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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봉산을넘어, 공개바위, 천상바위를 찾아 지리,智異의 품속으로.
    지리 산행기 2021. 3. 16. 15:27

    # 언제: 2021년 03월 14일 일요일

    # 산행지: 꽃봉산을넘어, 공개바위, 천상바위를 찾아 지리,智異의 품속으로...ㅎㅎㅎ

    # 산행거리: 9.51Km 05시간 34

    # 산행코스: 동강마을 - 꽃봉산 - 771m봉 - 공개바위(Back) - 771m봉 - 천상바위 - 구시락재 - 동강마을

     

     

    모든 갈망을 버려라.

    입술 위에 곰팡이가 피도록 하여라.

    스스로 완전히 한 가닥의 흰 실과 같이 하여라.

    이 일념을 영원히 고착시켜라.

    스스로 차갑고 생명 없는 식은 재처럼 되어라.

     

    # 산행지도

     

    # 산행사진

    천왕로에서 조망되는 미타봉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에 위치한 동강마을 주차장

     

     

    지리산 둘레길 - 동강마을은 금계와 동강을 잇는 제4구간이 끝나는 곳이요, 동강과 수철을 잇는 제5구간이 시작되는 곳

     

     

    花巖(巖:산봉우리암)은 꽃봉산을 가리킴(연꽃의 형상임)

     

    꽃봉산은 花巖이다. 花巖은 꽃봉산 아래 특정한 바위가 아니고 꽃봉산 이름이 花巖이다.

    巖은 바위라는 뜻만 있는것이 아니라 산봉우리의 뜻도 있다.

    花巖에서 巖은 바위가 아니고 峯을 뜻한다.

    -퍼온글- -도솔산인님-

     

     

    동강마을 당산 쉼터 - 점필재(김종직) 쉬어간 곳

    548년전 김종직선생의 발자취는 엄천사터를 지나 엄천강을 건너 구시락재-거머리재-적조암-지장사갈림길-환희대-선열암-신열암-독녀암-고열암(숙)-의론대-1강과 구롱길-청이당-영랑대-해유령-중봉-마암-천왕봉(숙)-향적대(숙)-천왕봉-통천문-제석봉-세석-창불대-영신대(숙)-좌고대-바른재-백무동으로 내려왔다.

     

    엄천교에서 백무동 주차장까지 도상거리 30km가 넘는 먼길이다. 대부분의 길은 익히 알고있는 것과 같고 1,2구간이 명확하지않은 부분들이 있어서 올해초부터 [도솔산인]선생님과 수차례 답사산행을 하였고 5월달에 조용헌 박사 취재산행에선 화개분소 조봉근씨가 구롱길에서 방장문 석각을 발견하면서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구롱길은 잘못들어가면 너덜로 인해 미로같이 복잡한곳이다. 그 속에서 한갈래의 길을 찾는다는건 쉬운일이 아니지만 타고난 감각으로 구롱길을 개통한 분은 <산영>형님이다. 지형도와 지적도, 위성지도등을 활용해 계획을 세우고 중복을 피해 차근차근 답사를 하면서 청이당에서 새봉사이 동부능선의 양지와 음지를 두루두루 살폈다.

     

     

    지난 9월6일 바야흐로 때가되어 유람록 산행을 계획하였고 그 내용은 김종직 선생의 유두루록을 바탕을 두었고 혹여 지루할수있는 어프로치 구간에도 여러편의 유람록을 참고하여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도솔산인]선생님과 [산영]형님의 도움으로 "김종직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인문산행을 기획하게 되었으며 이 길을 걷다가 두분의 수고로움을 한번씩만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점필재(김종직)길 함께한 부산 멋진 산친구 칠성님 글 -

     

    김종직_유두류록 (1구간 국역본)

    자랐으니, 두류산은 바로 내 고향의 산이다. 그러나 남북으로 떠돌아 벼슬하면서 세속 일에 골몰하느라 나이 이미 마흔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한번도 유람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신묘년(1471년, 성종2년) 봄에 함양 군수(咸陽郡守)가 되어 내려와 보니, 두류산이 바로 그 봉내(封內)에 있어 고개만 들면 푸르게 우뚝 솟은 산을 바라볼 수있었다. 그러나 흉년으로 인한 민사(民事)와 부서(簿書) 처리에 바빠서 거의 2년이 되도록 한번도 유람하지 못했다. 그리고 매양 유극기(兪克己), 임정숙(林貞叔)과 이 일을 이야기하면서 마음에 항상 걸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금년(1472년, 성종 3년) 여름에 조태허(曺太虛)가 관동(關東)에서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예기(禮記)》를 읽고, 가을에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두류산을 함께 유람할 것을 청하였다. 이에 생각해보니, 몸은 날이 갈수록 파리해지고 다리의 힘도 더욱 노쇠해지니, 이번 해에 유람하지 못하면 다음 해를 기약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더구나 때는 중추(仲秋)라 토우(土雨)가 이미 말끔하게 개어, 보름날 밤에는 천왕봉(天王峯)에서 달을 감상하고, 다음날 닭이 울면 해돋는 모습을 바라보고, 그런 다음 사방을 두루 유람한다면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가 있으므로, 마침내 유람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는 유극기를 불러 조태허와 《수친서(壽親書)》에 ‘유산에 필요한 도구〔遊山具〕’를 살펴보고, 유람에 휴대할 것을 약간 더하거나 줄였다.

     

    1472년 8월 14일 무인일(당시42세-양력9월25일)

    덕봉사(德峯寺)의 승려 해공(解空)이 와서 그에게 길을 안내하게 하였고, 또 한백원(韓百源)이 따라가기를 요청하였다. 마침내 그들과 함께 출발하여 엄천(嚴川)을 지나 화암(花巖)에서 쉬고 있는데, 승려 법종(法宗)이 뒤따라왔다. 그에게 지나온 곳을 물어보니 험준함과 꼬불꼬불한 형세를 매우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도 길을 인도하게 하고 지장사(地藏寺)에 이르니 갈림길이 나왔다 [亦令導行。至地藏寺路岐。: 또한 길을 인도하게 하여 지장사 갈림길에 이르러] 여기서부터는 말에서 내려 짚신을 신고 지팡이를 짚고 오르는데, 숲과 구렁이 깊고 그윽하여 벌써 경치가 뛰어남을 깨닫게 되었다. 여기서 1리쯤 더 가니 환희대(歡喜臺)란 바위가 있는데, 조태허와 한백원이 그 꼭대기에 올라갔다. 그 아래는 천 길이나 되는데, 금대사(金臺寺), 홍련사(紅蓮寺), 백련사(白蓮寺) 등 여러 절이 내려다보였다.


    선열암(先涅菴)을 찾아가 보니, 암자가 높은 절벽을 등지고 지어져 있는데, 절벽 밑에 두 샘이 있어 물이 매우 차가웠다. 담장 밖에는 물이 반암(半巖)의 부서진 돌 틈에서 방울져 떨어지는데, 너른 바위가 이를 받아서 약간 움푹 패인 곳에 맑게 고여 있었다.

     

    그 틈에는 적양(赤楊) 과 용수초(龍須草)가 났는데, 모두 두어 치〔寸〕쯤 되어 보였다. 그 곁에 돌이 많은 비탈길이 있어, 등넝쿨〔藤蔓〕 한 가닥을 나무에 매어 놓고 그것을 부여잡고 오르내려서 묘정암(妙貞菴)과 지장사(地藏寺)를 왕래하였다. 승려 법종이 말하기를, “한 비구승이 있는데, 결하(結夏)와 우란(盂蘭)을 파하고 나서는 구름처럼 자유로이 돌아다녀서 간 곳을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돌 위에는 소과(小瓜) 및 무우〔蘿葍〕를 심어놓았고, 조그마한 다듬잇방망이와 등겨가루〔糠籺〕두어 되쯤이 있을 뿐이었다.


    신열암(新涅菴)을 찾아가 보았더니 승려는 없고, 그 암자 또한 높은 절벽을 등지고 있었다. 암자의 동북쪽에는 독녀(獨女)라는 바위 다섯 개가 나란히 서 있는데, 높이가 모두 천여 자나 되었다. 법종이 말하기를, “들으니, 한 부인(婦人)이 바위 사이에 돌을 쌓아 놓고 홀로 그 안에 거처하면서 도(道)를 연마하여 하늘로 날아올라갔으므로 독녀라 호칭한다고 합니다.” 라고 하였는데, 그 쌓아놓은 돌이 아직도 남아 있다. 바위 중턱에 잣나무가 서 있는데, 그 바위를 올라가려면 나무를 건너가서 그 잣나무를 끌어잡고 바위 틈을 돌아 등과 배가 바위에 부딪힌 다음에야 그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그러니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올라갈 수 없었는데, 종리(從吏) 옥곤(玉崑)과 용산(聳山)은 능숙하게 올라가 발로 뛰면서 손을 휘저었다.


    내가 일찍이 산음(山陰)을 왕래하면서 이 바위를 바라보니, 여러 봉우리들과 다투어 나와서 마치 하늘을 괴고 있는 듯했다. 지금 내 몸이 직접 이 땅을 밟아보니, 모골이 송연하여 정신이 멍하고 내가 아닌가 의심하였다.


    여기서 조금 서쪽으로 가 고열암(古涅菴)에 다다르니, 이미 해가 지고 어스름하였다. 의론대(議論臺)는 그 서쪽 등성이에 있었는데, 유극기 등은 뒤떨어져, 나 혼자 삼반석(三盤石)에 올라 지팡이에 기대어 섰노라니, 향로봉(香爐峯), 미타봉(彌陀峯)이 모두 다리 밑에 있었다. 해공(解空)이 말하기를, “절벽 아래에 석굴(石窟)이 있는데, 노숙(老宿) 우타(優陀)가 그 곳에 거처하면서 일찍이 선열암, 신열암, 고열암 세 암자의 승려들과 함께 이 돌에 앉아 대승(大乘), 소승(小乘)을 논하다가 갑자기 깨달았으므로, 이렇게 칭한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잠시 뒤에 납의(衲衣)를 입은 요주승(寮主僧)이 와서 합장하고 말하기를, “들으니 사군(使君)이 와서 노닌다고 하는데, 어디 있는가?” 라고 하니, 해공이 그 요주승에게 말하지 말라고 눈치를 주자, 요주승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그래서 내가 장자(莊子)의 말을 사용하여 위로해서 말하기를, “나는 불을 쬐는 사람이 부뚜막을 서로 다투고, 동숙자(同宿者)들이 좌석을 서로 다투게 하고 싶다. 지금 요주승은 한 낮선 노인네를 보았을 뿐인데, 어찌 내가 사군인 줄을 알았겠는가?”
    리고 하니, 모두 웃었다. 이 날에 나는 처음으로 산행을 시험하여 20여리를 걸었는데 극도의 피곤으로 깊은 잠을 잤다. 한밤중에 깨어 보니, 달빛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며, 여러 산봉우리에서 운기(雲氣)가 솟아오르고 있어, 나는 마음 속으로 기도를 하였다.

    -도솔산인님 글-

     

     

    1472년 8월 14일 봉덕사 승려 해공(解空)에게 길을 안내하게 하여 함양 관아를 출발한 점필재 김종직 선생은 제자 조태허, 유극기, 한백원과 함께 엄천 동강교를 건너 화암(花巖) 아래 당산나무에서 묘정암 스님 법종(法宗)을 만나 길 안내를 받는다.

    -퍼온글- -도솔산인님-

     

     

    당산 쉼터에서 100m쯤 갔을까, 물탱크 앞 민가가 있는 곳에서 삼거리가 되는데, 아애골을 끼고가는 콘크리트 포장도로에서 벗어나 비포장임도로, 곧이어 밤나무단지로 이어지는 포장임도를 따라 올라가고...

     

     

    봄 이다...

     

     

    봄, 봄, 봄이네...

     

     

    아애골을 건너고

     

     

    조림지대 이정표,

    비포장임도에서 벗어나 이어받는 산길을 따라 공개바위로, 10년 전과는 달리 나무가 훌쩍 자라는 바람에 좀은 헷갈리기도, 그전엔 공개바위에 이르기까지 이것말고도 이정표가 두 군데 더 있었지만, 두 군데 다 지리산국립공원지역이라며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없애버렸는 걸로, 새로 설치하지는 못할망정 그 무슨 횡포요 심보로 그랬는지?

     

     

    아애골 그리고 동강마을

     

     

    조림지대 비포장임도에서 올라선 안부 삼거리, 왼쪽은 산청 · 함양사건 추모공원 및 자혜교로 이어지며, 공개바위로 가자면 오른쪽으로...

     

     

    해맞이산장 - 바로 아래 (개조심)이란 문구와 함께 해맞이산장이 얼핏 들어오는데,

     

     

    법화산, 뒤로 삼봉산 조망

     

     

    꽃봉산, 해발 731m

    2003년 창립한 진주중 ·731산악회에서 2014731일에 세웠다는, 진주731산악회는 <진주중학교 7, 진주고등학교 31회 졸업생들의 산악회>라는 뜻으로, 그들의 산악회 이름과 높이가 같은 731m짜리 산인 공개바위 인근의 꽃봉산을 찾아내어, 2014731일 오전 731분에 진주에서 출발하여 731m가 새겨진 꽃봉산 정상석을 세우고, 이후 매년 731일 이 꽃봉산에서 산신제를 지낸다고 하며,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와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의 경계에 자리 잡은 산으로, 그 모습이 연꽃처럼 보인다고 하여 꽃봉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지만, 지리산 자락에 있으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공개바위가 유명세를 타면서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온 산인데, 별스런 볼거리나 보이는 것도 없어 아쉽다.

     

     

    금줄을 넘어선다.

     

     

    공개바위 - 한국판 피사의 사탑이라던가?

    공개바위 - 지리산 자락 야산에 거대한 바위 5개가 기울어진 채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는 한국판 '피사의 사탑'이 최근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경남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 뒷산(해발 755m)의 일명 공개바위가 그 주인공으로, 5개의 바위를 인공적으로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이는 공개바위는 12.7m의 높이에 20 ~ 30도 기울어져 있어 곧 넘어질 듯 아슬아슬한 풍경을 자아낸다. 둘레 12.4m의 직육면체 바위 5개를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 풍화작용에 의한 자연현상인지 아니면 고인돌처럼 토속신앙과 연관된 인공물인지는 향토 사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이다. 특히 전체 무게가 100t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바위가 60도 경사의 산비탈에 수천년 간 원형이 보전돼 오고 있는 것 자체가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다.

     

    공개바위라는 명칭은 아이들이 공깃돌을 가지고 노는 공기(拱碁)놀이에서 붙인 것으로 유추된다. 공개바위 아래쪽인 함양군 휴천면 동강마을에서 자란 김용규(48,통영사량초등학교 교사 · 시조시인)씨는 삼베 구만필의 치마를 두른 마고할미가 공기놀이를 하다 치마폭에 싸서 그곳에 쌓아 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면서, 이농현상 등으로 1990년대부터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이후 잊혔다가 신비감 때문에 최근 세인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2006년 3월 기사)

     

     

    산청 방곡리 공개바위

    경상남도 기념물 제 266호(2007.9.6) -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 산 176 - 1

     

    경남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 해발 755m의 야산에 있는 공개바위는 원래는 흙속에 묻혀 있었으나 , 풍화작용으로 인하여 주변의 흙이 떨어져 나가고 현재의 모습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모두 5개의 육면체 바위가 석탑 모양으로 쌓여 있는데, 그 규모는 높이가 12.7m이고 둘레가 12.4m 정도이다. 인공적인 5층탑을 방불케 하는 이 기념물은 25 - 30도 정도 옆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오래 전부터 <한국판 피사의 사탑>으로 관광객들의 인구에 회자되어 왔다. 옛날에 지리산 마고할미가 공기놀이를 하다가 그 공깃돌 5알을 쌓아 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이 공개바위라는 전설이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공개는 공기의 경남 서북부 방언)

     

     

    점심은 맛있게...ㅎㅎㅎ

     

     

    공개바위 안부 삼거리, 공개바위 - 베틀재 - 771m봉 갈림길로, 공개바위는 가파른 내리막길로 80m 정도 내려가야 하며,여기 있던 이정표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는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법화산 일대, 그 뒤 꼭대기만 내미는 건 삼봉산인 듯?

     

     

    771m봉 아래 삼거리, 공개바위로 갔다 천상바위로 내려갈 곳이기도 하며, 그전엔 산청군과 함양군에서 세운 이정표가 둘이나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없애버렸다는 걸...?

     

     

    천상바위 - 높이가 60m나 되어 함양 독바위에 버금가는 규모이며, 천상굴에는 1970년대 중반까지 한국산 호랑이가 살았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운서리와 동강리 주민들 사이에 전해오고, 일제강점기 무렵엔 운서리에 사는 아가씨가 호랑이에게 물린 일도 있었다지만, 호랑이가 생활하기엔 너무 좁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걸, 전설은 전설일 뿐 너무 믿지는 말자...?

     

     

    지리 하면 산죽...ㅎㅎㅎ

     

     

    함양 독바위 조망 - 독녀암(노장대) - 독녀암(노장대)바위군(群), 또 다른 별세계 바위 숲, 거대한 암봉군의 [독녀암(노장대),함양독바위] [옹암(甕巖),진주독바위], [하동독바위]와 더불어 지리산 3대 독바위로 불린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에는 ‘독녀암’으로 등장하는데, 한 여인이 이곳에서 홀로 수행하다가 득도하여 하늘로 날아갔다는 전설을 전하고 있다. 하늘을 향해 돌기둥이 숲을 이룬 듯 솟아있다.

     

     

    적조암 조망

     

     

    거머리재 가기전 포근한 솔밭 길

     

     

    거머리재 - 점필재(김종직) 길

     

     

    운서마을 - 휴천면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가장 좁은 마을로, 전체면적의 3/1 이상이 지리산국립공원 구역 내에 들어 있고, 그 외도 산악지역이라 농경지가 별로 없는 마을이다.

     

     

    지리산 둘레길 제4구간과 만나는 운서 쉼터, 이제부턴 지리산 둘레길을 따라 동강마을로 가게 되며, 금계 9.2km · 동강 1.8km를 가리킨다.

     

     

    금계 - 동강 운서마을(쉼터)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 의평마을, 의중마을, 모전마을, 세동마을과 휴천면 동강마을을 잇는 11km의 지리산 둘레길, 이 구간은 지리산 자락 깊숙이 들어온 산촌마을과 사찰을 지나 엄천강을 만나는 길이다. 사찰로 가는 숲길과 등구재, 법화산 자락을 바라보며 엄천강을 따라 걷는 옛길과 임도를 걷는다.

     

     

    엄천교

     

     

    지리산 둘레길 걷다 쉬며 막걸리 한잔 한곳...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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