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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역사문화 탐방 (18) 지리산 통신골과 천왕봉
    지리 박물관(역사,문화,) 2021. 12. 26. 16:21

    천년 세월 민초 애환 굽어살핀 하늘 아래 첫 봉우리
    통신골 정상에서 바라본 풍광 환상적
    일출봉·시루봉·삼신봉·촛대봉 한눈에

     

     

    무거운 다리와 가쁜 숨을 안고 성지를 순례하듯 한발 한발 중력에 맞서 고도를 높여 간다. 해발고도와 실제 거리가 별 차이가 없는 가파른 계곡, 통신골 상부다.

    남한 내륙의 최고봉 천왕봉 속살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감히 범접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해발 1915m 상봉을 향해 곧추선 계곡, 천왕봉까지 직통하는 유일한 계곡, 그래서 통신(通神)골. 천신과 통하는 골이라 칭해볼까. 하늘을 향해 사다리를 걸어 오르듯 그렇게 통신골을 올랐다.

    지리산에는 비경을 간직한 명품 골짝들이 수없이 많지만 통신골은 다른 골과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수량이 많거나 큰 골은 아니지만 지리산 상봉인 천왕봉에 직접 연결되는 유일한 천왕봉의 골로 상징적 의미가 큰 곳이다. 탐방팀은 가파른 통신골을 통해 상봉을 오르며, 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는 천왕봉 순례에 나선다.


    통신골 조망대에 오르면 일출봉과 촛대봉, 시루봉, 삼신봉, 왕시루봉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법천골의 비경 법천폭포

    이른 아침, 탐방팀은 중산리 주차장을 출발해 법천교를 건너 칼바위로 향한다. 등로 옆 중산리골은 언제나 변함없이 청정옥수를 토해내고 있고 천왕봉의 수문장 칼바위는 오늘도 역시 늠름한 자태로 산문을 든든히 지키고 섰다. 칼바위를 지나고 법계사 갈림길을 통과해 좌측의 법천골로 접어든다.

    봄을 시샘하듯 갑자기 주말 기온이 뚝 떨어졌다. 갈림길에서 10여분 진행하면 출렁다리가 있고 우측에서 지계곡이 흘러든다. 개선문 자락에서 발원돼 법천골로 흘러드는 깊은골이다. 깊은골은 천왕남릉과 중산리 천왕봉 주등로 능선 사이 계곡으로, 비교적 짧지만 호젓한 비경을 숨긴 계곡이다.

    깊은골과 법천골의 합수부 부근에 또 하나의 비경이 있다. 합수부에서 장터목 방향 50여m 거리에 있는 큰 폭포, 법천골을 대표하는 명물인 법천폭포이다. 법천골도 이 폭포의 이름을 따서 법천골로 불리고 있다. 잠시 내려서서 폭포를 탐방하고 쉬어간다. 거대한 암반을 타고 흰 포말을 만들며 떨어지는 폭포수, 언제 봐도 시원한 경관이다.


    탐방팀원들이 얼어붙은 통신골의 빙폭을 오르고 있다.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폭포 아래 시퍼렇고 큼직한 소가 형성돼 일대 비경을 연출했는데 큰 물난리를 여러 차례 겪으며 큰 바위가 구르고 막혀 이제 그 아름다운 소를 볼 수 없다.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자연의 횡포를 미력한 인간이 어찌할 수 있겠는가.

    순환의 법칙에 따라 파괴되고 재생돼 가는 것이다. 지리산도 큰 물난리가 날 때마다 지형과 계곡의 형태가 조금씩 바뀌어간다. 폭포와 소가 사라지고 또 다른 물길이 생겨나며 오랜 세월에 걸쳐 또 다른 비경을 만들어 갈 것이다.

    법천폭포를 출발해 오르길 50여분, 홈바위를 지난다. 홈바위를 지나 사태지역을 통과해 조금 오르면 등로 우측, 20여m 수직암반에 형성된 작은 폭포가 나타난다. 유암폭포다. 겨울빙폭이 멋진 곳인데 오늘은 수량이 적어 볼품이 덜하다. 폭포 앞에 잠시 쉬며 땀을 식히고 본격적인 통신골 탐방을 시작한다.

    유암폭포 바로 위에서 법천골과 통신골이 분기된다. 법천골은 장터목으로 향하고 통신골은 천왕봉으로 향한다. 탐방팀은 유암폭포 위로 등로를 조금 이어가다가 우측 통신골로 접어든다. 거칠고 가파른 계곡, 최소 3시간은 두 발, 네 발로 기듯 더듬어 올라야 끝이 나는 계곡이다.


    우골 초입.

     


    ▲얼어붙은 통신골의 절대 경관

    통신골 초입에서 30여분 오르면 좌측 사면으로 큰 통암반 지대가 나타난다. 이곳이 작은 통신골 들머리다. 바위사면 위로 작은 통신골이 시작된다. 작은 통신골의 끝은 통천문 아래 제석봉 안부로 이어진다. 탐방팀은 작은 통신골 들머리를 확인하고 서늘한 기운을 즐기며 통신골 깊숙이 진입한다.

    봄을 시샘하듯 갑자기 몰아친 꽃샘추위는 통신골을 얼리고 고드름을 만들었다. 봄과 겨울이 혼재하는 통신골이다. 엷게 얼은 빙폭과 고드름 위로 봄기운을 등에 업은 벽계수가 타고 내린다. 격이 다른 통신골 풍광, 예사롭지 않은 다양한 경관을 차례로 감상하며 천천히 진행한다. 통신골 진입 1시간 30여분, 홈통암반이 나타나고 좌·우골 합수부에 도착한다. 직진인 좌골은 통천문으로 이어지고 우골은 천왕봉으로 향한다. 우골 초입의 소폭, 얼음조각이 흘러내리는 듯하다. 홈통암반에 빠질세라 조심스레 통과해 우측 방향 우골 초입으로 올라선다. 초입 응달에는 겨우내 형성된 청빙이 아직 일부 남아 있는 모습이다.

    우골 초입 암반에서 한숨 돌리고 쉬어간다. 헤아릴 수 없는 비경을 간직한 지리산, 골짝마다 능선마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지리산, 변화무쌍하고 천차만별의 모습에 절로 경외심이 드는 민족의 성산이다. 합수부를 떠나 우골을 오른다. 경사는 오를수록 가팔라진다. 흑석과 적석, 거대한 통암반과 용암이 흐르다가 굳은 듯한 바위 요철, 지리산 다른 계곡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지질이다. 아울러 꽃샘추위로 빙판, 빙폭이 형성되고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있어 산행 묘미를 더하는 통신골이다. 하지만 통신골의 절대경관은 천왕봉의 등뼈, 골격을 형성하고 있는 심층 암반 모습이다. 중력에 맞서 가파른 암반을 타며 노출된 상봉의 신비로운 속살을 느껴보는 것이 통신골의 가장 큰 매력이다.

    통신골에는 조망 포인트가 많다. 오를수록 조망각도 넓어진다. 우골 중간의 조망대에서 잠시 여유를 갖고 쉬어간다. 뒤돌아보면 일출봉과 일출봉 능선이 코앞이고, 그 뒤로 남부능선, 광양 백운산까지 조망된다. 통신골이라서 더욱 장쾌한 조망이다. 피로를 한순간에 씻어주는 후련한 조망을 뒤로하고 다시 아쉬운 발길을 돌려 상부로 향한다. 곳곳에 형성된 빙판이 복병이다. 빙판을 피해 돌부리를 찾아 밟으며 네 발로 기듯이 조심조심 오른다. 우골 초입에서 1시간 정도 오르면 다시 골이 Y자 형태로 분기된다. 탐방팀은 천왕봉 직등 길인 우골로 진행한다. 가파른 경사에 에너지 소비가 심한 듯 추운 날씨에도 등과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고 갈증이 난다. 살얼음이 흘러내리는 통신골 심처의 소폭, 식수를 확보하고 물맛을 보니 차고 상큼하다. 어떤 음료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청량한 물맛이 목젖 깊숙이 느껴진다.


    천왕봉에서 바라본 주능선.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 지리산

    다시 힘을 내어 한발 한발 오른다. 저만치 상봉이 있다. 통신골 최상부를 오르며 뒤돌아본 조망은 환상적이다. 올라온 골과 건너편의 일출봉, 그 뒤로 촛대봉과 시루봉, 삼신봉, 왕시루봉 등 천왕봉 남서방향의 모든 봉우리와 능선이 조망된다. 더 이상 높은 곳이 없다. 잠시 후 계곡의 날머리, 지리산 상봉, 천왕봉에 올라선다. 유암폭포 위에서 시작해 천왕봉까지 3시간 20여분 소요됐다. 바위, 암반과 씨름하며 오른 통신골, 올라온 골을 굽어보고 사방을 조망해 본다. 언제나 장쾌한 천왕봉 조망이지만 오늘은 느낌이 다르다. 마치 지리산 성지를 순례한 느낌이라고 할까. 하늘로 향해 곧추서서 천년을 이어온 성모(聖母)의 천왕봉과 직통하는 골, 천신(天神)과 통하는 성지 같은 통신골이었다. 오늘따라 정상은 매우 차다. 눈발도 조금씩 날린다, 엄마의 산으로 불리며 모든 것을 품어주는 지리산, 그리고 민초들의 애환을 널리 굽어보고 있는 하늘 아래 첫 봉우리 천왕봉이다. 남명 조식 선생은 ‘만고의 지리산은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다’고 했다. 꿋꿋한 민족의 기상이 서려 있는 천왕봉, ‘한국인의 기상이 여기서 발원되다’라는 글귀의 정상석을 품에 안아보고 하산한다.

    봄이 왔지만 아직 겨울을 완전히 보내지 못한 통신골. 겨울의 잔재, 겨우내 두껍게 얼었던 얼음을 녹이고, 조각내어 흘려보내는 모습이 오히려 더 멋진 장관이었다. 천왕봉의 골짜기, 통신골이 얼음조각을 완전히 털어내는 날, 그날이 천왕봉에 완전한 봄이 도래한 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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