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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2023년 09월 12일 화요일
# 산행지: 계룡산은 차령산맥 중의 연봉으로, 충청남도 공주시·계룡시·논산시와 대전광역시에 걸쳐 있는 산...조망산행
# 산행거리: 9.4km 05시간17분
# 산행루트: 동학사주차장 - 세신정 - 동학사 - 은선폭포 - 관음봉 - 삼불봉 - 삼불봉고개 - 남매탑 - 동학사주차장
계룡산(鷄龍山)
우리나라 4대 명산의 하나이며 높이는 846.5m이다. 차령산맥 서남부에 솟아 있으며, 금강에 의한 침식으로 이루어진 산지이다. 주봉인 천황봉을 비롯하여 연천봉·삼불봉·관음봉·형제봉·도덕봉 등 20여 개의 봉우리들이 남북방향으로 이어지다가 동쪽으로 2줄기, 서쪽으로 1줄기를 뻗치고 있어, 전체의 모습이 마치 닭볏을 쓴 용과 같다고 하여 '계룡산'이라 했다.
예로부터 신라 5악 가운데 서악(西嶽)으로 제사를 지내왔고, 조선시대에는 중악단(中嶽壇)을 세워 산신제를 지낼 만큼 신령스러운 산이었으며, 우리나라 4대 명산의 하나이다. 〈정감록〉에서는 이 산 일대를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예언했고 조선초에는 계룡산 신도안에 왕도를 건설하려 할 정도로 명당이라 알려졌다. 19세기말부터 나라가 혼란해지자 신도안을 중심으로 전래의 무속신앙과 각종 신흥종교가 번성하고 이들의 수도장으로 이용되어, 계곡 곳곳에 교당과 암자·수도원·기도원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지금은 종교정화운동으로 시설물들이 철거되고 주변을 정리해,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1968년 12월 지리산에 이어 2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공원의 총면적은 65.34㎢이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산봉·계곡·폭포·암굴 등의 특출한 자연경관을 비롯해 갑사,동학사,신원사 등의 고찰과 유물유적이 많아 교육의 장으로도 적합하다.
비구니들의 불교 전문 강원(講院)인 동학사는 산의 동쪽 기슭에 있다. 동학사는 신라 성덕왕 때 창건되었으며, 동쪽에 학바위가 있어 동학사라 했다. 고려말·조선초 삼은의 위패를 모신 삼은각과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냈던 숙모전 등이 있다. 서쪽 기슭에 자리한 갑사는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로 백제시대에 고구려 아도화상이 창건했고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4년 인호대사가 다시 중건했다.
갑사 삼신불괘불탱(국보 298)·신원사 노사나불괘불탱(국보 299) 등 국보 2점과 철당간 및 지주(보물 제256호)·부도(보물 제257호), 구리가 8,000근이나 들었다는 동종(보물 제478호)을 비롯한 보물 6점 외에도 지정문화재 9점, 비지정문화재 10점 등이 보존되어 있다. 갑사에서 용문폭포를 따라 1.3㎞ 정도 오르면 천연석탑인 천진보탑과 신흥암이 있다.
서남쪽에 있는 신원사는 652년(의자왕 12)에 보덕화상이 창건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그뒤에 다시 지은 것이다. 경내에는 산신제단인 중악단, 5층석탑 등이 있으며, 주위에 고왕암·등운암 등 암자가 있다. 이밖에도 용화사 등 많은 절이 있다.
또한 계룡8경으로 알려진 뛰어난 경치 8곳이 있는데, 제1경은 주봉인 천황봉의 일출이며, 제2경은 세 부처님의 모양을 닮았다는 삼불봉의 설화(雪花)로 겨울 설경이 신비롭다. 제3경은 천황봉의 일출과 쌍벽을 이루는 연천봉의 낙조이며, 주위에 갑사·신원사 계곡 등이 있다.
제4경은 관음봉에서 바라다보는 흰구름이며, 이곳에서 쌀개봉으로 이어지는 철쭉길 또한 유명하다. 제5경은 춘동학 추갑사로 표현되는 울창한 숲의 동학사계곡이며, 제6경은 갑사계곡의 단풍으로, 특히 용문폭포를 포함한 갑사구곡이 유명하다. 제7경은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은선폭포이며, 제8경은 청량사터의 전설에 얽힌 청량사지쌍탑(지방문화재 제1호)이다. 이 7층탑을 오라비탑, 5층탑을 누이탑이라 하여 오누이탑 또는 남매탑이라고도 한다.
동학사,東鶴寺
동계사(東鷄寺)라고도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724년(성덕왕 23)상원(上願)이 암자를 지었던 곳에 회의(懷義)가 절을 창건하여 청량사(淸凉寺)라 하였고, 920년(태조 3)도선(道詵)이 중창한 뒤 태조의 원당(願堂)이 되었다. 936년신라가 망하자 대승관(大丞官) 유거달(柳車達)이 이 절에 와서 신라의 시조와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초혼제(招魂祭)를 지내기 위해 동학사(東鶴祠)를 지었다. 그리고 사찰을 확장한 뒤 절 이름도 동학사(東鶴寺)로 바꾸었다.
이 절의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으므로 동학사(東鶴寺)라 하였다는 설과, 고려의 충신이자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조종(祖宗)인 정몽주(鄭夢周)를 이 절에 제향하였으므로 동학사(東學寺)라 하였다는 설이 함께 전해진다.
1394년(태조 3)고려의 유신(遺臣) 길재(吉再)가 동학사의 승려 운선(雲禪)과 함께 단(壇)을 쌓아서 고려태조를 비롯한 충정왕·공민왕의 초혼제와 정몽주의 제사를 지냈다. 1399년(정종 1)고려 유신 유방택(柳芳澤)이 이 절에 와서 정몽주·이색(李穡)·길재 등의 초혼제를 지냈으며, 다음해 이정한(李貞翰)이 공주목사로 와서 단의 이름을 삼은단(三隱壇)이라 하고, 또 전각을 지어 삼은각(三隱閣)이라 하였다.
1457년(세조 3)김시습(金時習)이 조상치(曺尙治)·이축(李蓄)·조려(趙旅) 등과 더불어 삼은단 옆에 단을 쌓아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내고 이어서 단종의 제단을 증설하였다. 다음 해에 세조가 동학사에 와서 제단을 살핀 뒤 단종을 비롯하여 정순왕후(定順王后)·안평대군(安平大君)·금성대군(錦城大君)·김종서(金宗瑞)·황보인(皇甫仁)·정분(鄭奔) 등과 사육신, 그리고 세조 찬위(簒位: 임금의 자리를 빼앗음)로 원통하게 죽은 280여 명의 성명을 비단에 써서 주며 초혼제를 지내게 한 뒤 초혼각(招魂閣)을 짓게 하였다. 인신(印信: 도장)과 토지 등을 하사하였으며, 동학사라고 사액하고 승려와 유생이 함께 제사를 받들도록 하였다.
1728년(영조 4)신천영(申天永)의 난으로 이 절과 초혼각이 모두 불타 없어졌고, 1785년(정조 9)정후겸(鄭厚謙)이 위토(位土: 묘에서 지내는 제사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경작하던 논밭)를 팔아버리자 제사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1814년(순조 14)월인(月印)이 예조에 상소하여 10여 칸의 사옥과 혼록봉장각(魂錄奉藏閣)을 세웠다. 1827년홍희익(洪羲翼)이 인신을 봉안하는 집을 따로 지었으며, 충청좌도어사 유석(柳奭)이 300냥을 내고 정하영(鄭河永)이 제답(祭畓)을 시주하여 다시 제사를 베풀었다.
1864년(고종 1) 봄에 금강산에 있던 만화 보선(普善)이 이 절에 와서 옛 건물을 모두 헐고 건물 40칸과 초혼각 2칸을 지었는데, 초혼각은 1904년 숙모전(肅慕殿)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 뒤 만화에게서 불교경론을 배운 경허(鏡虛, 1849∼1912)가 9년간의 수학을 마치고 1871년(고종 8) 동학사에서 강의를 열었고, 1879년에는 이곳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 한국의 선풍을 드날렸다.
은선폭포,隱仙瀑布
높이 약 20m이다. 계룡산국립공원의 동학사 입구 극락교에서 서쪽 계곡을 따라 약 2㎞쯤 올라간 곳에 있다. 옛날 선녀가 이곳에 숨어서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있어 은선폭포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일대의 기반암인 화강암과 곳곳에 관입되어 있는 석영반암층의 차별침식으로 기암절벽과 폭포들이 형성되었다.
남매탑,男妹塔
남매탑(男妹塔)은 계룡산에 있는 두 개의 탑으로 동학사에서 갑사로 넘어가는 연천봉 중턱에 있는 상원암 근처 해발 615m 지점(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산18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은 계룡 팔경중 제팔경인 '오뉘탑의 명월'로 꼽힐 만큼 풍광이 뛰어난 곳이다. 남매탑은 충남 지방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곳에 청량사가 있었다하여 청량사지쌍탑이라고도 불린다. 5층 석탑은 보물 제128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7층 석탑은 보물 제1285호로 지정되어 있다. 청량사는 임진왜란때 병화로 전각이 모두 소실되었고, 이 탑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일명 남매탑 또는 오뉘탑이라 부르기도 하고 이 2기의 석탑들은 1950년대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61년에 복원하였다. 탑을 쌓은 돌들은 계룡산 일대의 존재하는 화강암류로 담홍색 흑운모화강암이다.
남매탑은 통신신라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의 연구자들은 12세기경에 건립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두 탑은 백제계 양식을 가진 탑으로 5층석탑은 정림사지석탑을 모방하였고, 7층석탑은 미륵사지석탑을 모방하였다.
남매탑에는 탑이 세워진 내력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신라 성덕왕 때 상원조사가 이곳에 암자를 짓고 불공을 드리고 있는데 호랑이가 찾아와 입을 벌리고 우는 소리를 내었다. 스님은 호랑이의 목에 걸려 있는 큰 뼈다귀를 빼주었는데, 호랑이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사라져버렸다. 얼마 후 호랑이가 스님을 태우고 어디론가 달려갔는데 거기에 실신한 처녀가 있었다. 스님은 그 처녀를 암자로 데리고 와서 간호를 하였다. 얼마 후 정신이 든 처녀는 자신이 상주에 사는 임진사의 딸인데 혼인날에 호랑이가 나타나 그만 기절을 하였는데 이 곳까지 왔다고 하였다. 스님이 호랑이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자 처녀는 부처님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하며 부부의 연을 맺기를 청하며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상원조사는 흔들리지 않고 함께 수도에 정진하자고 하며 거절하였다. 그 후 스님과 처녀는 의남매를 맺고 불도를 닦으며 일생을 보냈는데 후에 상원조사의 제자 회의화상이 두 개의 불탑을 세워 그 뜻을 기렸고, 사람들이 그 탑을 오뉘탑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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