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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학연못,촛대봉
    지리 산행기 2024. 6. 14. 09:58

    # 언제: 2024년 06월 13일 목요일

    # 산행지: 청학연못, 촛대봉, 지리의 품속으로...ㅎㅎㅎ

    # 산행거리: 14.11km  05시간 37분

    # 산행루트: 거림 - 거림골 - 청학연못 - 촛대봉 - 한신계곡 - 백무동

     

    거림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 거림 마을.
    거림 마을에서 세석까지 거리는 6km.
    내대리 버스종점 - 세석 = 6km + 3km.

    <곡정-내대리-거림> = 도벌 반출 산판도로.
    거림(巨林) 원시림 계곡은 일제시대에 군수용.
    8·15 광복 후 땔감 벌목으로 한때 벌거숭이 계곡.

    마치, 체모가 깍인 듯, 살벌한 아픔을 간직했던 계곡.
    그후, 숲이 되살아 났지만 거목을 찾아볼 수 없는 거림.
    예전에는, 클 巨+수풀 林='아람들이 숲'이 우거졌던..'巨林'.

     

    거림계곡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에 있는 계곡으로 지리산 주능을 제일 편안하게 오를수 있는곳 중에 하나이다.
    자빠진골 갈림길에서 오르면 단천령을 넘어 화개동천과 소통하던 거점계곡이다.

    큰 폭포나 소는 없지만 대부분 완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세석 고원에서 발원된 물로 인해 연중 수량이 풍부한 곳이다.
    깊은 계류와 울창한 원시림을 따라 세석평전까지 8㎞를 흐른다.

    거림(巨林)이라는 이름처럼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하게 계곡을 메우고 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군수용으로 많이 베어졌고 8·15광복 후에는 땔감으로 마구 베어져 한때 벌거숭이 계곡이 되기도 했다.

    지리산 세석평전에서 시작되는 거림골을 본류로 하여 연하봉과 촛대봉에서 발원한 도장골, 세석평전에서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한벗샘에서 발원한 자빠진골 등의 지류가 모여 형성된 커다란 계곡이다.

    계곡을 따라 난 등산로는 세석평전으로 가는 가장 가깝고 완만한 길이고, 5월 하순부터 6월 초순까지 등산로를 따라 철쭉이 만발한다. 지류인 자빠진골과 도장골의 경관이 빼어나 본류는 상대적으로 한적한 편이다. 찾아가려면 진주나 산청(원지)에서 중산리행 버스를 탄다. 승용차로 가려면 산청군 시천면 덕산에서 중산리 방면으로 가다가 곡점마을 삼거리에서 좌회전한다.

     

    청학연못(세석연못)

    촛대봉아래 해발1535m에 있는 인공연못으로 물은 사시사철 바위 아래에서 끊임없이 샘솟는다.
    수화기제(水火旣濟)의 방편으로 물과 불의 균형을 마추기 위해 만든 연못으로 추정된다.
    사용연대는 가야시대까지 올라간다.

    가을에는 단풍이 좋고 큰 바위 윗쪽 소나무 아래엔 학동임(鶴洞壬)석각이 있다. 혹자들은 류겸암일기(柳謙菴日記)를 근거로 세석일대를 청학동으로 단정짓고 그 가운데 있는 이곳을 청학연못으로 부르고 있다.

     

    만경대

     

    촛대봉

    경상남도 산청군의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의 경계에 있는 지리산 주능선의 한 봉우리이다(고도 : 1,703m). 천왕봉에서 서쪽 노고단 방향으로 제석봉·연하봉을 거쳐 촛대봉에 이르며 다시 칠선봉과 덕평봉으로 향해 이어진다. 촛대봉의 남사면 계류는 거림계곡으로 모아지고, 북사면의 계류는 한신계곡으로 모인다. 봉우리의 모양이 촛대와 같이 뾰족하게 솟아있어 이름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촛대봉의 옛 이름은 촉봉(燭峰) 혹은 촉대봉(燭臺峰)이었다. 촉봉 혹은 촉대봉이 오늘날의 한글 명칭으로 촛대봉이 되었다.
    지리산의 최대 고원지대인 세석평전 동쪽에 솟아 있는 봉우리로, 높이 1,703.7m이다.봉우리 모양이 마치 촛농이 흘러내린 듯하여 촛대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촛대봉을 기점으로 서쪽으로는 영신봉~덕평봉~벽소령~형제봉~명선봉~토끼봉~삼도봉~노고단이, 동쪽으로는 삼신봉~연하봉~제석봉~천왕봉이 이어져 있다.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과는 4.4㎞ 거리이며, 장터목대피소와는 2.7㎞, 세석대피소와는 0.7㎞ 떨어져 있다.


    철쭉이 피는 계절에 촛대봉에서 내려다보는 세석평전의 모습이 장관이다. 천왕봉을 배경으로 떠오르는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일출명소이기도 하다.

    [참고: 네이버 지식백과] 촛대봉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세석평전은 곡식이 잘자라는 평지로 보이지만 의외로 물이 많다. 그 안쪽에 인공 연못(일명:청학연못)이 있는데 사시사철 물이 나오는 곳이기에 농사용으로 만들어진건 아닌듯 싶다. 연못이나 촛대봉의 명칭은 풍수적인 측면에서 만들고 붙인게 아닌가 생각된다.


    지리산의 물은 남강을 굽이굽이 돌아 창녕 남지에서 낙동강과 합류된다. 장마철마다 큰 물난리가 났고 수화기제(水火旣濟)의 의미로 근처에 있는 산의 이름을 화왕산(火旺山)으로 붙였다.  
    지금은 사천쪽으로 수문을 만들어 배수를 조절한다.

     

    가내소폭포

    가내소에 얽힌 전설

    먼 옛날 한 도인이 이곳에서 수행한지 12년이 되던 어느 날 마지막 수행으로

    가내소 양쪽에 밧줄을 묶고 눈을 가린 채 건너가고 있었다.

    그러나 도중에 지리산 마고 할매의 셋째 딸인 지리 산녀가 심술을

    부려 도인을 유혹하였고, 도인은 그만 유혹에 넘어가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도인은 ‘에이~!, 나의 도(道)는 실패했다.

    나는 이만 가네.’하고 이곳을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 ‘가내소’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가내소는 15m높이의 폭포이며 50여평의 검푸른 소를 만들고 있어

    우선 그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사철 수량이 변함없어 전설에 의하여 옛날 마천면 주민들은 심한 가뭄이 들면

    이곳 가내소를 찾아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기우제 방법도 특이해서 부녀자들이 홀치마 바람으로 앉아 방망이를 두드리거나

    돼지를 잡아 바위에 피를 뿌리고 가내소에 머리를 던졌다던가?

     

    전자는 통곡과 동일시한 방망이 소리로 지리산신인 마고할매의 통곡을 유도하여

    대지를 적시게 한다는 주술적 방법이고,

    후자는 돼지를 잡아 계곡을 더럽히면 산신이 산을 씻어내기 위해

    비를 뿌릴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란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그럴듯하게 빗댄 선인들의 생각이 소박하고 재미있다.

     

    첫나들이폭포

    아주 오래전 바람이 없는 날에도 이곳에 떨어지는 폭포수로 인해

    바람이 일어나 "바람폭포"라 하였고, 어느 때부터인지 알 수 없으나

    지금은 백무동에서 오르면 첫 번째 폭포라고 하여 "첫나들이 폭포"로 불리고 있다.

     

    백무동

    백무동 유래(百武洞 由來)
    백무동은 무속인들이 많아 붙여진 이름입니다. 반야봉이 문수보살이 자리한 불교의 성지라고 한다면 천왕봉은 그보다 먼저 자리잡은 우리 고유의 민속신앙의 보고라 할까요, 지리의 산신령은 용유당부터 시작하였을 겁니다. 거기서 기돗발이 안 받을 경우 그들은 이 하당下堂인 이 백무동까지 올라옵니다. 조금 더 영험함을 받으려면 다시 중당中堂인 제석봉 까지 올라가고...

    오후에 용담(龍潭)에 도착하였고, 용당(龍堂)에 모여서 묵었다.(정경운, 고대일록, 1604) / 용유담에서 동남쪽으로 조금 치우친 곳에 용왕당(龍王堂)이 있었는데,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외나무다리를 설치해 왕래하는데…(박여량 1610) / 외나무다리를 건너 허물어진 사당 안으로 뛰어들어가 기다렸다.(유몽인 1611) / 못의 서쪽 비탈에는 옛날 사당이 있었는데, 무당들이 신령스러운 용에게 기도하던 곳이었다… 삼남의 무당들이 봄과 가을이면 반드시 산에 들어와서, 먼저 용유담의 사당에서 기도를 올리고 그 다음에 백무당과 제석당에서 차례로 기도하였다.(이동항 1790) / 용유당(龍遊堂)(박장원 1643) / 용당(龍堂)이 건너편 언덕에 있어 나무를 엮어 다리를 만들었는데 - (조구명 1724)

    거기서도 여의치 않을 경우 상당上堂인 천왕봉까지 올랐다고 하죠, 그러니 이 백무동은 그들의 베이스 켐프 역할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곳들은 유교에 쩌들은 선비들에게는 음사淫祠였고 질시疾視의 대상에 불과했을 겁니다. 이 낯설기만 한 곳이 청계도인 양대박(1541~1592)에게는 삼가하고 멀리해야만 하는 곳이었습니다.

    다시 산길 10여 리를 가서 백문당(白門堂: 혹 백무당(百巫堂)이라고도 한다.)에 도착하였다. 이 집은 길가 숲 속에 있는데, 잡신들이 모셔져 있고 무당들이 모이는 곳이다. 밤낮없이 장구를 치고 사시사철 부채를 들고 춤을 춘다. 사당 안에는 초상이 걸려 있었는데 이루 말할 수 없이 희한하고 괴이하였다. 이곳은 얼른 떠나야지 오래 머무를 수 없는 곳이었다. 밥을 재촉해 먹고 얼른 신을 신고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 산행영상

     

     

     

     

    # 산행지도

     

     

    #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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