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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고도,達摩古道 & 달마산 남도의 명풍길 걷다전국 산행기 2018. 12. 30. 11:30
# 언제: 2018년 12월 29일 토요일
# 산행지: 전남 해남 달마고도&달마산 남도의 명품길 걷다
# 산행거리: 약 16.5Km 05시간00분
# 산행코스: 미황사 - 달마고도 - 샛길 - 달마산능선 - 도솔암 - 도솔봉 - 천년숲길 - 미황사 - 주차장
# 달마고도,達摩古道
달마고도(達摩古道). 한반도의 최남단 해남 땅끝, 해발 489m의 달마산 중턱에 나있는 옛길이다. 달마산 미황사에 전해 내려오는 옛날 12개 암자를 연결하는 총연장 17.74km의 암자순례 길이기도 하다. 평균고도 200~350m로, 달마산의 7부 능선을 따라간다.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아름다운 섬들을 조망하며 걷는 길이다. 이름에서부터 구도의 느낌이 묻어나는 길이다. 속살은 더 멋지다.
이 길은 지난해 11월 개통됐다. 이제 갓 돌이 지났다. 길을 만들면서 그 흔한 포클레인 같은 중장비 기계가 한 대도 들어가지 않았다. 나무 데크 같은 인공시설물 하나도 설치되지 않았다. 순수하게 사람이, 인력으로 만든 길이다. 하루 평균 40여 명씩, 9개월 동안 연인원 1만여 명이 투입돼 닦은 자연친화 길이다. 해남의 달마고도는 사람의 힘으로 일일이 다듬었다. 중장비의 흔적이라곤 찾을 수 없는 길이다.
달마고도의 숲길은 달마산의 산허리를 따라 너덜과 숲길을 지난다. 눈도, 마음도 행복한 길이다. 달마고도 조성사업에 들어간 돈은 모두 14억 원이다. 한동안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사라지다시피 한 길을 연결하고 길의 경계를 돌로 쌓았다. 경사가 급한 데는 돌을 메워 다졌다. 이정표도 몇 개 세웠다. 옛길을 조성하는 그 공법 그대로 길을 닦았다. 사업비의 90%가 인건비로 지출됐다. 10%는 부대비용으로 썼다.
이렇게 해서 발이 편안하고 눈도 즐거운 길이 됐다. 걷는 사람의 입장에서 만든 트레킹 길이 달마고도다. 달마산의 생태·문화 자원과 빼어난 경관을 소재로 만든 명품길이다. 해남 달마고도는 험한 너덜 구간이지만, 중장비를 쓰지 않고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 다듬었다. 마음까지도 편안한 길이다. 달마고도의 기본 구상이 나온 건 3년 전인 2015년 8월이었다. 전라남도와 해남군, 미황사 스님, 길 전문가 등이 여러 차례 만나 현지를 답사하며 구상을 가다듬었다.이듬해에 길의 자원성과 안전성, 편의성, 연결성에 주안점을 두고 노선을 확정했다. 매력적인 역사문화자원을 체험하면서 전설 같은 스토리를 살리고, 최대한 걷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했다. 지난해 2월부터 인력을 투입하고 삽과 괭이, 지게 등 농기구를 활용해 길을 다듬었다. 이른바 원시적인 맨손 공법으로 시공을 했다. 사람의 힘으로 옮기기 어려운 무거운 물건은 지렛대를 활용했다. 달마고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손으로 다듬고 연결시켰다.
달마고도는 달마산의 기암괴석과 다도해 풍광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길이다. 미황사에서 시작, 산허리를 따라 돌아 다시 미황사로 돌아오는 코스다. 4개 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모두 17.74㎞에 이른다. 1구간은 미황사에서 큰바람재까지 2.7㎞, 1시간 코스다. 산지 습지와 너덜, 암자 터, 편백숲을 지난다. 방씨 성을 가진 사람이 피난해 살았다고 '방개굴'로도 불리는 수정굴도 만난다. '보배로운 섬' 진도를 내려다볼 수 있는 여정이다.
2구간은 북평면 이진마을에서 미황사로 넘어오는 큰바람재에서 노지랑골 사거리까지 4.4㎞로 2시간 남짓 걸린다. 천제단과 문수암 터, 문바우골, 금샘을 만난다. 땅끝의 해양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완도대교와 옛날 제주도를 왕래하던 포구인 남창이 내려다보인다.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의 병을 치료해준 곳이고, 제주도에서 육지로 보내는 말의 출입통제소 역할을 했던 이진마을도 보인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북평면 일대의 바다풍광도 멋스럽다.
3구간은 노지랑골 사거리에서 옛날에 말을 몰고 다녔다는 몰고리재까지 5.6㎞로, 2시간 30분 가량 걸린다. 노간주나무 고목과 편백숲을 지난다. 북평면 서홍리와 영전리 일대 넓은 들과 어우러진 바다경관도 볼 수 있다. 아름다운 골짜기와 큰 너덜지대가 이어지는, 달마고도의 명품 중의 명품 구간이다. 4구간은 몰고리재에서 출발점이었던 미황사까지 5.3㎞로 의상대사가 세웠다는 절벽 위의 암자 도솔암과 용담골, 삼나무숲, 부도밭을 만날 수 있는 코스다. 2시간 남짓 걸린다.달마고도는 미황사를 품은 해남 달마산의 산허리를 따라가는 트레킹 길이다. 걷는 내내 달마산의 명물 기암괴석을 볼 수 있다. 달마고도는 임도와 옛길을 사람의 손으로 연결시키고 다듬었다. 다양한 역사자원과 스토리를 담아낸 달마고도 전 구간을 종주하면 예닐곱 시간 걸린다. 중간에 돌아오거나, 내려갈 수도 있다. 걷는 내내 기암괴석을 보며 너덜겅을 지나고, 완도와 땅끝 앞바다의 다도해 풍광까지 볼 수 있다. 발도, 눈도 모두 행복한 길이다.
달마고도를 품은 달마산도 각별하다. 하얀 바위산으로 유명하다. 달마산은 중생대 백악기, 1억4000만 년 전에서 6500만 년 전에 화산활동으로 인해 생긴 산으로 알려져 있다. 기암괴석으로 이뤄져 있고, 크고 작은 돌이 많이 흩어져 깔려있는 비탈 너덜지대가 발달해 있다. 유리의 원료가 되는 규암이 많아서 하얀 빛깔을 띤다. 길을 걸으면서 명품 기암괴석을 다 보고, 20여 군데에 이르는 너덜지대도 만난다. 태고의 땅을 돌아볼 수 있는 달마고도다.달마고도는 미황사를 출발, 달마산의 산허리를 따라 산을 한바퀴 돌아 미황사로 돌아오는 트레킹 길이다. 달마고도의 출발점인 미황사도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 있다. 미황사는 여러 가지로 특별한 절집이다. 한반도의 최남단에 자리하고 있고, 땅끝과 어우러져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여느 곳보다 소박한 절집이다. 단청을 따로 하지 않은 법당, 기암괴석과 어우러지는 요사채, 산사체험, 한문학당, 괘불제, 산사음악회, 자하루 미술관까지 문화에서 한 발씩 앞서가는 절집이다.
절집 분위기도 소박하다. 오래 전부터 전각의 소소한 단청으로 유혹하는 절집이다. 단청이 모두 벗겨진 대웅보전은 소박하고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민낯의 아름다움을 실감한다. 반면 응진전의 단청은 화려하다. 대웅보전과 응진전이 보물 제947호와 제1183호로 지정돼 있다. 미황사의 자하루 미술관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석불이 작품으로 걸려 있다. 미황사 부도전의 거북 모양 석조물은 불교의 해로 유입설을 뒷받침하는 조각이다.미황사의 창건설화도 독특하다. 불교의 바닷길 유입설과 관련돼 있다. 옛날 땅끝 바닷가로 배 한 척이 들어왔다. 배에는 경전과 불상, 검은 돌이 실려 있었다. 검은 돌이 갈라지면서 검은 소 한마리가 나왔다. 그 소의 등에 불상과 경전을 모시고 가는 도중, 산골짜기에서 소가 쓰러지더니 일어나지 못했다. 그 자리에 세운 절집이 미황사라는 얘기다.
검은 소의 울음소리가 아름다웠다고, 한자로 아름다울 미(美)를 쓴다. 배를 타고 온 금인(金人)의 색이 금빛으로 빛났다고 누루 황(黃)을 써서 미황사라 이름 붙였다는 얘기다. 이 얘기와 이어지는 바다거북과 게, 물고기, 옥토끼 같은 석조물이 대웅보전의 주춧돌과 부도에 새겨져 있다. 앙증맞고 해학적인, 그래서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나오는 조각들이다. 미황사가 신라 경덕왕(749년) 때 세워진 절집임을 감안하면 12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미황사,美黃寺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이다. 1692년에 세운 사적비에 의하면 749년에 의조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창건설화에 의하면, 소의 울음소리가 아름답고 금의인이 황금으로 번쩍거리던 것을 기리기 위해 미황사라고 했다고 한다. 그 뒤의 사적은 알 수 없으나 1597년 정유재란 때 약탈과 방화로 큰 피해를 입었다. 1601년에 중창하고, 1660년에 3창했다. 1752년 금고를 만들고, 1754년 대웅전과 나한전을 중건하는 등 대대적인 공사를 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보물 제947호)·응진당(보물 제1183호)·오백나한전·명부전·요사채 등이 있으며, 사적비와 여러 점의 부도가 전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이다. 1692년(숙종 18)에 세운 사적비에 의하면 749년(경덕왕 8)에 의조화상(義照和尙)이 창건했다고 한다. 창건설화에 의하면 돌로 된 배가 사자(獅子) 포구에 이르렀는데, 사람들이 다가가면 멀어지고 물러나면 가까이 다가오는 일이 계속되었다.
그러자 의조가 제자들과 함께 목욕재계하고 맞이하니 비로소 배가 포구에 도착했다. 배에 올라보니 금의인(金衣人)이 노를 잡고 있고 큰 상자 안에 경전·비로자나불상·문수보살상·보현보살상·40성중·53선지식(五十三善知識)·16나한·불화 등이 꽉 차 있고, 배 안에 있던 바위를 깨니 검은 황소 1마리가 나왔다. 그날 밤 의조의 꿈에 금의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나는 인도 국왕으로 금강산에 봉안하고자 경전과 불상을 싣고 왔으나 금강산에 절이 가득해 새 절터가 없어 돌아가던 중인데 이곳의 지형이 금강산과 비슷하므로 소 등에 불상과 경전을 싣고 가다가 소가 머무는 곳에 절을 지으라"고 했다.
이에 다음날 소 등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길을 떠났는데 한 곳에 이르러 소가 한 번 크게 울고 드러눕자 그곳에 통교사라는 절을 짓고, 소가 다시 일어나 가다가 마지막으로 머문 곳에 지은 절이 바로 이 절인데 소의 울음소리가 아름답고 금의인이 황금으로 번쩍거리던 것을 기리기 위해 미황사라고 했다고 한다. 그뒤의 사적은 알 수 없으나 1597년 정유재란 때 약탈과 방화로 큰 피해를 입었다. 1601년(선조 34)에 중창하고, 1660년에 3창했다. 1752년 금고를 만들고, 1754년 대웅전과 나한전을 중건하는 등 대대적인 공사를 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보물 제947호)·응진당(보물 제1183호)·오백나한전·명부전·요사채 등이 있으며, 사적비와 여러 점의 부도가 전한다.
미황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건물. 보물 제947호.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며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잡석을 쌓은 높직한 기단 위에 둥근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의 둥근 기둥을 세웠다. 그 위에 공포는 내사출목·외삼출목의 다포식으로 결구했다. 제공의 쇠서는 위로 가볍게 올라간 모양으로 18세기 이후의 보편적인 경향을 보여준다. 1982년 중수할 때 1754년(영조 30)에 중건했다는 상량문이 발견되었으며, 상량문이 묵서된 종도리는 해체해 따로 보관하고 있다.
긍정적인 사람
비가 내리는 날은
나무가 먹을수 있어서 좋고
바람 부는 날은
먼지가 날아가 주어서 좋고
눈이 오는 날은
온 세상이 하얗게 되어서 좋고
햇살 좋은 날은
젖은 마음 말려서 좋고
한가한 날은 쉬어가서 좋고
바쁜 날은 시간이 잘 가서 좋다 말한다.
긍정적인 사람은
모든 조건에서 좋은면을 바라본다.
- '지필문학(4월호)중 -가져옴,
# 산행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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