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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역사문화 탐방 (16) 우번조사 설화 깃든 종석대와 우번대
    지리 박물관(역사,문화,) 2021. 11. 28. 15:01

    ‘석종 소리’ 들린다는 종석대에 서면 깨우침을 얻을까

     

     

     

    구름으로 휩싸인 노고단 정상,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어 오래 머물기 어렵다. 그 옛날 국태민안을 기원하며 남악제를 지내던 노고단 정상을 한 바퀴 돌아보고 다음 탐방지 종석대로 향한다. 노고단 사면의 남쪽 가장자리 마루금을 따라 방송기지국 방향으로 곧장 내려서서 방송기지국을 돌아 잠시 큰길을 따르다가 다시 좌측 능선으로 접어들어 코재로 향한다. 등로 중간의 조망바위에 올라, 종석대를 조망해보고 잠시 후 코재(무넹기)에 이른다. 코재는 사거리 갈림길이다. 남쪽 방향 하산 길은 화엄사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이고, 북쪽의 너른 길은 성삼재 가는 길이며, 직진은 종석대로 오르는 길이다.

     


    노고단에서 내려오며 바라본 종석대.

     


    화엄사 쪽에서 이 고개에 올라설 때 코가 땅에 닿을 듯 가파르다고 하여 이곳을 ‘코재’라고 부르는데, 한편으로 물을 넘긴다는 의미로 ‘무넹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래 노고단 사면의 물은 노고단골을 거쳐 남원 산내면의 심원계곡으로 흘러드는데, 일부 물길을 구례 쪽으로 돌려 가뭄을 해소한데서 무넹기가 유래됐다. 1930년 노고단 자락 해발 1300m의 고갯마루에 수로를 만들어 물길을 반대방향으로 돌렸는데, 지금도 노고단 물의 일부가 화엄사계곡을 거쳐 구례 마산면으로 흘러들고 있다.

    탐방팀은 무넹기에서 잠시 화엄사 계곡을 조망하다가 종석대로 향한다. 종석대 오르는 길로 잠시 접어들면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난다. 좌측으로 내려서는 길은 차일봉 능선 길이고 우측 오름길은 종석대 가는 길이다. 차일봉 능선은 종석대에서 비롯돼 화엄사 계곡과 천은사 계곡을 좌우로 가르며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 입구까지 뻗어 있는 능선이다. 노고단을 출발한 지 1시간 만에 종석대에 도착한다.

    ▲도를 깨치면 들려오는 종석대 석종소리

    돌종이란 의미를 지닌 종석대(鍾石臺·1361m), 정상 암봉이 종 모양을 닮아서라거나 바람이 바위에 부딪칠 때 돌종 소리가 나서 그렇게 부른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우번조사가 도를 통하던 그 순간, 이곳에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석종소리가 들렸다고 하여 이곳을 종석대라 부른다. 명칭도 여러 개다. 우번조사가 도를 깨쳤던 곳이라 하여 ‘우번대’라고도 하고 관음보살이 현신했던 곳이라 하여 ‘관음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멀리서 보면 능선과 양쪽 봉우리 형상이 마치 차일을 친 것 같다고 하여 ‘차일봉’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지도상 공식적인 차일봉은 화엄사 쪽으로 뻗은 차일봉 능선상의 중간 봉우리를 지칭하고 있다.

     


    종석대 능선.

     


    조망봉인 종석대는 ‘지리 10대’ 중 하나로 사방 조망이 좋은 곳이다. 사방을 찬찬히 둘러본다. 지나온 노고단을 비롯해 남으로 뻗은 월령봉 능선이 조망되고, 발아래는 차일봉 능선이 구례벌판을 향해 뻗어 있다. 서쪽으로는 시암재를 지나 간미봉, 지초봉으로 이어지는 간미봉 능선, 그리고 북쪽으로는 만복대를 지나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이 조망된다.

    탐방팀은 종석대의 광활한 조망을 눈에 담고 찬바람을 피해 암봉 자락에서 잠시 쉬어간다. 우번조사가 여기서 관음보살을 보았을까?

    아니면 마음속의 환상을 관음보살 현신으로 착각했을까? 잠시 상념에 잠겼다가 점차 거세지는 강풍에 보온채비를 하고 서둘러 종석대 능선길을 걷는다. 이 능선길은 실제 백두대간 마루금이자 지리산 태극종주길이다. 능선길을 10여분 이어가면 작은 돌무더기가 나타난다. 이곳이 성삼재, 시암재 갈림길 가기 전의 밋밋한 봉우리로 좌측으로 우번암 가는 길이 열려있다. 탐방팀은 잠시 갈림길에서 구례 벌판과 간미봉 능선을 조망해보고 좌측으로 천은사골을 향해 뻗어내린 지능선으로 진입한다.

    종석대 능선에서 15분가량 내려서면 삼거리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좌측으로 100여m 거리에 우번암이 있다. 직진 내림 길은 우번대 옛길로 상선암 쪽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탐방팀은 좌측으로 내려서서 채미밭 앞을 지나 우번암으로 들어선다. 신라 고승 우번조사가 도를 깨쳤던 토굴이 있던 곳이다. 지금은 허름한 우번암이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오랜 세월 우번암을 지키고 계신 법종스님은 출타 중이고 경내에는 고요히 정적만 감돌고 있다.

     


    우번조사가 득도했다는 우번암.

     


    ▲관음보살의 깨우침

    신라 승려, 우번은 지리산에 입산해 10년 수도를 결심하고 천은사 골짝의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한 상선암에 자리를 잡았다. 용맹정진 9년째 수도를 하던 어느 봄날,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요염한 자태로 그를 유혹했고, 여인의 미모에 홀린 우번은 수도승이란 자신의 처지를 잊고 그녀를 따라나선다. 그 여인은 기화요초 만발한 아름다운 숲을 지나 자꾸만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우번은 여인을 놓칠세라 정신없이 산 정상까지 따라 올랐는데, 유혹하던 여인은 간데없고 관음보살이 자신을 굽어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우번은 관음보살이 자신을 시험한 것임을 알아채고, 그 자리에 엎드려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니 관음보살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바위만 우뚝 서 있었다.

    우번은 자신의 수도가 크게 부족함을 깨닫고 산자락에 토굴을 파고 수도 정진해 도승이 됐는데, 우번조사가 도를 통하던 순간, 석종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그래서 우번조사가 득도한 토굴을 우번대, 석종소리가 들려온 암봉을 종석대, 관음보살이 현신해 서 있던 자리를 관음대라 부르게 됐다.

    지금은 종석대를 우번대, 관음대라 칭하기도 하고 종석대 자락 토굴이 있던 우번암 일대를 ‘우번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번조사 이후로도 많은 고승들이 우번대에 머물며 수도정진했는데, 깨우침을 얻은 순간마다 종석대에서 울려 퍼지는 돌종 소리를 들었다고 전한다.

    우번대(牛飜臺)에는 우번조사의 전설과 함께 또 다른 전설도 전해온다. 우번(牛飜)이란 의미처럼 ‘소가 몸을 바꾼 자리’라는 뜻도 있다. 옛날 문수보살과 함께 길을 가던 길상동자가 남의 밭에서 조 세알을 따 먹은 후, 갑자기 소로 변했다. 소로 변한 길상동자는 그 빚을 갚기 위해 3년 동안 밭주인에게 일을 해주고 다시 동자로 화신했다는 전설이다. 혹 길상동자가 세월을 건너뛰어 우번으로 환생했을까.


    우번암 별채.

     


    ▲우번조사 득도한 우번대

    우번조사 전설이 깃든 우번대를 돌아본다. 오목하고 양지바른 곳에 위치해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서면 별채도 있다. 더 운치가 느껴지는 별채를 둘러보고 우번암을 나선다. 가져간 미역과 김은 선방 문고리에 걸어놓고, 삼거리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우번대 옛길을 따라 상선암을 향해 하산한다. 길은 한동안 능선을 이어가다가 계곡가로 내려선다. 등로는 계곡 옆으로 휘감아 돌고 잠시 희미한 길을 이어가면 갈림길이 있는 작은 목교에 다다른다. 우번암에서 50분 거리다. 목교를 건너기 전 우측 오름길이 상선암 가는 길이다. 탐방팀은 마지막 목적지 상선암으로 향한다. 목교에서 15분가량 호젓한 숲길을 걸어올라 상선암에 도착한다.


    상선암.

     


    우번조사가 9년간 머무르며 수도 정진했던 상선암, 바람마저 쉬어가는 곳이다. 경내에는 온기가 가득하다. 따사로운 오후 햇살이 내려쬐이고 아궁이마다 군불이 발갛게 타오르고 있다. 선방에서는 산사를 찾은 사람들의 도란도란 말소리도 들려오고 우람하게 버티고 선 노거수 느티나무는 시골마을 동구 밖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모처럼 찾아온 고향 같은 왠지 낯설지 않은 익숙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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