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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얏골,세걸산,불바래기골
    지리 산행기 2024. 2. 25. 16:34

    # 언제: 2024년 02월 24일 토요일

    # 산행지: 덕동 오얏골(정각재골),세걸산,불바래기골, 시산재&눈꽃산행 

                    지리의 품속으로...ㅎㅎㅎ

    # 산행거리: 7.35km   05시간02분

    # 산행루트: 덕동마을주차장 - 영남민박 - 임도길 - 오얏마을 - 오얏골(정각재골) - 정각사(암)터

                        정각재 - 서북능선 - 세걸산 - 세동치샘 - 불바래기골 - 덕동마을주차장

     

    오얏골(정각재골) : 세걸산 주변 지리태극종주 능선에서 물줄기가 발원되며 덕동마을 좌측으로 흐름

    불바래기골 : 세걸산 주변 지리태극종주 능선에서 물줄기가 발원되며 덕동마을 우측으로 흐름

    오얏골(정각재골) : 산행시 완만한 경사도를 유지하며, 건계곡이 많고 고로쇠 채취 등산로가 계속 이어짐 

    불바래기골 : 완만한 경사도를 유지하며 고로쇠 채취는 하나 등산로가 거의 없으니 주의를 요함

     

    남원 산내면(山內面)

    전라북도 남원시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이다. 동쪽은 하동군과 함양군, 서쪽은 주천면 · 운봉읍 · 인월리, 남쪽은 구례군과 하동군, 북쪽은 주천면 · 운봉읍 · 인월면과 접해 있다. 지리산의 지맥인 삼봉산, 반야봉, 만복대 등으로 둘러싸인 고원 분지에 입지하여 있고, 관내의 주요 하천은 동북쪽으로 흘러 만수천으로 모여 임천에 합류한다.

    지명은 『여지도서』(운봉)에 "산내면은 운봉현의 관문으로부터 20리 떨어진 지역이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래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의 운봉현 산내방 일대로, 『호구총수』(남원)의 산내면에서 장항리(獐項里) · 원수리(元水里) · 영대리(靈臺里) 등 12개 동리 지명이 확인된다. 1897년에 운봉군 산내면이 되었으며, 29개 리를 관할하였다. 『구한국행정구역일람』에 의하면 1912년 당시에 묘동(猫洞) · 건선동(件仙洞) · 덕동(德洞) 등 26개 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1914년 남원군 산내면으로 되면서 덕동리(德洞里) · 부운리(浮雲里) · 내령리(內靈里) 등의 8개 리로 구성되었다. 1995년 남원시 산내면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한국지명총람』에는 지리산[山] 안쪽[內]이 되므로 산내면 지명이 유래한 것으로 보았다.

     

    남원 산내면 덕동리(洞里)

    덕동리는 지리산 서북부의 산악 지역이다. 법정동으로서의 덕동리는 덕동리(마을)와 달궁리(마을)의 2개 행정리로 나뉘어 있다. 예전에는 지리산의 오지마을이었으나 요즘은 지리산과 뱀사골 계곡·달궁계곡을 찾는 휴양촌으로 각광받고 있다.

    덕동마을은 1800년경 동래정씨 일가가 속세를 떠나 산 좋고 물 맑은 곳을 찾아오다가 마을의 지형이 정신 수양과 학문을 닦는 데 알맞은 곳이라 하여 정착하였다고 한다. 정신 수양과 학문을 닦는 데 좋은 지형이라 하여 덕을 쌓는 곳이란 뜻으로 덕동이라 하였다.

    학이 노는 학천(鶴川)마을, 용이 드나드는 용문동(龍門洞), 오얏골 이문(李門)과 덕동은 지명이 모두 덕을 닦는 데 저절로 수양이 되는 곳이란 의미를 갖는다. 덕동은 이 네 마을 모두를 이른다. 덕동리에 포함된 또 다른 행정리인 달궁은 마한의 별궁이 있던 곳이어서 달궁이라 하였다.

     

    본래 운봉현 산내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남원군 상원천면 달궁리를 병합하여 덕동리라 하여 산내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남원군이 통합될 때 남원시 산내면 덕동리가 되었다.

    지리산 북서부 지역의 깊은 산중이라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다가 화전민들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리산의 깊은 오지여서 사람들의 왕래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관광객들이 지리산과 계곡을 찾아오면서 지금은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지리산의 산채나물과 청정 지리산에서 기른 한봉과 고사리·표고버섯·오미자와 고로쇠 수액 채취 등으로 높은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덕동(德洞)마을

    덕동마을은 1800년경 동래정씨가 자리를 잡아 마을이 만들어졌는데요, 아늑하고 공부하기 좋은 곳이어서 덕을 쌓기 좋은 터라 여겨 덕동이란 이름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덕동(德洞)마을 유래

    덕동마을은 본래 덕골 또는 덕동이라 했는데, 1800년경 동래정씨 일가가 속세를 떠나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 들어오다가 마을의 지형이 정신수양과 학문을 닦는데 알맞은 곳이라 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한다. 그 후 화전민들이 차츰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신수양과 학문을 닦는데 좋은 지형이라 하여 덕(德)을 쌓는 곳으로써 덕동이라 하였으며, 학이 노는 학천(鶴川)마을, 용이 드나드는 용문동(龍門洞), 오얏골 이문(李門) 그리고 덕동 등 4개의 마을 지명이 덕을 닦는데 저절로 수양이 되는 곳이므로 4개 마을을 합해 덕동이라 불렀다.

     

    1900년경 김구(金九) 선생이 수양차 오얏골에서 약 1년간 학문을 닦았다고 하며, 매년 정월 보름에 당산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무사를 비는 풍습이 남아 있다.

     

    오얏마을

    설1. 배나무가 많아서 이화동(梨花洞)

    설2. 풍수적으로 마을의 지형이 배꽃 형세

    설3. 李(오얏나무)씨 집성촌 

     

    덕동마을 위쪽에 있는 오얏골에는 백범 김구선생이 1년 동안 수양하다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배꽃이 떨어진 명당자리가 있다 하여 오얏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얏마을 천봉암 해발 720m

     

    오얏골

    설1. 배나무가 많아서 이화동(梨花洞)

    설2. 풍수적으로 마을의 지형이 배꽃 형세

    설3. 李(오얏나무)씨 집성촌 

     

    오얏나무오얏나무(자두나무)가 많아서 오얏골이라고했다는 곳도 있다. 그러나 한자로 ‘오얏골’을 ‘이동(李洞)’으로씀으로 그에 끌려 추측적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다.

    외얏은 자두의 충청방언이며 오얏은 자두의 비표준어이다.

     

    오얏골(정각재골) : 세걸산 주변 지리태극종주 능선에서 물줄기가 발원되며 덕동마을 좌측으로 흐름

    오얏골(정각재골) : 산행시 완만한 경사도를 유지하며, 건계곡이 많고 고로쇠 채취 등산로가 계속 이어짐 

     

    전북에 ‘오얏골(오야꼴),오얏말, 오얏재(오얏고개) 등이 6개소에 있고, ‘외야골, 외얏골, 외얏등’ 등이 28개소에 있으며, 전부어 ‘외양’에 후부어 ‘골·실·재’ 등이 붙은 곳이 10군데가 있어 모두 44개소가 된다.남한에는 이 계통이 대략 240군데가 있다.①기와를 굽던 곳전국적으로 보면 이 계통이 이름 중에는 기와를 굽던 곳으로써 생긴 이름이 가장 많다. 기와는 고전에 ‘디새·지새’라했고, 후대에 ‘기와·지와’ 또는 사투리로 ‘기아·지아’라고도 했는 데 이중 ‘디새’는 일찍부터 쓰던 순수 국어고, ‘기와’는 한자어 ‘개와(蓋瓦)’에서전음된 것으로 본다. ‘개와’라는 말은 기와로 지붕을 인다는 뜻이지만 ‘개와집=기와집,’ ‘개왓장=기왓장(디샛장)’ 등과 같이 ‘개와’와 ‘기와’가때에 따라서는 같은 말로 쓰임으로써 ‘개와’에서 ‘기와’로 전음되어 이름씨가 되었다고 여겨지고, ‘오야·오얏·외야·외얏’ 등 ‘와(瓦)’에서 전음된것으로 본다.‘瓦’는 조선 초기에도 ‘와’로 발음하였지만 그 이전에는 ‘오아’에 가깝게 발음되었을 것이니 그 ‘오아’에서 ‘오야·외야’ 등으로 전음되고 그에 사잇소리가 낀 것이 ‘오얏·외얏’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본시 기와를 굽던 곳으로써 이루어진본 이름 ‘오야골’이나 ‘외얏골’을 한자로는 ‘와동(瓦洞)’ ‘와곡(瓦谷)’으로 쓴 곳이 여러군데 있다는 것으로써도 짐작할 수 있다.②왼쪽특히 전라도에서 왼쪽을 ‘오약쪽·외약쪽’이라고 함으로써 어느 기존 마을이나 군 현 치소의 왼편에 위치한 곳을‘오약골·외약골’이라고 함으로써 그런 이름이 이루어진 곳도 꽤 많다.③오얏나무오얏나무(자두나무)가 많아서 오얏골이라고했다는 곳도 있다. 그러나 한자로 ‘오얏골’을 ‘이동(李洞)’으로씀으로 그에 끌려 추측적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다.④오이밭오이밭이 많아서 생긴 이름이라는 곳도 몇군데 있는 데 그 가능성은 크다. ‘오이’는 그것이 지명으로 쓰일때 일찍부터 ‘외’로 줄을 것이고, ‘외밭’은 옛말로는 ‘외’가 ‘ㅣ’로 끝나는 소리이니 ‘외받’으로 썼겠지만 실제 발음은 ‘외앋’이 될 수 밖에 없다.⑤외딴곳떨어진 외딴 곳의 뜻인 ‘외안골’이‘왼골’로 줄은 곳도 있다고 여겨진다./전북대 명예교수/퍼온글

     

    정각사(암) 터 해발 890m

    실상사의 말사로 나와있지만 실상사 기록에는 규모가 작은 정각암이라 전해져온다고 한다.

     

    침허대사(枕虛大師)의 노력으로 실상사의 대중창이 이루어졌는데, 대사는 1690년(숙종 16) 승려 300명과 함께 조정에 사찰중건을 상소하여 1694년(숙종 20) 범종 조성을 시작으로 1700년(숙종 26)에 이르기까지 36동의 건물을 중건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의 기록에 따르면 백장사에 속한 8개 말사와 실상사에 속한 9개 말사가 남아 있었는데, 즉 내원 (정각암 - 이명전 - 남대암 - 조계암 - 양수암 - 보명암 - 세전암 - 상암 - 금당 - 백련암 - 수성대 - 일출암 - 봉계암 - 양직암 - 장계사 - 백장암) 등이 실상산문의 명맥을 잇고 있었던 것이다.

     

    실상사에 전해져오는 기록에 의하면 정각암은 실상사의 말사였다, 운성지에는 삼국시대부터 있었다라고 전해져 온다.

     

    정각재 해발1180m

     

    세걸산  해발1216m

     

    세걸산은 삼국시대에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대였다. 지리산의 동쪽 운봉읍과 산내면 경계를 이루는 뱀사골 반선의 중앙에 우뚝 솟아올라 있다. 삼걸산으로도 불리는 세걸산은 정상에서 조망은 북쪽은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봉, 동쪽은 지리산에 가장 먼저 해가 떠오르는 덕두산이 다가온다. 남쪽은 고리봉, 정령치, 만복대가 남북으로 한줄기를 이루며, 지리산국립공원지역에 포함되어 있다. 

    세걸산에서 흘러내린 골짜기의 물이 너무 맑아서 삼한시대에 신라군이 백제군을 포로로 잡아서 가마솥을 만들도록 했다는사연을 간직한 운봉읍 공안리의 공안 천孔安川과 수철水鐵마을이 있다. 공안리에는 지금도 옛토기와 기와조각이 출토되고

    으며, 운봉현의 감옥자리가 보존되어 있다.

     

    세걸산의 동남쪽은 지리산의 명소인 심원계곡과 달궁계곡이 흐르고, 6.26때 우리나라에서 수복이 제일 늦었던 덕동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세걸산은 정령치나 덕두봉에서 바래봉을 거쳐서 운봉읍 공안리나, 반선으로 이어지는 분기점이 된다.

     

    한국지명총람 에는 “세걸산世傑山은 삼걸산으로도 불리며 산내면 부운리와 운봉면 주촌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고리봉 동북쪽 줄기가 돤다.”고 나와 있다. 세걸산 자락에 위치한 운봉면 부운리는 본래 운봉군 사내면의 지역으로 서 부운이라 하였다. 1914년 일제 강점기에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반선리, 미동, 와운리, 하부운리, 개선리를 병합하여 부운리라 하였다. 금포정(반선)은 하부운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에 있는 절에서 매년 한명의 중이신선이되어 승천했다고 한다. 그 당시 임금이 승천하려는 중에게 독약이 든 금포를 주었으나 얼마 후 중은 승천하였고 근처에 큰 뱀이 죽어 있었다. 그 뱀 속에서 금포가 나왔다고 한다.

     

    1769년 조선 영조 때 여암 신경준이 편찬한 우리전통지리서인 <<산경표>와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로 고찰해 본 세걸산의 산줄기와 물줄기는 이렇다.

     

    백두대간의 거대한 산줄기가 백두산 장군봉을 출발하여 지리산 천왕봉까지 남으로 1,621.5km를 뻗어간다. 전북지역의 백두대간 산줄기는 민주지산 삼도봉에서 시작되어 대덕산, 삼봉산, 덕유산 향적봉 어깨, 육십령, 깃대봉을 지나 장수 영취산에서 서북쪽으로 금남호남정맥을 나뉘어 놓는다. 그리고 백운산, 월경산, 봉화산, 산과 수정봉을 지나 정령치로 가기 전의 고리봉에서 동북쪽으로 바래지맥을 나뉜다.

     

    바래지맥은 고리봉에서 백두대간을 떠나 동북쪽으로 뻗어가며 세걸산을 솟구쳐 놓고, 부은치, 팔랑치를 지나 바래봉(바리봉)과 덕두산으로 뻗어간다. 세걸산의 물줄기는 남쪽은 운봉천과 광천에 합수되고, 동쪽은 만수천에 합수되어 남강으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남원시 운봉읍, 산내면에 위치해 있다.

     

    시산제(始山祭)

    해마다 새해가 시작될 무렵에 산악인들이 산을 지키고 보호하는 신에게 지내는 제사, 갑진년 한해 산행에 건강, 안전, 즐거움, 행복을 기원 해본다.

     

    세동치 샘 해발 1100m

    옛날 덕동마을 사람들이 운봉장으로 가던 장터길을 따라 목을 축이던 샘

     

    불바래기골

     

    불바래기골

    이게 뭔 뜻일까...궁금해서 찾아본다.

    강원도 정선군과 태백시 경계이자 백두대간 마루금인 불바래기 능선은 우리나라 최고의 야생화 군락지. 불바래기는 불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화전민들이 밭을 일구기 위해 산 아래에서 불을 놓고 이곳에서 기다리다 맞불을 놓아 산불을 진화했던 곳, 오두재(등계봉) 줄기 왼쪽(西) 큰 골짜기는 송광면 신흥마을 사람들이 ‘불바래기골’이라 하여 동쪽을 의미하는 불, 밝음, 해 또는 부처를 바라본다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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