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지리-대성골
    지리 산행기 2019. 7. 29. 14:06

     

     

    # 언제: 2019년 07월 28일 일요일

    # 산행지: 경남 하동 의신마을 빨치산 몰살 현장 비운의골짜 대성골 산행

    # 산행거리: 16.13km   09시간32분

    # 산행코스:신마을(지리산역사관) - 원통암갈림길 - 대성주막 - 대성리 - 작은세제골초입지 -

                    큰세제골초입지 - 큰세제골 - 대성폭포 - 의신마을(지리산역사관)&원점회귀산행

     

    # 대성골(영신봉에서 뻗어 큰골을 이룬 이름)

    세석 남서쪽 큰 세제골, 작은 세제골, 수곡골이 모인 계곡, 대성골은 지리산 남부능선의 물이 모두 모여든다 해서 붙여진 이름, 큰 大, 이룰 成, 골짜기마다 모인 위치에 있는 마을 이름 역시 대성골, 옛 원대성마을을 작전상 이주하게 한 곳이 대성 골 이란다.

     

     

    대성골은 지리산의 (영신봉과 칠선봉)의 남쪽 계곡을 따라 흘러내린 계류가 합수되어 크고 작은 폭포수와 소를 만들며 (의신계곡)의 계류와 함께 (화계천)으로 이어져 내리는 지리산에서도 이름 있는 깊은 계곡이다. 골이 깊은 만큼 계류는 내려 갈수록 수량이 늘어나 물소리는 점차 웅장한 소리를 내며 대성골을 압도하고, 원시림에 가까운 숲도 이에 질세라 짙은 녹음으로 하늘을 가리며 계곡의 물소리까지 뒤덮어 버린다.

     

    원시림의 계곡은 에메랄드빛을 담은 소를 만들어 풍덩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는 산객들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유혹의 눈길을 넌지시 던지며 시험해 오고, 어디서부터 굴러 내려왔는지 집채만 한 바위들은 어느새 계곡의 무법자가 되어 시위를 벌이고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있는 위용이 산객들의 마음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대성골을 내려오다 철다리를 하나 건너면 그 때부터 계곡은 달아나고 물소리만 들으며 울울창창 숲길이 이어지고 길은 어두울 정도로 울창한 숲을 자랑한다.


    웅장한 계곡과 깊은 산세는 짙은 녹음의 신음하는 소리로 가득 차다. 푸르다 못해 광활하게 깊어진 녹음은 물소리를 압도하며 계곡을 포용하는 신음소리로 진동한다. 이런 길을 걸을 때는 말이 필요 없다. 심중의 눈과 귀를 열고 사색에 들면 신음소리를 듣게 된다. 지리산이 지리산다움은 이런 울창함과 골의 장엄함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 지리산  대성골  6·25 전쟁 중 남부군 비운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

    화개천 따라 차로 올라가 신흥에서 좌회전하면 범왕리 칠불사 가는 길 계속 직진하면 의신마을 거기서 세석과 빗점골로 가는 등산로가 시작. 대성골은 백선엽 장군이 이끄는 토벌대에 의해 빨치산이 몰살당한 곳.

     

    정충제 작(실록 정순덕)   이기형 작(죽음의 골)   이태 작(남부군)

    이들 기록에 의하면, 1952년 1월 17일과 18일이 최대 격전기 그 해 1월 한 달 동안이나 야전 사령부의 3기 토벌작전이 시작 1월 17일 무렵 지리산 온 골짜기는 함박 눈이 퍼붓는 가운데 날이 저물자 빗점골, 거림골, 신흥의 빨치산이 몰려든 대성골. 1,000 명 - 1만 명에 이르는 빨치산이 몰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52년 1월남은 빨치산은 이기형 작 '죽음의 골'에 나오는 800 명. 빨치산 몰살 사건이 대성골에서 이뤄진 것은 지형적 특성 때문이었다. 지리산 계곡 중 대성골이 가장 산세 깊은 협곡이고 궁지에 몰린 집결지...

     

    18세 정순덕 여인이 4~5일 불바다에서 생쌀 한줌으로 버틴 곳, 잠 한숨 못자고 혹한 속에서 뜬눈으로 서서 버틴 사투 끝에 생존, 그녀의 증언에 의하면 토벌대의 작전으로 모든 도주로가 차단되고 대성골로 가는 길만 터놓아 쫓기던 빨치산들이 이곳에 몰려들었고, 항공기를 동원한 기름통 투하 및 소염탄 폭격으로 눈밭 위엔 불바다, 1951년 12월 2일 시작된 백야전 사령부의 제1차 동계토벌작전, 빨치산들에게 많은 타격을 주었는데, 그 타격 중 대표적인 사례 대성골 빨치산들이 입은 타격은 아래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다.

     

    1952년 1월 17일은 온 골짜기를 가득 메워버릴 것처럼 함박눈, 날이 저물며 빗점골, 거림골, 신흥 등지에서 몰려든 빨치산들 다음날 새벽 즈음 어디서 그렇게 많이 모여 들었는지 인산인해 정순덕 여인이 가늠하기에도 1만 명의 대병력이 들어찬 것이다.


    빗점골 의신부락 뒤쪽의 토벌대가 언제 야포를 끌어다 놓았을까, 대성골로 포탄이 날아들기 시작했고 스무 발 이상씩 동시에 작렬, 귀청이 찢어질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귀가 달아나는 듯, 시간이 지날수록 희생자는 불어났고 점점 좁혀지는 포위망, 토벌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훤히 내려다보며 토끼몰이 포위망을 좁히며 포격을 퍼부어대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동작 빠른 전사들은 토벌대와 맞부딪치며 포위망을 탈출, 대다수는 독 안에 든 쥐처럼 빠져나가지 못하고 죽어갔다, 하루 종일 퍼부어대던 포격도 총격도 해가 지면서 주춤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쪽 하늘에서부터 비행기 소리, 머리 위에 떨어지는 물체들은 휘발유가 가득 찬 드럼통 비행기 편대는 네다섯 번 마개 빠진 드럼통을 떨어트렸다.

     

    그러다가, 마지막 편대가 주먹만 한 소이탄을 곳곳에 뿌렸다, 그 순간부터 하얀 눈으로 덮혀 있던 대성골은 시뻘건 불바다. - 정충제 기록, (실록 정순덕) 상권, 272-276쪽에서 발췌 -

     

    의신마을 주민 정윤균(59세)씨 증언???

    대성골은 숫더미 같았고 서캐 낀 듯한 인골들이 널려 있었다 훗날 나병환자들이 몰려와 인골을 추스려서 가져가기도 했었다, 몇 년 전까지 대성골 상류에서 인골을 목격한 사람들이 많다. (폭포수골'과 세석평전 서쪽 병풍바위 아래의 인골들)

     

    당시 아비규환의 협곡에서 비참한 최후를 마친 빨치산들 유해 지금까지도 대성골은 거목이 드물고 팔뚝 굵기의 잡목들이 주종 반세기 전 그 당시 참상을 간접적으로나마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군데군데 숲 속에 있는, 녹쓸은 폭탄 껍데기들, 지리산 빨치산 투쟁에 분기점을 이룬 백 야전 사령부의 토벌작전 '실록 정순덕'에 대성골은 그 후 닷새 간 불길에 휩싸였다고 기록 빨치산들의 대화 형식을 빌어 칠팔천 명이 몰살한 것처럼 말한다, 과연 그렇게 많은 수의 빨치산들이 죽었을까?

     

    군 경측 기록인 '공비연혁'을 보면 1952년 1월 5일 현재, 즉 대성골 참극 전 지리산 일대 잔존 공비 수는 1,250명

    그 사건 두 달 후인 3월 31일 현재 잔존 공비 수는 332명 실록 정순덕'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여하튼 대성골 전투에서 빨치산들이 타격 받은 것은 사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군경 역시 적지 않은 사상자를 낸 듯. 이러한 사실은 백선엽의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가 있다.

     

    백선엽은 제1차 지리산 토벌(51년 12월 2일 - 12월 14일) 2차 지리산 주변 각 도당의 토벌을 마치고 다시 지리산 집결, (전남도당: 광양의 백운산·화순의 백아산·순천의 조계산, 전북도당: 회문산, 운장산일대 51년 12. 20. - 52. 1. 5 일) 수도사단과 8사단 경찰병력을 동원하여 지리산을 압박해왔다. 토벌대는 51년 1월 17일 처음 빨치산의 강한 저항에 부딪혔다, 백선엽의 표현에 의하면 최초의 교전다웠던 교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타격을 입은 쪽은 빨치산들이었는데. 경남도당 위원장 남경우, 부위원장 허동욱이 전사한 것, 결국 대성골 전투는 토벌대와의 교전 속 에서 빨치산 패배???

     

    원래 대성동은 지금 있는 곳에서 4km 정도 더 들어가 있는 위치, 60년대 후반에 지금 있는 곳으로 옮겨졌기에 원 위치는 (원대성) 원대성은 무당골이라 불릴 만큼 무속인들이 모여든다, 세석 음양수가 발원지인 이곳 개울은 여름 피서객 휴양지, 남향의 용왕소 주변은 돌탑 제단에 울긋불긋 천 조각 흔적들. 득도하려는 구도자 무속인을 비롯한 현실 도피자들의 은둔처, IMF 이후 꾸준히 소탕해 왔지만, 여전히 근절이 어려운 곳, 사업 하다가 망한 경제범들로부터 애매모호한 관계의 연인들, 등산객이 남긴 식량이나 굿판 음식으로 연명하는 사람도 많다.

     

    음양샘 전설의 주인공인 듯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리는 연인, 조난당한 등산객을 구조하거나 도와주며 생계유지하는 기인, 소탕작전을 펼 때마다 필사적으로 탈주하는 '빠삐용' 신 풍속도. '작은 세 제 골' 원시림 상부는 낙석 위험이 높아 접근 위험, 예나 지금이나 대성골은 현실에서 벗어난 은둔자들 은신처, 지리산 계곡 중에서 가장 넓은 산세와 깊고 깊은 골짜기 둥근 바위들과 더위를 잊게 하는 물줄기 속으로 오늘 우리는 간다,

     

    대성골은 6·25 전쟁 중 남부군 비운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 하지만, 반세기가 흐른 대성골에는 당시 흔적이 오간 데 없다, 그곳 물은 물대로, 바위는 바위대로 묵묵히 세월을 지켜볼 뿐이다,

     

    살아있는 행복


    인생을 너무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
    지금의 인생이 초라해집니다.

    인생은 그냥 길가에 풀 한포기가 나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살았네!’
    한 번씩만 외쳐 보세요.

    살았다는 느낌보다
    인간에게 더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것은
    없습니다.

    인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지 마세요.

    항상 현재에
    살아야 합니다.

    현재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살아있다는것입니다.

    불행한 이유들을 만들어서
    움켜쥐고 있지 말고, 놓아버리고
    살아있는 행복을 누리시면 좋겠습니다.

     

    -법륜스님-

     

    # 산행지도

     

     

     

     

     

     

    # 산행사진

     

    # 하동의 지리산 역사관

     

     

    # 오늘 함께한 산우님

    원 산행 계획했던 삼정마을, 빗점골, 원골, 토끼봉, 화개재, 목통골, 칠불사, 산행코스는 어제 내린 장마 폭우로 계곡물 불어나 산행지 변경 지리산 6·25 전쟁 중 남부군 비운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 대성골???

     

     

     

     

     

     

    # 지리산 역사관에서 200m정도 되돌아 내려오면 왼쪽에 이정표(원통암 0.9km. 대성동 2,5km. 세석대피소 9.1km)와 산행 안내도가 있다. 이정표 아래의 많은 산행 리본. 우린 백소령 산장 방향 행(行).

     

     

    # 백소령 산장앞에서 원통암은 직진, 대성골은 오른쪽이다. 원통암은 서산대사(1520~1604)가 출가(1540)한 곳으로 休靜(휴정)이라는 법명을 얻었고 의신마을에 위치한 의신사에서 신흥사가 있던 신흥마을을 오가던 길이 서산대사의 수행길이었으며 이길이 서산대사 옛길로 각광을 받고 있다. 서산대사길(지리산 옛길)은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를 거쳐 의신계곡을 지나 지리산 주능선의 벽소령을 넘어 함양군 마천면으로 넘어가던 길 중에서 하동군 화개면 신흥마을에서 의신마을까지 옛길 구간 4.2km를 말한다. 옛 보부상들이 하동, 광양 등 남해안의 해산물을 함양 등 내륙지방으로 운송하던 길이라고 한다. 우린 백소령 산장 앞에서 우측 행.

     

     

    # 포장된 산행 길 에서 한장...

     

     

     

     

    # 올라오면서 되돌아 본 의신마을...

    의신마을은 대성리의 중심 마을로 화개에서도 사찰이 가장 많았던 불교의 요람지였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의신사, 의신 암자에서 도를 닦은 의신조사에서 이름을 따 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의신 윗마을 삼정은 삼각등, 말안장터 등 세 곳의 길지가 있어 이곳에 묘를 쓰면 세 사람의 정승이 나올 것이라 하여 삼정 혹은 삼점이 되었다 한다.

     

     

     

     

     

     

    # 대성마을 입구에 서있는 커다란 소나무의 항상 이곳 대성마을에 도착하기전에 커다란 소나무가 반깁니다.

     

     

     

     

    # 지리산 국립공원의 수많은 골짜기 중에서 가장 깊은 대성골은 1950년 전란을 전후해 지리산에 은거하던 빨치산과 토벌대가 격렬하게 교전한 현장으로 19539월 토벌대는 빨치산을 섬멸하기 위해 대성골 아랫마을 의신에 모여 대성골로 가는 도로만 터놓은 채 다른 길은 차단하여 열흘간 총공세를 펼쳐 의신마을 위의 빗점골은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이 최후를 맞이한 곳으로 유명하며 대성골은 빨치산 1000여 명이 몰살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 여기가 대성동 대성주막 대성동마을은 이곳에서 1km 정도 더 들어간 산골에 있었는데 1968년 울진 삼척 무장간첩 침투사건 이후 정부에서 마을을 산 아래로 내려오게 하여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먹는 식수의 맛이란? 하산하며 막걸리 맛은 어떨까?

     

     

     

     

     

     

     

     

     

     

     

    # 어제 내린 장마 폭우로 계곡물 불어나 산행지인 대성골 계곡도 장난이 아니다...

     

     

     

     

    # 많은 집터가 있다. 이곳이 원대성마을...

    이곳에 살다가 1968년 울진 삼척 무장간첩 침투사건 이후 정부에서 대성마을로 이주시켰는가 보다.

     

     

     

     

     

     

     

     

     

     

     

     

     

     

     

     

     

     

     

     

    작은 세제골의초입지 첫번째 철다리 도착,(의신마을 3.9km/세석대피소 5.2km)가 있고 통제구역은 나무로 막아 놓았다. 대성골은 지리산의 영신봉과 칠선봉의 남쪽 계곡을 따라 흘러내린 새양골, 대성골, 수곡골이 합쳐 대성계류가 되어 크고 작은 폭포수와 소를 만들며 의신계곡의 계류와 함께 화계천으로 이어져 내리는 지리산에서도 이름있는 깊은 계곡이다.

     

     

     

     

    # 철다리에서 바라본 작은세제골 초입의 모습 작은세제골을 계속 오르면 선비샘골 합수부가 나오고 계곡 합수부  에서 우측으로 오르면 심한 너덜길이 계속되는데 이곳을 오르면 칠선봉으로 오를수 있습니다.

     

     

    # 두번째 철다리 지점인데 이곳이 큰세제골 입구입니다. 세석대피소에서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오면 시원한 계곡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대부분 등산객은 쉬어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물론 세석대피소를 오르시는 분들도 이곳을 벗어나면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되기 때문에 이곳에서 땀을 식히고 오르는 장소...

     

     

    # 큰 대성골(세제골)은 오지 중의 오지지만, 오랜 옛날부터 기도처로 소문이 자자하여 대성골 가장 깊숙한 자리에 위치한 영신대(靈神臺)는 지리산에서 가장 영험한 기도처로 통한다. 무속인들이 치성을 드린 제단과 좌대의 흔적이 아직도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한다.

     

    음양수(陰陽水)샘은 완만한 평지에 거대한 돌출바위가 있고 그 밑에서 두 줄기의 샘물이 흘러나오는 신비한 느낌이 드는 석간수(石間水)샘인데도 예로부터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 이 물을 마시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소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원하며 지낸곳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부터 각종 천막들이 철거되어 지금은 그러한 모습을 찾기 힘들다. 햇볕이 드는 곳이 양수(陽水), 그늘진 곳이 음수(陰水)라고 하며 두 줄기의 물이 음양화합이 한 군데로 합쳐지며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여름철에도 물맛이 아주 시원한 이 샘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온다.

     

    옛날 대성골에는 호야(乎也)와 연진(蓮眞)이라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자유롭고 평화스럽게 한 가정을 꾸미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아무 부러울 것이 없는 이들에게 오직 자식이 없다는 한 가지 걱정이 있었는데 어느날 곰이 찾아와 연진 여인에게 세석고원에 음양수샘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이 물을 마시며 산신령께 기도하면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연진여인은 기뻐 홀로 이 샘터에 와서 물을 실컷 마셨는데 호랑이의 밀고로 노한 산신령이 음양수샘의 신비를 인간에게 알려준 곰을 토굴 속에 가두고 연진여인에게는 세석 돌밭에서 평생 철쭉을 가꿔야 하는 가혹한 형벌을 내리게 되었다. 그후 연진여인은 촛대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 산신령을 향하여 속죄를 빌다가 돌로 굳어져 버렸고, 아내를 찾아헤매던 호야는 칠선봉에서 세석으로 달려가다 산신령의 저지로 만날 수 없게 되자 가파른 절벽 위의 바위에서 목메어 연진여인을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세석고원의 철쭉은 연진의 애처로운 모습처럼 애련한 꽃을 피운다고 하며 촛대봉의 바위는 바로 연진이 굳어진 모습이라는 애달픈 사연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 큰새제골의 주계곡을 오르니 우측에도 멋진 지계곡의 폭포도 만납니다.

    여기서 폭포와 벗삼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곡치기 산행에 최고 별미 라면 그리고 삼겹살 맛있는 점심을

     

     

     

     

     

     

     

     

     

     

     

     

     

     

     

     

     

     

     

     

     

     

     

     

     

     

     

     

     

     

     

     

     

     

     

     

     

     

     

     

     

     

     

     

     

     

     

     

     

     

     

     

     

     

     

     

     

     

     

     

     

     

     

     

     

     

     

     

     

     

     

     

     

     

     

     

     

     

     

     

     

     

     

     

     

     

     

     

     

     

     

     

     

     

     

     

     

     

     

     

     

     

     

     

     

    # 이제 드디어 오늘산행의 하이라이트인 대성폭포에 도착합니다, 사진으로만 봐와서 실제로 규모가 얼마나 큰지를 잘 몰랐는데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거대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대성폭포는 거대한 암벽을 타고 내려오는데 약 3단으로 형성된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이곳이 끝인줄 알았는데 오를수록 폭포의 위용이 대단했습니다.

     

     

     

     

     

     

     

     

     

     

     

     

     

     

     

     

     

     

     

     

     

     

     

     

     

     

     

     

     

     

     

     

     

     

     

     

     

     

     

     

     

     

     

     

     

     

     

     

     

     

     

     

     

     

     

     

     

     

     

     

     

     

     

     

     

     

     

     

     

     

     

     

     

     

     

     

     

     

     

     

     

     

     

     

     

     

     

     

     

     

     

     

     

     

     

     

     

     

     

     

     

     

     

     

     

     

     

     

     

     

     

     

     

     

     

     

     

     

     

     

     

     

     

     

     

     

     

     

     

     

     

     

     

     

     

     

     

     

     

     

     

     

     

     

     

     

     

     

     

     

     

     

     

     

     

     

     

     

     

     

     

     

     

     

     

     

     

     

     

     

     

     

     

     

    # 하산 원점산행하며 대성주막에서 막걸리 한 잔씩...

     

     

     

     

     

     

     

     

     

     

     

     

     

     

     

     

    # 즐거웠던 산행후 마지막 한컷...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