯한 층암절벽이 괴상한 모양의 암봉들과 어우러진 모습이 절경이다.둥글둥글하게 생긴 암봉들이 여덟개나 되고 그 암봉들이 품고 있는 동굴만도 열두개에 이른다. 또 동굴 속에는 총명수 감로수 원효샘 같은 샘들이 솟아나고 있다.
산행의 백미는 의상봉 정상에 올라 낙동강 줄기를 감싸안은 청량산 줄기가 치맛자락처럼 펼쳐져 있는 모습을 조망하는 것. 정상 남쪽의 축융봉(845m)에서 바라보는 청량산의 전경 또한 일품이다.
청량산 속에는 한때 30개의 사암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내청량사, 외청량사 두 곳이 남아있을 뿐이다. 응진전은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청량사의 암자로 663년에 세워진 청량산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나다.
외청량(응진전) 못지 않게 내청량(청량사)도 수려하다. 응진전에서 20분거리. 풍수지리학상 청량사는 길지중의 길지로 꼽힌다. 육육봉(12 봉우리)이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다. 청량사는 연꽃의 「수술」자리.
응진전과 함께 지어진 고찰 청량사에는 진귀한 보물 2개가 남아있다. 공민왕의 친필로 쓴 현판 "유리보전"과지불.유리보전은 약사여래불을 모신 곳이라는 뜻이다. 지불은 종이로 만든 부처. 국내에서는 유일하다. 지금은 금칠을 했다.
청량사 바로 뒤에는 청량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보살봉이 있다. 원래 이름은 탁필봉이지만 주세붕선생이 지형을 보고 봉우리 이름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청량산의 아름다움은 퇴계가 자신의 시조에서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는 나와 백구뿐"이라고 읊은 데에서도 잘 나타난다. 퇴계는 어릴 때부터 청량산에서 글을 읽고 사색을 즐겼으며 말년에도 도산서당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이 산을 찾았다.
청량산 주변에는 신라시대 최치원의 유적지로 알려진 고운대와 명필 김생이 서도를 닦던 김생굴, 김생굴 외에도 암릉을 따라 금강굴, 원효굴, 의상굴, 반야굴, 방장굴, 고운굴, 감생굴 등이 들어서 있다.
이밖에 공민왕이 피란와서 쌓았다는 청량산성, 최치원과 김생이 바둑두던 난가대 등도 더듬어볼 만한 발자취다
입석에서 등산로를 따라 30분 정도. 뒤로는 거대한 금탑봉이 병풍처럼 둘러서있고 아래는 아득한 낭떠러지. 바위가 마치 9층으로 이뤄진 금탑모양을 하고 있다. 층마다 소나무들이 테를 두른 듯 암벽에 뿌리를 내렸다. 절벽 아래로 붉게 타는 단풍이 장관이다.
12봉과 12대
12봉 : 장인봉, 외장인봉, 선학봉, 자란봉,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 경일봉, 금탑봉,축륙봉, 등 12봉우리
12대 : 어풍대, 밀성대, 풍형대, 학소대, 금가대, 원효대, 반야대, 만월대, 자비대, 청풍대, 송풍대, 의상대 등 12개의 대(臺)
# 한국의 산하 인기 명산(30위)
12봉 12대가 있는 청량산은 이와 어우러진 가을 단풍산행으로 인기가 있으며 여름산행지로도 인기가 있다. 단풍이 절정인 10월, 7월의 초여름 순으로 많이 찾는다.
#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산세는 크지 않으나 연이어 솟는 바위 봉우리와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꼽힐 만큼 산세가 수려하고, 도립공원으로 지정(1982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리보전, 신라시대의외청량사, 최치원의 유적지인 고운대와 독서당,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은신한 오마대(五馬臺)와 청량산성, 김생이 글씨를 공부하던 김생굴, 퇴계 이황이 수도하며 성리학을 집대성한 오산당(청량정사) 등 역사적 유적지로 유명하다.
# 블랙야크 선정 100대 명산
# 청량사'淸凉寺 건립시기: 고대/삼국 663년(문무왕 연간) 위치: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부곡리 247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이다. 창건에 관한 기록은 없으나 (삼국사기)에 최치원(崔致遠)이 이곳에서 즐겨 놀았다고 하였으므로 신라 말기 이전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구전에 의하면 이 절이 해인사보다 먼저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절은 오랫동안 폐사가 되었다가 1811년(순조 11)회은(晦隱)이 중건할 때 3칸의 법당과 요사채를 지었으며, 최근에 주지 경암(景庵)이 요사채를 중건하고 법당을 중수하였다.
일반적인 산지 가람에서의 유형을 따라 석축을 높이 쌓고 그 위에 가람을 이룩하였다. 사지 근처에는 다양한 신라시대 석물(石物)들이 산재하는데, 그 중에는 불상·불탑·석등(石燈)이 잘 갖추어져 있다. 이들은 월류봉(月留峰) 아래 남북 일직선상에 놓여 있으며, 모두가 건립 당시의 조각예술을 대변하는 빼어난 작품이다. 이 중 보물 제265호로 지정되어 있는 석조석가여래좌상은 경주석굴암 불상의 유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데, 석굴암이 경도(京都)의 장인(匠人)에 의하여 조성된 8세기를 대표하는 걸작이라면, 이 불상은 지방의 장인에 의하여 이룩된 9세기를 대표하는 수작이다. 또한, 보물 제266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형식을 보이고 있다. 조각수법이 경쾌하고 우아한 작품이며, 1958년 수리할 때 3층 옥신에 사리공(舍利孔)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보물 제253호로 지정된 석등은 9세기 석등을 대표할 만한 수작이다.
돈보다 소중한것
험준한 산을 넘는 남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산을 넘으면서 힘이 들고 숨이 차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준비했던 거래를 성공시키고 큰돈을 벌어서 돌아오는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날씨가 점점 흐려지면서 나빠지기 시작하더니,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눈보라까지 몰아쳤습니다.
삽시간에 눈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 속에서
우왕좌왕하던 남자가 작은 동굴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거의하늘이 도운 행운이었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이미 눈보라 속에서 온몸이 흠뻑 젖어 그대로있으면 추위에 동사할 것이 뻔했습니다.
필사적인 노력으로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모은 남자는 불을붙이려고 노력했지만,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불쏘시개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품속에서 자신이 그동안 고생해서 모은 돈다발을꺼내 주저 없이 불쏘시개로 사용했습니다.
덕분에 따뜻한 모닥불을 만들 수 있었고,
무사히 아침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밤새 심하게 불었던 눈보라는 그쳤고,산에서 고립된 사람을 찾던 구조대는
모닥불의 연기를 보고 남자를 구조 할 수 있었습니다.
남자는 가지고 있던 돈을 불에 태웠지만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 생명과 미래를, 아주 싼 값에 살 수 있었으니
나에게 이보다 더 큰 이득은 없구나.'
사람들은 착각합니다.
인생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자신의 꿈으로 설정하고,돈을 얼마나 벌었느냐를 성공의 척도로 삼습니다.
또한,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여기듯,
물질 또한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살면서 어느 것 하나 내 것은 없습니다.
잠시 살아있는 동안 내게 주어진 것을 보관하고,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산행지도
#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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