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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남산 열암곡 석불좌상, 열암곡 마애불상전국 산행기 2024. 3. 25. 21:03
# 언제: 2023년 03월 22일 금요일
# 산행지: 경주 남산 열암곡석불좌상, 열암곡 마애불상
# 산행거리: 1.8km 00시간00분
# 산행루트: 경주 남산 열암곡 석불좌상, 열암곡 마애불상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
약 1천300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통일신라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경주 남산 열암곡(列岩谷)에서 지난 5월 말 발굴조사 중 발견한 통일신라 대형 마애불상의 상호(相好, 부처님의 얼굴)와 전체 모습을 확인했다고 최근 밝혔다.
열암곡 마애불상은 화강암(약 250×190×620㎝, 무게 약 70t)의 한 면을 이용, 고부조(高浮彫)한 것이다. 그러나 발견 당시 불상이 조각된 암석은 원래 위치에서 경사면을 따라 앞쪽으로 넘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불상의 자세한 모습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추가 조사 작업을 통해 불상의 대좌와 양 다리, 가슴 및 어깨를 확인했고, 최근에 마침내 상호까지 밝혀냄으로써 불상의 전체 모습을 세상에 알리게 됐다.
이 불상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460cm, 발 아래 연화대좌가 100cm로, 전체 높이가 560cm에 이르는 대형 마애불이다. 육계(肉 , 부처의 정수리에 불룩 솟아오른 부분)가 높고 민머리(素髮)이며 타원형의 얼굴에는 오뚝하게 솟은 코와 아래로 내리뜬 길고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도톰하고 부드럽게 처리된 입술 등이 잘 표현되어 있다.특히 귀는 발제선(髮際線, 머리털이 난 끝선)에서 어깨에 이를 정도로 매우 크며 평면적으로 처리돼 있는 등 유사 예를 찾기 어려운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어 주목된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입체적으로 표현돼 있으며 어깨는 넓고, 가슴은 펴고 있어 당당한 모습이다. 또 수인(手印)은 왼 손등을 바깥으로 해 손가락을 가지런히 펴서 가슴 위에 얹었으며, 오른손 역시 손등이 밖을 향한 채 엄지손가락을 안으로 감싸 네 손가락을 가지런히 하복부에 대고 있는 특이한 형식이다. 법의(法衣)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발목까지 길게 내려오는 우견편단(右肩偏袒) 형식으로, 아래로 내려올수록 간격이 넓어지는 주름이 9개 표현돼 있다. 또한 두 발은 발끝이 밖으로 향하게 벌리고 있으며, 연화대좌는 5장의 꽃잎을 낮게 조각했다.
이 마애불은 약 4등신으로 몸에 비해 머리부분이 크게 표현돼 있어 예불하는 사람이 마애불을 우러러볼 때의 비례감을 고려, 시각적인 효과를 잘 나타내려고 한 점이 돋보인다.
열암곡 마애불은 8세기 후반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삼화령 삼존불, 배리 삼체불, 석굴암 본존불로 이어지는 신라 불상의 큰 흐름을 이어가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땅속에 거의 묻혀있는 형태로 약 1천300년의 세월을 지나면서도 손상되지 않고 거의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지닌 마애불이라는 점 또한 이 불상의 발견이 지니는 중요한 의의라고 할 수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금까지의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남산 열암곡 마애불과 주변지역에 대한 조사와 정비를 지속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경주열암곡석불좌상,慶州列岩谷石佛坐像
남산 배운골(白雲溪)의 동쪽 지류인 새갓골 절터
높이 108㎝. 1979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남산 배운골(白雲溪)의 동쪽 지류인 새갓골 절터에 있다. 흔히 열암골 석불좌상으로 부르지만, 열암골은 새갓골의 서쪽 지류인 양조암골에 해당되므로 새갓골이 정확한 명칭이다. 현재 머리는 없어졌고 불상 주위에 광배(光背 :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와 대좌가 흩어져 있다.
불신은 화강암의 석불로서는 표면 구조가 매끄럽고 굴곡이 뚜렷한 가슴의 윤곽과 곧게 편 당당한 상체에서 석굴암 조각으로 대표되는 신라 전성기 조각의 여운이 느껴진다.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는 통견의(通肩衣 : 어깨에 걸쳐진 옷)이다. 오른쪽 어깨에서 드리워진 대의(大衣 : 설법을 하거나 걸식을 할 때 입는 중의 옷) 자락을 바로 내려뜨리지 않고 가슴의 옷깃 속에 살짝 여며 넣었다. 왼쪽 어깨에서 드리워진 옷깃은 중간에서 한 번 접혀져 물결처럼 너울거린다.
가슴의 목깃 사이로 내의인 엄액의(掩腋衣 : 大衣 안에 윗內衣로 입던 옷으로,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걸쳐 입는다)와 가슴 띠가 비스듬히 새겨져 있다. 양손은 신체 비례에 비해 커서 둔중한 느낌을 준다. 오른손은 가만히 복부에 올려놓았고, 왼손은 가부좌(跏趺坐)한 무릎 밑으로 곧게 내려 촉지인(觸地印 : 왼손은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내리어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을 맺었다.
가부좌한 하체도 폭이 넓어 안정감을 주지만 석굴암 본존불에서 보았던 양다리 사이의 부챗살 옷주름은 표현되지 않았다. 양팔과 가부좌한 발목에 새긴 옷주름은 층단 또는 융기선으로 입체감을 주었지만 폭이 일정하여 통일신라 후기 조각의 전조를 나타낸다. 이러한 조형적 특징은 남산 용장골 입구의 절골사지 ‘석조약사여래좌상’에서도 나타난다. 두 석불은 흡사 같은 조각가의 작품으로 느껴질 정도로 착의법(着衣法)과 신체 모델링(modelling)이 꼭 같다.
조각이 다소 얕아 유려한 느낌을 주는 앞면과는 달리 뒷면에는 어깨 뒤로 넘긴 옷자락이 간결하면서도 뚜렷하게 조각되어 있다. 옷자락의 주름은 서로 높낮이를 달리하면서 강한 명암 효과를 가져다 준다. 불상 주위에 무너진 대좌는 강한 입체의 복련(覆蓮 :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과 둥글고 부드러운 앙련(仰蓮 : 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이 새겨진 전형 형식의 삼단 대좌로 현재 중대석은 없어졌다.
동강난 광배는 불꽃무늬·덩굴무늬·보상화무늬(寶相花文)·구름무늬·화불(化佛) 등이 유려한 곡선으로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당당함을 잃지 않은 신체 모델링과 안정된 자세 등에서 신라 전성기 조각의 여운을 잇고 있다. 하지만 세부 조각이 얕고 광배가 화려한 장식성을 띠는 점에서 조성 시기는 8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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