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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은사골, 종석대, 우번대
    지리 산행기 2024. 1. 20. 09:27

    # 언제: 2024년 01월 13일 토요일

    # 산행지: 천은사골, 종석대, 우번대, 종석대 돌종 소리 찾아 지리의 품속으로...ㅎㅎㅎ

    # 산행거리: 13.53km   06시간 12분

    # 산행루트: 천은사주차장 - 천은사 - 천은사골 - 상선암 - 토굴 - 우번대 - 종석대

                        차일봉능선 - 차일봉 - 법성봉재 - 삼일암 - 천은사주차장

     

    천은사,泉隱寺(감로사,甘露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이다. 화엄사·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의 하나로서, 828년(흥덕왕 3) 인도 승려 덕운(德雲)이 창건하였으며, 앞뜰에 있는 샘물을 마시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하여 감로사(甘露寺)라 하였다.

     

    그 뒤 875년(헌강왕 1)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건하였고, 고려 충렬왕 때에는 남방제일선찰(南方第一禪刹)로 승격되었다가 임진왜란의 전화로 완전히 불타버렸으나, 1610년(광해군 2)에 혜정(惠淨)이 중창하였고, 1679년(숙종 5)에 단유(袒裕)가 중건하여 천은사라 하였다. 중건 당시 감로사의 샘가에는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났으므로 한 승려가 이를 잡아 죽였더니 그 뒤로부터는 샘이 솟아나지 않았고, 샘이 숨었다 해서 천은사로 개명하였다 한다.

     

    절 이름을 바꾼 뒤 이상하게도 이 사찰에는 원인 모를 화재가 자주 일어나서 절에 큰 걱정거리가 되었지만, 재화가 끊이지 않자 주민들은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 주는 뱀을 죽였기 때문이라며 두려워하였다. 그 때 조선 4대 명필의 한 사람인 이광사(李匡師)가 수체(水體)로 물 흐르듯 ‘智異山泉隱寺’라는 글씨를 써서 수기를 불어 넣은 현판을 일주문에 걸게 한 뒤로는 다시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새벽녘의 고요한 시간에 일주문에 귀를 기울이면 현판 글씨에서 신운(神韻)의 물소리가 연연히 들린다고 전하여 내려온다. 1774년(영조 50)에 혜암(惠庵)이 그 전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던 전각을 남원부사 이경륜(李敬倫) 등의 도움을 얻어 중창하였고, 1996년에는 천왕문·종각을 지어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들은 대부분이 1774년에 중건한 것으로, 보물 제2024호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팔상전(八相殿)·응진당(應眞堂)·칠성각·삼성전(三聖殿)·첨성각(瞻星閣)·감로전·불심원·회승당(會僧堂)·보제루(普濟樓)·방장선원(方丈禪院)·종무소·일주문·수홍문(垂虹門)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수홍문은 무지개가 드리워 내린 듯 계곡과 함께 아름다운 운치를 띤다. 극락보전 그외 문화재로는 보물 제924호 극락전아미타후불탱화․보물 제1340호 괘불탱(掛佛幀), 보물 제1546호 금동불감(金銅佛龕), 보물 제1888호 삼장보살도(三藏菩薩圖), 보물 제1889호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및 대세지보살좌상(大勢至菩薩坐像) 등이 있다.

     

    천은사골 나(남)무아비타불 각자바위

     

    상선암(上禪庵)(해발약780m)

    석대 서쪽 아래 해발 780m에 위치하고 있다.
    수월스님이 이곳에 조실로 있을때 우번암에서 세번째 방광을 했다고 한다.
    상선암의 소재지도 광의면 방광리에 있다. 옷에서도 빛이 나고, 빛도 방출한다는 뜻이니 수월스님의 영향이

    지명에도 영향을 준듯하다.

    접근하는 길은
    성삼재 방향으로 861번 지방도를 오르다가 천은사골 횡단지점에서 종석대 방향으로 진입하면 된다.

     

    "불이야!"
    일체중생이 잠든 한밤중의 지리산 천은사. 느닷없는 외침과 함께 종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놀란 천은사의 대중들은 불이 난 곳으로 달려갔다. 보광전에서 뿜어 나오고 있었다.

    "불길은 스님의 몸에서 뿜어 나온 빛이요."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사람의 몸에서 어떻게 이처럼 밝은 빛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인가. 그는 얼마 전에 절에 들어와서 아침저녁으로 나무만 하던 땔나무꾼이었다. 수월 스님이었다. 수월 스님이 방광(수행자의 몸이나 성물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스승 경허 선사와 함께 있던 천장암에서 첫 방광을 했을 때도 사람들은 그를 한낱 땔나무꾼으로만 여겼다. 천장암에서의 방광 이후 깨달음을 얻은 수월 스님은 금강산에서 보림(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법)을 한 후 지리산으로 행각을 했고 땔나무꾼 모습을 하고 천은사로 들어갔다.

    천은사에 와서 수월은 자신을 감춘 채 스님 행세를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산에 들어가 땔나무를 해 나를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 방광으로 그의 본디 모습이 드러나게 되자 천은사 대중들은 수월 스님을 상선암 조실로 모셨다.

    수월 스님은 하안거가 끝나자 종석대 아래 우번대로 가서 수행했고, 그곳에서 또다시 방광을 하게 된다. 수행이 높은 고승들이 방광을 했다는 이야기는 더러 전해지지만 수월 스님처럼 한 사람이 세 번을 방광한 것은 거의 드물 정도로 경이로운 일이다. 이때가 수월 스님의 나이 마흔둘이 되던 1896년이었다.

     

    상선암과 수월스님

    선암은 지리산의 서쪽 종석대 아래 해발 780미터 고지에 있다. 천은사의 산내암자로 나옹 스님이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의 건물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 세운 것이다. 상선암은 그 옛날 우번조사뿐만 아니라 경허, 수월, 진응, 용성, 용하, 호음 등 수많은 선승들이 수행하던 곳이었다. 지금은 진명 스님과 다른 한 분의 스님이 있다. 수월 스님이 조실로 있을 때 입승(절에서 기강을 맡은 승려)으로 있었던 용성 스님 당시(1896년)에만 해도 대중이 서른 명쯤 되었다고 하니 지금과는 달리 그 규모가 상당했던 모양이다.

    뛰어난 수행력과 방광불사로 세상을 뒤흔든 수월 스님은 마흔둘이 되던 1896년에 지리산 천은사와 상선암, 그리고 우번대에서 봄, 여름, 가을 한철을 보냈다. 수월 스님은 염불을 한번 듣고 암기 한 뒤 염송(念頌)에 몰두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문자를 몰라 경전을 읽거나 쓰지는 못했지만 어떤 물음에도 막힘이 없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으나 수월 스님은 천수삼매를 얻은 후 평생 잠을 자지 않고 정진한 도인으로 알려졌다.

    수월 스님은 젊어서 머슴살이를 하다가 1884년에 충남 서산군 천장암으로 출가하여 한국 근현대 불교를 개창한 경허(1846~1912) 스님의 제자가 됐다. 경허 스님의 제자로는 '삼월(三月)'이라 불리는 수월(1855~1928), 혜월(1862~1937), 만공(1871~1946) 스님이 있었다. 그의 세 제자 또한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선승들이다. 경허는 '만공은 복이 많아 대중을 많이 거느릴 테고, 정진력은 수월을 능가할 자가 없고, 지혜는 혜월을 당할 자가 없다'고 했다. 수월 스님은 금강산에서도, 지리산에서도, 두만강을 건너 생을 마친 간도에서도, 일하는 수행자로 일생을 살았다.

     

    상선암 토굴

     

    상선암 각자

    당 오른편에 자리잡은 큰바위에 무수히 세겨진 석각 아래로 석간수를 받아두는 우물이 있다.

     

    고종14년(1877년)에 남원 부사를 지낸 이용준(李容準),

    정와(靖窩) 박해창(朴海昌1876∼1933년)은 몽심재(고려시대 문인인 충현공 박문수의 시(隔洞柳眼元亮夢 登山薇吐伯夷心)에서 몽夢자와 심心자를 차자借字하여 지은 것이라고 한다)의 3대 주인이며 학문에 자질이 있는 선비들에게 주는 직책인 비서감랑 홍문관 시강(秘書監 郞 弘文館 侍講) 벼슬을 지내 호음실에서는 보통 비랑공이라고 부른다. 박해창이 홍문관에 근무할 때 같이 동문 급제하여 근무한 동료가 하나 있었다. 

    경상도 진주의 용암 사람 해주 정씨 정홍석(鄭鴻錫)이었다. 

     

    조정에서는 그들을 ‘박 한림(翰林)’ ‘정 한림’으로 불렸는데, 영호남을 배경으로 하고 있던 두 사람은 지방색 차이로 인해 자주 다투었다.

     

    우번대(우번암,牛飜庵) -종석대 아래 양지에 자리잡은 명당터 우번암

    신라 승, 우번은 지리산에 입산, 상선암에서 10년 수도를 결심하고 9년째 수도를 하던 어느 봄날, 아름다운 미녀가 나타나 그를 유혹했다. 여인에 홀린 우번은 그녀를 따라 나선다. 그 여인은 기화요초 만발한 아름다운 숲을 지나 산 정상으로 오른다. 우번도 여인을 놓칠세라 정신없이 차일봉 정상까지 따라 올랐는데, 여인은 간데없고 관음보살이 굽어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우번, 관음보살이 시험한 것을 알고 그 자리에 엎드려 참회하니 관음보살은 간데없고 바위만 우뚝 서 있다. 우번은 수도가 크게 부족함을 깨닫고 차일봉 자락에 토굴을 파고 수도정진하여 도승이 되었는데, 우번대사가 도 통하던 순간, 석종소리가 들여왔다고 한다.

     

    우번대(牛飜臺)는 우번조사의 전설과 함께 '소가 몸을 바꾼자리'라는 뜻도 있다. 신라때 문수보살과 함께 길을 가던 길상동자가 어느 밭에서 조 세알을 따 먹은 후, 그 빚으로 길상동자가 소로 변했다. 소로 변한 길상동자는 3년 동안 밭 주인에게 일을 해주고 다시 동자로 화신했다는 전설도 있다. 우번조사 이후로도 많은 고승들이 우번대에 머물렀는데 열심히 기도하여 깨우침을 얻은 스님들은 종석대에서 울러퍼지는 돌종소리를 들었다고 전한다.

     

    종석대,鍾石臺

    돌종이란 의미를 지닌 종석대(鍾石臺·1361m), 정상 암봉이 종 모양을 닮아서라거나 바람이 바위에 부딪칠 때 돌종 소리가 나서 그렇게 부른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우번조사가 도를 통하던 그 순간, 이곳에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석종소리가 들렸다고 하여 이곳을 종석대라 부른다. 명칭도 여러 개다. 우번조사가 도를 깨쳤던 곳이라 하여 ‘우번대’라고도 하고 관음보살이 현신했던 곳이라 하여 ‘관음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종석대(鍾石臺), 이곳에 오르면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번대 법종 스님의 말로는 예전 지리산 빨치산들이 이곳 종석대에 올라 사방을 파수했다고 한다. 구례들판과 섬진강, 노고단 방면, 주능선 쪽, 만복대 등의 북쪽 능선 등 동서남북 보이지 않는 곳이 없으니 지리산 서쪽 방면에서 토벌대의 이동을 파악하기에는 이곳만 한 곳도 없었을 것이다. 흔히 지리산 주능선의 서쪽 끝 봉우리를 노고단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종석대가 서쪽 끝이다.

     

    차일봉

     

    법성봉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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