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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역사문화 탐방 (31·끝) 석남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지리 박물관(역사,문화,) 2022. 6. 12. 12:57
    지리산이여, 그대가 있어 참 좋다~




    최고의 순간은 늘 짧다. 풍요로운 만산홍엽의 가을이 왔는가 싶더니 멀어져 가고, 어느새 긴 겨울의 문턱을 넘고 있다. 지리산에도 동장군이 찾아온 지 오래고 벌써 첫눈도 내렸다. 앞으로 수개월, 숨죽여 얼음 속 냉기를 잘 버터내야 또 역동하는 생명의 계절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찬란한 역사문화도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일순간 사라지고 만다. 지리산 산중에도 다양한 역사와 수많은 문화가 꽃피었지만 세월의 부침 속에 명멸해갔다. 접근조차 힘든 깊은 산중의 폐사지 한 귀퉁이, 잘 다듬은 석탑의 옥개석은 깨어지고 사리함은 사라진 채 탑신만 나뒹군다. 천수백 년 전 지리산 깊은 골에 있던 산중 대찰 석남사의 현 모습이다. 한때 번창했던 큰 절이었지만 이제는 폐허 속 작은 파편으로 단절된 천년 역사의 편린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지리산 치밭목 능선에서 바라본 천왕봉.



    이번 탐방지는 지리산 숨은 역사의 하나인 신라 대찰, 석남사지다. 석남사지는 장당골 깊숙한 곳 치밭목 능선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지리산 산중의 최대 폐사지다. 대원사계곡 지류인 소막골을 통해 치밭목 능선으로 올라, 반대쪽 장당골 사면의 석남사지와 관음암 불상터를 탐방하고, 다시 능선을 넘어 소막골과 이웃한 초정골로 하산하는 일정이다.

    산행기점은 산청군 삼장면 소막골 앞의 대원사 주차장이다. 탐방팀은 소막골 야영장의 대원사계곡 횡단 다리를 건너 야영장 좌측방향으로 사면길을 따라 소막골로 진입한다. 계곡은 나목과 낙엽으로 온통 회색빛의 황량한 모습이다. 등로에도 낙엽이 수북이 쌓였다. 계곡을 좌우로 오가며 고도를 높여 간다. 중반까지 완만하게 진행되던 계곡도 해발 650m를 넘어서며 경사가 아주 급해진다. 최대한 계곡으로 오르다가 1014봉을 목전에 두고 우측 지능선으로 붙어 산행 3시간 만에 치밭목 능선으로 탈출한다. 치밭목 능선은 치밭목대피소 앞의 비둘기봉에서 시작해 내원사 입구인 삼장면 대포리까지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이다. 써리봉에서 크게 두 개의 능선이 분기되는데, 남쪽으로 바로 분기되는 능선이 구곡산으로 이어지는 황금능선이고 치밭목 방향으로 동진해 비둘기봉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튼 능선이 치밭목 능선이다. 두 능선 사이로 장당골이 흐르고 치밭목 능선 동쪽에는 대원사계곡이 있다. 치밭목 능선은 동부 지리산의 두 명품계곡을 양쪽으로 거느리고 있는 셈이다.





    국보 233-1호 석조비로자나불상이 있던 관음암 불상터.



    ▲치밭목 능선의 환상적인 조망= 지리산 남사면에는 어디 가나 산죽이 많다. 치밭목 능선도 예외는 아니라서 온통 산죽밭이다. 하지만 산죽 속으로 등로가 뚜렷해 조금 성가실 뿐 큰 애로는 없다. 탈출지점에서 20여분 산죽 능선길을 걸어 치밭목 능선상의 최고의 조망봉, 1026봉에 도착한다. 지리산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명조망봉이다. 천왕봉의 남동쪽 사면이 적나라하게 조망된다. 속살은 온통 회색빛, 작은 지계곡과 지능선까지 세밀화처럼 속속들이 들여다보이고 사방 조망도 아주 좋다. 천왕봉, 중봉, 써리봉, 비둘기봉을 비롯해 황금능선과 동왕등재로 이어지는 동부능선, 그리고 연이어 웅석봉과 달뜨기 능선이 우측으로 나래를 펼치고 있고, 발아래는 장당골과 그 지류인 앵골, 조래산막골, 물가름골, 바람골이 하늘에서 내려보듯 또렷하게 조망된다. 심지어 저 멀리 황매산과 가야산, 감악산과 덕유능선까지 눈에 잡히니 실로 광대무변한 환상적인 조망이다.

    오늘따라 산정에는 봄날 같은 따사로운 기운이 돈다. 분위기를 만끽하며 잠시 쉬었다가 남쪽방향으로 치밭목 능선길을 이어간다. 10여분 진행해 만나는 분기봉, 분기봉에서 치밭목 능선을 벗어나 우측으로 지능을 타고 내려선다. 석남사터를 바로 찾아가기 위해서다. 지능선을 조금 따르다가 좌측사면으로 내려서서 계곡으로 진행, 분기봉을 떠난 지 30분 만에 석남사터에 도착한다.


     


    내원사에 안치된 관음암 불상터의 석불.



    ▲지리산중 최대의 폐사지 석남사지= 치밭목 능선 자락 해발 750~800m 사이에 남서향으로 자리 잡은 석남사는 신라 때 조성된 절로 밝혀졌는데, 장당골 지류인 보살나무골 최상류부 반경 150여m 이내에 산재한 절터의 흔적으로 볼 때 상당한 규모의 절로 추정된다. 주변을 살펴보니 석탑의 흔적을 비롯해 기와조각, 주춧돌, 우물터, 석축 등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특히 미려한 석탑의 잔해물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전해져오는 말로는 법계사 석탑을 닮은 3층 석탑이 근세까지 건재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도굴꾼에 의해 파괴된 듯 기단석과 옥개석, 탑신 등은 부서져 여기저기 나뒹군다. 사리함을 보관했던 탑신 홈에는 사리함 대신 물만 가득 고였다. 제대로 보존돼 있다면 최소 보물급인데, 지금이라도 주변 파편들을 모아 복원할 수는 없을까. 안타까운 마음으로 주변을 살펴본다.
    천수백 년 전, 이 산골에 돌 다듬는 소리로 온 계곡이 울렸을 것이고, 많은 석공들이 정성을 다해 정을 쪼고 탑을 만들었을 것이다. 낙엽을 쓸어내고 잘 다듬은 옥개석을 만져보니 당시 신라인의 기운이 전해오는 듯 가슴 뭉클해진다. 한 시간가량 석남사지를 돌아보고 인근의 ‘관음암 불상터’로 향한다. 계곡 건너편에는 돌로 쌓아올린 돌탑도 여러 기 목격된다. 물론 지금은 무너져 있지만, 탐방팀은 돌탑지 우측의 지능선으로 올라서서 위쪽으로 잠시 향하다가 다시 우측으로 10여분 사면길을 걸어 관음암 불상터에 도착한다. 해발 850m, 양지바른 단애의 암반 위에 위치한 불상터, 보는 사람마다 탄성을 지를 정도로 예사롭지 않은 곳이다. 지능선이 장당골을 향해 뻗어 내리다가 절벽을 이루는 능선 끝머리 거대한 암반 위에 불상터가 자리하고 있다. 정면으로 천왕봉을 마주보고 있고, 발아래 장당골을 품고, 뒤로는 병풍처럼 치밭목 능선이 흐른다. 주변 암반은 30여㎡ 정도의 좁은 공간이지만 아주 강한 기세가 느껴지는 명당이다. 이곳에 천년을 지켜온 석불이 있었고, 국가보물이 되었다. 석불이 놓였던 자리에 서서 천왕봉을 마주하니 감개무량하다.





    석남사지 탐사 모습.



    ▲천년을 지켜온 관음암 석불(국보 제233-1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석불의 좌대에서 나온 사리함 명문에는 석불 조성 경위가 밝혀져 있다. 신라 혜공왕 2년(서기 766년)에 법승과 법연이라는 두 승려가 죽은 ‘두온애랑’ 화랑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 불상을 조성하고 무구정광다리니경과 함께 석남암수 관음암(觀音巖)에 봉안한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1250년 전, 신라인들은 낭도 무리를 이끌고 지리산 산중훈련이나 인근 전장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그를 화랑의 표상으로 삼아 이곳에 불상을 세우고 넋을 기렸던 모양이다. 주변 정황을 살펴볼 때 관음암(觀音巖)은 암자가 아니라 불상이 앉았던 거대한 바위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고 불상은 노천에 안치했던 것 같다. 불상은 1947년 이씨 형제가 발견할 때까지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벼랑 끝에서 노천풍상을 견뎌내며 굳건히 자리를 지켜왔다.


     


    석남사지 석탑 잔해.



    발견 이후 한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데, 우여곡절 끝에 불상은 산청군 삼장면 내원사에 안치됐고 석불좌대에서 나온 사리함은 부산시립박물관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납석제호로 명명된 사리함은 골동품상을 거쳐 부산시립박물관으로 흘러들자마자 그 가치가 인정돼 1986년에 국보 제233호로 지정됐고, 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으로 명명된 석불은 1990년 보물로 지정됐다가 금년 1월 8일 ‘국보 제233-1호’로 승격됐다.

    오랜 세월 동안 찬란한 문화유산이 자리했던 관음암 불상터, 이제는 휑한 모습으로 작은 돌 하나 꽂혀 그 자리를 표시하고 있다. 대를 이을 손자 불상이라도 하나 세워두면 또 다른 천년의 인연을 이어가지 않을까. 탐방팀은 초정골 하산 후, 천년세월을 건너뛰어 현세에 모습을 드러낸 내원사 석불(국보 제233-1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알현하고 탐방산행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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