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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2023년 10월 21일 토요일
# 산행지: 도장골, 청학연못, 촛대봉남능. 가을속으로 단풍찾아, 지리의 품속으로...ㅎㅎㅎ
# 산행거리: 13.00km 00시간00분
# 산행루트: 거림주차장 - 도장골 - 와룡폭포 - 촛대봉골 - 청학골(샘) - 청학연못 - 촛대봉남릉 - 거림주차장
도장골 - 도장골은 지리산의 인적 드문 비경 계곡 중 경관으로 보아 첫손 꼽을 만한 곳이다. 조금 과장하여 '지리산 최대의 폭포골인 한신골, 소와 담의 뱀사골, 그리고 원시적 경관을 자랑하는 칠선골의 특징을 한 데 합쳐둔 곳 같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도장골은 세석고원으로 오르는 길목인 거림에서 북쪽으로 갈라진 골짜기다. 빨치산 시절에 빨치산 지휘소와 후송병원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지리산 전설적인 여자 빨치산 '정순덕'이 남편을 찾아 최초로 입산한 곳도 이곳 도장골이다.
지리(도장골)
거림계곡은 지리산 10경중 네 번째인 철쭉으로 유명한 세석평전에서 시작되는 거림골을 본류로, 지리산 주능선상에 위치한 연하봉과 촛대봉에서 비롯되는 도장골, 세석평원에서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에 있는 한벗샘에서 발원한 자빠진 골 등의 지류가 모여 커다란 계곡을 이룬다. 계곡의 본류만도 60여리에 이르는 거림골은 철쭉이 꽃을 피우는 봄이면,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묻힐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 이곳에 가려면 산청군 시천면 덕산에서 중산리 방면으로 가다, 곡점마을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면 된다. 산꾼들은 마을 뒷산처럼 밋밋한 거림골 보다는 남부능선으로 오르는 자빠진골이나 촛대봉으로 오르는 도장골을 찾는다.
'자빠진 골' 혹은 '엎어진 뜰' 로 부르는 남부능선상의 계곡은 이름 그대로 산이 자빠진 듯, 엎어진듯 완만한 경사를 보여준다. 그러나 계곡의 수려함은 어느 골짜기 못지않다. 골짜기가 자빠지고 엎어지면서 엉겹결에 파인 듯 원시성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단지 아쉬움이라면 일반인들의 접근이 쉽지 않다는 점인데 계곡으로 가려면 거림마을 매표소를 지나 한동안 걸어야 하는 것은 물론, 지리산 등산로에도 나와 있지 않을 정도로 길이 감추어져 있으므로 경험자와 동행하는 것이 안전하다. 반면,도장골은 와룡폭포까지 등산로가 뚜렷해 찾기는 쉽다. 도장골은 거림마을 매표소를 지나 조그만 암자 뒤로 돌아 들어가면 있다. 계곡에 들어서면 처음 반기는 것이 밀금폭포다. 규모면에서 웅장할 뿐만 아니라, 거대한 물살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내려 꽂히는 모습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또 폭포 위의 용소 역시 실제 용이 살았을 것만 같을 정도로 넓고 깊으며 주변에는 수백 명쯤 앉을 수 있는 반석이 깔려 있어, 휴식처로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계곡 위쪽으로도 윗용소와 와룡폭포 등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는 곳이 있으나, 길이 험하므로 등산이 아닌 휴식차 왔다면 용소주변에서 넉넉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 윗용소로 올라가면 전설적인 빨치산으로 불리는 이현상의 남부군 지휘소와 후생병원의 흔적을 볼 수 있기도 하다. 그만큼 도장골이 은밀하고 깊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물이기라도 하듯이, 늦가을 낙엽이 모두 떨어지고 나면 잡목들 사이로 토굴식 집과 돌담의 흔적이 빠끔히 보인다.도장골
지리산 곳곳에 도장골이 있다.
대표적으로 와룡폭포가 있는 거림계곡 오른쪽에 있고,
그외에도 삼장면 유평리,
삼장면 홍계리,
구례 토지면 내동리 당치골 지류
산동면 묘봉치 아래
만복대 아래
적량면 삼화실고개 부근에도 있다.
그유래에 설명이 있어서 옮겨봅니다
도장골은 ‘도장’과 ‘골’로 분석된다. ‘도장’은 ‘안방[규중(閨中)]’의 중세국어이다. ‘골’은 고구려어 ‘忽’(홀·골)과 신라어 ‘’에서 기원한 것으로, ‘골짜기’나 ‘마을’을 뜻한다. 따라서 ‘도장골’은 ‘안방처럼 아늑한 골짜기나 마을’로 해석된다. 골짜기나 마을이 산줄기로 둘러싸여 안방처럼 아늑할 때 붙는 이름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09.05.사진
이영회 부대아지트 - 옛 철모이정표도 있었는데
남부군 부사령관이었던 '이영회' 부대가 이곳을 중심으로 공비활동을 했다는 내용이며 최후의 빨치산 '정순덕'이 남편을 찾아 입산하여 공비활동을 했던 곳이라 한다. 이영회는 1951년 5월 인민유격대가 남부군으로 재편될 때 부사령관을 맡은 인물로서 이영회가 직접 지휘한 부대는 여순사건 당시에 입산했던 구빨치산을 주축으로 산청군인민유격대, 진양군인민유격대를 통합하여 재편성한 빨치산부대이다. 이들은 거창이나 합천까지 활동범위를 넓히면서 가회지서, 대병지서 등에 대한 야간 기습공격을 하기도 하였다. 돌담을 쌓은 초소의 흔적이며, 그 위에 은둔지의 돌 흔적들은 우리 역사의 쓰라린 역사이기도 하다.
와룡폭포
촛대봉골
청학굴(샘)
청학연못
세석은 촛대봉과 영신봉 사이에 있다. 두 봉우리 모두 1600m를 넘는 고도이다. 촛대봉에서 밑으로 약간 횡선으로 내려오면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고, 그 바위 밑에 연못이 있다. 지리산은 고지대에서 물이 나온다는 특징이 있는 산이다. 이 바위를 보통 만경대라고 부른다. 지리산의 서남쪽 방면 경치를 감상하기에 좋은 위치이다. 그 바위 밑의 연못을 근자에 청학연(靑鶴淵)이라고 이름 붙여서 부르고 있다. 이 연못은 그 주변에 석축을 1m50㎝ 높이로 쌓아서 물을 가두어 놓았다. 석축이 있으니까 연못 넓이가 제법 된다. 가로가 60~70m, 세로가 30m쯤 될까. 원래 바위 밑에서 샘물이 용출하고, 이 샘물을 가두기 위해 인공으로 석축을 쌓아 제법 물이 고인 연못이 된 것이다. 연못 수위는 1~2m쯤 되게 보이지만 그 밑으로는 진흙과 뻘이 켜켜이 쌓여 있다. 민병태 이야기로는 연못의 뻘을 파내서 측정해보니 1000년 이상 으로 올라간다고 한다. 적어도 고려시대 이전, 가야시대부터 이 연못지는 특별하게 주목받았던 성소임을 추측하게 한다. 왜냐하면 고지대의 연못은 대단한 기도처가 된다. 말하자면 영발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백두산의 천지, 한라산의 백록담도 산꼭대기의 연못이자 저수지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고구려의 초창기 산성이었던 산동지역의 오녀산성도 정상 부근에 연못이 있다.
한민족은 산 정상 부근에 연못이 있는 지역을 종교적 성지로 여기는 전통이 2000년이 넘는다. 주역으로 이런 지형을 풀면 수화기제(水火旣濟)가 된다. 물은 위에 있고 아래에는 불이 있다. 머리는 시원하고 발바닥은 따뜻한 형국에도 비유된다. 산 밑에는 암반이니까 여기에는 불기운이 올라온다고 본다. 풍수적으로 보면 촛대봉은 꼭대기가 울툭불툭 솟은 바위들이다. 멀리서 보면 촛불로 보인다. 촛대봉의 불 기운을 식혀주는 물이 바로 이 청학연이라고 근래에 이름 붙은 연못인 것이다. 유사시에는 사람이 먹는 식수로도 사용하고 농사짓는 물로 사용할 수도 있다. 기도를 할 때는 기도발을 모아주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군사적·실용적·종교적 기능 3가지를 동시에 감당하는 것이 이 연못의 물이다. 우리 어머니들이 장독대에서 기도를 드릴 때 정한수를 떠 놓고 했는데, 산 위의 정한수가 바로 이 연못의 물이다. 바위 위나 밑에 물이 있어야 생각의 염파(念波)를 모아 주고 붙잡아 놓는 기능을 한다.
이 연못 위의 바위에 올라가니 ‘鶴洞壬(학동임)’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여기가 청학동이라는 뜻인가? 아마도 조선 후기에 새겨진 글자 같다. 1862년 진주민란이 발생했을 때에도 민란에 가담했다가 쫓기던 사람들이 이 세석에 들어와서 숨어 살았다. 그 팀들이 학동 연못 주위에도 거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진주민란 팀들이 새겼던 글씨일까? ‘壬’은 오행으로 보면 물이라는 뜻도 있다. 이 연못이 학동의 ‘물’이라는 의미로 새겼을까? 청학이 먹는 물 말이다. 아니면 청학동 임좌(壬坐)라는 뜻일까. ‘壬坐’는 풍수에서 따지는 방향이다. 정남향에서 약간 동쪽으로 기운 방향을 가리킨다.시루(장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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