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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머나먼 소금길지리 탐구방,탐방기고 2021. 1. 6. 18:18
소금이 인체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성분이며 음식을 상하지 않게 오래도록 보관할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물품이라는 것은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긴 하지만, 요즘의 일상 생활에서 소금의 귀중함을 느끼며 사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만큼 소금은 공기만큼이나 구하기 쉬운 성분이 되었고 오히려 건강을 위하여 소금을 적게 먹자는 운동이 벌어질 정도로 소금을 과잉 섭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으로 보자면 배낭 하나 메고도 지리산을 넘으려면 하루 종일 온몸을 짜내듯 힘을 들여야 하는데, 불과 100년 전만해도 근대적 교통 수단이나 기반이 전무했던 시절 소금을 구하기 위하여 소금 가마를 지고 지리산을 넘나들었으니 얼마나 소금이 귀중한 물품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인가.
소금이 인체의 생명유지에 필수품이라는 사실을 밝힌 현대과학이 나오기도 전인데 어찌 그 오묘한 신체의 비밀을 단지 체험적으로 깨우칠 수 있었는지도 놀랍거니와 소금을 구하기 위하여 걸었던 머나먼 산길이 놀라울 뿐이다.
그런 까닭에 삼도를 가르며 해안과 내륙을 막아선 지리산에 소금쟁이묘라든지 소금쟁이능선이라든지 소금 관련의 지명들이 많다.
그 중에 주목하고 싶은 곳이 소금쟁이능선인데 어디서 소금을 구해 어디로 지고 갔던 산길일까.
음정 자연휴양림 안에 있는 우수청골과 생이바위골 사이의 능선을 소금쟁이능선이라 부르고 있다.
이 능선길은 벽소령을 넘나드는 산길의 일부로서 하동 화개에서 신흥과 의신을 지나 벽소령을 넘어서서 이 능선길을 따라 삼정을 거쳐 마천으로 다니던 길이다.*음정-벽소령-삼정
일반적으로 고개에서 이어진 길은 안부를 이룬 고개에서 골짝을 타고 내려가는 길이 가장 짧은 길이라 대부분의 고개길은 골짝으로 길이 발달하였는데 유독 벽소령의 마천 방향만은 벽소령 아래의 생이바위골로 이어지지 않고 능선길을 이어간 것이 특징이다.*벽소령에서 음정 방향의 소금쟁이능선(굵은 붉은선)
이점은 생이바위골 상부의 지독한 너덜지대의 방해와 소금쟁이능선의 비교적 유순한 능선길이 그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말까지의 지리산 산길을 알 수 있는 1918년도 지도에 벽소령에 이어진 소금쟁이능선길을 볼 수 있으며, 지금의 작전도로와 같이 굽이굽이 둘러가는 길은 작전도로가 표시되기 전 지리산길을 볼 수 있는 1975년도 지도에 표시된 것을 보면 소금쟁이능선길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벽소령을 넘나드는 능선의 이름을 소금쟁이능선으로 붙일 만큼 그 길을 넘나들었던 물산 중에서 소금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보여주는 흔적이다.
마천에서 벽소령을 넘어 화개장이나 하동장에서 소금을 구해온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남원시 산내면의 반선 못 미친 내령 외령 사람들의 머나먼 소금길은 더더욱 놀랍다.
내령 외령 마을은 보기와 달리 임진왜란 전후로 생성된 아주 오래된 마을인데 지금 지형적으로 보아도 그러하지만 산내-달궁 도로가 개설된 일제 강점기 이전 그 옛날 첩첩산중의 지형을 말하여 무삼하리오.
그런데 첩첩산중 이곳 주민들의 소금길도 소금쟁이능선을 이용하여 벽소령을 넘었으니 어찌 그곳까지 이어 갔을까.
바로 내령 외령 마을 앞으로 이어진 빗기재 골짝길을 따라 빗기재를 넘어 영원사 옛길을 따라 음정에 도착하여 다시 소금쟁이능선을 올라 벽소령을 넘었던 것이다.*내령에서 빗기재를 넘고 다시 벽소령을 넘어 갔던 소금길
*1918년도 지도에 보이는 빗기재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빗기재길이 발달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내령에서 왜 화개재를 이용하지 않고 벽소령을 이용했는지가 의문인데 벽소령 아래 마을이었던 오리정골 삼정 의신 신흥 등이 예부터 큰 마을로 발달하였다는 것은 결국 벽소령이 먼저 발달했을 것이라는 이유와 내령에서 달궁계곡의 구불구불한 구비를 돌아 협곡인 뱀사골의 길이 뒤늦게 생겼거나 험하여 빗기재를 이용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화개재와 벽소령
*벽소령길과 그 주변에 발달했던 마을들을 보여주는 1918년도 지형도
벽소령에서 마천 방향으로는 골을 따르지 않고 소금쟁이능선을 따라 길이 이어져있다.
지형도에 벽소령길과 화개재길이 모두 표시되어 있지만, 벽소령은 표기되어 있으나 화개재는 표기되어 있지 않다.'지리 탐구방,탐방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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