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언제: 2024년 03월 17일 일요일
# 산행지: 산청의 숨은 명산 왕산, 필봉산 걷기 좋은 육산 봄 맞이 산행
# 산행거리: 9.00km 04시간00분
# 산행루트: 구형왕릉 - 류의태 약수터 - 망경대 - 왕산 - 필봉산 - 한방박물관(동의보감촌)
구형왕릉,仇衡王陵
산청 전 구형왕릉(山淸 傳 仇衡王陵)은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에 있는 삼국시대의 유적이다. 1971년 2월 9일 대한민국의사적 제214호 전구형왕릉으로 지정되었으나, 2011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가야 10대 임금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는 돌무덤으로, 구형왕은 구해(仇亥) 또는 양왕(讓王)이라 하는데 김유신의 증조부이다. 521년 가야의 왕이 되어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영토를 넘겨줄 때까지 11년간 왕으로 있었다.
이 무덤을 둘러싸고 종래에는 석탑이라는 설과 왕릉이라는 2가지 설이 있었다. 이것을 탑으로 보는 이유는 이와 비슷한 것이 안동과 의성지방에 분포하고 있는데 근거를 두고있다. 왕릉이라는 근거는 『동국여지승람』, 『산음현 산천조』에 ‘현의 40리 산중에 돌로 쌓은 구룡이 있는데 4면에 모두 층급이 있고 세속에는 왕릉이라 전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무덤에 왕명을 붙인 기록은 조선시대 문인인 홍의영의 『왕산심릉기』에 처음 보이는데 무덤의 서쪽에 왕산사라는 절이 있어 절에 전해오는 『왕산사기』에 구형왕릉이라 기록되었다고 하였다.
일반무덤과는 달리 경사진 언덕의 중간에 총높이 7.15m의 기단식 석단을 이루고 있다. 앞에서 보면 7단이고 뒷면은 비탈진 경사를 그대로 이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평지의 피라미드식 층단을 만든 것과는 차이가 있다. 무덤의 정상은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돌무덤의 중앙에는 ‘가락국양왕릉’이라고 쓰인 비석이 있고 그 앞에 석물들이 있는데 이것은 최근에 세운 시설물이다.
조선 정조 17년(1793)에는 왕산사에서 전해오던 나무상자에서 발견된 구형왕과 왕비의 초상화, 옷, 활 등을 보존하기 위해 ‘덕양전’이라는 전각을 짓고, 오늘날까지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류의태 약수터
허준의 스승으로 알려진 유의태님이 한약을 달일때 사용하였다는 왕산의 약수로 류의태 자신이 고치지 못하는 불치의 난치병도 이 약수(千蚓水, 萬蚓水라고도 함)를 먹어 고쳤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신의 류의태의 가르침속에 무릇 물에는 서른 세가지 종류가 있고 그 약효가 달라 의원은 약효를 내는데 물을 가려써야 한다며 물중에 정화수(井華水)에 이어 두번째로 치는 여름에 차고 겨울에 따뜻한 온(溫)한 "한천수(寒天水)"로 장복하면 반위(反胃:胃癌)를 다스린다는 물로 왕산의 약수가 이에 해당한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눈이 내린 한겨울에도 왕산의 약수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맛이 참으로 좋다는 것을 느낄수 있다 한다.
망경대
망경대(望京臺)는 고려 공양왕 때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지낸 농은 민안부선생(農隱 閔安富)은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반대한 두문동(杜門洞) 72인의 유신(儒臣) 중의 한 사람으로, 고려에 끝까지 충절을 지키기 위해 지리산 기슭인 산청군 생초면 대포리에서 은둔생활을 하였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이곳 왕산 중턱바위에 올라 송경(고려의 수도)을 향해 절을 하며 고려와 임금을 그리워 하여 후세 사람들이 민안부 선생의 충절과 의리를 기리기 위해 이 바위를 망경대(望京臺)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왕산,王山 해발925.6m
경남 산청군에는 가락국의 멸망을 지켜본 구형왕의 능과 삼국 통일의 주역 김유신이 활쏘기를했다는 사대(射臺)가 있는 왕산(王山,925.6m)과 선비의 고장인 산청을 상징한다는 필봉산(筆峰山,858.2m)이 금서면 일대에 높이 솟아 있다.
왕산(王山)은 지리산 왕등재에서 뻗어내린 봉우리로 산청군의 여타 산들처럼 지리산의 유명세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왕산 이름은 왕의 기운을 품었다 해서 그리 불리며 옛 이름은 태왕산(泰王山)이라고도 하는데 북쪽 산기슭에 있는 가락국 제10대 왕 호왕(護王)의 능인 구형왕릉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며 가락국의 궁궐 이름도 태왕굴이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추측된다. 수로왕이 만년에 이곳에 와서 휴양했다고 가락국 양왕 신도비에도 새겨져 있다고 전해진다.
거대한 바위들이 모여 암봉을 이루고 있는 정상에 서면 산청읍 일대와 경호강, 엄천강의 유장한 흐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또한 지리산 천왕봉에서 웅석봉까지 단 한 번의 멈춤도 없이 길게 뻗은 산자락이 파노라마처럼 일목요연하게 보인다.필봉산,筆峰山 해발858.2m
경 상남도 산청군의 금서면 특리와 향양리 일대에 걸쳐있는 산이다(고도 : 858m). 지리산 천왕봉의 한 맥이 북서쪽으로 뻗어 왕산과 함께 인근의 필봉산을 일으켰다. 왕산과 필봉산 사이의 북사면에서 발원한 계류는 특리천으로 모이고, 필봉산의 남사면에서 발원한 계류는 금서천으로 모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경호강에 합류한다. 필봉산의 동사면 기슭으로는 경호강이 남북방향으로 종단하며 곡류한다.
조선시대 산청의 관찬지리지와 군현지도에는 필봉산에 관한 기록이 없다. 필봉이라는 산 이름은 붓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풍수적인 형국명과 관련되어 있는 이름이다. 조선시대에는 (문)필봉이 있으면 과거급제자나 문사(文士)가 난다고 하여 귀하게 여겼다. 『산청군지』에 "필봉산은 현 서쪽 10리에 있다. 지리산에서부터 맥이 와서 왕산이 되었고, 주맥은 뾰족한 봉우리가 붓과 같다."라는 기록이 있다.
가락국의 멸망을 지켜본 구형왕의 능과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이 활쏘기를 했다는 사대(射臺)가 있는 왕산과 선비의 고장인 산청을 상징한다는 필봉산은 산청군 금서면 일대에 높이 솟아있다. 왕산의 옛 이름은 태왕산이라고 하였는데 아마 가락국의 궁궐 이름도 태왕궁이 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추측되고 수로왕이 만년에 이 곳에 와서 휴양했다고 가락국 양왕신도비에 새겨져 있으며, 왕산은 가락국의 왕과 많은 사연이 있음을 알려주는 지명 즉 왕등재, 국골, 깃대봉, 각종 기록이나 문헌에도 있어 왕산이라 하였던 것 같다.
여우고개에서 보이는 필봉의 모습은 독특하다.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산의 이름대로 붓끝을 연상해 필봉(筆峰) 또는 문필봉(文筆峰)으로도 볼 수 있겠으나 혹자는 여인의 가슴을 연상해 유방봉, 유두봉으로 부르기도 한다. 높이는 이웃한 왕산보다 75cm가 낮지만 산의 모습이 인상적이라 시야에는 필봉산이 먼저 들어온다. 필봉산 정상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바윗덩어리로만 이루어져 있는데다 뾰족하고 사방이 가파른 급경사라 여우재쪽 외에는 접근하기가 까다롭다.산청 동의약선관
동의약선관은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동의보감촌 안에 있는 약선 전문점이다. 모든 메뉴는 한상차림으로 준비되어 있다. 푸짐한 양과 맛으로 웨이팅을 피할 수 없는 한정식 맛집으로. 한옥은 층고가 높아 답답한 느낌이 없다. 가족모임 하기 좋은 룸이 준비돼 있고 테이블도 넓어서 식사하기 쾌적하다. 동의약선관에서는 지리산에서 자생하는 나물을 이용해서 음식을 만든다. 한우 모둠 버섯전골은 각종 버섯을 넣고 그 위에 한우를 올린 모둠전골인데 약재 맛이 은은하게 나고 한우도 부드럽고 버섯 종류도 많아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요리의 종류와 가격대에 따라 특한상, 수라한상, 장수한상으로 나뉜다. 넓은 전용 주차장이 있어 차량을 이용한 방문이 편리하고 주변에 동의보감촌, 한방테마공원 등이 있어 둘러보기 좋은 관광 명소이다.
동의보감촌
경남 산청군 금서면 특리 1300-25 이 있는 지리산 고장 산청은 당대 최고의 명의인 류의태 선생과 허준 선생, 조선후기에 중국까지 명성을 떨쳤던 초삼, 초객 형제 등 명의들로 이름난 전통한방의 본 고장이다. 또 지리산 자락에서 자생하는 약초는 그 효능이 탁월해서 그 우수성이 널리 알려졌다. 이런 전통을 이어받아 산청군에서 금서면 특리 일원에 산청 한의학박물관을 짓고 매년 한방약초축제를 열어, 동의보감촌을 조성하는 등 산청을 한방약초, 한의학 성지로 만들었다.
# 산행지도
# 산행사진
구형왕릉 주차장
등산로 왼쪽 비석 과 비각 - 가락국 시조 김수로대왕 태왕궁지비
흥무대왕 김유신 사대비
구형왕릉 아래 계곡가에 있는 김유신 장군의 활터 기념비.
김유신은 구형왕의 증손자로 7년간 무덤 옆에서 지내며 무예를 닦았다고 한다. 몰락한 가야왕족 출신으로 신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절치부심했음을 알 수 있다.
전구형왕릉’(傳仇衡王陵. 사적 제214호, 산청 4경) 도착. 전구형왕릉은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산 16번지에 있는 가야 10대 임금인 구형왕의 돌무덤으로 구형왕은 구해(仇亥) 또는 양왕(讓王)이라 하는데 김유신의 증조부이다. 521년 가야의 왕이 되어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영토를 넘겨줄 때까지 11년간 왕으로 있었다. 구형왕릉 앞에 전(傳)자가 붙은 이유는 그의 능이라는 확증이 없고, 단지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형왕릉은 일반 무덤과는 달리 가파른 산비탈에 주변의 막돌과 깬돌을 계단식으로 층층이 쌓아올렸으며, 총 높이 7.15m, 둘레가100여m나 되는 기단식 석단을 이루고 있다. 그 정상의 네모진 단 위에는 봉토분처럼 뒷산과 언덕으로 연결되고 모서리가 약간 살아있는 반구형(半球形) 봉분(封墳)을 만들었다. 즉 정상에 반구형 접시가 엎어져있으며, 그 아래 7단으로 형성된 피라미드가 산비탈에 묻혀있어 반 정도만 드러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피라미드형 적석총(積石塚)은 제1단의 너비가 약 20m 정도되며, 1m 남짓한 높이로 7단을 쌓았고 전체 높이는 7.15m이다, 4단 중앙에는 높이 40cm, 깊이 68cm, 너비 40cm의 감실이 설치되어 있다.
구형왕릉 앞면 중앙에 가락국호왕릉(駕洛國護王陵)라고 새긴 석비가 있고 1m정도의 돌로 쌓은 담이 이 석총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또한 문인석, 무인석, 석수(동짐승), 상석, 장명 등이 1쌍씩 배치되어 있으나 이 석물들은 왕릉을 쌓았을 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근래에 김해 김씨 문중에서 민들어 세운 것이다.
구형왕릉에 있는 양릉각 제를 올리기 전에 이곳에서 준비를 한 것 같다.
갈림길 직진 망경대, 임도 동의보감돌레길
동의보감 둘레길을 안내해 주는 종합안내판
산청 왕산사지,山淸 王山寺址 부도탑
산청 왕산사지,山淸王山寺址 수정궁터
조선후기 문헌에 따르면 가락국 제 10대 왕인 구형왕이 기거하던 수정궁터에 지어진 사찰이다. 구형왕의 영정, 의복 등이 보관되어 있다고 전해지며 사적 제 214호인 '전구형왕릉'과 관련된 사찰로 알려져 왔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등 조선 후기 문헌 자료와 발굴조사를 종합할 때 왕산사의 창건시기는 대략 17세기 중엽으로 추정되며 19세기 중반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수정궁터
왕산사지로 알려진 가락국 시조 수로왕의 별궁인 수정궁터
산청 왕산사지(山淸 王山寺址)는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 있는, 구형왕릉에서 약 1km 떨어진 산기슭에 있는 왕산사(王山寺)로 전하는 사찰이다. 1997년 0월 30일 경상남도의 기념물 제164호로 지정되었다.
이 절에 대한 정확한 내력은 알 수 없으나 (왕산사기)에 기록된 내용으로 미루어 가락국 제10대 구형왕(재위 521∼532)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곳에 남아 있는 축대와 주춧돌, 우물지, 비대석 등과 주변에서 많이 출토되는 기와조각으로 볼 때 당시 왕산사가 큰 절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류의태(柳義泰) 약수터
류의태(柳義泰) 약수터 도착, 허준의 스승으로 알려진 유의태님이 한약을 달일때 사용하였다는 왕산의 약수로 류의태 자신이 고치지 못하는 불치의 난치병도 이 약수(千蚓水, 萬蚓水라고도 함)를 먹어 고쳤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신의 류의태의 가르침속에 무릇 물에는 서른 세가지 종류가 있고 그 약효가 달라 의원은 약효를 내는데 물을 가려써야 한다며 물중에 정화수(井華水)에 이어 두번째로 치는 여름에 차고 겨울에 따뜻한 온(溫)한 "한천수(寒天水)"로 장복하면 반위(反胃:胃癌)를 다스린다는 물로 왕산의 약수가 이에 해당한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눈이 내린 한겨울에도 왕산의 약수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맛이 참으로 좋다는 것을 느낄수 있다 한다.
진한 솔향을 가슴에 담고 망경대로...ㅎㅎㅎ
망경대(望京臺)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반대하며 산청에 낙향한 민안부선생이
매월 왕산에 올라 고려의 수도 송경을 향해 절을 하고 고려를 그리워했다는 망경대.
농은(農隱) 민안부(閔安富)선생의 망경대 사연
망경대(望京臺)는 고려 공양왕 때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지낸 농은 민안부선생(農隱 閔安富)은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반대한 두문동(杜門洞) 72인의 유신(儒臣) 중의 한 사람으로, 고려에 끝까지 충절을 지키기 위해 지리산 기슭인 산청군 생초면 대포리에서 은둔생활을 하였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이곳 왕산 중턱바위에 올라 송경(고려의 수도)을 향해 절을 하며 고려와 임금을 그리워 하여 후세 사람들이 민안부 선생의 충절과 의리를 기리기 위해 이 바위를 망경대(望京臺)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망바위 조망 내려다 보이는 동의보감촌
소왕산(고도 905m).
이전에는 이곳을 왕산이라고 불렀다고 하여 가짜왕산이라고도 한다.
조망이 아주 좋다.
소나무 쉼터
왕산(王山) 해발 925.6m
왕산은 경남 산청군 금서면에 위치한 산으로 산이름은 북쪽 산기슭에 가락국 제10대왕(호왕)의 능인 전구형왕릉에서 유래되었으며, 옛날 가락국의 궁궐 이름인 태왕궁에서 이름을 따서 태왕산으로 불리기도 했다. 수로왕이 말년에 이 산에서 휴양했다고 가락국 양왕 신도비에 새겨져 있기도 한 이 산은 가락국의 왕과 많은 사연이 있음을 알려주는 지명인 왕등재, 국골, 깃대봉 등이 각종 기록이나 문헌에도 나와 있다.
동의보감촌 조망
노송 그리고 필봉산
여우재 삼거리
필봉산,筆鋒山 해발858.2m
필봉산은 왕산 동릉 약 1.5km 거리에 뾰족하게 솟은 암봉으로 붓끝처럼 뾰족한 데서 유래된 이름으로 여성의 유두를 연상케해 유두봉이라고도 불렸다고 전해진다. 정상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절벽을 이룬 정상에서 막힘없는 조망이 펼쳐진다.
필봉산 정상 조망 동으로는 황매산(1,113m)과 부암산이 하늘금을 이루고, 남으로는 왕등재 능선 위로 지리산 천왕봉이 하늘과 맞닿아 보이고, 남동으로는 경호강을 가로지르는 대전, 통영고속도로와 함께 산청읍 시가지와 웅석봉이 어우러져 한폭의 아름다운 동양화를 연출한다.
필봉산 하산길의 암릉
필봉산 하산길 석문
동의보감촌의 명물인 흔들다리인 무릉교 길이 211m, 최고높이 33m
동의약선관
동의약선관은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동의보감촌 안에 있는 약선 전문점이다. 모든 메뉴는 한상차림으로 준비되어 있다. 푸짐한 양과 맛으로 웨이팅을 피할 수 없는 한정식 맛집으로. 한옥은 층고가 높아 답답한 느낌이 없다. 가족모임 하기 좋은 룸이 준비돼 있고 테이블도 넓어서 식사하기 쾌적하다. 동의약선관에서는 지리산에서 자생하는 나물을 이용해서 음식을 만든다. 한우 모둠 버섯전골은 각종 버섯을 넣고 그 위에 한우를 올린 모둠전골인데 약재 맛이 은은하게 나고 한우도 부드럽고 버섯 종류도 많아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요리의 종류와 가격대에 따라 특한상, 수라한상, 장수한상으로 나뉜다. 넓은 전용 주차장이 있어 차량을 이용한 방문이 편리하고 주변에 동의보감촌, 한방테마공원 등이 있어 둘러보기 좋은 관광 명소이다.
동의보감촌(경남 산청군 금서면 특리 1300-25)이 있는 지리산 고장 산청은 당대 최고의 명의인 류의태 선생과 허준 선생, 조선후기에 중국까지 명성을 떨쳤던 초삼, 초객 형제 등 명의들로 이름난 전통한방의 본 고장이다. 또 지리산 자락에서 자생하는 약초는 그 효능이 탁월해서 그 우수성이 널리 알려졌다. 이런 전통을 이어받아 산청군에서 금서면 특리 일원에 산청 한의학박물관을 짓고 매년 한방약초축제를 열어, 동의보감촌을 조성하는 등 산청을 한방약초, 한의학 성지로 만들었다.
'지리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고단,반야봉,묘향대 (2) 2024.06.07 주산(산청 지리산 왕자봉) (1) 2024.04.07 석산골,만복대 (0) 2024.03.18 구재봉,칠성봉 (0) 2024.03.10 도덕봉, 삼철굴암터,원통암 (1) 2024.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