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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묘향암(묘향대)
    지리 산행기 2026. 6. 1. 09:21

    # 언제: 2026년 05월 31일 일요일

    # 산행지: 노고단(해돋이), 반야봉(불도,佛道), 묘향암((성찰), 내자신 찾아 지리의 품속으로...ㅎㅎㅎ

    # 산행시간: 23.00Km   08시간 10분

    # 산행루트: 노고단 - 반야봉 - 묘향암

     

    바람

     

    바람이

    불어와

    춥지도

    덥지도 

    않은 바람

    위로의 바람인가

     

    길을 걷다가

    바람에게 

    어디서  불어왔냐고

     

    바람은 그냥

    바람으로

    나를 위해  챙기고

    떠나감을..

     

    -꺼비-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 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 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은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화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노고단,老姑壇   해발1.507m

    노고단이라는 지명은 할미당에서 유래한 것으로 ‘할미’는 도교(道敎)의 국모신(國母神)인 서술성모(西述聖母) 또는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일컫는다. 통일 신라 시대까지 지리산의 최고봉 천왕봉 기슭에 ‘할미’에게 산제를 드렸던 할미당이 있었는데, 고려 시대에 이곳으로 옮겨져 지명이 한자어인 노고단으로 된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현재의 노고단 위치에서 서쪽으로 2㎞ 지점에 있는 종석대(鍾石臺, 1,361m) 기슭으로 할미당을 옮겨 산제를 드렸다.

     

    노고단은 높이 1,507m이고, 지리산국립공원 안에 있으며, 지리산지의 동서 방향으로 연장되는 주능선의 서부를 이루는 봉우리이다.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과 더불어 3대 주봉이라고 하며, 지리산은 3대 주봉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남서쪽의 화엄사계곡을 따라 급경사로 된 코재(1,250m)에 오르면 노고단의 북서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주능선이 나타난다.

     

    반야봉,般若峰  해발 1.732m

     

    반야봉,般若峰 해발:1.732m 위치: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덕동리
    반야봉의 지명유래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반야가 지리산의 산신이면서 여신인 마고할미와 결혼하여 천왕봉에서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어떤 영험한 스님이 뱀사골에 있는 이무기를 불도와 합장으로 쳐부수고 절의 안녕을 가져왔다는 의미에서 반야심경에서 이름을 따 반야봉이라고 지었다는 설이 있다.


    천왕봉의 마고할미와 관련된 전설에 따르면 천신의 딸인 마고할미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반야를 만나서 결혼한 뒤 천왕봉에 살았다. 슬하에 여덟 명의 딸을 두었는데, 그 뒤 반야가 더 많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처와 딸들을 뒤로 하고 반야봉으로 들어갔다.


    마고할미는 백발이 되도록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남편 반야를 기다리며 나무껍질을 벗겨서 남편의 옷을 지었다. 그리고 딸들을 한명 씩 전국 팔도로 내려 보내고 홀로 남편을 기다리다 나중에 지쳐 남편을 위해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에 숨을 거두고 만다. 이때 갈기갈기 찢겨진 옷은 바람에 날려서 반야봉으로 날아가 풍란이 되었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은 반야가 불도를 닦던 봉우리를 반야봉으로 불렀으며, 그의 딸들은 팔도 무당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사람들은 반야봉 주변에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는 것은 하늘이 저승에서나마 반야와 마고할미가 서로 상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전라북도에서 가장 높으면서 지리산 일대에서 두 번째로 높은 해발고도 1,731.8m의 높은 산이다. 구례군 산동면과 남원시 산내면이 마주하고 있는 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반야봉을 중심으로 뱀사골을 이루는 만수천 지류가 동북쪽으로 흐르고 심원계곡을 이루는 지류는 남서사면에서 시작하여 반야봉을 좌로 돌아나간다.


    반야봉은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가는 주능선에선 벗어나 있다. 노루목에서 좌측능선을 따라가야 반야봉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반야봉은 예전부터 반야낙조와 운해의 절경은 지리산 8경의 하나로 손꼽히며, 특히 서쪽으로 지는 석양에는 반야봉 주변의 하늘이 온통 연붉은빛으로 물들어 장관을 연출한다.

     

    宿智異山般若峰 (지리산 반야봉에 묵다)

     지은이= 서경덕(徐敬德)

     

     智異巍巍鎭海東(지리외외진해동) 지리산 높이 솟아 동녁 땅을 진압해서,

     登臨心眼浩無窮(등임심안호무궁) 올라가니 마음이 끝없이 넓어지네.

     巉巖只玩峰巒秀(참암지완봉만수) 험준한 바위는 장난하듯 솟아나 하나같이 수려하고,

     磅礴誰知造化功(방박수지조화공) 끝없이 넓은 산이 조물주의 공임을 뉘 알리.

     

     蓄地玄精興雨露(축지현정흥우로) 땅에 스며진 현묘한 정기 비와 이슬을 일으키고,

     含天粹氣産英雄(함천수기산영웅) 하늘이 머금은 순수한 기운 영웅을 낳게 하네.

     嶽祗爲我淸烟霧(악지위아청연무) 산은 나를 위해 구름과 안개 맑게 했으니,

     千里來尋誠所通(천리래심성소통)  천리길을 찾아 온 정성이 통해서 일세.

     

     1).서경덕(徐敬德) :조선시대의 성리학자. 문집으로 화담집이 있다.

     2) 외외(巍巍) : 산이 높이 솟은 모양.

     3) 방박(磅礴) : 끝없이 광대한 모습.

     

    묘향암(妙香庵), 묘향대(妙香帶) - 산중 절해고도의 수행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집이 있는 지리산 묘향대, 그곳을 찾아가기란 여간 녹록지 않다. 반야봉 자락의 깊은 산중에 위치해 찾아가는 길도 멀고 험하다. 그래서 묘향대는 뭇 사람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반야 성지로 불리며 지리산 최고의 수행지로 알려져 있다. 묘향대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아예 지리산 주능선에 올라서서 접근하거나 아니면 뱀사골에서 험한 계곡을 치고 올라야 한다.

    그나마 편한 길은 주능선 상의 삼도봉에서 반야봉 북사면 허리 길로 접근하는 것이다. 아니면 반야봉으로 올라 반야중봉 정상에서 북사면을 타고 내려 접근할 수도 있다. 뱀사골에서 접근하려면 뱀사골 상부에서 폭포수골이나 함박골을 타고 올라야 하는데, 길이 제대로 없고 험해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찾는 사람 많지 않은 마치 절해고도 속의 수행지 같은 묘향대다. 특히 겨울이 되면 묘향대는 고립무원이 된다. 한 번 눈이 쌓이면 길과 길 아닌 곳의 구분은 사라지고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할 수도 없을 만큼 온통 하얀 눈뿐이다. 그래서 한 발을 잘못 디디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일쑤여서 이곳에 함부로 접근할 수 없다.

     

    노고단의 선교사 휴양지터

     

    노고단은 지리산의 등뼈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등뼈의 중간에 우리의 민초들은 단을 세우고 국모(성모)한테 제를 올리는 성스러운 곳이었다. 그런데 이 성스러운곳에 외국인 선교사들은 일제 강점기인 1910년대에 조선총독부와 조차협정을 맺고 노고단에는 교회 강당 영화관 테니스장 수영장을 비롯한 50여채의 현대식 석재 별장단지를 개발하고 치외법권 지역으로 만들었다.

     

    이 노고단에 별장을 지었다는 것은 곧 우리 민족의 민간신앙과 정신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었으며,철저한 유린이었으니, 우리 민족의 지리산은 청학동이었으며, 골짜기마다 도량(道場)을 짓고 고행을 감행했던 구도의 산이었고, 피안의 세계로 건너가는 영매(靈媒)의 산인 이곳에 외국인 선교사들은 별장을 짓고 말았다. 화엄사 계곡을 통해 수많은 조선인 일꾼들이 그 무거운 석재를 지고 노고단을 오르내렸을 장면과, 왜소한 조선인이 몇푼의 돈에 육중한 몸집의 서양인들을 상전처럼 가마에 태우고 좁은 계곡길을 오르내렸을 그때를 생각한다면, 참으로 분통 터질일이다.!

    그후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선교사들을 추방했고 노고단의 별장을 적산가옥으로 정리해 경매에 붙여 처분하자 이곳은 인근 부호들 의 별장으로 바뀌게 되었다가,지리산 빨치산 투쟁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노고단의 외국인 별장은 파괴되었는데, 1960년초 다시 돌아온 외국인 선교사들은 앙상한 건물 뼈대만 남은 이곳에 움막을 치고 허물어진 별장을 복원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왕시루봉으로 장소를 옮기 된것이다.

     

    북한군이 빨치산이 되어 숨어들어가자 국군토벌대가 주둔하면서 피비린내 나는 싸움터이며 민족상잔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뱀사골을 지나 갖가지 야생화가 천국을 이루고 있는 지리산 노고단에 오르면 노고단 정상 바로 밑 매점.대피소옆에 일제강점기시대 외국인 선교사들이 지어놓은 50여채의수양관들이 들어서 있던 장소가 있다. 이곳 수양관지대는 한말과 일제강점기 시대 선교사들이 심신의 피로을 풀고 치료하는 안식처로 혹은 영적 재충전하는 장소로 또한 풍토병에 시달리던 선교사에게는 쉬면서 치료를 받던 주요한 곳으로 사용되어 졌던 곳이다. 1920년대 당시 한국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선교사들이 들어와 있었는데 이질이나 말라리아 같은 풍토병이 심하여 선교사 자녀 중 9명이 사망했다. 이 수인성 질병을 막는 방법이 6.7.8월 기온이 서늘한 고온지대를 생각한 것이, 적격지로 노고단을 택했던 것이다. 또한 이곳에서 특히 한글 성경번역과 주요 성경공부 교재의 번역이 이루어졌고 선교전략 계획을 수립하는 장소의 역할로 크게 기여한 장소이기도 하였다. 1948년 10월에 일어난 14연대 사건(일명여순반란사건) 당시 반란군의 거점으로 활용하던 것을 국군토벌대가 점령하였고 6.25 전쟁 시에는 빨치산의 거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곳 노고단 밑의 수양관들을 모두 태워 버렸고 건너편 왕시루봉에 있는 몇 채의 집만 그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그 후 노고단에 조금 남았던 수양관의 흔적들도 사라호 태풍에 모두 훼손되었고 지금은 교회건물의 흔적만 남아있다. 1925년에 지어진 옛 건물인데도 서양벽난로 등이 설치되 있어 현대적인 건물 구조임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여기 흔적만 남은 이 유적지는 신앙교육, 선교사들간에 단합, 그리고 교회지도자의 수련활동을 하던 곳으로 변요한(DR.Preston)선교사의 책임 하에 세워졌다.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삼면의 벽을 중심으로 복원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 한국기독교 총연합회는 페허된채 남아있는 지리산 노고단과 왕시루봉의 외국인 휴양소를 유적지로 복원해 미국 장로교회 한국 선교역사 현장으로 보유하고 교육의 장으로 삼으려고 계획중이다.

     

    노고단 유적지 복원에 대한 이견 (월간 산 [생활/문화, 매거진] 2004.10.18(월) -빌려온 글-

     

    1930년 노고단에 있었던 외국인 선교사 별장지 모습   -  (자료 출처 :향토 사학)

     

    # 산행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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