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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복대
    지리 산행기 2022. 9. 19. 09:41

    # 언제: 2022년 09월 17일 토요일

    # 산행지: 도장골, 만복대, 서북능선, 조망산행 지리의 품속으로...ㅎㅎㅎ

    # 산행거리: 16.18km  09시간19분

    # 산행루트: 도장골(불당골) - 만복대 - 서북능선 - 새동치샘 - 불바래기골 - 덕동마을

     

    만복대(萬福臺) 해발 1438m

    남원시와 구례군 사이에 자리한 만복대(萬福臺)! - 지명에서 느껴지듯이 일만가지의 복, 즉 많은 행운과 좋은 기운이 충만하여 두루두루 평온한 삶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리 남부의 상징적인 봉우리로 서북능선의 맏형격이자 대표적인 조망터이기도 하며 옛사람들이 산신령에게 제를 올리고 가족과 이웃, 나아가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소원한 신성스러운 대자연의 둔덕인 것이다.

     

     

     

     

    # 산행지도

     

    # 산행사진

    도장골

     

    묘봉암터 깨진 기왓장

     

    묘봉암터 석축

     

    묘봉암터  꽤 넓은 터가 양지바른 명당터로 보인다.

    묘봉암터와 관계가 있는지 모르지만 인월면 자래리(자연동)에는 생불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불당골 묘봉암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있어 인용해 본다.

     

    예부터 인월면 자래리에는 마을에서 나는 샘물을 먹고 사는 사람 중에 생불, 유현(儒賢), 효자가 난다고 전한다.

    이 마을에는 우물이 셋 있는데 마을 윗 샘에서는 생불이 나오고, 중간 샘물에서는 유현이 나고, 마을 앞에 있는 샘에서는 효자가 나온다는 이야기인데 아직 유현만 나오지 않고 효자와 생불은 나왔다고 한다.

     

    현재 마을의 상수도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불당골이란 곳에 편모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총각이 있었는데, 청년은 품팔이로 어머니는 불당골에 암자를 짓고 보살 노릇을 하며 살았다.

     

    청년은 이 마을 부잣집에서 일을 하였는데 하루는 주인이 착한 청년을 불러 소금과 품삯을 주면서 지리산 법술령재를 넘어 하동으로 소금을 사러 보냈다.

     

    청년이 소금을 사러 갈 때가 늦은 김장철이아 서리가 많이 내려 조석으로는 산길을 오르내리기가 곤란할 때였는데 하동에서 소금을 받아 돌아오는 길에 마천 땅벌장터의 외나무다리를 건너다 그만 발이 미끄러져 소금이 물에 빠져 버렸다.

     

    청년은 하동으로 돌아가 소금을 다시 사오던지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용서를 빌 수밖에 없었으나 본심이 착한 청년이라 죄책감에 빠져 산으로 돌아가 3년 동안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러다보니 사람의 꼴은 없고 목소리만 사람 같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실상사 세 암자 중 하나인 절 뒤에 와서 ‘아무개 중놈아! 속가에 내려가 계집질이 무엇이고 중놈이 사육이 무엇이냐’ 하며 고래고래 소리치자, 이 소리를 듣고 백장암 중들이 뒷산으로 올라가 보니 사람은 사람인데 말소리만 같을 뿐 도무지 짐승과 구별할 수 없는 사람이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있었다.

     

    중들이 의논을 하여 백장암으로 모시어 상좌를 모시고 1년을 지냈으나 말 한 마디 없이 양식만 축내고 지내니 미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미운 생각을 가진 중들은 두통과 복통을 앓다가 완쾌되는 일을 중들이 겪었다.

    그 뒤부터 모든 중들은 그전보다 더 극진히 모셨는데 어느 날 백장암의 중들을 모아 놓고는 ‘오늘 오시에 합천 해인사에 불이 날 것이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으니 모든 중들은 의아했다.

     

    잠시 후에 중들은

    ‘생불님의 신통력이 있지 않습니까. 신통력으로 화재를 진압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자 깔고 앉았던 짚방석을 절 샘에 가서 물에 적시어 동, 북쪽을 향해 던지고는 ‘애들아, 이제 불을 잡았다.’ 하지 않는가. 모든 중들이 의아하여 생불 모르게 해인사로 사람을 보내어 확인해 보니  ‘불이 오시(午時)에 났으나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꺼졌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자 백장암에서 찾아간 중들이 전후 사정을 이야기 하니 해인사 중들이 생불을 해인사로 모셨다하는데 그 뒤 소식은 전하지 않고 아들을 찾아 해인사로 갔다는 어머니도 소식이 없다고 한다.

     

    지은이 및 출처 : 김종호(남원시 인월면 자래리)   -퍼온글-

     

    용인신문에서 발췌된 글을 보면 불당골이나 절골은 절(寺刹)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불당은 부처님이 앉아있는 집이란 뜻이며 불전(佛殿), 불우(佛宇), 불각(佛閣) 등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본래는 부처님을 봉안한 대웅전이나 여타 전각(殿閣)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나 마을의 이름으로 사용된 경우는 절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절(寺) 에 비하여 암자(庵子)는 규모가 작은 경우가 많은데 부처님을 모신 법당과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채가 따로 있는 경우를 절이라고 하고, 법당과 요사채가 한 건물에 있는 경우에 암자라고 한다.

     

    따라서 각기 독립적인 건물을 가진 절이 암자에 비하여 규모가 큰 경우가 많으나 암자라고 하여도 독립적인 법당을 가진 경우가 없는 게 아니어서 반드시 구분하여 쓰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는 불교가 전래된 이래 국교로 성장하기까지 수 년 동안 정치 사회적으로 큰 역할을 하였고, 오랜 기간을 지나면서 전국 각지에 크고 작은 수많은 절들이 세워졌다.

     

    이런 절들이 세워진 곳에는 세월이 흘러도 예외 없이 절과 관련된 지명이 남게 된다.

     

    이중 가장 많은 것이 절골과 불당골인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절골과 불당골 가운데 현재까지 마을이 있는 경우는 많지 않고, 거의 골짜기(谷)의 이름으로 남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당시의 절들이 거의 산 속에 세워졌기 때문에 현재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과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절이 있는 곳을 불당골이나 절골로 부르는 경우도 없는 것 같다.

     

    용인의 대표적인 향토사학자인 이인영선생이 편찬한 용인의 지명 지지를 조사해 봤더니 불당골이 10곳, 절골이 16곳, 절터골이 7곳 등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밖에도 구절터, 절밑, 부처골, 미럭앞, 미력산 등 사찰과의 관련성이 있는 지명들이 조사되고 있는 데 마을의 소지명까지 더하면 훨씬 더 많은 불당골과 절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말한 불당골이 현재도 마을 이름으로 쓰이고 있는 곳은 기흥읍 공세리의 불당골, 이동면 서리의 불당골, 백암면 용천리의 불당골 등이 있다. 이 들 마을에는 모두 절터가 남아 있거나 인근에 석탑이 있는 등 사찰이 있던 확실한 흔적을 가지고 있다. (용인시민신문에서 인용)  - 퍼온글 - 

     

    표고버섯

    점심때 삼겹살과 함께...ㅎㅎㅎ

     

    만복대 샘

     

    만복대(萬福臺) 해발 1438m

    남원시와 구례군 사이에 자리한 만복대(萬福臺)! - 지명에서 느껴지듯이 일만가지의 복, 즉 많은 행운과 좋은 기운이 충만하여 두루두루 평온한 삶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리 남부의 상징적인 봉우리로 서북능선의 맏형격이자 대표적인 조망터이기도 하며 옛사람들이 산신령에게 제를 올리고 가족과 이웃, 나아가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소원한 신성스러운 대자연의 둔덕인 것이다.

     

    정령치

     

    마한의 전설이 서려 있는 정령치

    남쪽으로는 달궁 마을과 심원골 너머로 지리산 주능선이 장쾌하게 펼쳐져 있다. 상봉인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지리산 주능선의 북사면이 한눈에 조망된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푸른 운봉평야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시원한 조망을 선사하는 정령치, 이곳은 전북 남원 산내면과 주천면 사이의 고개, 지리산 서북능선 만복대와 고리봉 사이의 재이기도 한 이곳은 해발 1172m에 이르는 고원지대이다. 차량통행이 가능해 지리산 서북능선을 산행하는 산객들에게 들·날머리로 애용되고 있고 지리산 태극종주와 백두대간 길이 통과하는 길목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지형, 지세가 자연성곽 역할을 하고 있어 손쉽게 적을 방어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였으며 마한의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한의 왕이 달궁(전북 남원시 산내면)에 궁궐을 짓고 진한,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씨 성의 장수로 하여금 이 고갯마루를 지키게 했는데, 정령치란 지명도 거기서 유래됐다고 한다.

     

    정령치 습지

     

    정령치 습지와 야생화 그리고 잣나무 숲길

    습지 가는 길, 분위기 있는 산책로이다. 주변에는 여름 꽃이 활짝 피어 탐방팀을 반긴다. 초입부터 가을의 전령사 쑥부쟁이를 비롯해 술패랭이꽃, 어수리, 물봉선, 노랑물봉선, 원추리, 짚신나물 등이 만개하여 사열하듯 늘어섰고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뻐꾹나리도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 아닌데, 지리산에서 두 번째 대면이다. 몇 년 전 달궁 마을 안쪽 언양골에서 처음 대면했는데 언양좌골의 발원지인 정령치 습지 근처에서 발견되는 걸로 보니 언양골 주변에 많이 분포해 있는 것 같다. 뻐꾹나리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말이 ‘영원히 당신 것’이다. 뻐꾸기는 번식기가 되면 짝을 찾아 많이 울어대는데 그 무렵에 이 꽃이 활짝 피어 뻐꾹나리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있고, 흰색 꽃잎에 자주색 반점이 뻐꾸기 가슴 털 무늬를 닮아서 그렇다는 설도 있다.

    주차장에서 고리봉 방향으로 300여m 진행하면 이정표와 함께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 오름길은 고리봉 가는 길, 습지는 우측 길이다. 꽃길을 지나니 이제는 잣나무 숲길이 펼쳐진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오엽송 잣나무 솔 향이 솔솔 풍기니 발걸음도 가볍고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는다. 이곳은 원래 사탕무 밭으로 개간하였다고 한다. 1960년에 이 일대 165만㎡를 개간해 사탕무를 심었다가 실패하고 1973년 이후, 잣나무 2000여 그루를 심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고려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령치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보물 제1123호로 지정된 이 불상군은 12구의 불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지리산은 다양한 생물유전자원을 지닌 생태계의 보고이다. 483㎢의 광대한 유역에 난대림부터 한대림까지 해발고도 차이에 따른 다양한 식생대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가치가 높은 습지도 곳곳에 분포해 있다. 특히 지리산 습지는 대부분 해발 1000m 이상의 고지대에 있어 고산습지로서 독특한 생태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조사, 연구가치가 높아 관련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기도 하다.

    지리산의 주요 고산습지로는 널리 알려진 왕등재 습지 외에도 외곡습지, 덕평습지, 정령치 습지, 세석고원 습지 등 여러 곳에 다양한 형태로 분포되어 있는데 이번 탐방팀은 정령치 습지를 탐사하고 인근의 개령암지 마애불상군도 돌아보기로 한다.

    정령치 습지와 개령암지 마애불상군은 지리산 서북능선 고리봉 남사면 자락에 있다. 이곳은 해발 1200m에 이르는 고산지대이지만 정령치까지 차량 접근이 가능해 체력부담 없이 산책로를 따라 편하게 탐방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정령치에서 정령치 습지까지 600여m 구간은 지난 5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선정한 ‘국립공원 걷기 좋은 숲길 50선’에 포함될 정도로 호젓하게 걷기 좋은 고산 산책로이다.

     

    새동치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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