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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 산행기 2020. 9. 22. 16:10

    # 언제: 2020년 09월 20일 일요일

    # 산행지: 지리,智異의(국골,날끝산막골,영랑대,향운대)품속으로

    # 산행거리: 15.00Km   12시간37분

    # 산행코스: 추성리주차장 - 국골 - 날끝산막골 - 동부능선길 - 영랑대(Back) - 동부능선길 - 영랑재 - 두류봉 

                    국골사거리 - 향운대갈림길 - 향운대 - 향운대길 - 어름터(독가)  - 지산대 - 절터 - 다리 -

                    강아리슈퍼 - 광점동주차장 - 추성리주차장


    경남 함양군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마을의 유래

    신증동국여지승람 함양군편 ‘천왕봉 고성’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산속에 옛 성이 있는데 일명 추성(楸城) 또는 박회성(朴回城)이라 한다. 의탄에서 5-6리 떨어졌는데 우마가 갈 수 없는 곳이다.” 함양군 자료에는 “지리산 천왕봉의 북쪽에 위치한 골짜기로 가락국 양왕(구형왕)이 이곳에 와서 성을 쌓고 추성”이라 하였다고 되어 있다.


    실제로 추성리 주위엔 신라가 가락국을 침범했을 때 양왕이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피란처로 이용했다는 성터가 있다. 그 밖에 추성과 지명이 비슷한 ‘성안’ 마을과 양왕이 진을 쳤다는 ‘국(國)골’이 있다. 국골 옆의 어름터는 석빙고로 쓰였고 두지터는 식량 창고로 이용되었단다.


    -두지터 마을은 옛날 신라가 가락국을 침범했을 때 식량창고로 이용됐다고 한다-


    국골,國谷  위치: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국골은 가야국의 마지막 임금인 구형왕이 신라에게 쫓겨와 진을 쳤다는 전설이 남아있는 골짜기다. 이러한 전설을 뒷받침하듯 국골 초입에는 성안이라는 지명이 있다.


    국골은 역사의 베일에 가려진 가락국 마지막 임금인 구형왕의 애환이 깃들여 있는 지리산의 숨은 계곡이다. 그리고 이웃한 칠선계곡의 선녀탕에 얽힌 사연과 함께 곰들이 쫓겨 들어와 살았던 골짜기이기도 하다.

    국(國)골. 지리산의 많고 많은 계곡과 봉우리들 가운데 나라를 의미하는 뜻의 國골. "國"자를 쓰는 지명은 이곳밖에 없다. 가락국의 10대 임금이며 마지막 왕이었던 구형왕이 국골에서 추성산성을 축조하고 국골에서 신라의 침공에 대비해 군마를 이끌고 훈련을 시켰다는 말에 근거를 두고 붙인 지명이다. 물론 이러한 내용은 아직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는 구형왕이 신라 법흥왕 19년(532년)에 나라를 신라에 평화롭게 넘겨주었다고 해서 양왕(讓王)이라고 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일각의 주장에 따를 때 그러하다.
    그러나 지리산 사람들은 구형왕이 나라를 넘겼다고 해서 양왕이라 하지만 국골과 추성산성을 근거지로 해 신라에 항거하다 다시 인근의 왕등재 일대에서 토성을 쌓고 저항하다 끝내는 왕산으로 쫓겨가 최후를 맞았다는 등의 구전을 들어 구형왕과 지리산을 애써 결부시키고 연관지으려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지리산 동부권역에는 가락국 구형왕에 얽힌 지명과 유적지가 유난히 많이 있음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추성산성터 주변의 두지터(식량저장고), 얼음터에서 국골은 물론이고 구형왕이 올랐다는 왕등재 그리고 왕등재 일대의 토성, 산청군 금서면의 왕산과 구형왕릉, 덕양전 또한 구형왕의 증손자였다는 김유신 장군의 훈련터 등이 그것이다.

    개국 과정에서부터 베일에 가려져 아직도 정확하게 사료가 정립되지 못 하고 있는 가락국의 실체가 마지막 왕이었던 구형왕의 행적까지 송두리째 뒤덮여 있어 신비감을 더 갖게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결국 구형왕이 지리산으로 피해 들어와 국골을 천연 요새로 해 추성산성을 쌓아 도성을 세우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왕등재 일원에서도 토성을 쌓고 신라에 항전하려 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지리산 사람들은 하봉과 중봉사이를 흘러내리는 골짜기를 나라의 뜻을 인용, 국골로 불러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얘기들이 물론 오랜 세월을 보내 오면서 과장될 수도 왜곡될 수도 미화될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리산이 이미 1천5백 여년 전부터 우리 민족사와 함께해 왔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보면 새삼 지리산과 한민족의 깊은 인연을 되새기게 한다.

    이즈음에서 국골 주변의 산성과 왕등재 일원의 토성, 그리고 왕산 일대의 유적들에 대한 학계의 발굴 노력을 통해 가락국의 패망과 신라와의 관계 등의 역사를 규명해 봄직하다는 생각이다.

    국골은 가락국 마지막 왕의 피란 도성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과 함께 태고적 선녀들의 노여움을 산 곰들이 칠선계곡에서 쫓겨 들어왔다는 동화같은 얘기도 전해 온다. 앞서 칠선계곡 편에서 언급했듯이 국골 너머 칠선계곡의 선녀탕과 그 전설의 궤를 같이한다.

    일곱 선녀가 칠선계곡 선녀탕에 내려와 목욕을 하고 있던 것을 본 지리산 곰이 평소 연정을 품고 있던 중 선녀들의 옷을 훔쳐 바위 틈에 숨겨버렸다.
    목욕을 마친 선녀들은 옷을 입고 하늘나라로 올라가려 했으나 아무리 찾아 헤매도 옷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 사향노루가 이 사실을 보고 자신의 뿔에 걸려 있는 선녀들의 옷을 가져다 주어 선녀들이 무사히 하늘나라로 되돌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곰이 선녀들의 옷을 훔쳐 바위틈에 숨긴다는 게 노루의 뿔을 나뭇가지로 잘못 알고 옷을 숨긴 것이다. 그리하여 선녀들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향노루는 칠선계곡으로 집단 이주해 살게 하고 몹쓸 짓을 한 곰은 이웃의 국골로 내쫓아 버렸다는 얘기다.

    국골은 선녀들이 곰을 내쫓았지만 그렇게 작지도 빈약하지도 않은 계곡이다. 칠선계곡의 지류에 해당하는 국골은 중봉과 하봉 사이에서 형성돼 추성동의 용소에서 칠선계곡과 합류한다. 마찬가지로 큰 계곡의 그늘에 가려 아직도 숨겨진 골짜기나 다름없다.

    칠선계곡과 얼음골과 함께 추성동에서 오를 수 있는 세 개의 골짜기 중 가운데 위치해 있다. 하봉 능선을 사이에 두고 깊숙하게 이어진 국골은 지금은 등산로가 비교적 잘 이어져 있어 간혹 하봉 능선을 등반하는 사람들이 찾는 깨끗하고 한적한 계곡이다.
    당장에라도 칠선계곡에서 쫓겨난 곰들이 불쑥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가 있는가 하면 구형왕이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들어왔듯 지리산의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국골의 인상이다.

    국골 산행은 한적한 분위기와 더없이 깊은 골짜기 특유의 원시림 속에서 표출되는 상쾌함, 그리고 태산장곡만이 자랑하는 스산함 등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  -퍼 온 글-


    영랑대,永郞臺   위치: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지리 주능선의 장관과 발 아래 골을 만들고 있는 산줄기가 한눈에 잡히고, 1백리 주능선의 이상적인 전망대라 할만한 위치에 솟아 있는 봉우리, 발 아래 초암능선의 촛대봉과 암봉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암릉을 이룬 바위들은 거칠고 무뚝뚝하며, 전체적인 균형미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촛대처럼 길쭉하게 솟은 바위들이 있는가하면 두루뭉슬하게 솟은 바위도 있다. 바위 사이사이에는 구상나무가 어울려 운치를 더하고, 이런 암릉 구간에도 아름다운 야생화가 예쁘게 꽃을 피워 웃고있다.


    영랑대에 올라 지리 조망을 살펴보며 생각한다, 옛 선인 들 영랑대 산행 길 추억 여행은 어떠했을까, 영랑대 오르는 길 영랑대 올라, 1백리 주능선 이상적인 전망을 하며, 아마 선인들 우리 와 똑같은 생각 마음 이였을 것이다.


    이길은 이미 500년 전 점필재 김종직선생 일행이 하봉능선을 따라 중봉, 천왕봉(상봉)을 오른 것으로 기록에 전해지는 길이다, 그의 [유두류록]에 생생한 등정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그의 기록 가운데 하봉부분을 살펴보면 영랑고개와 소년대란 지명이 나온다. [유두류록]에는 능선 안부에서 하봉까지 접근하는데도 상당히 애를 먹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함양에서 이 봉우리를 보았을 때는 가장 높고 빼어났는데, 여기에 오르고 보니 다시 천왕봉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영랑이란 사람은 신라 때 화랑의 우두머리였는데, 3000명의 무리를 끌고 와서 산수간을 노닐다가 이 봉우리에 올랐기 때문에 영랑고개란 이름이 전해오고 있다, 소년대는 봉우리 한쪽에 있는 높은 바위를 두고 부르는 것인데, 나무와 덩굴, 이끼에 덮여 접근이 힘들었다, 소년대란 영랑의 무리를 기념하여 부른 것인데, 내가 바위를 보듬고 아래를 내려다 보려 하자 종자가 가까이 와서 위험하다면서 붙잡았다,


    바로 그때 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해가 발아래에서 드러나면서 동쪽과 서쪽의 계곡이 안겨들었다, 골짜기를 이룬 곳에서 활엽수 등의 접목은 없고, 침엽수인 구상 나무가 주종을 이룬가운데, 말라죽은 나무가 3분의 1은 되었고, 단풍나무도 띄염띄염 섞여 한 폭의 그림 같이 아름다웠다.


    점필제 김종직 선생은 영랑대를 함양에서 보면, 이 봉우리가 가장 우뚝하였다고 했다, 여기서 영랑고개는 두류봉과 하봉 사이의 험준한 길에 있는 국골 사거리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향운대(香雲臺1,348m)

    지리산에는 큰바위가 있는 곳을 신성시 여겨 기도처로 활용하는데 그런곳을 "대"라고 한다. "대"는 높은 언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대체로 전망이 좋고 풍수지리상으로는 명당에 해당하는 곳이다. 향운대(香雲臺)는 구름향기란 뜻이니 즉 부처님의 말씀을 뜻한다. 이곳에는 미륵암이란 암자가 있었고, 암자에서 수행하였던 스님의 법명이 향운이었다는 설도 있다.


    “대(臺)”라 함은 작게는 산사에 모셔진 불상의 좌대에서부터 크게는 스님들이 산속에서 정진 수행하는 장소를 말하며, 넓은 의미로서는 지리산의 만복대나 영신대, 종석대 그리고 오대산의 다섯 대처럼 그 산의 왕성한 기운이 응집하여 수행하기 좋은 장소 이거나 나아가서는 큰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능력의 기운이 깃든 곳들을 의미한다. (天上祿/두류산인)

    뒤에는 깎아지른 절벽이거나 암벽이 있고 아래에는 석간수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공통점인 것 같은데, 지리산에는 모두 33臺가 있으며 옛부터 이름난 수도처로 - 문수대(文殊臺). 종석대(鐘石臺). 묘향대(妙香臺). 서산대(西山臺). 무착대(無着臺).향운대(香雲臺). 문창대(文昌臺). 영신대(靈神臺). 향적대(香積臺). 금강대(金剛臺)의 10대(十臺)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황동규 시인의 연작시 풍장에서 풍장+28

     

    내 마지막 길 떠날 때

    모든 것 버리고 가도,

    혀 끝에 남은 물기까지 말리고 가도,

    마지막으로 양 허파에 담았던 공기는

    그냥 지니고 가리,

    가슴 좀 갑갑하겠지만

    그냥 담고 가리,

    가다가 잠시 발목 주무르며 세상 뒤돌아볼때

    도시마다 사람들 가득 담겨

    시시덕거리는 것 내려다 보며

    한번 웃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번 배 잡고 낄낄대기 위해

    지니고 가리.


    우리 죽을 때 허파에 담았던 공기는

    그냥 지니고 가며...

    세상사 내려다보며 배 잡고

    낄낄대며 웃고살자구요...ㅎㅎㅎ -꺼비-


    # 산행지도





    # 산행사진

    새벽 04시 광주출발 05시20분 추성리주차장에 도착 한다 - 2주전 지리(국골)품속으로 들어가 즐거운 시간 보내고왔다 - 후 또 오늘 지리(국골)품속으로 들어가본다.


    산행준비 후 새벽 시간 산행 길 걷는다 - 날씨 이제 가을이다 - 추성리 새벽 날씨 온도 7º - 싸늘하고 춥다.


    추성리 주차장에서 칠선계곡쪽으로(오른쪽) 차도를 따르면 “추성산장.식당 나온다. 추성식당 좌측으로 난 길을 

    올라간다.


    국골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추성산장을 오른쪽으로 끼고 시맨트 도로길을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국골가는 길 적혀있네...ㅎㅎㅎ


    약 20미터가면 옆으로 빠지는 계곡 샛길로 빠지면 개고생 한다. 포장된 도로를 따르면 “두리건강체험방” 입 간판이 나온다. 두리건강체험방쪽으로 올라간다. 갈림길이 나온다.


    추성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 칠선계곡 들머리 제일 뒤에 있는 집 왼쪽으로 가로 질러 가면 된다.


    칠선계곡 눈에 들어온다.



    카메라 피해 국골계곡으로 들어선다...


    물 수량은 만희 줄었지만 국골 흐르는 물 수량 웅장하다...




    국골계곡 걷다 - 국골사면 길 접어들며 양봉(벌) 통 옆 지나친다...


    국골 쌍폭이다 - 2주전 만은 물 수량으로 이러한 멋진 폭포를 볼수 없었다.







    국골 사면 길 걷다 또 다른 아름다운 폭포.


    우리 가 이름 지은 국골 작은 쌍폭.




    국골 사면 길에 쓰러져 있는 고목...


    합수1지점 도착 - 벌떡선골(좌골) - 두류능선 국골사거리 방향 - 흐르는 폭포 물줄기 아름답다.






    시원한 막걸리 한잔.






    합수2지점 도착 - 고도 1050m 국골 좌우골이 만나는 합수지점에서 좌골로, 우골인 선골이 아닌 좌골인 날끝산막골이 국골 본류이며, 본류처럼 보이는 선골은 초암능선 촛대봉 아래 안부로 이어진다는데, 거의 협곡으로 이루어진 곧추선 계곡이라 하여 선골이라 부른다고, 호리병 주둥이처럼 초입이 비좁은 날끝산막골은 조금만 오르면 진면목이 드러나며, 그전에 능선으로 올라서는 날머리 부근에 산막이 있어 붙은 이름이라던가?















    이 지점 계곡치고 오르다보면 이끼폭포 나온다 - 아름다운 곳이다 - 지리 품속으로 들어온는 이유다.












































    이끼폭포다 - 계절은 계절인가보다 - 이끼 전혀 없다 - 폭포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자.




    또 다른 아름다운 폭포.



    단체 사진도 남기고...







    숨겨있는 폭포 여긴 다 지나 가더라 - 난 혹 하고 들어 와 보았는데 - 아름답다.




    아름다운 그 자체다.
















    합수1지점 고도1350m 세 가닥으로 길이 나뉘는 셈으로, 왼쪽의 다듬어지지 않은 가파른 마른 계곡은 두류봉과

    국골 사거리 사이로 이어지며, 천상폭포, 석굴(하봉굴),두류능선 합수 우틀하면 실폭포 올라 석굴, 초암능선으

    진행함.



    암벽옆 사태지역으로 오르는 길은 두류봉과 국골사거리 이여짐 - 우린 천상폭포(이끼폭포) 가야 하건만 암벽 옆

    사태 길로 올라 걸어 버렸다 - 알바다 - 1470m지점에 가서 알았다 - 자 다시 내려가자 오늘 계획인 천상폭포(이끼폭포)가기위해서다 - 합수1지점으로 다시 내려와 암벽 사태길 옆을 보니 뚜렷하게 천상폭포(이끼폭포)가는 오름 길 나져있다.



    알바를 하고 있다.


    로프고 오르고.



    주변 풍광도 보며.


    우린 알바를 한다...ㅎㅎㅎ


    유목민 대장님 시그널도 보며.


    이 지점 지나 알바를 하고 있구나 알았다. - 합수1지점으로 다시 내려 옴.


    합수1지점 으로 다시 내려와 암벽 사태길 옆을 보니 뚜렷하게 천상폭포(이끼폭포)가는 오름 길 나져있다 - 천상폭포(이끼폭포)로 고고싱이다.


    가파른 천상폭포(이끼폭포)오르며 주변 계곡풍광이다.



    도착했다 천상폭포(이끼폭포), 폭포에 이끼는 없어도 참 잘 왔다 생각한다.



    고도 1450m지점 날끝산막골의 천상폭포(이끼폭포) 최고가 아닐는지?
















    천상폭포(이끼폭포),상단


    천상폭포(이끼폭포),중단


    천상폭포(이끼폭포),


    천상폭포(이끼폭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점심 해결을 한다.


    라면도 끼리고.


    전어 회 도 있고.




    삼겹살도 굽고.


    볶음자, 라면, 전어, 그리고 삼겹살,을 먹으며, 맛있는 점심시간을 즐긴다.


    ㅎㅎㅎ


    ㅋㅋㅋ









    점심식사 후 사태지역을 오른다. 사태지역 오르면 동부능선 길 나온다.


    국골,날끝산막골,사태지역 그리고 가파른 길 오르면 동부능선 길에 있는 구상나무.


    영랑대 오르며 있는 이름모를 묘.


    2주전에도 멋진 풍광 - 오늘도 풍광 아름답고 멋지다...






    하봉, 중봉, 상봉, 반야,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조망 풍광 


    영랑대에서 걸음 멈추고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본다.


    영랑대(1618m) - 신라 화랑 영랑이 3,000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올랐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 영랑대.

    영험한 기도처인 지리산의10대는  어딘가, 지리산 33대중에서 영험한 기도처로서 지리산의10대를 들수있다. 지리 10대는 옛부터 수도처로 알려진 곳들이다. 반야봉(문수대.묘향대.종석대.만복대.금강대.무착대.서산대)줄기에 7대가 있다. 천왕봉(향적대.문창대.영신대.소년대.향운대.장군대)줄기에  6대가  있다. 그런대  지리산의 10대가 13곳인 이 유는 소년대  .영랑대는  하봉의  같은곳이고 차일봉의  종석대 .우번대.관음대가 겹치는  지명이기때문이다.


    영랑대에서 귀여운 토끼도 보고?



    그래서 이미 한낮이 지난 뒤에서야 비로소 영랑재로 올라갔다. 함양(咸陽)에서 바라보면 이 봉우리가 가장 높아

    보이는데, 여기에 와서 보니, 다시 천왕봉(天王峯)을 올려다보게 되었다. 신라(新羅) 때 화랑(花郞)의 우두 머리였던 영랑이 3천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산과 물을 찾아 노닐다가 일찍이 이 봉우리에 올랐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한 것이다. 소년대(少年臺)는 봉우리 곁에 있어 푸른 절벽이 만 길이나 되었는데, 이른바 소년이란 혹 영랑 의 무리가 아니었는가 싶다. 내가 돌의 모서리를 안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곧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종자(從者)들에게 절벽 난간에 가까이 가지 말도록 주의를 시켰다


     - 점필재 김종직 유두류산록 -































    영랑재도 걸으면 흔적을 남겨본다.



    두류봉 해발1617m


    국골사거리 - 우틀하면 청이당으로 진행하여 덕천지맥을 이어가게 되고 좌틀하면 국골로 떨어집니다.




    말봉 오르는 길에 오래된 소나무 그리고 뿌리 - 얼마나 오랜시간 을 버티며, 자리를 지켰을까.



    말봉 해발1543m


    영룡봉 해발1479m


    목적지 향운대 앵글에 담아본다.






    청이당, 독바위, 새봉, 새재 - 그 넘어로 선명한 왕산, 필봉산



    향운대 갈림길 이였는데, 낙엽 있을때 길, 낙엽 없을때 길 전혀다르다. 오던 길 후진 약80m 한다.



    선명한 길은 없고 향운대 가는 중 어마 어마 한 암석.


    동물 들 목욕탕.

    ]

    느타리 버섯도 만나고.







    청이당, 독바위, 새봉, 새재, 조망도 함께하며?


    미역줄기, 산죽, 짐승길, 숲, 200m 헤치며 향운대에 도착한다. - 지리 품은 언제 쉼게 길을 내주지만, 인간의 힘 을 실험 하는 곳이다. - 지리 10대 기도터 향운대(香雲臺)



    향운대(香雲臺1,348m)

    지리산에는 큰바위가 있는 곳을 신성시 여겨 기도처로 활용하는데 그런곳을 "대"라고 한다. "대"는 높은 언덕이라는뜻을 가지고 있어서 대체로 전망이 좋고 풍수지리상으로는 명당에 해당하는 곳이다. 향운대(香雲臺)는 구름향기란뜻이니 즉 부처님의 말씀을 뜻한다. 이곳에는 미륵암이란 암자가 있었고, 암자에서 수행하였던 스님의 법명이 향운이었다는 설도 있다.


    “대(臺)”라 함은 작게는 산사에 모셔진 불상의 좌대에서부터 크게는 스님들이 산속에서 정진 수행하는 장소를 말하며, 넓은 의미로서는 지리산의 만복대나 영신대, 종석대 그리고 오대산의 다섯 대처럼 그 산의 왕성한 기운이 응집하여 수행하기 좋은 장소 이거나 나아가서는 큰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능력의 기운이 깃든 곳들을 의미한다. (天上祿/두류산인)

    뒤에는 깎아지른 절벽이거나 암벽이 있고 아래에는 석간수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공통점인 것 같은데, 지리산에는 모두 33臺가 있으며 옛부터 이름난 수도처로 - 문수대(文殊臺). 종석대(鐘石臺). 묘향대(妙香臺). 서산대(西山臺). 무착대(無着臺).향운대(香雲臺). 문창대(文昌臺). 영신대(靈神臺). 향적대(香積臺). 금강대(金剛臺)의 10대(十臺)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다.







    향운대길 걷고 내려와 등로는 계곡 우측을 걷다가 다시 좌측으로 건너서 이어지고, 다시 계곡 우측으로 건너서 합수부까지 이어진다. 합수부, 우측에서 흘러드는 우골을 건너 우측으로 사면을 오르면 진주독바위 쪽과 청이당고개 쪽으로 등로가 분기된다. 어름터 골짝 주변 지형에서는 특히 계곡을 건너는 횟수가 중요한데, 첫번째 건너면 향운대 가는 길이 우측으로 갈리고, 두번째 건너면 바로 넘어 대판골이 있고, 세번째 건너면 쑥밭재 올라가는 두 산길이 있고, 섯번째 건너면 사립재골…


    어름골(독가촌) - 저녁준비를 하고 있는 독가촌 집 주인.





    하산길 걷다 - 지산대 도 들려 흔적을 남겨본다.


    지산대,芝山臺  지리 10대는 아니지만 지리 50대엔 그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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