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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고단,묘향대,반야봉
    지리 산행기 2020. 8. 19. 11:13

     

    # 언제: 2020년 08월 17일 월요일

     

    # 산행지: 지리 노고단,반야봉,묘향대, 산행

     

    # 산행거리: 18.00Km 10시간48

     

    # 산행코스: 성삼재 - 노고단 - 묘향대 - 중봉 - 반야봉 - 성삼재(원점회귀산행)

     

     

     

    묘향대,妙香臺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집이 있는 지리산 묘향대, 그곳을 찾아가기란 여간 녹록지 않다. 반야봉 자락의 깊은 산중에 위치해 찾아가는 길도 멀고 험하다. 그래서 묘향대는 뭇 사람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반야 성지로 불리며 지리산 최고의 수행지로 알려져 있다. 묘향대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아예 지리산 주능선에 올라서서 접근하거나 아니면 뱀사골에서 험한 계곡을 치고 올라야 한다.

    그나마 편한 길은 주능선 상의 삼도봉에서 반야봉 북사면 허리 길로 접근하는 것이다. 아니면 반야봉으로 올라 반야중봉 정상에서 북사면을 타고 내려 접근할 수도 있다. 뱀사골에서 접근하려면 뱀사골 상부에서 폭포수골이나 함박골을 타고 올라야 하는데, 길이 제대로 없고 험해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찾는 사람 많지 않은 마치 절해고도 속의 수행지 같은 묘향대다. 특히 겨울이 되면 묘향대는 고립무원이 된다. 한 번 눈이 쌓이면 길과 길 아닌 곳의 구분은 사라지고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할 수도 없을 만큼 온통 하얀 눈뿐이다. 그래서 한 발을 잘못 디디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일쑤여서 이곳에 함부로 접근할 수 없다.

    탐방팀의 접근로는 뱀사골에서 폭포수골이다. 폭포가 많아 폭포수골이라 불릴 만큼 가파르고 거칠다. 탐방팀은 뱀사골과 폭포수골을 거슬러 올라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 ‘박영발 비트’를 돌아보고 묘향대로 향한다. 박영발 비트에서 바로 위쪽의 사면길을 따라 20분가량 오르면 삼도봉 쪽에서 접근하는 허리 길을 만나고 여기서 다시 우측으로 15분가량 진행하면 묘향대에 도착한다.

     

     

     

    묘향대 석간수
    개운조사 머물렀던 반야성지 묘향대

    반야봉 자락의 반야성지 묘향대, 병풍같이 늘어선 암벽 자락에 제법 넓고 편평한 조망 좋은 터가 있고 그 한쪽에 절집이 자리하고 있다. 묘향대의 묘향암이다. 묘향암은 지리산 반야봉 북동자락 해발 1480m 고지에 위치한 은둔의 암자이다. 원래 사방 험로로 둘러싸여 인적조차 드문 곳이었지만 지금은 지리산 명소 중 한 곳이 돼 찾는 산객이 더러 있다.

    묘향암의 역사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수백 년 전부터 토굴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많은 도인들의 참선 수행지였다고 한다. 특히 죽음으로부터 해탈한 도인으로 알려진 개운조사께서도 한때 이곳에서 수행했다고 하는데, 그는 지리산에서 182세까지 살다가 나뭇가지 하나 붙잡고 꼿꼿이 선 채로 열반한 전설적인 도인으로 산사람들 사이에 많이 회자되고 있다. 지금의 암자는 1970년대에 화엄사 한 스님이 불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탐방팀은 배낭을 풀어놓고 묘향대를 한 바퀴 돌아본다. 암벽을 병풍처럼 두르고 고색창연한 모습의 암자가 북향으로 고즈넉이 앉아있다. 오랜 세월 거친 풍우 속에 빛바래고 허름한 암자의 모습이 오히려 참선수행 도량으로서 이곳 형세에 더 조화롭게 어울려 보인다. 색이 바랜 양철 지붕도 올해 새로이 황금색으로 도색했다. 산중 오지에 번쩍거리는 황금색 지붕이 이채로워 보이고 암자 앞의 너른 잔디마당이 여유롭고 평화롭다. 조망 또한 멋지다. 앞쪽에는 명선북릉이 바라다보이고 동쪽으로 토끼봉에서 천왕봉까지 지리산 주능선이 고스란히 조망된다.

    암자 옆 암벽 아래에는 묘향대 명물 석간수가 있다. 바위틈을 비집고 흘러내리는 물의 양이 상당하다. 한 바가지 떠서 들이켜니 물맛이 깊고 청량하다. 험한 폭포수골을 힘들게 오른 후에 접하는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의 묘향대, 일순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이런 곳이 길지가 아니면 어디이랴. 암자 옆 뜰에 수북이 쌓아 놓은 장작더미의 향이 코끝으로 스며드는데, 어느 향수보다도 더 향기롭고 구수하다. 이곳 묘향암에는 호림스님이 십수 년째 지키고 계시는데 쌓아 놓은 장작더미를 보니 스님도 지리산 산중의 혹독한 긴 겨울 날 채비를 이미 마쳤는가 보다. 오늘따라 속세로 출타하시는 스님, 스님도 여느 산꾼처럼 험한 길 내려가기 위해 등산화 끈을 조여 매고 있다. 탐방팀은 스님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법당에 들러 예를 차린 후 앞뜰에서 한동안 여유를 가진다.

    지리산에는 대(臺)라는 곳이 여러 곳 있다. 대표적인 곳을 일컬어 ‘지리 8대’라고 하거나 10대, 24대 등으로 부르고 있고, 한편으로 천왕 5대, 반야 5대, 혹은 7대 등으로 구분해 부르기도 한다. 천왕 5대에는 통상적으로 영신대, 향적대, 문창대, 소년대, 향운대 등을 꼽고, 반야 5대에는 이곳 묘향대를 비롯해 우번대, 문수대, 서산대, 무착대를 일컫는다.

    묘향대는 반야봉 정상에서 묘시 방향에 위치해 묘향대라 부른다는 설도 있다. 지리산의 대(臺)는 통상 전망이 아주 좋고 높은 언덕이나 바위 자락에 위치하는데 풍수지리상으로도 명당으로 꼽히는 곳들이다. 흘러간 역사 속에 각 대마다 나름의 사연들을 품고 있고 그곳에 들면 대부분 경관이 일품이다. 또한 좋은 기운이 흐르고 있어 탐방한 산객의 마음마저도 편안하고 여유롭게 만드는 곳이 지리산의 대(臺)이다.

     

     

     

     

    노고단,老姑壇   높이:1.507m   위치: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노고단이라는 지명은 할미당에서 유래한 것으로 ‘할미’는 도교(道敎)의 국모신(國母神)인 서술성모(西述聖母) 또는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일컫는다. 통일 신라 시대까지 지리산의 최고봉 천왕봉 기슭에 ‘할미’에게 산제를 드렸던 할미당이 있었는데, 고려 시대에 이곳으로 옮겨져 지명이 한자어인 노고단으로 된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현재의 노고단 위치에서 서쪽으로 2㎞ 지점에 있는 종석대(鍾石臺, 1,361m) 기슭으로 할미당을 옮겨 산제를 드렸다.

     

    지리산 등산로 중 노고단은 심원계곡과 화엄사계곡을 통한 서쪽 입구가 되며, 서남향의 안부에 위치하는 노고단 제1·2산장 주변은 약 4천여 평에 이르는 거의 평지에 가까운 지형으로, 옛날 외국인 선교사들의 별장을 50여 채나 지었던 곳이다. 산장들은 한국전쟁 때 파괴되어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산자락 끝에는 554년(백제 성왕 22)에 연기 조사가 창건한 화엄사가 자리하고 있다. 화엄사에는 각황전을 비롯하여 국보 4점, 보물 5점, 천연기념물 1점, 지방문화재 2점 등 많은 문화재와 20여 동의 부속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노고단에서 바라보는 구름바다는 지리산의 가장 아름다운 경관 중 하나이다. 노고단 남서쪽의 구례군 광의면과 북서쪽인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사이의 도로가 확장·포장되어 있고 이 도로에서 노고단까지의 도로가 연결되어 교통이 양호하다.

     

     

     

     

    반야봉,般若峰   높이:1.32m   위치: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덕동리
    반야봉의 지명유래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반야가 지리산의 산신이면서 여신인 마고할미와 결혼하여 천왕봉에서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어떤 영험한 스님이 뱀사골에 있는 이무기를 불도와 합장으로 쳐부수고 절의 안녕을 가져왔다는 의미에서 반야심경에서 이름을 따 반야봉이라고 지었다는 설이 있다.

     

    천왕봉의 마고할미와 관련된 전설에 따르면 천신의 딸인 마고할미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반야를 만나서 결혼한 뒤 천왕봉에 살았다. 슬하에 여덟 명의 딸을 두었는데, 그 뒤 반야가 더 많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처와 딸들을 뒤로 하고 반야봉으로 들어갔다.

     

    마고할미는 백발이 되도록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남편 반야를 기다리며 나무껍질을 벗겨서 남편의 옷을 지었다. 그리고 딸들을 한명 씩 전국 팔도로 내려 보내고 홀로 남편을 기다리다 나중에 지쳐 남편을 위해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에 숨을 거두고 만다. 이때 갈기갈기 찢겨진 옷은 바람에 날려서 반야봉으로 날아가 풍란이 되었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은 반야가 불도를 닦던 봉우리를 반야봉으로 불렀으며, 그의 딸들은 팔도 무당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사람들은 반야봉 주변에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는 것은 하늘이 저승에서나마 반야와 마고할미가 서로 상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전라북도에서 가장 높으면서 지리산 일대에서 두 번째로 높은 해발고도 1,731.8m의 높은 산이다. 구례군 산동면과 남원시 산내면이 마주하고 있는 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반야봉을 중심으로 뱀사골을 이루는 만수천 지류가 동북쪽으로 흐르고 심원계곡을 이루는 지류는 남서사면에서 시작하여 반야봉을 좌로 돌아나간다.

     

    반야봉은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가는 주능선에선 벗어나 있다. 노루목에서 좌측능선을 따라가야 반야봉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반야봉은 예전부터 반야낙조와 운해의 절경은 지리산 8경의 하나로 손꼽히며, 특히 서쪽으로 지는 석양에는 반야봉 주변의 하늘이 온통 연붉은빛으로 물들어 장관을 연출한다.

     

     

    인생은 한번이다

    흐르는 인생처럼
    모든 것에 느끼고 싶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인생은 한번이다..
    연습도 복습도 없는 인생
    꼭! 한번 사는 인생.

    힘들고 고단한 삶일지라도
    단 한번의 인생이기에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순간 순간의 행복을
    온 몸으로 느끼는 삶이고 싶다.

    죽도록 노력해도 안되는 일도 많고
    죽도록 일해도 형편 좋아지질 않는
    인생이라도 순간 순간의 행복은 있다.

    늘 인생의 마지막 삶처럼
    최선을 다해 살았다면
    후회 없이 살고 있는 것이다.

    인생 하나하나에 모든 것을 느끼며
    자연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인생도 자연처럼 순응하며
    받아 들이며 살고 싶다.

    인생은 아름다웠다...중에서ㅤ

     

     # 산행지도

     

     

     

     

     

     

     

     

     

     

     

     

     

     

     

     

     

     

     

     

     

     

    #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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