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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빗점골, 절골(절터골), 명선남릉
    지리 산행기 2021. 8. 23. 12:09

    # 일시 : 2021년 08월 22일 일요일

    # 산행지 : 빗점골, 절골(절터골), 명선남릉, 지리 품속으로

    # 산행거리 : 11.12Km   07시간50분

    # 산행루트 : 의신, 삼정(마을) - 빗점골 - 절골 - 연하천대피소 - 명선봉 - 명선남릉 - (원점회귀산행)

     

    # 빗점골 - 빗점골에서 종주능선까지의 등산로는 물줄기와 같이 세 갈래로 이어진다. 

       한 갈래는 절터가 있다 해서 이름 지어진 절터골을 따라 연하천 산장 또는 삼각봉까지 연결되는데 대략 8km에 이어

       진다. 또 한갈래는 산태골을 따라 명선봉 꼭대기까지 또는 명선봉과 토끼봉 사이의 총각샘으로 연결되며 나머지 하나

       는 산태골을 따라가다 왼쪽으로 흐르는 왼골과 연결되는 등산로로 이는 토끼봉으로 연결된다.

     

    절골 : 물줄기가 명선봉, 삼각고지, 형제봉 주변에서 시작됨

    산태골 : 물줄기가 명선봉과 총각샘 주변에서 시작되고 수량이 많음

    절골, 산태골 : 등산하기엔 적정한 고도이며, 계곡의 아름다움은 보통임

    명선봉 : 남원시에 위치해 있으며, 지리산 전체의 아름다움을 만끽할수 있음

    총각샘 : 산태골 시작점에 있으며, 연중 물이 흐르고 비박하기에 좋은 장소임

    천내골 : 경사도가 완만하고 수량도 적으며 이끼가 매우 많음

    빗점골 : 왼골, 산태골, 절골, 천내골 등이 합수되며 수량이 많고 섬진강에 합류됨

     

     

     

    # 산행지도

     

     

     

    # 산행사진

    빗점골 가는길 바리게이트

     

     

     

    토끼봉에서 뻣어내린 토끼봉(범왕능선)능선의 앞당재

     

     

     

    천내골

     

     

     

    우측으론 작전도로, 좌측으론 빗점골 합수내로 가는 갈림길

     

     

     

    왼골, 절골, 산태골, 이현상격전지 초입

     

     

     

    갈림길 - 좌) 이현상격전지, 절골,산태골,왼골 합수점, 우) 절골, 명선남능(이현상아지트)

     

     

     

    빗점골 너덜지대

     

     

     

    빗점골 너덜지대

     

    이곳은 지리산 빨치산의 전설 남부군사령관 이현상이 사살된곳 입니다.

    나는 공산주의자들과 빨치산들을 대단히 싫어하지만 그시대의 영웅 이었기에 고소미등 약소한 안주와 막걸리를 한잔올리고 큰절을 두번 해드렸습니다. 금산군 진산면의 부유한 1000석군 아들 이었다는 이현상은 공부도 잘해서 당시에 명문 이었다는 고창고보를 다니다가 중앙고보로 전학했다고 했습니다. 신민당 당수도했던 고유진산 의원과는 금산 보통학교동창인데 항상 이현상이 1등을하고 유진산이 2등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때부터 지리산등에 숨어서 일본에 항거하면서 공산주의 사상운동을했던 이현상도 방준표(빨치산 전북도당위원장 대구여중 교사출신) 박영발(빨치산 전남도당위원장 의성출신 철도노동자출신) 등 젊은 빨치산들에 의해서 남부군 사령관에서 평당원으로 강등된후에 당번겸 경호원 한명과 산위에서 내려오다가 매복중이던 국군에의해서 사살 되었다고 합니다. 1953.9.17. 그의나이는 48세 였습니다. 이현상이 남부군 사령관 시절에는 덕유산이나 송치골과 피아골등으로 이동 할때는 1개소대 규모의 경호대가 호위했는데 평당원이 된후에는 당번병 한명만이 따라다녔다고 했습니다. 전투경찰에 발견된날이 9.18.이기에 그날 사살된걸로 기록되어 있지만 북한 평양근교의 애국열사릉의 묘비에도 1905.9.27 - 1953.9.17.로쓰여 있다고 합니다.

     

    그후 차일혁 총경의 전투경찰 대대의 토벌대가 이곳을 지나다가 사살된 시체의 복장과 풍체가 여타 빨치산과 다르기에 이현상 얼굴을 잘아는 자수한 빨치산을 대동하여 확인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차일혁 전투경찰 대대장등 3명이 태극무공 훈장을 받았다고 합니다. 별볼일없는 빨치산 2명의 시체를 그데로두고 철수했던 오상사는 상관으로부터 모가지를 잘라오지 안았다고 발길로 차였다고 했습니다. (전역후 혹시 빨치산들의 보복이 두려웠던 오상사는 한동안 신분을 속이고 살았다고 했습니다. 부산 국제신문 논설고문겸 부산대학 교수인 최화수님이 오상사를 인터뷰 했다고 했습니다)

     

    이현상의 시체를 가까운 친척들도 인수를거부 하였기에 차일혁 총경이 화개장터아래 섬진강 모래사장에서 화장하여 주었다고 했습니다. 이현상의 외아들 이극은 러시아 유학후 김일성대학의 교수를했고 큰딸 무영 작은딸 문영 세째딸 상진등은 당간부와 외교관을 하면서 잘살고 있다고 합니다. 세째딸 이상진은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때 만수대 의사당을 안내하기도 했습니다.

     

    본처외에 지리산에서 산중처 역할을한 간호병인 하수복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유복자인 아들은 인물 인품 실력이 뛰어나서 울산 근교에서 40대에 중학교 교장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빨치산 고위급 간부인 방준표나 박영발등은 20대의 어린 간호병인 산충처를 끝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토벌대에 저항하다가 자폭하고 사살 되었지만 이현상은 임신 8개월의 하수복에게 비행기에서 뿌려주는 자수권유증 유인물을 챙겨주면서 젊은 너는 살아야 한다고 하산 시켰다고 했습니다. 하수복은 임신한덕에 구속도 안되고 조사만받고 귀향했다고 했습니다.

     

     

    최순희 여사 수목장

     

    지리산 哭' 노래한 소설 남부군 속 최순희

     

    철쭉이 피고 지던 반야봉 기슭엔
    오늘도 옛같이 안개만이 서렸구나
    피아골 바람 속에 연하천 가슴 속에
    아직도 맺힌 한을 풀 길 없어 헤맸나
    아 아 그 옛날 꿈을 안고 희망 안고
    한 마디 말도 없이 쓰러져간 푸른 님아
    오늘도 반야봉엔 궂은 비만 내린다.

    써래봉 달빛 속에 치밭목 산죽 속에
    눈을 뜬 채 묻혀져간 잊지 못할 동무들아
    시루봉 바라보며 누워 있는 쑥밭재야
    잊었느냐 피의 노래, 통곡하던 물소리를
    아 아 그 옛날 꿈을 안고 희망 안고
    한 마디 말도 없이 쓰러져간 푸른 님아
    오늘도 써래봉엔 단풍잎만 휘날린다
    오늘도 써래봉엔 단풍잎만 휘날린다

     

     

     

    2008년 9월 18일 빗점골에서 이현상 忌日에 최순희 여사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 남부군 문화지도원으로 활동했던 최순희씨가

    2015년 11월 21일 22시 20분에 별세했다. 91세.

    고인은 11월 24일 빈소였던 경기 고양시 일산복음병원을 떠나

    고인의 뜻에 따라 한 줌의 재가 돼 지리산으로 돌아갔다.

    최씨는 안성기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됐던 이태의 자전적 소설 ‘남부군’ 속 최문희의 실제 모델이다.

     

    동족 간의 전쟁과 남북 분단의 슬픔을 노래한 ‘지리산 곡(哭)’을 작사ㆍ작곡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24년 평양 출신인 고인은 유복한 인텔리 집안에서 자라 일본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돌아와 해방 후

    평양국립예술극장에서 공훈배우로 ‘카르멘’ ‘바보온달’ ‘춘향전’ 등 오페라 주연을 맡았다.

    ‘춘향전’에 출연할 땐 무용가 최승희에게 무용 지도를 받기도 했다.

    최씨가 보낸 질곡의 세월은 한국전쟁과 함께 시작했다. 전쟁이 일어난 뒤 남로당이 파견한

    광주문화예술총연맹 감독으로 전주까지 내려오다 인민군 후퇴 때 북으로 이동하던 중 완주군당에 소속돼

    덕유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건너 가 ‘빨치산’으로 남부군 생활을 시작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빨치산은 한국전쟁 전후 좌익 계열과 인민군 패잔병들에 의해 지리산에서 조직된

    유격대를 가리키는 말로 남부군은 남한 빨치산의 총책임자였던 이현상이 이끌던 부대를 말한다.

    두 강대국 미국과 소련이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기, 외세에 밀려 좌우 이념으로 갈리고 동족끼리

    살육을 해야 했던 역사적 비극을 상징하기도 한다.

    최씨는 지리산에 고립해 있던 남부군 제81사단 문화지도원으로 활동하며 군인들에게

    노래와 춤, 연극으로 위로했다.

    소설 ‘남부군’에는 남녀 대원들이 풀밭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주위를 돌며

    러시아식 포크 댄스를 추는 장면이 나온다.

    이 축제를 주도한 것이 최씨였다.

    그러나 1952년 1월 대성골을 공격한 국군 토벌대에 밀려 남부군 문화대원 15명 중 11명이 사망했고

    동상에 걸려 거동이 불편한 상태로 원대성 인근에 숨어 있던 최씨 등 4명은 생포됐다.

    체포된 뒤 최씨는 자신의 뜻과 달리 자수한 것으로 포장돼

    지리산 빨치산의 자수를 권유하는 유인물에 이용되기도 했다. 

     

    - 빌려온글 -

     

     

     

    흐른바위, 이현상 최후격전지

    밝혀진 자료에 의하면 위 사진 너널지대에서 이현상이 아군에 의해 사살되어 이곳 흐른바위라는 곳에 임시 안치되었다 한다.

     

     

    이현상 (공산주의 운동가)
    출생지 : 충남 금산(錦山)
    1906년 충남(당시는 전북) 금산(錦山)에서 태어났다.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때인 1925년 조선공산당 창설에 참여하였다. 1927년 보성전문학교 법과에 입학한 뒤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 산하 학생부원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등에서 활동하였다.


    반일 동맹휴학을 주도하다가 일제의 대규모 공산당 검거 때 체포되어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출옥 후 박현영(朴憲永) 김삼룡(金三龍) 등과 함께 경성콤그룹을 결성하였다. 일제 말기에는 지리산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였고, 8 15 광복 이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참여하였다. 공산당이 남조선노동당으로 개편된 뒤 연락부장 등의 요직을 맡아 활동하다가 남한에서 공산당 활동이 불법화되자 월북하였다.


    1948년 북조선노동당의 결정에 따라 다시 남한으로 내려왔다. 지리산으로 들어가 6· 25 전쟁을 거치면서 빨치산 투쟁을 전개하였다.

    1951년 북한당국에 의해 공식적으로 남한 빨치산의 조직인 남부군(南部軍)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각 도당 유격대를 남부군 사령부에 소속시키는 등 조직적인 투쟁을 전개하다가 1953년 휴전 이후 군경 합동으로 실시된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때 사살당하였다.

     

    이현상은 그가 살아있던 51년, 이미 북한에서 국기훈장 제1급을 받았고, 52년에는 자유독립훈장 제1급을, 53년 2월에는 영웅칭호를 받았다. 김일성은 지리산에 있는 이현상에게 영웅훈장 약장을 보내기도 했다. 그후 이현상이 죽은후인 68년, 북한은 '혁명 애국열사'로 정식으로 선정되었다. 이때 이현상은 열사증 000001번으로 첫 열사증을 추서받아 혁명열사릉에 안장(가묘)되었다. 또 이현상은 90년 8월 조국통일상을 추서받았다.

     

     

     

    빗점골 세 지류가 만나는 합수부

     

     

     

    빨찌산 원혼을 달래기위해 만든 절골 케론

     

     

     

    이현상이 죽기전까지 은신했떤 지리산 빗점골 아지트

     

    이현상 아지트 - 1953년 9월 18일 11시5분 남한 빨지산의 총수 이현상이 전투경찰 제2연대 소속 33명의 매복조에 빗점골 합수내 근처 절터골 돌밭어귀에서 10여발의 총탄을 맞아 쓰러졌다. 남한 빨치산중 가장 완강했던 무력집단, 남과 북에서 버림받은 고독한 혁명가 빨치산 총사령관 이현상 조선인민 유격대 남부군 사령관이던 공화국 영웅 이현상은 지리산의 가을과 함께 마침내 파란많은 생애를 마쳤다. 이때 그의 나이 49세, 이현상의 시신은 10월 8일 화개장터 근처 섬진강 백사장에서 경찰 토벌대장 차일혁에 의해 화장되어 섬진강에 뿌려졌다. 이로서 지리산 유격대, 제2병단, 남부군, 독립4지대, 제5지구당으로 이어져온 이현상 부대는 사라지게 된다.

     

     

     

    이현상 최후까지 버티던 은거지 빗점골 그곳에서 사살된 이현상의 주머니에속 수첩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智異風雲當鴻動    지리산에 풍운일어 기러기떼 흩어지니
    伏劍千里南走越    남쪽으로 천리길 검을 품고 달려왔네
    一念何時非祖國    오직 한뜻 한시도 조국을 잊은적 없고
    胞有萬甲心有血    가슴에는 철의 각오 마음속엔 끓는 피 있네

     

    -火山 이현상 -

     

     

     

    지리산 여느 계곡의 커다란 물줄기와는 비교가 되지않는 가녀린 물줄기로 흘러내리는 절골, 그 옛날 이 골짝을 피눈물로 올랐을 빨치산의 슬픈 모습들을 조금이나마 상상하며, 물길을 거슬러 거슬로 위로 걷는다.

     

     

     

    산행하기 전날 내린 비로 계곡 물 수량 풍부한 절골

     

     

     

    자연의 아름다움

     

     

     

    절골 풍광

     

     

     

    연하천 대피소

     

     

     

    명선봉, 해발1583m 삼각점

     

     

     

    빗점골로 이어지는 산태골

     

     

     

    주능선길의 토끼봉과 그 너머 반야봉 방향

     

     

     

    명선봉 해발1583m 에서바라본 주능선길과 촛대봉, 제석봉, 상봉, 중봉, 하봉

     

     

     

    하산길인 명선남릉과 천내골, 벽소령능선, 덕평골, 오리정골 저멀리 남부능선이 보인다

     

     

     

    토끼봉 능선과 황장산, 왕시루봉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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