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정골에 관한 문헌상 정보를 보면 [하동군지명고]에 아래와 같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1632년도 간행된 [진양지]의 화개현리의 기록을 보면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의 화개마을 이름들이 적혀있다. [동서가 15리요 남북이 20리며 속방(속한 마을)이 10 이다. 속방은 오리촌, 가정자촌, 신현촌, 쌍계촌, 황전촌, 배혜촌, 범왕촌, 대비촌, 법가촌, 화개현구지 이다.]
오리촌은 전라도 내륙지방과 지리산 남쪽의 해안지방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교통로에 위치하여 일찍이 발달한 고산 마을로 지금은 주민이 살지 않는 잊혀진 마을이다. 정리를 해보면,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에는 의신이나 신흥 보다도 아주 큰 마을이었으며 지리산의 남북을 잊는 교통로 상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리촌이 큰 마을이었다는 것은 지금 남아있는 옛길의 크기나 완만하고도 넓은 골짝의 지형으로 미루어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화개에서 보면 깊은 산 골짝에 그렇게 큰 마을이 옛날부터 들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마을이 들어설 수 있는 지형적인 특성 탓도 있겠지만 지리산을 남북으로 넘나드는 주요 교통의 요지였던 것이 주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화개에서 음정으로 넘어가는 벽소령의 바로 아래 마을이기도 하거니와 백무동으로 넘어가는 [바른재]의 길목이기도 합니다. 문헌에 나오는 [오리촌]이 [오리정골]로 불리게 된 것은 아마도 오리촌에 정자가 있어 후대에 오리정골로 불리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