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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봉, 삼철굴암터,원통암지리 산행기 2024. 3. 4. 15:51
# 언제: 2024년 03월 02일 토요일
# 산행지: 도덕봉,삼철굴암터,만국기터,염소막터,원통암,우남사터,
지리의 품속으로...ㅎㅎㅎ
# 산행거리: 10.12km 07시간 07분
# 산행루트: 지리산역사관(주차장) - 연암난야(연암토굴) - 서산대사(명상바위) - 하철굴암터(용화정사)
설산습지(설산분지) - 중철굴암터(설산암자) - 상철굴암터 - 파란움막터 - 만국기터 - 염소막터
도덕봉 - 덕평남릉 - 원통암,우남사터(갈림길) - 원통암 - 우남사터 - 의신마을 -
지리산역사관(주차장)
지리산(智異山)
지은이=양성지(梁誠之)
智異蒼蒼倚半空(지리창창의반공) 지리산 푸른 봉우리 반공에 솟아있고,
千岩萬壑酒飛淙(천암만학주비종) 천암만학 깊은 골짜기 물방울 뿌리네.
洞中靑鶴應欺我(동중청학응기아) 동중의 청학이 나를 속이어,
胡不來聞缶寺鍾(호불래문부사종) 어찌하여 절의 종소리 들려오지 않는가라고.
양성지(1415-1482)=조선초기 학자
하동암자 53개
칠불암(七佛庵), 불일암(佛日庵), 국사암(國師庵), 불출암(佛出庵), 영대암(靈坮庵), 옥수암(玉水庵), 보문암(寶文庵), 도사암(道士庵), 소은암(小隱庵), 지장암(地莊庵), 고령암(古靈庵), 도솔암(兜率庵), 사당암(社堂庵), 보조암(普照庵), 은암(隱庵), 통일암(通日庵), 금사암(金紗庵), 청사암(靑紗庵), 중암(中庵), 진락당(眞樂堂), 보현암(普賢庵), 사혜암(沙惠庵), 동암(東庵), 능인암(能仁庵), 상수곡암(上水谷庵), 하수곡암(下水谷庵), 은정대(隱靜臺), 대승암(大勝庵), 고대승암(古大勝庵), 상대승암(上大勝庵), 서암(西庵), 서대(西坮), 동암(東庵, 삼신동), 원적암(圓寂庵), 원통암(圓通庵), 원서암(圓棲庵), 적주암(寂住庵), 은암(銀庵), 청량대(淸凉坮), 동암(東庵, 義神洞), 북암(北庵), 보명암(普明庵), 영운암(靈雲庵), 보명북암(普明北庵), 서대(西坮,의신동), 철굴암(鐵屈庵), 상철굴암(上鐵屈庵), 중철굴암(中鐵屈庵), 하철굴암(下鐵屈庵), 은선암(隱仙庵), 송로암(松老庵), 영신암(靈神庵), 서일암(西日庵)
# 산행영상
# 산행지도
# 산행사진
지리산역사관
연암토굴 오름에 가와파편
연암난야(연암토굴) - 서산대사가놀던 지리산 의신사 인근 빗점골의 토굴 같은 집에 도현스님 25년째 수행하고 있다.
난야(蘭若)는 조그만 토굴을 의미한다. 격식을 갖춘 사찰이 아니고 독신 수행자가 비와 추위를 가릴 수 있도록 최소한의 시설만 갖춘 조용한 수행터를 가리킨다.
서산대사(명상바위)
이 바위는 임진왜란 당시 활약했던 서산대사(1520~1604)가 자주 찾았다고 알려진 '서산대사 명상바위'다. 16살쯤 서산대사는 의신마을에 있는 원통암에서 출가했다.
淸虛休靜, 서산대사
화개동 시(花開洞 詩)
花開洞裏花猶落(화개동리화유락)
靑鶴巢邊鶴不還(청학소변학불환)
珍重紅流橋下水(진중홍류교하수)
汝歸滄海我歸山(여귀창해아귀산)
이름은 화개인데 꽃은 오히려 지고
청학 동우리에 학은 아니 돌아 오네.
잘 있거라 홍류교 다리 아래 물이여
너는 바다로 가고 나는 산으로 가네.
하철굴암터(용화정사)
서산대사 출가수행
대사는 승려의 길에 들선다. 일선(一禪)대사를 수계사(授戒師)로, 석희(釋熙)법사와 육공장로(六工長老), 각원상좌(覺圓上座)를 증계사(證戒師), 영관(靈觀)대사를 전법사(傳法師), 숭인장로(崇仁長老)를 양육사(養育師)로 하여 계(戒)를 받았다.
이때 휴정(休靜)이라는 법명을 받으니 행자 생활을 시작한 지 6년째 되는 해였다. 이후 휴정스님은 도솔산으로 가서 학묵((學默)스님 회상에 참예(參詣), 인가를 받고 두류산(頭流山,지리산)으로 들어가 삼철굴(三鐵窟)에서 세 철을 나고, 대승암(大乘庵)에서 두 철을 보냈다. 의신동으로 돌아와 삼철굴(三鐵窟)에서 3년을 지내면서 본격적인 선법(禪法) 정진에 들어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삼철굴(三鐵窟)이란 상철굴암(上鐵窟菴), 중철굴암(中鐵窟菴) 그리고 하철굴암(下鐵窟菴)이다.[아래지도참조] 그리고 의신암, 원통암, 원적암, 은신암 등 여러 암자에서 몇 년을 보내며 더욱 정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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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가 수행했던 삼철굴
지도상 하철굴암터
곱배기새길 들머리
설산분지 - 1
설산분지 - 2
설산분지 위 설산습지 석축
설산습지
지리산 국립공원 내 해발 고도 750~760m 부근에 위치한 설산 습지는
부처님이 고행했다는 히말라야 설산의 이름을 딴 "설산"이란 마을이 있던 곳으로
과거 전답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사람들이 떠난 후 습지화가 되어가며 형성된 습지이다.
약 30년 정도 휴경상태로 보존되면서 자연적 전이를 거쳐
과거의 식생이 복원되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설산습지 - 1
설산습지 - 2
설산습지 - 3
설산습지 - 4
중철굴암터(설산암자)
2020년 04월 05일 일요일
화재 전 중철굴암(설산암자)모습
삼철굴암의 중간에 위치한 <설산암자>
현재 [설산암자]에는 성격 좋은 '무천(無喘)' 거사가 공부하는 토굴이 있다.
지리산꾼의 본질은 지리산중의 이상향을 찾아 헤매고 있는 중생들이니
깊은 산중 득도를 위하여 공부하는 토굴을 만나는 일은 경이로운 일이다.
다만, 현재 공부하는 분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일 경우에는 개인적인 영역을 존중하여
무례하지 않게 수양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방문하여 깊은 지리산중에서 깨달음을 위하여
공부하는 분들의 마음을 공유하는 시간이 되어야 그 곳을 방문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오후 3시부터 공부에 몰입한다고 하니 산중 토굴의 고즈넉한 맛을 조용히 맛보려면 공부시간 전에
소수의 인원으로 정중히 방문하여 반갑게 내어 주시는 산중 차 몇 잔 얻어 마시고,
석가가 무명(無明)과 갈애(渴愛)를 깨부수고 성불한 설산에 서 있음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퍼온글-
맷돼지 집
숯가마터
오토바이능선 지점
상철굴암터 왼쪽 석축
상철굴암터 기와파편
상철굴암터
상철굴암터 구들위치
상철굴암터 석축
상철굴암터 주변 바위
상철굴암터 샘
상철굴암터 주변 버려진 사람살이 집기루
파란움막가기전 선바위
파란지붕움막터 석축
파란지붕움막터
(파란움막터 2010. 01. 30)
(파란움막터 2010. 01. 30)
파란움막터 샘
파란지붕움막터 주변
만국기터 가기전 사면길
조망터
조망터 석문
만국기터 돌탑
만국기터
(만국기터 2010. 01. 30)
(만국기터 2010. 01. 30)
(만국기터 굴 속에 있던 방 2010.01.03)
만국기터
만국기터 토굴 속의 방
(만국기터 토굴 속에 있던 방 2010.01.03)
만국기터 상단 돌탑
염소막터 좌측 박터
염소막터 석축
염소막터 - 1
염소막터 - 2
염소막터 - 3
도덕봉 해발 1620m
통과 할 수는 없고 내려다보는 도덕봉 석문
원통암,우남사터 지능선 옛 산길 표지석
원통암, 우남사터, 갈림길
원통암(圓通庵)
지리산 원통암(圓通庵)은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의신마을 원통골에 있는데 중간에 폐사가 되었다가 25여년 전 허물어진 옛 터를 개축하고 그 뒤 복원하여 참선 수행승들이 정진하고 있는 도량으로서 지리산에서 가장 깊숙히 숨어 있다. 지리산 등산 지도를 꺼내놓고 보면 원통암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종주 코스에서 가운데 해당하는 벽소령 부근의 덕평봉아래 산 중턱에 있는데 화개장터에서 의신까지 깊숙히 한참 차를 타고 들어가서 거기서 산길을 도보로 30분~1시간 정도 걸어 올라간다. 터가 천하 절경으로 지리산 종주 능선이 병풍같이 뒤를 감싸고 있고 겹겹히 쌓인 산자락이 눈 앞으로 들어오는데 멀리 백운산(1,217m)이 눈 높이로 끝선을 맞춘다.
圓通 과 서산대사 (1520-1604)
원통암은 서산대사의 출가지이며 수도처이다.
지리산 덕평봉의 남쪽 해발 660m 고지에 자리한 원통암은 신라말 고려초기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오며 옛 의신사(현, 의신마을터)의 31개 산내암자중의 하나로 관세음보살님을 모신 도량이다.
조선 중종때 벽송조사(碧松祖師, 1464-1534)가 마천골에 초막(현, 벽송사)을 짓고 수도함에 많은 제자들이 수행하고자 모여들어 지리산 일대는 대선림(大禪林)을 이루었으며, 벽송지엄, 부용영관, 경성일선, 숭인장노, 추월조능,원오일진 스님 등 많은 고승대덕이 원통암에 머물며 수행하였다.
운학(雲鶴, 서산대사의 아명)은 15세에 동학 5-6명과 함께 지리산 유람길에 원통암에 들렀다가 숭인장노의 법문을 듣고 발심하여 출가(1534년), 21세에 삭발득도(1540년)하여 숭인장노와 영관대사의 지도아래 삼철굴, 대승암,의신사, 원통암, 원적암, 은신암 등에서 수행하던 어느날 남원의 벗을 찾아 성촌마을을 지나다가 낮에 닭우는 소리를 듣는 순간 홀연히 불조(佛祖)의 심인을 깨달았으며, 부용영관대사의 법맥을 이었다.
승과급제 후 3년만에 교종판사, 선종판사 그리고 최고 승직인 선교양종판사에 오르고 선종의 본산 봉은사 주지를 역임하였으며, 38세의 겨울엔 모든것을 내려놓고 여러곳을 만행한 후 지리산으로 돌아와 내은적암, 황철암, 능인암,칠불암 등에 머물면서 퇴락된 가람을 중수하고 삼가귀감(선가, 도가, 유가,귀감)을 저술했다. 훗날 묘향산과 금강산을 오가며 제자들을 지도하던중 임진왜란이 일어남에 승군을 조직하고 도총섭이 되어서 전쟁에 참여 큰 공을 세웠으며, 묘향산 원적암에서 85세에 입적하였다. 대사는 최초로 선종과 교종을 통합하였고 나아가 유불선 삼교를 회통하여 국론을 대통합으로 이끌었으며, 많은 제자를 길러내 조선 불교 중흥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원통암은 작은 암자지만 지리산의 심장부에 해당되는 곳으로 청룡백호가 겹겹으로 둘러 싸이고 앞에는 백운산의 세봉우리가 안산으로 우뚝 솟아있어 마치 청학이 날개짓하며 비상을 준비하는 형국에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있다.
하여 예전부터 천혜의 명당터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곳이다.
구한말에 화재로 폐사된 것을 1997년 7월에 인법당과 산신각을 복원하였고 2011년 11월에 西山禪門과 淸虛堂 그리고 해우소를 새로 짓고 서산대사의 영정을 조성하여 청허당에 모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불교의 중흥조이며 구국(救國)의 승병장인 서산대사의 행화도량 원통암을 온국민과 함께 잘 보존해야 할것이다.원통암(圓通庵)
원통암은 지리산 덕평봉 아래 해발 600m 고지에 있다. [진양지]에는 옛날 의신사 일대의 31개 암자를 언급하고 있는데, 원통암은 의신사의 수많은 산내 암자 중의 하나였다. 많은 고승들이 수행했던 곳으로 관세음보살을 모신 도량이다.
원통암이 자리한 곳에는 뒤로는 덕평봉을 위시해 벽소령, 칠선봉, 영신봉 등 지리산의 주능선이 둘러싸고 있다. 앞으로는 좌우로 화개골의 산자락들이 겹겹으로 펼쳐지고, 그 끝으로 백운산이 보인다. 백운산은 섬진강 건너 전라도 광양 땅에 있지만 이곳에선 마치 지리산 연봉처럼 보인다. 암자에서 보면 섬진강으로 나뉘던 경상도와 전라도의 구분은 없어지고 하나의 산자락이 된다. 원통무애다. 내남 구분 없는 통함이다.
'원통무애(圓通無碍)'는 불교의 '십무애' 중의 하나이다. 암자 이름인 '원통(圓通)'은 '원통무애'에서 나온 말이다. [삼가귀감]을 통해 불가, 유가, 도가의 삼교융화를 원했던 서산 대사의 행적이 곧 원통이요 무애다.
청허(서산) 대사의 행적을 적은 제자 경헌(1544~1633) 스님은 전남 장흥 출신으로 15세에 장흥 천관사에서 출가하여 경․율․논을 섭렵하고 묘향산에 들어가 휴정의 문하에서 수행했다. 임진왜란 때 휴정과 함께 승군을 모집하여 평양성을 탈환한 공로로 선조가 좌영장에 명했으나 사양하고, 또 선교양종판사에 명했으나 역시 사양했다. 묘향산, 금강산, 오대산, 치악산 등에서 수행했으며 저서로는 [제월당대사]이 있다.
청허당(淸虛堂)
청허당은 서산대사의 호이며 청허당에는 서산대사의 영정이 걸려있다.
서산대사(1520~1604)는 15세 때 지리산을 유람하던 중 원통암에 들러 출가했다.
평안도 안주 출신이며 법명은 휴정(休靜), 속명은 최여신(崔汝信), 호는 청허당(淸虛堂)이며, 33세 때 승과에 급제한 후 최고승직에 올랐고, 38세에 모든 직을 내려놓고 만행에 나섰다.
서산대사가 읊고는 출가했다고 알려진 시(詩)입니다.
花開洞裏花猶落(화개동리화유락) 이름은 화개동인데 꽃은 오히려 지고
靑鶴巢邊鶴不還(청학소변학불환) 청학동 둥우리에 학은 돌아오지 않네
珍重紅流橋下水(진중홍류교하수) 잘 가거라 홍류교 아래 흐르는 물이여
汝歸滄海我歸山(여귀창해아귀산) 너는 바다로 가고, 나는 산으로 가리라
청허단 안쪽 서산대 현판
서산대사 詩
'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에는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라.' - 서산대사 -
청허당 휴정 (淸虛堂 休靜) 서산대사 영정
청허당 휴정 (淸虛堂 休靜) 서산대사 영정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원통암에서의 조망
정면으로 좌측에서는 지네능선이 흘러내려오고
그 중앙에 호남정맥의 맹주 백운산1222.2m이 한눈에 조망
그 우측으로 한재를 지나 따리봉1127m, 도솔봉1153.2m이 나란히 조망
우남사터
의신마을 뒷쪽으로 운암골 양지쪽에 자리잡은 우남사는 넓은터를 구축한 석축과 샘터가 있다. 오래전 폐사가 되었지만 지금도 표고막터로 사용하고 있으며 의신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우남사터 기와 파편
우남사터 석축
기와막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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