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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德裕山 & 무룡 동남릉 조망 산행전국 산행기 2020. 5. 18. 17:38
# 언제: 2020년 05월 17일 일요일
# 산행지: 덕유산,德裕山 & 무룡 동남릉 조망 산행
# 산행거리: 15.34Km 10시간37분
# 산행코스: 빙기실교 - 병곡횟집 - 송어양식장 - 상여덤계곡 - 동엽령 - 대기봉(가림봉) - 무룡산(불영봉) -
데크목계단 - 무룡 동남릉 - 깊은골 - 월성리
# 덕유산,德裕山 & 무룡 동남릉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에 있는 무룡산 동남릉에는 용이 춤추는 모습의 산이름에 걸맞는 암릉코스가 약 0.5km구간 날등길, 마치 구름바다 돌다리를 건너는 기분이 드는 널직하면서도 날카로운 암릉 연속의 선경....
동엽령,同業嶺 해발 1.320m 위치: 경남 거창군 북상면 병곡리
전라북도 무주군의 안성면 공정리에 소재한 고개이다. 공정리 통안에서 거창군 북상면 월상리로 넘어가는 재를 말한다. [한국지명총람] 에 의하면, 이 고개에서 동업령까지는 망봉(1,046m)을 지나고도 가파른 경사면을 지나가야 하므로 높고 멀어서 혼자는 못 가고 여럿이 모여야만 올라갈 수 있었다고 전한다. [조선지형도] (장계)에서 동업령은 외따로 있는 높은 고개라서 인근에 마을이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경상남도로 넘어가는 중요한 고갯길이라서 고개 이름과 도로가 기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무룡산,舞龍山 해발: 1.491m 위치: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산수리
경상남도 거창군의 북상면 산수리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 사이에 위치한 산이다(고도 : 1,492m). 남덕유산에서 북쪽으로 산줄기가 이어져 삿갓봉과 무룡산을 이루며 북쪽에 동업령이 있다. 산의 동쪽사면에서 산수천이 발원하며 산수계곡을 이룬다. 덕유산국립공원에 속한다. 무룡산은 조선시대에 불영봉(佛影峰), 불영산(佛影山)이라고 불렀다.
또한 (거창군사) 의하면 산은 흰덤뿌대기라고 부르는 깨끗하고 신령스러운 산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지리지인 (대동지지) (안의)와 (여지고) 에'불영봉(佛影峯)'이 기록되어 있다. (해동여지도) (안의)에 현의 북서쪽 덕유산에서 남쪽으로 산줄기가 내려와 불영봉이 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 밖에도 (조선지도) (안의), (대동여지도) (17첩3면) 등에 불영봉(佛影峯)으로 기재되어 있다. 무룡산 지명은 용이 춤추는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으며, 옛 지명인 불영산은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친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마지막으로 황동규 시인의 연작시 풍장에서 풍장+28
내 마지막 길 떠날 때
모든 것 버리고 가도,
혀 끝에 남은 물기까지 말리고 가도,
마지막으로 양 허파에 담았던 공기는
그냥 지니고 가리,
가슴 좀 갑갑하겠지만
그냥 담고 가리,
가다가 잠시 발목 주무르며 세상 뒤돌아볼때
도시마다 사람들 가득 담겨
시시덕거리는 것 내려다 보며
한번 웃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번 배 잡고 낄낄대기 위해
지니고 가리.
우리 죽을 때 허파에 담았던 공기는
그냥 지니고 가며...
세상사 내려다보며 배 잡고
낄낄대며 웃고살자구요...ㅎㅎㅎ -꺼비-
# 산행지도
# 산행사진
산행하기전 명승지 거창 수승대,居昌搜勝臺 탐방의 시간을 가져본다....
조선시대 영남 제1의 명승으로 꼽혔던 안의삼동(安義三洞), 그 중의 한곳이 거창의 원학동 계곡이고, 원학계곡 한 구비에 수승대가 자리잡고 있다.
안의삼동: 의삼동이란 조선시대 안의현(지금의 경남 함양군 안의면)에서 경관이 빼어났던 세 곳의 동천(洞天;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 즉 화림동, 심진동, 원학동을 일컫는 말로써, 영남 제1의 명승으로 꼽혔다.
거창 수승대,居昌搜勝臺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황산마을 앞 구연동이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였고 조선 때는 안의현에 속해 있다가 일제 때 행정구역 개편으로 거창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수승대는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가 대립할 무렵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사신을 전별하든 곳으로 처음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하였다 해서 근심 수(愁), 보낼 송(送)자를 써서 수송대(愁送臺)라 하였다. 수송대라 함은 속세의 근심 걱정을 잊을 만큼 승경이 빼어난 곳이란 뜻으로 불교의 이름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 후 조선 중종 때 요수신권(樂水 愼權)선생이 은거하면서 구연서당(龜淵書堂)을 이곳에 건립하고 제자들을 양성하였고 대의 모양이 거북과 같다하여 암구대(岩龜臺)라 하고 경내를 구연동(龜淵洞)이라 하였다.
지금의 이름은 1543년에 퇴계 이황(退溪 李滉)선생이 안의현 삼동을 유람차 왔다가 마리면 영승리에 머물던 중 그 내력을 듣고 급한 정무로 환정하면서 이곳에 오지는 못하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며 음이 같은 수승대(搜勝臺)라 고칠 것을 권하는 사율시(四律詩)를 보내니 요수 신권선생이 대의 면에다 새김에서 비롯되었다. 경내에는 구연서원(龜淵書院) 사우(祠宇) 내삼문(內三門) 관수루(觀水樓) 전사청(典祠廳) 요수정(樂水亭) 함양제(涵養齊) 정려(旌閭) 산고수장비(山高水長碑)와 유적비(遺蹟碑) 암구대(岩龜臺) 등이 있는데 이는 유림과 거창신씨 요수종중에서 공동 관리하고 있으며, 솔숲과 물과 바위가 어울려 경치가 빼어나고 또한 자고암과 주변에는 고란초를 비롯한 희귀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수승대에 얽힌 가슴아픈 사연,
거창은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였는데, 거창이 백제의 땅이었을 무렵, 나라의 기운이 저물던 백제와는 반대로 날로 세력이 강성해져가는 신라로 백제의 사신이 자주 오갔다.
신라로 간 백제의 사신은 온갖 수모를 겪는 일은 예사였으며, 아예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때문에 백제에서는 신라로 가는 사신을 위해 위로의 잔치를 베풀었는데, 그 잔치를 베풀던 곳이 이곳 수승대였으며, '근심[愁]으로 사신을 떠나보냈다[送] ' 하여 여기를 ‘수송대’(愁送臺)라 불렀다 한다.
지금의 이름은 1543년에 퇴계 이황선생이 안의현 삼동을 유람차 왔다가 마리면 영승리에 머물던 중 수송대의 내력을 듣고 급한 정무로 환정하면서 이곳에 오지는 못하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며 '어지러움을 이긴다'라는 음이 같은 '수승(搜勝)'으로 고칠 것을 권하는 사율시(四律詩)를 보낸 이후로 수승대로 불렀다고 한다.
요수정,樂水亭
요수 신권 선생이 세웠던 정자인데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고, 1805년에 다시 만든 것이 지금의 정자다.
신권(愼權): 조선 전기 경상남도 거창 출신의 문인.
신권(慎權)[1501~1573]은 1501년(연산군 7)에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서 태어났다. 장인인 석천(石泉) 임득번(林得蕃)에게서 배웠으며, 갈천(葛川) 임훈(林薰)과 구암(龜巖) 이정(李楨)과 더불어 학문을 쌓았다. 기품이 순의(純懿)하고 도량이 넓으며 활달한 한편, 효우가 지극하였다. 일찍이 벼슬은 남에게 받는 것이고, 내게 간직된 인품은 하늘이 준 것이니 어찌 내게 있는 것을 버리고 남에게 있는 것을 구할 것인가 하고 숨어 살면서 안빈낙도에 힘썼다. 1529년(중종 24)에 수승대(搜勝臺) 일대를 책을 읽고 학문에 힘쓰는 장소로 정해, 함양재(涵養齋)와 요수정(樂水亭)을 건립하여 후학들의 교육에 힘썼다. 1558년(명종 13)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3년 동안여묘하였다. 1573년(선조 6) 12월 23일 73세의 나이로사망한다.
이 정자에는 '수송대'가 '수승대'로 이름이 바뀐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안의삼동을 유람차 왔던 퇴계 이황선생이 처가가 있는 영송마을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곳에 있는 신권 선생을 찾겠다는 전갈을 받은 것 요수정에서 조촐한 주안상을 차려 놓고 기다리고 있는 신권선생을 찾은 것은 이황이 아니라 그가 보낸 시 한통, 급한 왕명으로 찾지 못한 이황은 미안한 마음과 함께 '수송대'의 이름을 바꾼 시를 지었다.
搜勝名新換 (수승’(搜勝)이라 대 이름 새로 바꾸니)
逢春景益佳 (봄 맞은 경치는 더욱 좋으리다.)
遠林花欲動 (먼 숲 꽃망울은 터져오르는데)
陰壑雪猶埋 (그늘진 골짜기엔 봄눈이 희끗희끗.)
未寓搜尋眼 (좋은 경치 좋은 사람 찾지를 못해)
惟增想像懷 (가슴속에 회포만 쌓이는구려.)
他年一樽酒 (뒷날 한 동이 술을 안고 가)
巨筆寫雲崖 (큰 붓 잡아 구름 벼랑에 시를 쓰리다.)
학식이 높은 신권선생이 가만있을리 없었다. 그의 답시에도 바뀐 이름이 언급되었다.
林壑皆增采 (자연은 온갖 빛을 더해가는데)
臺名肇錫佳 (대의 이름 아름답게 지어주시니)
勝日樽前値 (좋은 날 맞아서 술동이 앞에 두고)
愁雲筆底埋 (구름 같은 근심은 붓으로 묻읍시다.)
深荷珍重敎 (깊은 마음 귀한 가르침 보배로운데)
殊絶恨望懷 (서로 떨어져 그리움만 한스러우니)
行塵遙莫追 (속세에 흔들리며 좇지 못하고)
獨倚老松崖 (홀로 벼랑가 늙은 소나무에 기대봅니다.)
옛 선인들의 낭만적인 시로 인해 그때부터 이곳을 ‘수승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거북바위: 수승대에서 가장 이름난 곳은 거북바위이다.
그 생김새가 마치 거북과 같아 구연대 또는 암구대(岩龜臺)라고도 하는데 가까이서 보는 것 보다 계곡 반대편 좀 떨어진 곳(포토존을 만들어 놓았다)에서 보면 영락없는 거북이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바위는 이황이 수승대라 이름지을 것을 권한 4율시를 비롯, 옛 풍류가들의 시로 가득차 성한 곳이 없다. 오랜 세월 풍파에 패이는 것도 힘들었을텐데 살을 파내는듯한 깍힘을 당한 것이라 생각하니 왠지 안스러운 느낌이 든다.
거북바위에 전해오는 전설
장마가 심했던 어느 해, 불어난 물을 따라 윗마을 북상의 거북이 떠내려왔다. 이곳을 지키던 거북이 그냥 둘 리 없어 싸움이 붙었는데, 여기 살던 거북이 이겼음은 물론이다. 그때의 거북이 죽어 바위로 변했으니 거북바위가 바로 그것이라 한다.
산행시작 지점: 빙기실교
덕유산 무룡 동남릉 산행 함께한 산 친구, 형님들 단체사진...
거창 10경인 빙기실계곡
송어양식장...
빙기실계곡(분계천)을 건너는 아치형다리...
무룡산정에서 바라본 목계단과 남령 및 월봉산, 거망산
용이 군무를 펼치는 무룡동남릉과 현성산 및 기백산이 바라보인다.
무룡동남릉에서 바라본 남령
저 멀리 멋진 무룡 동남릉 암릉구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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