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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점필재의 구롱(아홉모롱이)길 방장문(方丈門)찾아 지리,智異의 품속으로
    지리 산행기 2021. 3. 24. 16:58

    # 언제: 2021년 03월 21일 일요일

    # 산행지: 점필재의 구롱(아홉모롱이)길 방장문(方丈門)찾아 지리,智異의 품속으로

    # 산행거리: 15.38Km 10시간 56

    # 산행코스: 오봉마을 - 베틀재 - 군계능선 - 와불산 - 상내봉(미타봉)삼거리 - 상내봉(미타봉)Back - 구롱길 -

                    1276봉(갈림길) - 옹암(甕巖),진주,산청(독바위) - 석문 - 초령(새봉) - 조망터 - 동부(태극)능선길 -

                    새재갈림길 - 오봉마을(원점회귀산행)

     

    모든 갈망을 버려라.

    입술 위에 곰팡이가 피도록 하여라.

    스스로 완전히 한 가닥의 흰 실과 같이 하여라.

    이 일념을 영원히 고착시켜라.

    스스로 차갑고 생명 없는 식은 재처럼 되어라.

     

    # 산행지도

     

    # 산행사진

    산행 들머리 가기전 화림사 들려본다.

     

    화림사 풍경

     

    화림사는 6·25전쟁 때 불탄 것을 중창했다. 절집에 대한 기록은 노광무(1808~1894)가 쓴 유방장기에 1848년 4월 29일 - 5월 9일에 산행을 하다 화림사에 들렀다 했다.

     

    산행 들머리 오봉3교 좌측-외고재방향, 우측 베틀재 오늘 산행 들머리

     

    노휴대라 새겨져 있는 바위

     

    노휴대(老休臺)

     

    [깔때기 모양 같은 깊고 포근한 오봉계곡]

    방곡리를 지나 오봉천을 가르는 가현교를 건너면 지리산 둘레길 5구간 수철리 방향과 오봉마을로 가는 갈림길이다. 오봉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콘크리트 도로가 미로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오봉마을에 있는 계곡은 지리산의 동쪽 끝자락 오지에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원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왔던 곳이다. 좌청룡 우백호 사이에서 깔때기 모양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물길이 흘러들어 계곡을 이루어 내려가는데 계곡의 자태가 말 그대로 명당의 형태이다.

     

    [오봉마을의 옛 지명은 오비유들골]

    오봉마을의 지명은 산청웅석봉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사이의 주요 고개는 밤머리재, 왕등재, 외고개, 새재, 쑥밭재이다. 지리산 자락에 살던 옛날 사람들의 애환은 지리산 높이만큼 높았고 깊고 넓은 골짜기만큼 컸을 것이다 . 왕등재를 지나 처음 나타나는 고개가 외고개 이다. 왼쪽은 대원사가 있는 유평계곡이고 오른쪽은 산청군 금서면 오봉마을 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통칭 이곳을 오비유들골이라고 했는데 오지산골을 부르는 대명사이다. 인근 삼장면 사람들은 유덕골이라고도 한다. 지리산 험하고 외진 고개와 능선들은 그 옛날 어머니들이 보따리를 이고 들고 주린 배를 참고 눈물로 넘나들었던 오지이다. 그 후 말이 변형이 되어 오비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또 다른 유래는 마을 북쪽에 솔봉, 필봉, 매봉, 성봉,한봉의 다섯 개의 산이 봉우리를 이루고 있고, 마을을 향해 다섯 개의 산줄기가 뻗어 내린다 하여 오봉이라고 했다. 마을 좌우에서 뻗어 내린 맑고 상쾌한 물줄기가 하나로 모아져 흘러가는 풍경이 사뭇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오봉마을은 아름다운 풍경의 중상류 분지에 고즈넉이 묻혀있다.

     

    갈림길 우측으로

     

    공개바위, 오봉약수터, 이정표

    아침공기가 싸늘하다. 옷깃을 여미고 베틀재로 향한다. 오늘 산행은 산청군 금서면 오봉리 오봉마을, 가파르게 마을 안길을 올라서니 새봉,새재,외고개로 이어지는 지리산 동부능선길,

     

    마을 뒤쪽의 동제를 지내는 곳, 수려한 노송

     

    베틀재 가는길 조망터에서 바라본 동부능선과 왕등재

     

    지리 산죽길 지나 와불산

    부드러운 오름길, 오봉마을에서 한시간을 걸어 올라 군계능선 상의 베틀재에 이른다. 예전부터 사람들의 내왕이 많았는지 주변에는 밤나무가 많다. 야생은 아닐 것이고, 잠시 쉼을 갖다가 군계능선을 타고 와불산, 상내봉(미타봉)삼거리로 향한다.

     

    군계능선은 함양군 휴천면과 산청군 금서면을 가르는 지리산 동부권의 한 작은 능선이다. 냉풍이 몰아치는 능선 분위기는 이미 겨울이다. 등로에는 낙엽이 수북하고, 나목지대로 변한 숲

     

    오뚜기 바위

     

    옛 와불산 정상석 - 상내봉(미타봉) 현재는 지명으로 불리고 있다.

     

    정상석 국공님 들께서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 들었다.

     

    미타봉 좌선대에서 조망되는 의논대, 독녀암(노장대)

     

    좌선대 옆 미타봉 적벽

     

    소림선방으로 불리는 상내봉(미타봉) 뒤쪽의 석굴

     

    소림선방

    議論臺(의논대) - 김종직(1431~1492)

     

    兩箇胡僧衲半肩 : 참선승 두 사람이 장삼을 어깨에 반쯤 걸치고

    巖間指點小林禪 : 바위 사이 한 곳을 소림 선방이라고 가리키네

    斜陽獨立三盤石 : 석양에 삼반석(의논대) 위에서 홀로 서있으니

    滿袖天風我欲仙 : 소매 가득 천풍이 불어와 나도 신선이 되려 하네.

     

    注 胡僧 : ① 호승 ② 선(禅)의 어록 등에서, 달마대사(達磨大師)를 가리켜 참선승으로 국역함. ③ 호국(胡国)의 중 ④ 서역이나 인도에서 온 중. 소림 선방 : 중국 숭산의 소림사에 있는 한 동굴로 달마대사(達磨大師)가 9년간 면벽참선수행을 했다는 소림굴을 말함. 三盤石 : 넓은 반석, 의논대를 가리킴. 天風 : 하늘 바람, 가을바람.

    -퍼온글- -도솔산인님-

     

    소림선방 석굴 내부

     

    와불산 정상석 있는 자리에서 약주 한잔...ㅎㅎㅎ

     

    아홉 모롱이(모통이)란 의미의 구롱길, 등로 우측으로 열려있는 샛길을 따라 사면으로 진입한다.

    점필재의 아홉 모롱이 길은 고도 1,100m, 고저 차이 약 50m 내외, 고열암에서 청이당까지 도상거리로 약 4.75km 정도 이어지는데, 고저 차이가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다. 구롱(九隴)에서 롱(隴)은 阝(좌부변, 언덕부 = 阜)와 용(龍)이 결합한 글자이다. 롱(隴)은 용처럼 구불구불하지만, 부드럽고 편안한 모롱이 길을 의미한다. 롱(隴)은 모롱이 즉 경상도 사투리로 모랭이 또는 모래이로 이해하면 쉽다. 이 아홉 모롱이 길의 방장문(方丈門)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500년 전 가야인들이 천왕봉으로 오르는 통천문(通天門)이요, 신라가 가락국을 합병(532년)한 후에는 화랑들이 영랑대로 오르는 선도(仙道)의 문이며, 조선시대에는 관료와 사대부, 유생들이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유람의 관문이다. 그렇다면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에 나오는 석문(石門)과 금강문(金剛門), 통천문(通天門)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퍼온글-

     

    구롱길 주변 풍경

     

    구롱길 1시간 30여분, 석축이 있는 집터에 이른다. 해발 1,075m 부근, 옹암 진주 독바위 아래 사면이다.

     

    오늘 산행에 점심 시간...ㅎㅎㅎ

     

    점심 후 오늘 산행의 루트 방장문 찾아 찾이 못하고 숙제로 남겨 두고 왔다.

     

    선인들의 유람록에 나오는 석문과 금강문과 통천문

     

    가. 1611년 유몽인의 기행시와 두류산록

    明朝我向石門去 : 내일 아침 나는 석문으로 떠날 것이고/師在頭流雲水間 : 선사는 두류산 구름과 계곡 사이에 머물겠지요.

    ○ 癸酉. 侵晨而行掠甕巖. 入淸夷堂 : 4월 4일 계유일. 새벽에 길을 떠나 옹암(甕巖)을 지나 청이당(淸夷堂)에 들어갔다.

     

    ☞ 掠은 중국 漢漢字典에 '輕輕擦過'로 되어 있는데, '가볍게 스쳐 지나가다'라는 뜻. 옹암을 가까이에서 보고 지나간 것으로 이해함. 여기에서 1611년 유몽인의 두류산일록에 나오는 석문은 옹암 가까이 있는 석문으로 판단함.

     

    나. 1922년 권도용의 방장산부(이재구 선생 譯)

    두리(杜里)의 폐사(廢寺)를 지나니 양쪽의 바위가 서로 붙어 있는 곳이 있어 무엇이라 부르는지 물었더니 금강문(金剛門)이라고 하였다. 이 또한 승려들이 보이는 대로 갖다 붙인 말이다. 過杜里之廢寺 有兩巖之交粘問奚名則曰金剛門亦禪師之權辭以拈眡

     

    ☞ 권도용의 동선을 벽송사-어름터-두리의 폐사-집터-여섯 모롱이-일곱 모롱이-여덟모롱이-방장문-아홉모롱이(쑥밭재)-청이당으로 추정하면 방장문이 금강문일 가능성이 있음.

     

    다. 1924년 강계형의 두류록(이재구 선생 譯)

    드디어 차례로 서서 나아가 겨우 장구목[缶項부항]에 도착하니 갈증이 나고 침이 말랐다. 곧이어 사립재[扉峴비현]에 당도하여 벗 치조를 방문했더니 아이가 말하기를 조금 있으면 돌아올 거라 했지만 일행에게 뒤쳐질까봐 힘써 길을 올랐다. 아래위의 석문을 지났다. 문의 양쪽은 모두 바위이고 가운데로 한 줄기 좁은 길이 통하였다. 바위의 모양은 위가 붙어있고 가운데가 비어 십여인을 수용할 수 있으며 흰 글씨로 통천문(通天門) 세 글자가 석면에 쓰여 있었다. 遂序立前進纔到缶項而喉渴無涎矣迤到扉峴訪友致祚則兒言少選當返而恐其失伴努力登途過上下石門門之兩傍皆石而中通一逕巖形上合而中虛可容十餘人以白書通天門三字於石面

     

    ☞ '아래 위의 석문을 지났다.'는 독바위 인근 석문(?)을, '바위의 모양은 위가 붙어있고 가운데가 비어 십여인을 수용할 수 있다.'라는 문구는 방장문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한다. 답사와 관찰이 더 필요하여 판단을 유보한다.

     

    라. 점필재 길 구간별 도상 거리(실제 거리와 차이가 있음) 자료제공 칠성님

    1) 엄천~거머리재~적조암 : 3.58km

    2) 적조암~고열암 : 2.90km(적조암~지장사 갈림길 : 1.77km, 지장사 갈림길~고열암 : 1.13km)

    3) 고열암~동부 샘터 : 1.93km(고열암~소림선방 : 1.01km, 소림선방~동부샘터 : 0.92km)

    4) 동부샘터~청이당 : 2.82km(동부샘터~방장문 : 1.84km, 방장문~청이당 : 0.98km)

    5) 청이당~영랑대 : 2.27km(청이당~마암 : 1.30km, 마암~영랑대)

    6) 영랑대~천왕봉 : 2.20km(영랑대~중봉 : 1.49km, 중봉~천왕봉 : 0.71km)

    7) 천왕봉~장터목 : 1.5km

    8) 장터목~영신대 : 4.22km

    9) 영신대~바른재 들머리 : 0.47km

    10) 바른재 들머리~백무동 : 4.53km

     

    방장문(方丈門)

     

    구롱(아홉 모롱이) 길 방장문 석각

     

    가. 방장문(方丈門)에서 丈(장)에 대하여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아홉 모롱이 길에 있는 석각 방장문(方丈門)에서 丈(장)의 오른쪽 상단에 丶(점주)가 더해진 글자는 희귀한 이체자이다. 서예대자전에서 명나라 때 양명학의 창시자 왕수인(王守仁, 1472~1528)의 행서와 서자불명(書者不明)의 예서에 보인다. 방장문(方丈門) 필획의 주인과 석각의 연대는 아직 미상이지만, 석각이 깊고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미루어 근세에 새긴 것으로 추정함.

     

    나. 方丈의 어휘에 대한 유래

     

    1) 《조선왕조실록》의 〈세종실록〉 「지리지」의 지리산에 대한 설명

    "杜甫詩所謂方丈三韓外註及《通鑑輯覽》云: "方丈在帶方郡之南。是也。(두보의 시에서 말한 '방장산은 삼한 외지에 있다'라는 구절과 《통감집람》의 '방장산은 대방군의 남쪽에 있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2) 차천로(車天輅)의 《오산설림(五山說林)》

    "杜詩有方丈三韓外之句。說者以爲三神山皆在我國。方丈卽智異山瀛洲卽漢挐山蓬萊卽金剛山也。"(두보의 시에 있는 '방장은 삼한의 외지에 있다'는 구절을 해설하는 사람들은 '삼신산은 모두 우리나라(조선)에 있다. 방장산은 지리산이며, 영주산은 한라산, 봉래산은 금강산이다.'라고 한다.)"

     

    [출처] [관광자원해설] 국립공원 정리

     

     

    다. 방장문 석각의 필획과 시기

     

    1) 1923년 개벽 제34호 지리산보(1923.04.01)

    함양 군수 민인호가 함양명승고적보존회(보승회)를 조직하여 동군 유지 강위수(姜渭秀)는 등산객들의 편리를 위하여 天王峯에 망해정(望海亭)을 짓고, 박노익(朴魯翊)과 영원사승(靈源寺僧) 일동은 제석당(帝釋堂)을 건축하였으며, 이진우(李璡雨)와 벽송사승(碧松寺僧) 일동은 마암당(馬岩堂)을 건축 하였는데 두 곳이 모두 중봉이다.(兩處는 皆 中峯)

     

    2) 1924년 강계형의 두류록

    종자들이 말하기를, “전에 산에 오른 자들은 관을 벗고 나무를 끌어안고 바위를 끼고 간신히 나아갔는데 지금은 보존사(保存社 *함양명승고적보존회)의 힘으로 산아래 사람을 시켜 벌목을 하고 험한 곳을 고르게 한 덕분에 이 앞까지는 평지라 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또 유산자들의 노숙을 생각하여 마암상봉제석당 등지에 판옥(板屋)을 세우고 풍우를 가리게 하였으니 혜택이 유산인에게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나와 내명은 모두 추위에 곤란을 겪는 자들이므로 길가의 초목이 무성한 것을 보고 말하기를 “한 골짜기의 땔나무를 긁어 집으로 보내면 겨울을 나는 데에 어렵지 않겠다.”고 하자, 종자가 듣고 말하기를 “(저의) 마음씀이 마을사람들에게 멀리 미치지 못하니 스스로 부끄럽습니다.” 하였다.

     

    3) 방장문 석각의 필획과 시기 추정

    ① 書者不明, 석각 시기 미상, 석각의 상태가 깊고 양호하여 근세에 새겼을 것으로 추정함.

    ② 방장문(方丈門)에서 丈(장)의 오른쪽 상단에 丶(점주)가 더해진 글자는 이체자.(왕양명 필체)

    ③ 1922년 보존사(保存社 함양명승고적보존회)에서 마암당을 지은 이후에 새긴 것으로 추정함.

    ④ 1924년 강계형의 두류록에 방장문(方丈門) 석각에 대한 언급이 없어 1924년 이후 석각했을 가능성.

     

    옹암(甕巖),산청독바위(진주독바위)

    동부능선상에 있는 산청독바위(일명진주독바위)는 독아지를 닮았다고 해서 항아리 옹(甕)자를 부쳐 옹암(甕巖)이라고 하여독(甕)바위라하며, 문수사 위 함양독바위는 예전에 늙은 무녀가 혼자서 기도를 드리던 곳이라고 하여, 독녀암(獨女巖)이라 부른데서 독(獨)바위라 한다. 지리산에 독바위가 세곳이 있다.

     

    산청(진주)독바위, 함양독바위, 하동독바위, 산청독바위는 상단부가 翼善冠(익선관, 임금이 평상복(곤룡포) 차림으로 (정사를 볼 때 쓰던 관)보인다. 이곳 산청 독바위 조망은 중봉이후 두류봉능선 조개골 저멀리 삼정산 삼봉산 윗새재마을 써리봉 자락으로 진주방향 삼천포 와룡산도 조망된다.

     

    부부바위(형제바위)

     

    옹암(甕巖),산청독바위(진주독바위) 초령(새봉)방향으로 조금 이동, 좌측사면으로 내려서서 석문에 든다.

    규모있는 석문이다. 수직암벽위에 큰 바위가 다리처럼 걸쳐있으니 꽤 높이 있는 석문이 되었다. 평평한 상단석은 다리의 상판과 다름없다. 조망도 있다. 허골다리골과 벽송능선이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좌측 반야봉에서부터 바래봉,덕두산, 삼신봉,법화산까지 서북방향의 조망이 그만이다.

     

    석문 상단에서 조망되는 영랑대, 국골사거리, 두류봉, 두류봉능선

     

    영랑대, 국골사거리, 두류봉, 두류봉능선, 조망

     

    초령(새봉)

     

    새봉 너럭바위에서 조망 되는 영랑대, 국골사거리, 두류봉눙선, 영랑대는 아직 겨울이다.

     

    오봉골 산행후 임도길 시작 - 임도길 걷다보면 오봉3교 산행 들머리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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