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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3구간지리산 둘레길 구간[걷기] 2025. 6. 6. 08:45
# 언제: 2025년 06월 03일 화요일
# 산행지: 지리산 둘레길 3구간 인월 - 금계마을
# 산행시간: 18.5km 07시간 35분(여유로운 휴식시간 포함)
# 산행루트: 선화사경유(20.5km) : 구인월교 – 중군마을(2.1km) – 수성대(2.9km) – 배너미재(0.8km) –
장항마을(1.1km) – 서진암(2.5km) – 상황마을(3.5km) – 등구재(1km) – 창원마을(3.1km) –
금계마을(3.5km)
지리산 둘레길 3구간(인월 - 금계) 안내도
지리산 둘레길 3구간
인월 - 금계(선화사경유 18.5km)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와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를 잇는 20.5km의 지리산둘레길. 인월-금계구간은 지리산둘레길 시범구간 개통지인 지리산북부지역 남원시 산내면 상황마을과 함양군 마천면 창원마을을 있는 옛 고갯길 등구재를 중심으로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하고, 넓게 펼쳐진 다랑논과 6개의 산촌 마을을 지나 엄천강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제방길, 농로, 차도, 임도, 숲길등이 전 구간에 골고루 섞여있고, 또한 제방, 마을, 산과 계곡을 고루 느낄 수 있다.
# 산행지도
# 산행사진
인월시장 주차장
인월(引月)은 고려말의 황산 전투에서 달이 떠올라 승전하였다는 설화의 중심지이다. 운봉읍과 아영면의 하천이 인월면으로 모여 산내면을 지나서 경남 함양군 마천면으로 흐른다. 인월은 교통 중심지로서 전라도와 경상도 주민들의 함께 모이는 장터이다.
구인월교 앞 어탕집 요즘은 옛날처럼 탕 맛이 떨어지는 느낌
구인월교 건너
정면으로 덕두산 해발1151.5m
앞에 보이는 월평마을(달오름 마을)
월평마을은 인월의 동쪽에 있어 달의 기운을 왕성하게 받는다고 하여 달오름마을이라고 했다, 정월보름 날에는 마을 농악대의 흥겨운 풍물 소리에 맞춰 달집태우기는 행사가 유명하다. 이 행사는 고려말 이성계 장군의 황산대첩을 배경으로 하여 전승되는 이 지역의 유래 깊은 전통이다.
월평마을 지나면 안으로 들어가면 옛날 인월 그러니까 구인월 마을
지리태극종주 혹은 지리서븍능선종주를 마치고 내려오는 산꾼들의 종착 마을
월평리
마을앞에 넓은 평지인 관당들이 있어 인월에서 제일 넓은 들이라 하여 월평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던 이곳은 1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작은 마을이었으나, 1978년 농촌주택개량사업으로 새로 집을 지어 인근 마을에서 이주해와 현재와 같은 마을이 형성되어 행정리로 승격되었다.마을 입구에서 좌틀하면 람천 방죽길
방죽길을 따라 지리산 둘레길 제3구간 출발점
좌측으로 람천이 흐르고 우측의 논은 모내기 농사를 준비하느라 쟁기질은 이미 마무리 모내기 시작
벚나무가 터널을 만들어내는 멋진 길이다.
람천이라...?
영진지도에는 광천이라 표기되어 있음
지리산에서는 수많은 물줄기가 흘러내리지만 위에서 언급한 김선신은 두류전지의 流水經편에서 지리산의 물줄기를 크게 세 가지로 봅니다. "지리산 서쪽의 물로 장수 수분재에서 발원한 섬진강과 동쪽의 물로 운봉에서 발원하여 함양, 산청, 단성을 지나 남강이 되는 물 그리고 천왕봉에서 발원하여 청천이 됐다가 남강이 되는 물" 등이 물줄기...
람천 건너, 구룡관광호텔
둘레길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월평리를 지나온 도로에 합류
람천 건너 서룡산 , 투구봉, 조망
중군마을 앞에 도착
중군마을 유래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중군리는 삼한시대에부터 지리산을 경계로 진한과 변한의 국경지역에 위치하여 군사상의 요충지였으며, 마한 54개국 중 고랍국(古臘國)이 위치하고 있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역에 속했고 고려 시대에는 운봉현에 속하였다. 고려 군대의 기본 편성은 중. 전. 후. 좌. 우군의 오군이었는데, 중군은 그 가운데서 중앙에 위치한 부대이며 고려 오군 중 중군이 주둔한 곳이므로 마을 이름을 중군리라 하였다 전해진다. 고려 말 1380년 삼도 순찰사였던 이성계의 황산대첩 이후 1385년경(고려 우왕 10) 배씨(裵氏) 일가가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1590년 경 배씨족이 쇠퇴하면서 전주 최씨, 김해 김씨, 안동 권씨, 남원 양씨 등 4개 씨족이 정착하면서 큰 마을이 형성되었다.마을 입구에는 성곽과 '중군정(中軍亭)'이란 현판을 단 누대가 위용을 뽐내고 있고,
그 앞에는 '중군마을 안내판'과 마을 내력을 세긴 비석이 세워져 있다.
중군마을
이성계가 왜군을 쳐부술 때 인솔하던 부대 중, 중군이 주둔하였던 곳이라 하여 중군 마을이 되었다는 겁니다.
고려 우왕 6년인 1380년 8월 현 군산의 진포에서 나세와 최무선에게 대패(진포대첩)를 한 왜구의 잔당이 상주를 거쳐 남하하여 주둔하고 있던 곳이 인월과 운봉 부근이었다. 이때 이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임명된 삼도 도원수 이성계는 백두대간 여원치에 주둔하고 있던 붕, 꿈을 꾸게 된다. 소복을 한 여인은 이성계에게 왜구를 격퇴할 작전을 들려준다.
심상치 않은 꿈이라 판단한 이성계는 그 꿈의 내용대로 작전을 수행하여 황산전투(황산대첩)에서 대승을 거둔다.
그때 인월에서 산내, 반선으로 도망가던 왜구 잔당을 쫓던 부대가 상군上軍, 그리고 그 부대를 지원하는 부대가 중군으로 그들이 주둔하던 곳이 바로 여기라는 얘기가 된다.
부언하자면 상군에 쫓긴 왜구들은 일본으로 도망가기 위해 뱀사골을 통하여 화개재로 오른다.
그러고는 백두대간 능선을 타고 지금의 연하천 - 영신봉 - 천왕봉 루트로 진행한다.
가는 도중 영신봉 아래 영신암에 들러서는 가섭상에, 천왕봉의 성모사에 들러서는 성모석상의 목을 각 훼손하였다.
중근마을로 발 걸음 걷는 둘레길 3구간
둘레길 아래로는 주랑흙집 팬션
이곳이 상신암 코스와 선화사 코스로 갈리는 곳
예전 지도에는 황매암으로 되어 있는데 최근 선화사로 그 이름을 바뀜
상신암 코스는 아까 중군리에서 진행하던 도로와 연결되는 평이한 길
산길 코스인 선화사 방향 루트 길로
선화사 까지는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는 그 길
백운산904.1m 조망
선화사( 예전의 황매암인 선화사)
전북 남원시 인월면 중군리 261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선화사에서 소장 중인 불교경전 '묘법연화경'은 조선 초기 불교판본 및 서지학적으로 중요한 자료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23년에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선화사가 자리하는 덕두봉(德頭峯)은 일명 흥덕산(興德山) 혹은 용산(龍山)으로 불렸고, 운봉읍 화수리와 인월면 중군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전설에 따르면 덕두봉은 산기슭의 ‘용마름산’이 옛적에 자꾸 움직이자 어느 도사가 칼로 산을 갈라서 석축을 쌓고 산을 못 움직이도록 하였다고 한다. 용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요한 곳을 갈라놓아서 용이 멈추어 형성된 산을 용산이라 이름하였고, 현재도 ‘용산리‘라는 지명이 실재하고 있다.호젓한 산길(둘레길) 걷는다.
삼선암을 거쳐온 둘레길과 다시 만나는 수성대 약수쉼터
시멘트 도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우측으로 백련암
상당한 고지에 있을 백련암에 오르면 바로 뒤가 덕두산이니 그 뒤로 서부능선을 진행 됨
수성대
지리서부능선 바래봉에서 내려오는 물줄기 하나를 만나는 이곳
수성대인데 예전에 외성外城을 지키는 수성군이 잠시 머물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수성대
선화사를 지나 호젓한 산길을 걷다 보면 반가운 계곡이 나오는데 수성대 계곡이다. 인근의 중군마을과 장항마을의 식수원으로 쓰일 만큼 맑고 깨끗한 물이다. 수성대는 과거 전란 때 외성을 수비하는 수성군이 잠복한 곳이라 하여 불리게 된 지명이다.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두른 이곳의 지형이 적이 드나드는 모습을 세심히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부터 지리적 요새였던 이 근방에는 자연마을로 중군, 돌재, 백련암, 수성대마을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중군마을 외에는 모두 폐촌이 되었다.배너미재
수성대에서 산길을 따라 오르다가 내리막이 시작되는 지능선 마루는 운봉이 호수일 때 배가 넘나들었다는 전설이 있는 배너미재이다. 배너미재는 운봉의 배마을(주촌리), 배를 묶어두었다는 고리봉과 함께 연결되는 지리산 깊은 산속에 있는 배와 관계된 지명이다. 행정마을은 고리봉에 배를 매어두었을 때 가장 밑바닥인 지점이라 하고, 노치마을은 그 배를 내려다보던 갈대밭 자리라고 한다. 아주 먼 옛날에 큰물이 져서 온 세상이 바다가 된 적이 있었다는 대홍수 설화에서 유래한 마을의 이름들은 그만큼 오래된 그 지역의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배넘이재는 장항 사람들이 인근 마을로 가거나 풍개(자두)를 사 먹으러 다녔던 추억의 고갯길이라 한다.
백운산 조망 바로 옆이 앞으로 걸어 지날 등구재
삼봉산 조망
장항마을과 건너편의 일성지리산콘도 뒤로 금대산, 삼정산
일성지리산콘도
장항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당산나무
장항마을의 ‘당산소나무’. 마을 뒤 언덕에서 천왕봉을 배경으로 우뚝 서있는 한 그루의 거대한 소나무, 수령이 400년도 넘으며, 마을 지켜준다고 해서 당산제까지 지내오고 있다함.
노루목 당산 소나무
남원시 산내면 장항리 윗당산에 해당하는 장항마을은 백두대간 지리산의 한 능선인 덕두산(德頭山)에서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한 자락이 부챗살처럼 흘러내려 남쪽에는 살강골과 바람골을, 가운데로는 뒷골을, 그리고 북쪽으로는 높고 듬직한 옛골을 만들어 마을을 아늑하고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풍요로운 마을이다.
이 당산이 있는 자락은 옛골로서 마치 노루가 목을 길게 내민 형국이기 때문에 옛 이름은 ‘노루목’이라 불렸으며 지금은 노루 장(獐), 목 항(項) 자를 써서 장항리로 부른다. 노루목에는 세 개의 당산이 있는데, 이곳에 당산을 모신 사연은 북쪽이 텅 비어 북풍이 고스란히 마을로 넘어오기 때문에 바람이 지나는 길목에 당산을 세워 그 허함을 막고 문(門)을 달아 복(福)을 가두어 마을의 지리적 허(虛)함을 극복하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해마다 정월 보름에 세 곳의 당산에서 당산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이곳 윗 당산에서만 매년 정월 초사흗날에 제를 지낸다.
당산나무의 수고는 10여 m이고 수관폭이 15m에 달하며 사방으로 가지가 고르게 자라 매우 빼어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이 소나무는 마을이 형성될 무렵인 1600년대부터 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고 전해온다. 소나무 주변에 쌓아 올린 석단(石壇)은 당산제를 마치고 제물을 묻어 당산 신을 비롯해 산신령과 산짐승, 그리고 온갖 미물들에게도 정성을 들이는 헌식(獻食)의 장이다. 지금도 주민들은 지리산의 자연환경과 오랜 역사, 그리고 옛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자라온 소나무를 마을 수호신처럼 여기고 있으며, 소나무의 보호와 더불어 유서 깊은 고유의 당산제 전통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장항마을 당산제는 음력 정월 초이튿날 밤 12시에 산제당 소나무 아래에서 ‘바람골 계곡’ 물을 떠서 산신제를 지낸 다음, 다음날 새벽 2시에 중당산에서 본제를 올리고, 마을 앞 아랫당산(할머니당산)에서 마무리 제를 올리는 순서로 진행된다. 제사 후에는 모닥불을 피우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밤을 새워 논다고 한다.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내려서다가 커다란 정자나무가 자리한 장항마을 쉼터
장항마을
느티나무에서 오른편으로 장항마을(獐項里)’이다. 덕두산 줄기의 산자락에 위치한 마을로 산세가 노루목과 같은 형국이라 하여 ‘노루 장(獐)’자, ‘목 항(項)’자를 써서 장항리라 했단다.
장항마을 입구의 시멘트 도로.
둘레길 3구간은 좌틀
우틀하면 지리산 신선둘레길이라는 안내판
지리산 신선둘레길
남원시에서 2012년 조성한 둘레길이다. 백두대간 끝자락에서 거대한 산으로 훨훨 일어나 능선의 길이가 무려 40km가 넘고 20여 개의 봉우리들이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솟아 있으며, 무수히 많은 비경들을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족의 애환이 서려있는 따스한 어머니의 품 같은 민족의 영산 지리산 자락인 노고단, 반야봉, 토끼봉, 삼정산에는 신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먹고, 자고, 수려한 비경을 즐기며 바둑을 두면서 놀다 감탄하며 돌아갔다는 그 길을 복원하여 삶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이 단 하루라도 신선같이 마음을 비우고 편안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거닐 수 있는『지리산 신선둘레길』을 조성하였다.
1코스 : 장항리 - 원천마을 - 팔랑 - 팔랑치 - 바래봉
2코스 : 장항리 - 원천마을 - 내펑 - 반선(뱀사골) - 학천 - 덕동 - 달궁장항마을에서 장향교 람천 건너편의 매동마을로 이어지는 도로
장항교’ 아래로는 ‘람천’이 흐른다. 산내면의 들녘에서 만수천의 물줄기를 보탠 냇물은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도계에서 다시 협곡을 통과하면서 ‘임천(林川)’이 된다. 이 임천은 남강, 남강은 본류인 낙동강이 되어 남해로 흐른다.
매동마을
고려 말과 조선 초.중기에 걸쳐 네 개의 성씨(서, 김, 박, 오) 일가들이 들어와 일군 씨족마을이다. 마을 형국이 매화꽃을 닮은 명당이라서 매동(梅洞)이란 이름을 갖게 된 이 마을은, 각 성씨의 오래된 가문과 가력을 말해주듯 네 개의 재각과 각 문중 소유의 울창한 송림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조선 후기 공조참판을 지낸 매천(梅川) 박치기가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지은 ‘퇴수정’(退修亭)과 그 후손이 지은 재실인 ‘관선재’(觀善齋)가 있는데, 우거진 소나무들을 뒤로 두르고 앞으로는 만수천이 흐르며 발밑에는 흰 너럭바위들이 어우러져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박치기 생존 당시에는 백여 명에 달하는 시인묵객들이 이 정자 밑 너럭바위, 세진대(洗塵臺)에 모여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매동마을 앞을 흐르는 만수천은 여러 골짜기의 물들이 모여들어 붙여진 이름인데, 노고단에서 시작되어 달궁계곡, 뱀사골과 여러 지리산 골짜기의 계곡들이 합류하여 굽이굽이 흐르다 산내면 실상사 부근에서 람천에 합류하여 엄천으로 흐른다.가파른 시멘트 포장도로
서진암'으로 이어진다는 표지석 방향으로
서진암 삼거리
여기서 서진암으로 올라가 좌틀하여 백장암으로 가거나 우틀하여 금강대 - 서룡산 - 투구봉으로 오를 수 있음
빼곡하게 들어찬 소나무숲
우측으로 가면 지리산 사진작가의 갤러리인 '길섶'이 있다는 표지판이 있는 갈림길에서 좌측 돌계단길로
옛날 축대를 쌓아 만든 경작지가 이제 소나무가 자라는 '묵답'으로 변하였다는 설명판
사람 손이 떠난 논밭, 묵답
산업화의 물결 따라 농부는 논밭을 버리고 도시로 떠났다. 한때 고추가 익고, 벼가 고개 숙이던 논밭은 농부의 발걸음이 끊기자 나무가 들어서 이제 숲으로 거듭나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땅의 본능을 볼 수 있다.
우천 시 위험하다는 계곡
하황마을 해오름펜션
좌측 투구봉과 삼봉산 방향 등구재 우측 백운산 조망
삼봉암 갈림길
등구재가 가까워져 옵니다.
등구재는 이 부근에 있다 지금은 폐사된 등구사로 인해 생겨난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삼봉암이 훌륭한 절터이니 혹시 예전의 등구사 터에 새로 진 게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영남학파의 종조인 점필재 김종직 선생은 함양군수로 있던 1472년 8월 14일 유호인, 조위 등과 함께
지리산 산행에 나섰습니다.
예전 말로는 유람이었지만 그 유람이 산으로 들어오면 현대어로는 등산 아니겠습니까?
천왕봉 - 영신봉 등을 들르고는 백무동으로 하산하였습니다.
선생이 훌륭하게 4박 5일 일정의 산행을 마치고 귀가를 할 때 지났던 루트가 바로 이 길입니다.
등구재를 넘어 오도재를 거쳐 함양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이쯤 되면 조의제문 사건으로 35세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탁영 김일손(1464~1498) 선생이 생각날 법도 합니다.
탁영 김일손은 1489년 4월 14일 정여창, 김형종 등과 함께 산행을 나섰습니다.
천령天嶺 그러니까 지금의 함양을 출발한 세 사람은 등구사에 도착합니다.
"불룩하게 솟은 산의 형상이 거북같은데 절이 그 등에 올라앉아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래된 축대가 우뚝한데 그 틈새에 깊숙한 구멍이 있었다.
석간수가 북쪽에서 그 속으로 졸졸 소리를 내며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위에 두 개의 사찰이 있었는데 우리는 동쪽 사찰에 묵었다."
지리산상순이 쉼터
사계절여행이라는 펜션이 건너로 보이는 배정교
용두암 방향 도로를 두고 둘레길 이정표를 따라 우측 내림길로
밭두렁으로 이어진 둘레길
논들길 쉼터
데크길이 조성된 상황소류지
상황소류지
상황소류지 쉼터
저마다의 풍경을 가진 마을길과 고사리, 사과 등 밭작물이 철따라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임도, 온갖 나무와 야생화가 반기는 숲길, 다랑논과 전망대, 오르막과 내리막의 고갯길, 이정표처럼 우뚝 솟은 고사목과 숲속에 숨어 있는 묵답까지 지리산둘레길의 다양한 표정을 한 구간에서 다 볼 수 있다. 매동마을을 지나 중황마을 닿기 전 숲속에서 묵답 ‘떼보네논’을 만난다. 한때는 삶의 터전이었던 묵답은 농부의 발걸음이 끊기자 온갖 나무와 풀들이 자라 숲으로 거듭나고 있다.
중황마을을 지나고 상황소류지 벚나무 아래에서 땀방울을 한번 훔치고 걷다 보면 상황마을 너른 들판에 다랭이논들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하황, 중황, 상황마을은 마을 뒤 백운산에 황강사란 절이 있어 붙여진 이름들이다. 산내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상황마을은 전라의 끝자락이다. 재를 넘어가면 만나는 마을은 경상 땅이다. 500년 넘는 세월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한 느티나무가 지켜주는 상황마을을 지나 등구재로 향하게 된다.소류지 우측 지리 북부능선의 삼정산은 물론 주능선과 중황·하황마을이 시원스레 조망
천석꾼이 살았다는 상황마을 주변은 온통 다랑논 일색이다. 다랑논은 산골짜기 비탈진 곳에 층층으로 된 좁고 긴 논을 말한다. 지리산 자락 완만한 비탈을 따라 조성된 다랑논은 무수히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된 풍경이다.
등구재 오름길 마지막 쉼터인 등구령쉼터
등구재(登九峙, 650m)
북쪽 삼봉산(1,186.7m)과 남쪽 백운산(902.7m) 사이에 있는 안부(鞍部) 고개로, 행정구역 상으로는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와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의 경계 지점이다. 아홉 구비를 오르는 고개라는 의미로 등구치(登九峙)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한편으로 거북 등을 닮아 한자 거북 구(龜)를 써 등구재라 했다고도 한다.
과거 경남 함양군 마천면 창원마을 사람들이 전북 인월장에 가거나 남원의 산내 운봉으로 넘어 다니던 고개다. 고개 양옆으로 흐르는 물줄기들은 남천(람천)으로 흘러들어 간다. 여름철 늦은 시각 동쪽 법화산 마루에 둥근달이 떠오르면 노을과 달빛이 어우러져 한껏 아름다움을 뽐낸다.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르는 등구재에 올라서게 되는데,
등구재 좌측은 삼봉산(1,187m)으로, 우측은 백운산(903m)을 거쳐 지리능선 조망맛집인 금대암으로 이어진다.
사유지 민원발생으로 좌측 도로로 우회하라는 안내판이 설치된 시멘트포장도로에 접속하게 되는데, 예전에는 우측 도로를 따라 창원마을로 바로 이어갔으나 이제는 좌측 도로를 따라 1.5km 남짓을 우회하여 진행하는 길로
우측으로 천왕봉, 좌측으로 진행하는 줄기가 바로 지리동부능선이면서 덕천지맥이기도 하고, 지리태극종주 루트이기도 하며 신산경표에서는 웅석지맥이라고 부르는 곳이기도 함, 천왕봉은 중봉, 하봉을 거쳐 쑥밭재를 지나,
창원(昌元) 마을
경남 함양군 마천면 창원마을은 조선시대에 마천면 내의 각종 세금을 거둔 창고가 있었다는 유래에서 '창말(창고마을)'이었다가, 이웃의 원정마을과 합쳐져서 지금의 창원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창원마을은 일찍부터 전통한지를 생산해 왔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 마을 이상옥씨가 3대째 한지를 생산해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이곳에서 자란 닥나무를 채취해 만드는 이씨의 한지는 여러 겹으로 치밀하고 광택이 나는 것이 특징이며, 또한 색감이 변하지 않으면서 통기성과 보온성이 뛰어나 오래도록 보존이 가능하다. 닥 섬유가 친환경 천연섬유라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농한기에 약 6,000여 장의 한지를 생산해 농가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함양군에서는 전통산업 보존을 위해 무형문화재 지정과 한지 생산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한다.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달콤한 쉼을 제공했을 원두막이 있는 감나무밭
TV 프로그램 ‘1박 2일’에서 강호동과 이승기가 걷던 길
미운 오리 새끼’에서는 이상민과 김준호, 박군이 걸었다.
두 그루의 거대한 창원마을(윗당산) 당산나무
신우대숲 터널
창원마을
지리산 천왕봉도 보이고 멧돼지 목욕탕도 보이는 재를 오르고 내리다 보면 어느덧 창원마을에 다다른다. 조선시대 마천면에서 각종 세로 거둔 차나 약초, 곡식 등을 보관하는 ‘창말’(창고마을)이었다가 이웃 원정마을과 합쳐져 창원마을이 되었다. 마을에 보관된 물품들을 오도재를 넘어 지게로 날랐다고 한다. 곳간마을이었던 이력 때문일까. 지리산 깊숙이 자리해 있지만 현재도 자립도가 높은 마을이다. 다랑논과 장작담, 집집마다 호두나무와 감나무가 줄지어 있는 마을풍경이 소박하나 풍요로워 보인다. 창원마을에는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우수한 품질의 닥종이를 생산하는 농가가 아직도 있다. 마을 어귀 당산(아랫당산)에는 300여 년 수령의 느티나무와 참나무 네댓 그루가 둥그렇고 널찍한 당산 터를 이루어 재를 넘어가는 길손들의 안녕을 빌고 쉼터를 제공한다. 지친 나그네를 두 팔 벌려 맞아주는 듯한 창원 당산나무들 앞에 서면 누구나 아이처럼 아름드리 당산을 껴안아 보게 된다.창원산촌생태마을 이라는 체험형 숙박시설
하늘길 이란 이름이 붙여진 창원마을에서 금계마을로 가는 산길
지리산둘레꾼들이 저마다 추억을 남기는 '하늘길 포토 포인트'인 고개 지점을 넘게 되는데,
길이 마치 하늘로 이어지는 듯이 보여서 그리 이름 붙여졌는지는 모를 일이나 우리도 추억을 남겨 본다.
고개를 넘어서면 좌측 멀리로 칠선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의중마을이 내려다보이고, 뒤편 천왕봉과 지리 주능선 우람한 모습은 드러내 보여주고,
오도재
석재를 채취하기 위해 거대한 산 하나를 통째로 부숴 버린 마천의 석산
지리산 옛술도가
우리나라 최장계곡인 그 이름도 아름다운 칠선계곡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의탄리 추성동으로 들어가는 곳
동강마을 방향 뒤로 조망되는 왕산
금계마을
금계(金鷄) 마을의 원래 이름은 ‘노디목’이었다.
이 마을은 안국사 아래 생겨난 사하촌(寺下村)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금계라는 이름의 유래는 뒷산 이름이 금산이었고, 마을의 모양이 닭을 닮았다 해서 금계가 되었단다. 하지만 원래 이름은 노디목. 물을 건널 때 딛는 디딤돌, 즉 징검다리마을을 의미한단다. 이 마을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은 한국전쟁 때이다. 당시 군경 토벌대는 지리산 산간 지역에 흩어져 있던 마을들이 빨치산의 식량 보급처이자 은거지가 된다고 판단해 대대적인 소개 작전을 펼치게 된다. 이때 근동에 흩어져 있던 추성·의평 등의 여러 마을을 불태우고 강제로 이주시켰는데, 그들이 이주해 온 곳이 바로 이곳 금계마을인 것이다.
지리산둘레길 3구간 함양센터
함양의 오도재로 가는 길목마을인 창원마을을 지나 다시 이어지는 숲길. 아기자기한 오솔길과 계곡을 끼고 있는 숲길이지만 호락호락하진 않은 고개를 한번 더 넘어야 한다. 고개를 넘으면 칠선계곡과 천왕봉이 한껏 다가오고 지리산둘레길 함양센터가 있는 금계마을에 다다른다. 인월-금계구간과 금계-동강구간의 시종점이다.폐교된 마천초등학교 의탄분교장 건물을 활용한 지리산둘레길 함양군안내센터는 휴게소와 샤워장 등을 갖추고 있다.
지리산 둘레길 3구간 종점 금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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