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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2023년 02월 25일 토요일
# 산행지: 언양골,언양좌골, 개령암지(마애불), 점등날망, 점등산, 지리의 폼솔으로...ㅎㅎㅎ
# 산행거리: 10.65km 05시간56분
# 산행루트: 달궁 - 언양골 - 언양폭포 - 언양좌골 - 정령치(화장실) - 개령암지(마애불상군) -
큰고리봉 - 점등날망 - 점등산 - 달궁
언양골능선 : 고리봉에서 산맥이 분기되었으며 능선 좌우로 언양좌우골이 있음
개령암지마애석불상군 : 정령치와 고리봉 사이에 위치하며 보물1123호로 지정됨
언양골 : 정령치와 고리봉 주변에서 발원되며 언양골좌우골이 있고 작은계곡들이 합수
언양골 : 하류지역에 언양폭포가 있으며 다른 아흔아홉골에 비하여 경사도가 완만한 편임
언양우골 : 고리봉과 점등산능선 주변에서 발원되며 좌우골과 많은 물줄기가 합수됨
언양우골의좌골 : 고리봉 주변에서 발원되며 언양우골의 우골과 많은 계곡들이 합수됨
점등산능선 : 고리봉주변에서 분기되며 일반 정맥길과 같이 많은 봉우리 들을 오르내림
점등산 : 822m의 산 봉우리로 덕동마을로 산맥이 분기되며 아름다운면은 찿을수 없었음
언양골
정령치
정씨성을 가진 장군의 전설이 있는 * 정령치는 높이 1,172m로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과 산내면에 걸쳐 있는 지리산국립공원의 고개이다. 정령치는 서산대사 휴정(休靜 1520~1604)의 [황령암기(黃嶺庵記)]에 의하면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씨 성을 가진 장군에게 성을 쌓고 지키게 했다는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지리산 주능선이 한 눈에 고개 꼭대기의 정령치 휴게소는 지리산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다. 동으로는 바래봉과 뱀사골 계곡이, 서쪽으로는 천왕봉과 세석평전 반야봉 등과 남원의 시가지가 한 눈에 펼쳐진다. 지리산 주능선 일 백리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정령치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서북쪽 능선을 타면 고리봉-세걸산-부운치-팔랑치-바래봉이 이어지고, 남쪽 능선을 타면 만복대-묘봉치-고리봉-성삼재로 연결된다.
개령암지 마애불상군(南原開嶺庵址磨崖佛像群) 보물 제1123호
지리산 정상부근인 정령치(鄭嶺峙)의 고리봉 아래에 있는 고려시대에 제작된 불상군이다. 전체 12구로 3구는 비교적 잘 보이며, 나머지 9구는 마모가 심한 편이다. 이 중에서 가장 큰 존상은 마애여래입상으로 높이가 4m가량인데, 전체 불상군에서 중심 존격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의 불상양식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통을 계승한 것과 지방에서 특색있게 발전한 양식, 이렇게 두 계통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개령암지 마애불상군은 전라도 지역에서 발전한 독특한 불상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마애불이 위치한 곳은 정령치라는 지명으로 알려져 있다. 구례 천은사에 전하는 필사본 『호좌 남원부 지리산 감로사 사적(湖左南原府智異山甘露寺事蹟)』에 따르면 정령치 마애불 인근으로 추정되는 곳에 도선이 창건한 개령암(開嶺庵)이 있었다고 하였는데, 실제 이곳에서 기와편 등이 발견되고 있어서 개령암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마애불상군은 크게 네 개의 군으로 구분된다. 이 중에서 가운데 두 개의 군에 새겨진 향좌측 불좌상과 향우측 불입상이 규모 면에서 볼 때 전체 도상의 중심존상으로 추정된다. 이들 불상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대략 1m에서 40㎝가량의 마애조상이 조성되어 있다. 그 형태를 보면 대형 불입상은 마치 두 손을 모아 소매 안에 넣는 중국식 인사법을 표현한 것처럼 보이는데, 얼굴은 마치 장승처럼 추상적이고 왜곡된 모습을 하고 있다.
마애불이 새겨진 절벽 세 군데에 명문이 남아 있어 주목된다. 첫 번째는 마애불상군 중앙부 상단에 위치한 높이 약 3m의 편단우견 마애불좌상 왼편 부근에 있는 명문이다. 글자는 “비로자나방불, 세전소□, □천보십□, 사사전□□(毘盧遮邦佛 世田小□ □天寶十□ 師士田□□)”으로 판독된다. 두 번째는 여기서 향우측에 자리한 높이 약 4m의 통견 착의 마애여래입상 왼편에 있으며 “세□전명월지불(世□田明月智佛)”로 판독된다. 세 번째 명문은 대형 마애불좌상 서남쪽에 있으며, “천불□멸죄다라, 여타악□보노□가악□진, 비□□아명가왈□화제차, 시□□□백아연, 타가, □제□사(千佛□滅罪陀羅 女他惡□普魯□伽惡□普 卑□□阿明伽曰□和帝此 是□□□白阿衍 他伽 □提□詞”로 판독되고 있다. 이들 명문은 중간에 탈락한 부분이 있어 전체적인 해석은 어렵지만, 불상군 제작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특히 ‘천보십’은 중국의 오월(吳越) 혹은 남한(南漢)에서 사용했던 연호로 추정되는데, 만약 오월국의 연호라면 천보 10년은 927년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남원 지역은 후백제 견훤의 통치를 받았으므로 이들 마애불은 후백제 시대로 편년될 가능성도 있다. 한편 ‘명월지불’이라는 존명 역시 마애불의 도상적 의미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중요성이 있다.
개령암지 마애불상군은 양식적인 면에서 전라남도 화순 운주사의 불상과 여러모로 닮았다. 운주사의 천불천탑에 관해서는 남겨진 기록이 전혀 없어 조성연대 및 주체와 사상적 배경 등에 관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그와 유사한 개령암지 불상군에는 제작의 단서를 살필 수 있는 명문이 남아 있어 추후 이와 같은 불상양식의 연대설정 및 도상해석에 단초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주불로 추측되는 높이 4m의 비로자나부처님.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마애불상군은 자세하게 살펴봐야 부처님 형상을 찾을 수 있다.
형태가 큰 부처님은 금방 시야에 들어오지만 작은 부처님은 마모가 심해 안내판을 살피며 대조해야 흔적을 짐작할 수 있다.
총 12기의 부처님이 조성돼 있다고 하는데 자세하게 살펴서 파악할 수 있는 마애부처님은 9기 정도이고 좌측 상단의 3기의 부처님은 흔적만 파악된다.
가장 큰 마애부처님은 정면 우측으로 높이가 4m정도에 이르는데 본존불로 보인다.
그 위쪽과 우측, 좌측으로 군락을 이루어 조성된 마애불이 협시불 형태로 높이 3m와 작게는 1m크기로 조성돼 있다. 상호는 돋을새김으로 처리했다.
큼직하고 둥그스름한 얼굴과 큼직한 코가 인상적이다.
신체는 선각형태로 처리해 고려시대 마애불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마애부처님은 울퉁불통한 수성암 자연암벽에 새겨서 조성할 당시에 어려움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마애부처님 아래쪽에는 '명월지불 비로자나불 천보십(明月智佛 毘盧遮那佛 天寶十)'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인다고 한다.
이는 주불이 비로자나불이고, 천보는 중국 우월(吳越)국의 연호이므로 917년에 조성된 것으로 파악된다.점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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