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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골,취서암,웅석봉지리 산행기 2023. 12. 10. 19:33
# 언제: 2023년 12월 09일 토요일
# 산행지: 곰골, 취서암, 웅석봉, 삽자봉, 지리의 품속으로...ㅎㅎㅎ
# 산행거리: 9.25km 05시간 51분
# 산행루트: 내리제 - 지곡사 - 선녀탕 - 곰골 - 취서암(鷲棲庵) - 태극(동부)능선 - 웅석봉
웅석봉북능 - 십자봉 - 내리제
지곡사,智谷寺 터
통일신라 때 지어진 사찰로 고려시대 번성하였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강연회를 여는 등 절의 명맥이 19세기까지 이어졌다. 20세기에 들어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신라 법흥왕 때 창건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통일신라 때 창건되고 고려시대에는 진관 석초(911~964)와 혜월이 이 절에 머무르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크게 펼쳐 큰 절의 면모를 유지했다. 이때가 절의 전성기로 승려가 약 300여명에 이르렀고 물방앗간이 12개 있었다고 한다. 그 뒤 조선시대 남명 조식 등이 이곳에서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19세기 중반까지 명맥을 이어 왔다. 20세기가 되어 일제에 의해서 실시된 조선총독부의 전국사찰등록시 지곡사의 말사인 심적암(深寂庵)이 심적사(深寂寺)로 등재되어 있고 지곡사란 이름은 빠져 있는 것으로 보아 19세기 말경에 어떤 이유에서인가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이 절에는 1016년(현종 7) 고려 예부상서에 임명된 손몽주가 지은 혜월과 석초의 비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절터에는 귀부 2기가 있다. 이들 귀부는 혜월과 석초의 비를 세울 때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 이 절에는 석비 2기가 있다. 1기의 석비는 한암대사의 비로 1845년(헌종 11)에 건립한 것이며 또 다른 1기의 석비는 추파당 석파대사의 비로 1836년(헌종 2)에 건립한 것이다.
발굴조사결과 지곡사의 실체를 확인케 하는 「지곡사(智谷寺)명 막새가 출토되었으며, 정면과 측면이 모두 세 칸 규모인 금당지에서는 불상대좌와 소조불상편(塑造佛像片)이 노출되었다.
금당지는 조사구역의 북동편에 자리하며 해발 200m 정도의 비교적 가파른 산야의 남동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유구가 확인되고 있는 범위는 대체로 길이 70m, 너비 약 5m로 길게 조성된 평지인데, 이곳은 가로, 세로의 크기가 1m에 가까운 대형 암석을 수직상으로 쌓아 만든 높이 3.5m 규모의 거대한 축대가 동서방향으로 직선을 이루며 약 50여m 정도 길게 이어진 상태이다. 따라서 금당과 관련이 있는 유구의 흔적은 축대의 상부에서 모두 확인되고 있다.
축대 위에 설치된 금당지 이외에 모두 5기의 건물지가 부분적으로 확인되었는데, 이곳에서 통일신라시대 와편을 비롯한 고려, 조선시대의 와전류 및 자기류가 상당량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뮬의 출토양상과 가람배치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신라 응진(應眞)에 의해 ‘국태사(國泰寺)’로 창건되었다는 기록은 신빙성이 적으나, 늦어도 통일신라시대에는 지곡사가 존재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유구의 중복양상을 비롯하여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유물이 시간적 단절없이 지속적으로 노출되었고, 그 중에는 연호 및 간지 등 절대연대를 알 수 있는 명문기와가 다수 있어 지곡사가 조선후기까지 개보수를 거치며 존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산청 지곡사지(山淸 智谷寺址, 경상남도 기념물 제225호)
지곡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응진(應眞) 스님이 국태사로 창건하여 고려시대 선종(禪宗) 5대 산문(山門)의 하나가 되었다.
절터에는 거북머리 비석받침대(귀부龜趺) 2기, 부서진 석탑 조각, 대웅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70m에 이르는 석축, 종 모양의 부도(浮屠) 2기 등이 있어 대사찰의 흔적을 전해주며 지금 지곡사는 1958년 강덕이(姜德伊) 스님에 의해 중건된 것으로 본래의 가람 배치와는 무관하다.
선녀탕
이곳은 조선 초기 성리학자 점필재 김종직이 1472년 쓴 지리산 기행문 '유두루록'에도 언급돼 있다. 한국자연보존협회는 1987년 이곳을 '한국 명수 100선'으로 선정했다.
곰골
유산(楡山)·웅석산이라고도 하며, 1983년 11월 23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꼭대기가 곰같이 생겼다 하여 웅석봉(熊石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곰이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할 정도로 산세가 험하다. 가뭄이 든 해에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한다.
취서암(鷲棲庵)
은둔의 암자 - 취서암(鷲棲庵) - 취서(鷲棲)라는 한자음을 검색하여 보니 수리취에 살서로서 번역을 하면 [독수리가 사는 곳]이라는 뜻이 되겠는데가히 이곳 취서암에는 천하절벽 중턱에 위치한 요새로서 독수리가 살기에 합당한 장소가 아닌가 싶다.
양산의 통도사가 자리를 잡은 영취산은 한때 취서산 또는 영축산 이라고도 불려진 적이 있었는데 이는 멀리서 보면 산의 형상 그 자체가 한마리 독수리로 보여지기 때문에 붙여진 풍수관련 용어라고 하고 영축이나 취서는 모두 독수리를 뜻한다고 한다(인터넷 포털 다음에서 발췌함) -퍼온글-
취서암(鷲棲庵)현판 - 공덕(功德)터 丙辰年(병진년) 潤八月(윤팔월) 重修(중수).炳義謹刻(병의근각) - 현판 좌측에는 작은 글씨로 백년전 조부께서의 공덕터 병진년 윤팔월 중수 병의근각, 이라고 쓰여있다 병진년은 1976년이고 백년전이면 1876년이 된다고 자료에 나와 있다.
웅석봉(熊石峰) 해발(1099m)
1983년 11월 23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웅석봉은 지리산에서 흘러온 산이면서도 지리산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산이다.천왕봉에서 시작된 산줄기가 중봉과 하봉으로 이어져 쑥밭재 - 새재 - 외고개 - 왕등재 - 깃대봉을 거쳐 밤머리재 에 이르러 다시 한 번 치솟는데 이 산이 웅석봉이다.
이 웅석봉은 산 꼭대기가 곰의 모습과 같다 하여 웅석봉이라 하며 유산 또는 웅석산으로도 불리운다.
산청읍에서 웅석봉을 보면 마치 산청읍을 감싸고 있는 담장처럼 보이는 이 웅석봉은 경남 산청군 산청읍 내리와 삼장면 홍계리 그리고 단성면 청계리 경계에 걸쳐 있는 산으로 험한 산세가 말해주듯 곰이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산자락 아래에는 맑고 청량한 지리산 계곡수를 담은 경호강이 에둘러 흘러나가 남강에 이르며 지곡사 심적사 금계사등 사찰과 사찰유적지인 단속사지등을 품고있다.
또한 지리산을 비롯하여 가까이 둔철산과 철쭉의 황매산. 그 위 북쪽으로 함양 거창의 황석산 기백산 금원산등과 더 멀리 덕유산과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등 주위 명망 있는 높은 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지리산 태극종주의 시작점이거나 끝점으로 더 유명한 봉우리이다.
십자봉 해발9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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