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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2022년 07월 24일 일요일
# 산행지: 하늘의 음률에 맟춰 춤을 추는 동악(動樂) & 곡성 동악산(動樂山) 산행
# 산행거리: 11.41km 06시간 03분
# 산행루트: 도림사대형주차장(오토캠피장) - 야외음악당 - 돌탑 - 깃대봉 - 형제2봉(동봉쉼터) - 성출봉(동봉)형제봉 -
대장봉(서봉) - 배넘어재 - 중봉삼거리 - 동악산정상 - 신선바위갈림길 - 신선바위 - 청류동계곡길 - 도림사 -
일주문 - 대형주차장
나라에 길조(吉兆)가 있으면 산이 노래하여 "동악산(動樂山)"이 되었고, 도반(道伴)이 숲속의 나무들처럼 몰려들어 "도림사(道林寺)"가 된 곳. 빼어난 "계곡(溪谷)의 성시(城市)"인 연유가 지명이 된 곳,
동악산(動樂山)
삼남제일 암반계류 청류동 계곡 풍치 일품인 동악산 (위치 : 곡성읍 - 입면, 높이 : 736.8m) 우선 動樂山을 동락산 이라 읽지 않고, 동악산 이라 읽는 까닭부터 밝혀야 이 산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대개 樂 은 뒤에 딸려 나올 때락으로 읽힌다. 도락산(道樂山)이니 진락산(眞樂山)이니 하는 것이 그런 경우인데, 이 경우는 즐거울 락의 경우다.
그러나 동악산의 경우에는 풍류 악으로 읽어야 한다. 천상의 노래, 즉 음악이 울린다(동한다)는 전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유래는 이렇다. 이 산의 개산조인 원효대사가 성출봉(聖出峰 형제봉 동봉으로 동악산 최고봉) 아래에 길상암을 짓고 원효골(청류동 남쪽 골짜기)에서 도를 베풀고 있는데 하루는 꿈에 성출봉과 16아라한이 그를 굽어보는지라 깨어나 즉시 성출봉에 올라가 보았더니 1척 남짓한 아라한 석상들이 솟아났다는 것이다.
원효가 열일곱 차례나 성출봉을 오르내리면서 아라한 석상들을 길상암에 모셔 놓으니 육시(六時) - 불교에서 하루를 여섯으로 나눈 염불독경의 시각으로 신조, 일중, 일몰, 초야, 중야, 후야- 만 되면 천상에서 음악이 들려 온 산에 퍼졌다 한다. 도림사 응진전에 봉안된 아라한상들이 당시의 것이라 전해지고 있으나 신빙성은 없다.
마을 주민들은 곡성 마을에서 장원급제자가 탄생하게 되면 이 산에서 노래가 울려 펴졌다고도 한다. 남원 실상사 약사전의 약사여래상처럼 나라에 불길한 징후가 나타나면 땀을 흘리는 흉조를 나타내는 불상이 있는가 하면 동악산처럼 길조를 알리는 산도 있기 마련이다. 곡성의 진산인 동악산은 크게 두 산덩어리가 남북으로 놓여 있다. 각 산덩어리에는 비슷한 높이의 정상이 있는데 이 두 산덩어리를 가르는 것이 배넘이재이고, 남봉(형제봉·동봉과 서봉으로 형성돼 북봉에 동악산, 남봉에 형제봉 이라 표기해 놓고 있지만 최고봉은 형제봉이 된다. 산이름의 유래가 성출봉(형제봉 동봉)에서 유래됐다는 것과 주요 등산로가 형제봉을 중심으로 더 잘 나 있다는 점은 형제봉이 동악산의 주봉임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 산을 삼남 제일의 암반계류라 부르는 까닭은 산들목에 있는 도림사로 들어서면서 알게 된다. 그다지 깊지 않은 계곡인데도, 암반이 펼쳐지는 시원스런 품세는 삼남에서 제일이라는 과찬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이고 길이도 200여m에 달한다.
청류동계곡이라 부르는 이 계곡의 암반에는 새긴 글자도 무수히 널려 있다. 누군가 이 암반계류의 절경마다 一曲(일곡) 二曲(이곡)하며 구곡까지 새겨 놓았는데, 더러는 깨지고 더러는 도로확장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도림사 입구 상가 주차장 부근에서 1곡, 2곡, 3곡, 4곡, 5곡 등의 곡이름과 淸流洞(청류동), 丹心臺(단심대), 樂樂臺(낙락대) 등의 지명, 樂山玩草 吟風弄月(요산완초 음풍농월)이니 淸流水石 動樂風景(청류수석 동악풍경)이니 하는 싯구, 그리고 아무개 장구처(杖 處)라 하며 자기 이름이나 호를 새긴 크고 작은 각자들을 마치 설악산 비선대나 두타산 무릉계에서처럼 발견할 수 있다.도림사,道林寺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동악산(動樂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한 사찰. 문화재자료.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華嚴寺)의 말사이다. 660년(태종무열왕 7)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는데, 그 당시 풍악의 음률이 온 산을 진동하였다 하여 동악산이라 하고, 도인(道人)이 숲같이 모여들었다 하여 도림사라 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582년경 신덕왕후(神德王后)가 절을 창건하고 신덕사(神德寺)라 하였는데, 660년 원효가 사불산화엄사(四佛山華嚴寺)로부터 옮겨와서 도림사로 개칭하였다고도 한다.
그 뒤 876년(헌강왕 2) 국사 도선(道詵)이 중건하고 지환(知還)이 중창하였으며, 조선 말기 처익(處翼, 1813∼1888)이 산내암자인 길상암(吉祥庵)을 창건하였다고 『동사열전(東師列傳)』에 보이는데, 당대의 유명한 목수장(木手匠)이자 승려인 영해(影海)도 도림사에서 주석하였다. 길상암은 현재 옛터 위에 토굴만 남아 있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중심건물인 보광전(普光殿)을 비롯, 나한전(羅漢殿)·명부전(冥府殿)·약사전(藥師殿)·응진당(應眞堂)·궁현당(窮玄堂)·칠성각·요사채 등이 있다.
보광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익공계(翼工系) 맞배지붕으로 겹처마에 단청이 있고, 응진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기와집이며,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기와집이다.
문화재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9호로 지정된 도림사괘불이 있는데 1730년(영조 6)에 제작된 것으로 크기는 세로 300㎝, 가로 278㎝이다. 절 앞 약 500m 지점에 5기의 부도(浮屠)가 남아 있고, 절 앞 계곡에는 반석이 좋아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절 일원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인생을 소풍처럼
어린 날 소풍가기 전날은 즐거움에 들떠 잠을 설치고
새벽에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떴던 기억들을
누구나 간직하고 있으리라
소풍은 여유있는 사람이 간다
또 마음과 몸이 건강하고 즐거워야 갈 수 있다.- 조광렬의 <인생을 소풍처럼> 중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쁜 일상은
어릴 적 가졌던 즐거운 소풍처럼 사는 것이
진정한 정신적 안식이 아닌가 합니다
조그만 여유를 가지면 하루하루가
모두 즐거운 소풍입니다.# 산행지도
# 산행사진
도림사 관광단지 & 아름다운 백일홍
형제봉 가는 소나무 능선에 계속 나타나는 돌탑군
나무가지 사이로 곡성벌이 보인다
동악산(動樂山 735m)은 높이 735m. 660년(신라 무열왕 7) 원효가 도림사(道林寺)와 길상암(吉祥庵)을 세울 때 하늘의 풍악에 산이 춤췄다고 하여 동악산이라 한다. 동악산(動樂山 735m)은 곡성 고을 사람 중 과거 시험에 급제하는 인물이 나올 때마다 산이 흔들리며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렸다고 하는 데서 이름이 유래한다는 설도 있다.
도선이 876년(신라 헌강왕 2) 중건한 이 절에는 이름처럼 휴정·유정 등 도인들이 모여 숲을 이루었고, 지환(知還)이 3창한 뒤 조선 말기에 4창하였다. 전라남도 곡성군의 북쪽에 위치한 산으로 곡성읍 월봉리에 있다(고도:737m). 남쪽으로 형제봉, 최악산으로 이어지고, 북쪽 아래로는 섬진강이 흐른다.
곡성읍 서쪽에 위치한 동악산은 겉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은 산으로 보이나 산속에 들면 골짜기가 깊고, 바위로 이뤄진 산세는 범상치 않다. 산 남쪽 성류구곡에 위치한 도림사는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사찰이다. 이 절의 처음 이름은 신덕왕후가 행차한 곳의 절이라는 의미의 신덕사였으나 현재는 도를 닦는 승려들이 수풀처럼 모이는 곳이라는 뜻의 도림사로 불리고 있다.
수석 절경이 삼남 제일이라는 청류동(淸流洞)은 도림구곡(九曲), 청류구곡으로 불린다. 제1은 쇄연문(鎖烟門), 제2는 낙악대(樂樂臺), 길상사와 청계동 갈림길에 9곡 별유비인간(別有非人間)이 있다. 임진왜란의 양대박(梁大樸:1544∼1592)과 병자호란의 김감(金鑑:1566∼1641) 의병장이 활약한 별천지 무릉도원, 천혜의 요새로 4km에 걸쳐 있는 폭포·소·담이 굽이치는 반석들이 지방기념물 제101호이다.
허백련(許百鍊)이 현판을 쓴 도림사 오도문(悟道門)에서 계곡을 향하면 갈랫길이다. 오른쪽은 시인 묵객들이 노닐던 단심대, 배넘어재와 동악산 쪽이고 왼쪽은 형제봉과 길상암 쪽이다. 배넘어재 넘어 가파른 암봉 서봉을 지나 왼쪽 형제봉(730m:옛이름 聖出峰)까지는 산나물·산꽃이 깔린 전망 좋고 평탄한 능선길이다.
주봉에 서면 북동쪽 산줄기가 섬진강까지 뻗어나간 북쪽 사면과 뒤로 솟은 고리봉·삿갓봉·문덕봉이 보인다. 전라선이 섬진강 연안을 따라 달리며, 소백산맥과 마이산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곡성군 압록에서 보성강과 만나 압록유원지를 이룬다.
청류동계곡 또는 도림사계곡으로 불리는 골짜기를 경계로 두 개 산군으로 나뉜다. 골짜기 북쪽은 동악산, 남쪽은 형제봉(759m) 줄기인데, 동악산은 섬진강변에서 산자락을 끝맺지만, 형제봉은 남쪽으로 최악산을 거쳐 통명산(764.8m)까지 남동향으로 뻗다가 두 갈래로 갈라져 보성강에 산자락을 담그기까지 길고 넓은 품을 형성한다. 산세가 이렇게 두 개 산군으로 나뉘다 보니 산행도 두 산줄기를 따로 떼어 하든지 또는 함께 엮는 식으로 한다.
청류동이 '水石(수석)의 景(경)이 三南(삼남)에서 으뜸'이라 일컫는 것은 도림사 위아래 골짜기가 산수미의 절경을 이루고 있는 탓이다. 주차장에서 계곡을 거슬러 오르노라면 풍류객들이 절경에 감탄해 새겨놓은 글귀를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대전 계룡산에 용산구곡과 갑사구곡이 있듯이 곡선 동악산에는 청류구곡(淸流九曲)이 있다. 영과후진 방호사해(盈科後進 放乎四海)는 맹자(孟子) 이루하(離婁下)편 ‘원천혼혼(原泉混混) 불사주야(不舍晝夜) 영과후진(盈科後進) 방호사해(放乎四海)’에 나온 말로, ‘샘이 깊은 물은 끝없이 용솟음치기에 밤낮을 쉬지 않고 흐르며, 흐르다 웅덩이를 만나면 그 웅덩이를 가득 채우고 다시 흐른다. 그리하여 사해까지 멀리 흘러갈 수 있다’는 뜻이다.
도림사 계곡에는 1곡부터 9곡까지 있다.
천간지비(天?地秘)의 박혜범님에 의하면 '하정 조병순(荷亭 曺秉順 1876~1921)선생이 구곡(九曲)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1. 일곡(一曲) 쇄연문(鎖烟門)
2. 이곡(二曲) 무태동천(無太洞天)
3. 삼곡(三曲) 대천벽(戴天壁)
4. 사곡(四曲) 단심대(丹心戴)
5. 오곡(五曲) 요요대(樂樂臺)
6. 육곡(六曲) 대은병(大隱屛)
7. 칠곡(七曲) 모원대(暮遠臺)
8. 팔곡(八曲) 해동무이(海東武夷)
9. 구곡(九曲) 소도원(小桃源)
구곡(九曲) 소도원(小桃源)
중국 도연명이 노래한 도화원(桃花源)과 풍광이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일명 도원동이라고도 한다.
소도원은 무이산 깊숙한 곳에 숨어 있어 바위 사이로 석문(石門)을 지나면 눈앞이 활연히 열리며, 밭두둑이 넓고 평평하고 집들이 정연하며 오두막과 복숭아밭 죽림(竹林) 석지(石池) 작은 시냇물 등이 도연명이 묘사한 도화원과 흡사하다.
팔곡(八曲) 해동무이(海東武夷)
해동무이는 주자(朱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조선(海東)식 버전으로 표현한 것이다. 무이구곡은 중국 무이산에 있는 구곡으로 무이산 36봉우리와 37암석 사이에 계류가 흐르면서 아홉굽이의 절경을 이룬 곳이다.
맨위에 "영원히 변치않는 선비의 절개"를 의미하는 '중류지주 백세청풍(中流砥柱 百世淸風)' 이 새겨져 있다.
쾌사창애일도천(快瀉蒼崖一道泉) 푸른 절벽 사이를 쏟아져 내리는 한줄기 맑은 물은
백룡비하을람천(白龍飛下鬱濫天) 백룡이 하늘에서 숲으로 날아 내리는듯 하네
공산유차진기관(空山有此眞奇觀) 인적없는 산중에서 이런 절경을 보고 있으려니
의장래간사름연(倚杖來看思澟然) 지팡이 의지해 와 둘러본 마음까지 젊어지누나
회암주부자시후학정순태조병순송각(晦菴朱夫子詩後學丁舜泰曺秉順誦刻)
주부자(朱夫子)의 시를 삼가 후학 정순태 조병순이 노래하고 새겼다
참고: 시를 쓴 주부자(朱夫子)의 '부자(夫子)'는 덕행이 높아 만인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을 높여 일컫는 말이다. 중국의 공자를 공부자(孔夫子), 맹자를 맹부자(孟夫子), 주자를 가리켜 주부자(朱夫子)로 부른다.
칠곡(七曲) 모원대(暮遠臺)
모원대의 모원(暮遠)은 일모도원(日暮途遠)의 뜻으로,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의미를 지난 누대이다.
육곡(六曲) 대은병(大隱屛)
대은병의 대은(大隱)은 소은(小隱)의 상대적인 말로 진정한 은사(隱士)를 의미하는데, 이 말은 몸은 조시(朝市)에 있어도 뜻은 멀리 산림에 두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은사(隱士)라는 뜻이다.
원효대사가 도림사를 창건할 때 풍악소리가 온 산을 진동하여 산 이름을 동악산(動樂山)이라 하였고, 도인들이 절에 숲처럼 모여들어 절 이름을 도림사(道林寺)라 지었다고 한다.
오곡(五曲) 요요대(樂樂臺)
요요대는 물을 좋아하는 지혜로운 자와 산을 좋아하는 어진 자가 노니는 누대(樓臺)라는 뜻이다.
사곡(四曲) 단심대(丹心戴)
단심대는 조선말기의 학자이며 애국지사인 간재(艮齋) 전우(田愚)선생이 나라잃은 설움을 시로 표시한 것이다. 단심(丹心)은 단심벽혈(丹心碧血)에서 나온 말로 붉은 마음 곧 충성스런 마음을 의미하여, 벽혈(碧血)은 피가 푸른 옥으로 변한 것으로 곧 충성스런 마음이나 고귀한 선혈을 말한다. 그러므로 단심벽혈은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을 칭송하는 말이다.
丹心客上丹心臺 - 단심(丹心)을 품은 나그네 단심대에 올랐네
縱有丹心有孰知 - 단심이 있다한들 누구에게 이 마음을 줄 것인가
莫道丹心知者少 - 단심을 아는 이 적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丹心只恐死如灰 - 단심이 죽어 재가 될까 다만 두려울 뿐이라네
'우구산시(右臼山詩)' - 구산은 간재 전우(艮齋 田愚/1841-1922)선생의 별호이며, 구한말 애국지사로 나라 잃은 설움을 시로 읊은 것을 새겨놓은 것이라고 한다.
곡성 도림사 계곡,谷城 道林寺 溪谷
전라남도 기념물 제101호. 노령산맥의 한 줄기가 동악산(動樂山) 줄기를 이루고, 이 동악산의 줄기 아래에 성출봉(聖出峰)이 있는데 이곳 도림사 앞의 계곡을 말한다. 이 절은 국보와 보물은 없으나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과 계곡이 유명하며 계곡이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 흔히 ‘도림사 골짝’으로 불린다.
절의 입구에서 송림숲 지대를 따라 약 1.5㎞쯤 올라가면 도림계곡·동악계곡·성출계곡 등이 있는데 여기에는 국내에서 유일한 열 서넛 구비의 반석계곡이 나타난다. 맨 위 제1반석에서 시작하여 제9반석까지 이름이 붙여져 있고 그 길이가 1㎞에 이른다. 널찍하고 펀펀한 반석 위를 맑은 물줄기가 마치 비단을 펼쳐 놓은 듯이 흐르고 있어 일찍부터 ‘수석의 경이 삼남에서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반석이 큰 것은 폭이 20m에서 30m쯤이고 길이가 100m에 이른다. 이러한 널찍한 반석은 맑은 물줄기가 천년 세월을 두고 흐르면서 바닥을 반질반질하게 만들었다. 구비 구비 펼쳐진 반석 위에 쉴 새 없이 흐르는 맑은 물과 그 아래의 소(沼)는 관광객으로 하여금 신비한 운치를 맛볼 수 있게 한다.
특히, 신선바위는 높이 4m에 넓이가 30평에 달하고 이 곳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좋아 신선이 지낼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여름에는 피서객과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또한, 수목이 울창하고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시인과 묵객들이 지나간 흔적을 반석과 바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절의 이름처럼 도인(道人)이 숲을 이루듯 몰려들었는지는 모르나 도선국사·사명당·서산대사 등의 고승들이 한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삼곡(三曲) 대천벽(戴天壁)
대천벽의 대천(戴天)은 대천이지(戴天履地)에서 나온 말로, 사람이 천지간에 살면서 천은(天恩)과 왕은(王恩)을 높은 하늘과 두터운 땅처럼 많이 입은 것을 의미한다. 아쉽게도 바위에 조작된 것은 숲이 너무 우거져 사진에 담지 못하였다.
이곡(二曲) 무태동천(無太洞天)
무태동천의 동천(洞天)은 동천복지(洞天福地)의 준말로 신선이 사는 별천지나 경치가 뛰어난 명산승지를 의미한다.
일곡(一曲) 쇄연문(鎖烟門)
쇄연은 곧 무쇄연미의 뜻으로 자욱한 운무가 뒤덮인 상태를 말하는데, 이 말은 원나라 무명시의 격강투지 2절로 보닝다.
淸流九谷(청류계곡=도림계곡)
구한말 곡성의 유학자이자 천석꾼이던 조병순(1876~1921), 동생 조병흠, 정순태 선생이 암반에 음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