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부 폐사지(廢寺地) 칠암자길지리 산행기 2024. 1. 28. 11:55
# 언제: 2023년 01월 28일 토요일
# 산행지: 동부 폐사지(廢寺地) 칠암자길 겨울 눈꽃산행 지리의 품속으로...ㅎㅎㅎ
# 산행거리: 11.6km 07시간21분
# 산행루트: 한쟁이골(입구다리) - 적조암 - 박쥐굴 - (구)지장사터 - 금낭굴 - 선열암 -
유슬이굴 - 선녀굴사거리 - 선녀굴 - 의론대 - 고열암 - 신열암 - 함양독바위
안락문 - 와불산 - 군계능선 - 배틀재 - 천상굴 - 환쟁이골(입구다리)
544년 전인 1472년, 조선의 지성 김종직은 4박5일 일정으로 지리산에 올랐다. 그리고 당시의 지리산 문화를 부분적으로 엿볼 수 있는 귀중한 기록물인 지리산 산행기 ‘유두류록(遊頭流錄)’을 남겼다.
김종직은 조선 초기 성리학의 대가로 함양태수 시절, 지리산을 늘 가슴에 담고 동경하다가 마침내 산행을 감행했다. 그의 산행기록을 보면, 함양관아를 출발해 엄천을 건너 독녀암(함양독바위) 자락의 지장사, 선열암, 신열암에 들렀다가 독녀암(함양독바위)을 돌아보고 인근의 고열암에서 첫날 밤을 보낸다. 이후 그는 새봉, 청이당, 영랑재, 중봉을 거쳐 천왕봉에 올랐다.
그의 기록을 보면 지장사, 선열암, 신열암, 고열암, 청이당(당집), 성모사(사당), 향적사, 영신사 등의 여러 암자가 등장하는데 이 중 현재 남아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다. 위치조차 가늠하기 어렵거나 폐허가 되어 기와 파편만 흩어져 나뒹굴 뿐이다.이번 산행은 독녀암(함양독바위)를 돌아보고 독바위 자락의 김종직이 거쳐 간 지장사와 선열암, 신열암, 고열암 등의 폐사지를 찾아보는 일정이다.
적조암( 함양군 휴천면 운서리)
산죽비트
박쥐굴
(구)지장사터 위치
우 린 지장사 터로 알고 있었다 - 이곳도 지장사터 추정 - 지장사 터라고 주장하는 곳은 야묘(野廟) 터로 본다. 야묘(野廟)는 마을 사람들이 토지 신에게 祭를 지내는 사당이다.
금낭굴
선열암,先涅庵
양쪽으로 병풍바위가 마주보고 섰다. 그 사이 공터에 암자가 들어섰던 모양이다. 김종직이 쉬어간 암자 중 하나
선열암 촉촉수
門掩藤蘿雲半扃 : 문은 등라에 가리고 구름은 반쯤 빗장을 질렀는데/雲根矗矗水冷冷 : 우뚝 솟은 바위의 촉촉수 소리 맑고도 깨끗하구나
운근(雲根)은 공기가 차가운 바위에 부딪쳐 구름이 생기고 물방울이 맺히는 커다란 바위를 뜻하고
촉촉수(矗矗水)는 높은 곳에서 톡톡(촉촉 : 의성어)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인데 절묘한 시어입니다.先涅庵[선열암]
門掩藤蘿雲半扃 : 문은 등라에 가리고 구름은 반쯤 빗장을 질렀는데
雲根矗矗水冷冷 : 우뚝솟은 바위의 촉촉수 소리 맑고도 깨끗하구나
高僧結夏還飛錫 : 하안거를 마친 고승은 석장을 날리며 돌아갔는데
只有林間猿鶴驚 : 다만 깊은 산속에서 은거하는 선비가 놀라는구나
유술이굴
선녀굴암터
마지막 빨치3人 암굴비트 - 선녀굴
정순덕 1933년 6월 20일 경남 산청군 삼장면 소래리 안내원 마을에서 태어나 - 지리산에 빨치들이 활동시작한 49년, 마을에 소개령이 내려 인근 시천면 황점부락으로 옮기게 되었고 다음해인 50년 5월초 석성조에게 17세나이에 시집가게 된다. 그리고 다음달 전쟁이 터진다. 신랑,성조는 인민군 치하시절에 로동당 산청군 시천면 당원이 되어 인민위원회에서 일하게 된다. 부역자가된 석성조는 보복이 두려워 빨치로 입산하게 된다.이후 정순덕 신부는 경찰들의 고문,협박에 견딜수가없어 남편을 찾아 입산, 빨치산을 만날수 있었고 남편도 연락받고 ,두달만에 재회할수 있었다. 이후 정순덕은 밥하고 빨래하는 일로 도깨비 부대에조직 개편된다. 그러나 빨치산은 유격대의 경우 전투력에 지장을 준다며 연애하다가 걸리면 총살. 정순덕은 진양군 유격대에 남고 석성조는 산청군 유격대로 간다. 결국 이들 부부는 마을에서 두달, 산에서 한달여정도 같이 지낸것이 전부였다.
이은조함북 웅기출신, 모스크바 유학까지 갔다온 엘리트. 6.25가 터진후 당의 지시에 따라 경남 의령군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다가 9.28 수복때 지리산으로 들어와 이영회 부대에 합류. 지리산 최후의 빨치산 3인중 위원장 직책으로 활동
이홍희경남 산청군 삼장면 홍계리 서촌마을에서 여자형제만4명 집안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나15살에 인민군 ‘소년단’에 가입, 좌우가 뭔지 모르는 시골 소년, 가입하면 공짜로 공부를 가르쳐준다는 꼬드김에 넘어가서였다. 그러나 9.28 수복이 되자 군경이 돌아왔을 때 살아남을수 없을것 같다는생각에 입산, 이영희 부대장의 연락병을 맡게 되었다.
61년 송대마을위선녀굴에서 이은조가 경찰 매복조에 사살, 시신은 정순덕에 의해 암장되었다. 63년 11월 안내원 마을에서 이들 2인조의 끄나풀 역할을 하던 성수복이 관할 삼장지서에 밀고. 대공경찰관은 매복한 끝에 정순덕과 이홍희가 집에 들어가는것을 포착,이홍희는 현장에서 사살,정순덕은 다리에 총상을 입고 생포되었다. 그녀는, 태어난 안내원 마을에서 13년만에 체포 - 긴 세월 좌,우 이념대립으로 많은이들이 죽음의 피를 지리속에 묻었다. 마지막 빨치여인 정순덕議論臺(의논대)
兩箇胡僧衲半肩 : 참선승 두 사람이 장삼을 어깨에 반쯤 걸치고
巖間指點小林禪 : 바위 사이 한 곳을 소림 선방이라고 가리키네
斜陽獨立三盤石 : 석양에 삼반석(의논대) 위에서 홀로 서있으니
滿袖天風我欲仙 : 소매가득 천풍이 불어와 나도 신선이 되려하네
의논대 - 의논대는 주변의 암자 들, 신열암,선열암,고열암 등에 기거하던 스님들이 이곳에 모여 앉아 불법을 논하던 곳이라고하여 의논대,의론대가 되었다고 한다.
고열암터
고열암(古涅菴)
여기서 조금 서쪽으로 가 고열암(古涅菴)에 다다르니, 이미 해가 지고 어스름하였다. 의론대(議論臺)는 그 서쪽 등성이에 있었는데, 유극기 등은 뒤떨어져, 나 혼자 삼반석(三盤石)에 올라 지팡이에 기대어 섰노라니, 향로봉(香爐峯), 미타봉(彌陀峯)이 모두 다리 밑에 있었다. 해공(解空)이 말하기를, “절벽 아래에 석굴(石窟)이 있는데, 노숙(老宿:오랫동안 불가에서 수행하여 불도의 지식을 많이 쌓은 승려) 우타(優陀)가 그 곳에 거처하면서 일찍이 선열암, 신열암, 고열암 세 암자의 승려들과 함께 이 돌에 앉아 대승(大乘), 소승(小乘)을 논하다가 갑자기 깨달았으므로, 이렇게 칭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잠시 뒤에 납의(衲衣)를 입은 요주승(寮主僧)이 와서 합장하고 말하기를, “들으니 사군(使君)이 와서 노닌다고 하는데, 어디 있는가?”라고 하니, 해공이 그 요주승에게 말하지 말라고 눈치를 주자, 요주승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그래서 내가 장자(莊子)의 말을 사용하여 위로해서 말하기를, “나는 불을 쬐는 사람이 부뚜막을 서로 다투고, 동숙자(同宿者)들이 좌석을 서로 다투게 하고 싶다. 지금 요주승은 한 낮선 노인네를 보았을 뿐인데, 어찌 내가 사군인 줄을 알았겠는가?”라고 하니, 모두 웃었다. 이 날에 나는 처음으로 산행을 시험하여 20여리를 걸었는데 극도의 피곤으로 깊은 잠을 잤다. 한밤중에 깨어 보니, 달빛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며, 여러 산봉우리에서 운기(雲氣)가 솟아오르고 있어,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였다.
[원문]
稍西迤抵古涅菴. 日已曛矣. 議論臺. 在其西岡. 克己等後. 余獨倚杖于三盤石. 香爐峯,彌陁峯. 皆在脚底. 空云. 崖下有石窟. 老宿優陁居之. 嘗與三涅僧. 居此石. 論大小乘. 頓悟. 仍以爲號. 少選. 寮主僧荷衲來. 合掌云. 聞使君來遊. 何在. 空目僧休說. 僧面稍赤. 余用蒙莊語. 慰藉云. 我欲煬者爭䆴. 舍者爭席. 今寮主見一野翁耳. 豈知某爲使君. 空等皆笑. 是日. 余初試險. 步幾二十里. 極勞憊. 熟睡夜半而覺. 月色呑吐諸峯. 雲氣騰湧. 余默慮焉. -퍼온글-
宿古涅庵,고열암에서 자다 (金宗直, 佔畢齋)
病骨欲支撑,병골욕지탱 : 지친 몸 지탱하려고
暫借蒲團宿,잠차포단숙 : 잠시 포단 빌려 잠을 자는데
松濤沸明月,송도비명월 : 소나무 물결(파도소리) 달빛 아래 들끓으니
誤擬遊句曲,오의유구곡 : 국곡선경에 노니는 듯 착각하였네
浮雲復何意,부운복하의 : 뜬 구름은 또한 무슨 뜻인가?
夜半閉巖谷,야반폐암곡 : 한밤중 바위 골짜기 닫혀있구나
唯將正直心,유장정직심 : 오직 올곧은 마음을 가진다면
倘得山靈錄,당득산영록 : 혹시 산신령의 살핌을 얻으려나
신열암
신열암(新涅菴)을 찾아가 보았더니 승려는 없고, 그 암자 또한 높은 절벽을 등지고 있었다. 암자의 동북쪽에는 독녀(獨女)라는 바위 다섯 개가 나란히 서 있는데, 높이가 모두 천여 자나 되었다. 법종이 말하기를, “들으니, 한 부인(婦人)이 바위 사이에 돌을 쌓아 놓고 홀로 그 안에 거처하면서 도(道)를 연마하여 하늘로 날아올라갔으므로 독녀라 호칭한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는데, 그 쌓아놓은 돌이 아직도 남아 있다. 바위 중턱에 잣나무가 서 있는데, 그 바위를 올라가려면 나무를 건너가서 그 잣나무를 끌어 잡고 바위틈을 돌아 등과 배가 바위에 부딪힌 다음에야 그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그러니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올라갈 수 없었는데, 종리(從吏) 옥곤(玉崑)과 용산(聳山)은 능숙하게 올라가 발로 뛰면서 손을 휘저었다. 내가 일찍이 산음(山陰)을 왕래하면서 이 바위를 바라보니, 여러 봉우리들과 다투어 나와서 마치 하늘을 괴고 있는 듯했다. 지금 내 몸이 직접 이 땅을 밟아보니, 모골이 송연하여 정신이 멍하고 내가 아닌가 의심하였다.
[원문]
訪新涅. 無僧. 亦負峭壁. 菴東北有巖. 曰獨女. 五條離立. 高皆千餘尺. 宗云. 聞有一婦人. 累石巖間. 獨棲其中. 鍊道沖空. 故爲號云. 所累石猶存. 柏生巖腰. 欲上者. 梯木挽其柏. 廻繞巖闕. 肯腹俱盪磨. 然後達其頂. 然不能辦命者. 不能上. 從吏玉崑聳山. 能上而超足麾手. 予嘗往來山陰. 望見是巖. 與諸峯角出. 若柱天然. 今而身跨玆地. 毛骨愯然. 恍疑非我也.
-퍼온글- -빌려온사진-
독녀암(노장대) - 독녀암(노장대)바위군(群), 또 다른 별세계 바위 숲, 거대한 암봉군의 [독녀암(노장대),함양독바위]는 [옹암(甕巖),진주독바위], [하동독바위]와 더불어 지리산 3대 독바위로 불린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에는 ‘독녀암’으로 등장하는데, 한 여인이 이곳에서 홀로 수행하다가 득도하여 하늘로 날아갔다는 전설을 전하고 있다. 하늘을 향해 돌기둥이 숲을 이룬 듯 솟아있다.
안락문,安樂門 (통락문) - 근심걱정을 넘어 안락한 세상으로 가는 문
와불산(상내봉)1.214m - 트랭글 루트
천상굴
# 산행지도
# 산행사진
'지리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아골 연곡사 주변 폐암자 탐방 (1) 2024.02.12 구곡산, 구곡사지골, 무이구곡(九曲) (1) 2024.02.05 천은사골, 종석대, 우번대 (1) 2024.01.20 심안골, 간미봉 (2) 2023.12.31 우무실골, 바래봉 (0) 2023.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