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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골,취서암(鷲棲庵)
    지리 산행기 2021. 6. 28. 10:14

    # 일자: 2021년 06월 27일 (일요일)

    # 산행지: 경남 산청 곰골,취서암(鷲棲庵) 산행

    # 산행거리: 7.0Km   05시간15분

    # 산행루트: 내리 - 선녀탕 - 곰골 - 취서암(鷲棲庵) - 태극(동부)능선 - 왕재 - 왕재길 - 강신등폭포 - 내리(원점회귀산행)

     

    # 웅석봉자락에 구전으로 전해오는 취서암(鷲棲庵)이라는 절터, 작년 부터 목포 인디안님께서 가자, 가자, 해서 이루진

      산행 루트 곰골 위험 구간을 걸어올라 찾아간 취서암(鷲棲庵), 위험을 감수하며, 찾아간 우리도 이해 못할 사람들

      이지만 어떻게 이러한 높은 산중의 낭떠러지 아래에 자릴잡고 암자를 짖고 수행을 했을까, 수행한 분들 이해를 못하겠

      다. 그렇지만 주변의 뷰는 최고, 이곳을 거쳐가신 분들께 감사의 예를 올려본다.

     

    # 산행지도

     

    # 산행사진

    산청 지곡사지 - 산청 지곡사지(山淸 智谷寺址)는 경상남도 산청읍 산청리 내리에 있는 지곡사 절터이다. 2000년 8월 31일 경상남도의 기념물 제225호로 지정되었다.

     

    지곡사지,智谷寺址

    지곡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던 사찰이다. 통일신라 법흥왕 때에 응진 스님이 창건하여 절 이름을 국태사(國泰寺)라 하였고,고려 광종 대에 선종(禪宗) 5대산문의 하나로 손꼽히는 대찰이었다. 최근 지곡사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실시되어 8~9세기 대의 유물이 출토되어 위와 같은 이야기를 뒷받침하였다. 지곡사는 일제강점기인 1913년을 전후하여 폐사되었다가, 근래 옛 지곡사 산신각 자리에 중창하여 옛 지곡사의 전통을 이어 받아 법등을 밝히고 있다.

    * 창건
    옛날의 지곡사는 인근인 내리 772-4번지 일대에 있었는데 통일신라 법흥왕 때에 응진(應眞) 스님이 창건하여 절 이름을 국태사(國泰寺)라 하였다고 조선시대 후기에 기록된 『지곡사용화당기(智谷寺龍華堂記)』에 전한다. 또 진관선사오공탑비(眞觀禪師悟空塔碑)에는 고려 광종(光宗) 대에 고승인 진관 석초(眞觀釋超) 스님을 지곡사의 주지로 임명 하였다고 한다. 당시에 절을 크게 중창하여 선종(禪宗) 5대산문의 하나로 손꼽히는 대찰이었으나 1913년을 전후하여 폐사 되었다.

    * 연혁
    지곡사와 관련된 문헌은 적은 편인데 전성기에는 300여 명의 스님들이 있었고, 물방앗간이 12개나 되었다고 한다. 절 입구에 홍예다리를 놓아 오색 무지개가 공중에 걸린 듯 하여 다리를 건너면 티끌세상의 번뇌를 씻을 수 있다고 하여 세진교(洗塵橋)라 하였는데 그 홍교는 흔적만 남아 있는 길가에 세진교비(碑)가 홀로 서서 옛 영화를 대변해 주고 있다. 추파 홍유(秋波泓宥, 1718~1774) 스님이 지은 『유산음현지곡사기(遊山陰縣智谷寺記)』에 따르면 지금의 축대 위에는 대웅전이 있었고 왼편에는 약사전 오른편에 극락전이 있었으며 앞에는 큰 누각, 누각 밖에는 천왕문과 금강문이 있었고 회랑과 요사가 좌우로 늘어서 있어 영남의 으뜸가는 사찰로 선객과 시인들이 즐겨 찾던 가람이었다고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산음현(山陰縣)』조에는 고려 예부 상서 손몽주(孫夢周)가 쓴 혜월(慧月)과 진관(眞觀)의 두 비(碑)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귀부(龜趺) 2기만 남아있고 다행히 비문은 기록으로 전해오고 있다. 조선시대 후기인 18세기에 이르러서는 한암 성안(寒巖性眼)과 추파 홍유 스님이 절의 중흥을 도모하였으나 20세기에 들어 일제의 침략으로 폐사가 되었으며 한암대사비와 추파당대사의 탑비가 절 위쪽 300m 지점에 있다. 옛 지곡사지에 남아 있는 유물로는 세진교 각자(刻字), 우물 배례석편, 수조 4기, 귀부2기, 물방아 확(수조), 부도, 장대석, 축대 등이 남아 있다. 무상한 세월과 함께 대찰이 폐허로 변했지만 지곡사지에서 멀리 동쪽으로 황매산(黃梅山)을 바라보면 부처님이 누운 와불 모습으로 바라보며 신비감을 더해준다. 지곡사지는 경상남도기념물 제194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의 지곡사는 1958년에 강덕이(姜德伊) 스님이 중건 했는데 본래의 지곡사 배치와는 무관하게 전통사찰로 지정되어 있다. -퍼온글-

     

    산행루트 곰골, 취서암(鷲棲庵)을 찾아 고고싱

     

    십자봉 3.7km - 내리저수지 1.03km - 왕재 1.78km를 가리키고

     

    다리 및으로 내려가면 곰골과 왕재골 합수지점, 곰골에 선녀탕이 있다면 왕재골엔 강신등폭포가 자리 잡고 있다.

     

    선녀탕

     

    곰골 - 웅석봉이 품은 계곡 하면 북사면의 곰골은 아주 거칠고 드세다...?

     

    거칠고 험하기로 소문난 곰골(웅석계곡)을 걸어 올르다보면, 곰골 중간부의 마른계곡은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대신 마른계곡이 끝나는 지점의 큰 바위에는 작은 실폭포가 흘러 내리고 있다 참 거칠고 험한 곰골(웅석계곡)...?

     

    거칠고 험하기로 소문난 곰골(웅석계곡)을 걸어 올르다보니, 밧줄이 메어 있는 능선 도착, 능선에는 곰 배설물이 있다, 아마 곰이다는 능선 길목인가보다, 능선 조망지점에서 보면 움막이 보인다 바로 취서암 연결되는 사면 길도 보인다.

    밧줄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 취서암으로 고고싱

     

    사면으로 가니 움막 잔해가 보이고 - 수행하며 거주했던 흔적 구들을 놓고 아궁이도 보인다.

     

    은둔의 암자 - 취서암(鷲棲庵) - 취서(鷲棲)라는 한자음을 검색하여 보니 수리취에 살서로서 번역을 하면 [독수리가 사는 곳]이라는 뜻이 되겠는데가히 이곳 취서암에는 천하절벽 중턱에 위치한 요새로서 독수리가 살기에 합당한 장소가 아닌가 싶다.

     

    양산의 통도사가 자리를 잡은 영취산은 한때 취서산 또는 영축산 이라고도 불려진 적이 있었는데 이는 멀리서 보면 산의 형상 그 자체가 한마리 독수리로 보여지기 때문에 붙여진 풍수관련 용어라고 하고 영축이나 취서는 모두 독수리를 뜻한다고 한다(인터넷 포털 다음에서 발췌함) -퍼온글-

     

    취서암(鷲棲庵)현판 -  공덕(功德)터 丙辰年(병진년) 潤八月(윤팔월) 重修(중수).炳義謹刻(병의근각) - 현판 좌측에는 작은 글씨로 백년전 조부께서의 공덕터 병진년 윤팔월 중수 병의근각, 이라고 쓰여있다 병진년은 1976년이고 백년전이면 1876년이 된다고 자료에 나와 있다.

     

    취서암이라는 각자가 새겨져 있고, 누군가 페인트로 소원성취라고 적었다.

     

    약주와 과일, 제물을 차리고, 이곳을 거쳐가신 분들께 감사의 예를 올려봅니다.

     

    취서암에서 사면길로 조금 더 진행하면 웅석봉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는 천혜의 비경에 아주 성서럽게 생긴 바위아래 좌선대가 있다 이 광경을 뭐라 말로 표현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좌선대에서 조망되는 산청읍, 내리저수지, 그리고 황매산,정수산,둔철산, 바로앞능선에 십자봉 환상이다. 

     

    웅석봉 조망

     

    취서암에서 여유있는 시간을 뒤로하고 거친 계곡으로 산행길 잡아 걷는다...힘든시간...?

     

    거친 계곡을 걷다 태극종주(동부능선)길 능선 가기전 - 조망되는 눈 아랜 산청읍과 내리저수지 - 아주 멀리 황매산, 정수산 조망

     

    태극종주(동부능선)길 조망터

     

    도토리봉과 밤머리재로 이어지는 산줄기  - 저 멀리 밤머리재, 도토리봉 조망 - 그 뒤엔 왕산과 필봉산도 조망

     

    강신등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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