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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역사문화 탐방 (24) 목통골과 화개재지리 박물관(역사,문화,) 2022. 3. 21. 12:23
쏟아지는 청류에 더위 씻고, 소금장수 고갯길 따라 걷고
다른 나라 얘기로만 여겨 오던 대기오염이 이제는 남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나라도 미세먼지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세계 각국은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기후협약을 맺고 탄소가스 배출량을 규제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우리나라도 신재생에너지 개발 확대가 절실해지고 있다. 지리산 자락에 에너지 자립화를 추진하는 마을이 있다.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목통마을이다.
지리산 목통골의 널따란 암반을 타고 흘러내리는 와폭.
하동군에서는 지난해 목통마을을 탄소 없는 마을로 지정하고, 소수력발전 등을 통한 청정에너지로 마을 전력 자립화를 이룬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는 사시사철 쉼 없이 청정수를 쏟아내는 목통골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탐방팀은 언제나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원시청정계곡 목통골을 거쳐 화개재로 올라 토끼봉까지 지리산 주능선을 걷다가 토끼봉 능선을 타고 칠불사로 하산하기로 한다.
목통골 들머리의 목통마을, 칠불사 자락 목통골 하류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마을이다. 목통마을은 지리산 자락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마을 중 하나일 것이다.
가야의 김수로왕이 성불한 왕자들을 보러 와 머문 마을이라는 설도 있는데, 왕이 머문 곳이라 해 범왕이란 지명도 유래됐다.
물레방아는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1960년 무렵부터는 물레방아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전깃불을 켰다. 이는 지리산 자락 최초의 전기 사용이었으니,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탄소 없는 마을 지정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목통골의 노거수. 기생식물이 잔뜩 붙어 자라고 있다.
◆원시청정 명품계곡 목통골
목통골은 초입부터 비경을 보여준다. 발달된 암반과 적당히 거친 형세로 소폭과 와폭, 소와 담이 즐비하다. 이 골은 화개천의 지계곡으로 화개재에서 비롯돼 불무장등과 토끼봉 능선 사이로 흘러 신흥에서 화개천에 합수된다. 이처럼 목통골은 삼도봉과 화개재, 토끼봉 남사면의 짙은 수림과 넓은 유역을 수원으로 해 항상 청정옥수가 넘쳐 흐르는 곳으로 지리주능 남사면의 대표적인 명품계곡이다.
연일 폭염이 기승을 부리지만 계곡으로 들어서니 별세계에 온 듯 청량하고 선선한 기운이 몰려온다. 계곡과 등로를 오가며 점차 목통골 깊숙이 접어드는데, 비경의 연속이다. 그러다 보니 갈 길은 먼데 진행 속도는 한없이 느려진다. 스님소도 지나고 옛 마을 터도 지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예전에 계곡 중간에 한 마을이 터를 잡고 있었는데, 그 마을 이름을 따서 이 골을 연동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계곡이 완만하고 밋밋한 암반이 많아 도처에 와폭이다. 숲 또한 두텁고 이끼도 좋아 원시성이 더욱 짙어 보이는 목통골이다.
암반과 와폭이 멋진 곳에서 잠시 쉬어간다. 푸른 숲속에서 와폭을 타고 청류가 마구 쏟아져 내리니 온몸이 청량해지는 느낌이다. 계곡 한가운데는 갖은 풍파를 견뎌낸 노거수 나무가 보인다. 무슨 배짱인지, 어깨를 내어줘 기생식물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나뭇가지는 온통 천연식물원이다. 고색창연한 이끼류가 가득한 가운데 일엽초, 콩짜개덩굴, 개고사리 등이 가지에 잔뜩 붙어 자라고 있다.
잠시 휴식을 뒤로하고 등로를 이어간다. 등로는 의외로 뚜렷하다. 이는 교통수단이 발달하기 전, 오랫동안 지리산 소금루트 중 한 곳이었으며 장삿길이었기 때문이다. 초입에서 3시간가량 진행해 목통골 상류의 좌·우골 분기지점에 이른다. 해발고도 900여m 지점에서 골이 분기되는데, 좌골은 삼도봉 방향으로 향하고 우골은 토끼봉 쪽으로 향하고 있다. 화개재로 오르기 위해서는 좌골 방향으로 가야 한다. 등로는 우골을 건너 좌골 우측으로 이어진다. 합수부를 지나고 30여 분 오르면 등로가 다시 분기된다. 계곡 옆 등로를 따라 직진하면 삼도봉 방향이고 화개재는 우측으로 계곡을 벗어나 산죽 사면을 타고 올라야 한다. 탐방팀은 무심결에 화개재 갈림길을 놓치고 계곡 안으로 조금 진입했다가 되돌아 나와, 화개재 오름길을 찾아 오른다. 갈림길에서 40~50분, 산죽길을 뚫고 가파르게 고도를 높여 화개재에 도착한다.
토끼봉과 삼도봉 사이에 위치한 화개재.
◆지리산 애환의 소금길 화개재
화개재(1320m)는 지리산 주능선의 고개 중 해발고도가 가장 낮은 고개이다. 화개재는 동서로 토끼봉(1535m)과 삼도봉(1501m) 사이에 위치하고 남북으로 목통골과 뱀사골을 끼고 있다. 남쪽으로 화개골이 내려다보인다고 해 이름이 연유된 화개재는 해안과 내륙의 문물이 넘나들던 땀의 고갯길이기도 했다. 섬진강변 화개장의 소금이나 해산물이 목통골을 거쳐 화개재를 넘어 뱀사골을 통해 남원 등 내륙으로 흘러갔고 내륙의 농산물, 삼베 등이 이 고개를 넘어 화개장으로 유입됐다. 남쪽의 목통골과 북쪽의 뱀사골이 문물교류의 통로였던 셈이다. 특히 소금이 주요 품목이었는데, 소금을 지고 뱀사골을 내려가던 소금장수가 그만 소금 가마니를 물에 빠뜨려 ‘간장소’라는 이름이 유래되기도 했고, 인근의 운봉무덤과 소금쟁이 능선도 소금 물류와 관련 있는 지명들이다.
탐방팀은 화개재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토끼봉으로 향한다. 화개재에서 토끼봉까지 1.2㎞ 거리로 40분가량 소요된다. 계속된 오르막을 땀을 한 바가지 쏟으며 쉬엄쉬엄 올라 토끼봉에 도착한다. 이번 탐방의 정점, 토끼봉이다. 헬기장 옆 숲속, 산정의 한 줄기 바람에 지친 몸을 맡긴 채 쉬어간다. 비 오듯 흐르던 땀도 잦아든다. 탐방팀은 한동안 쉬었다가 하산길인 토끼봉 능선으로 진입한다. 토끼봉 능선은 토끼봉 남쪽의 지능으로 중간에서 칠불사 능선과 범왕 능선으로 분기된다. 칠불사 능선은 목통마을까지 이어지고, 범왕 능선은 신흥에서 화개천으로 스며들며 소멸된다.
토끼봉 능선길은 길이 아주 좋다. 키 작은 산죽에 푹신푹신 부드러운 흙길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수림 또한 울창하니 편안한 산책로 같은 하산길이다. 지리산에서 보기 드물게 부드럽고 호젓한 산길이다. 토끼봉에서 2시간가량 걸어내려 칠불사에 도착한다. 위쪽에서 우측으로 돌아내려 청굴과 부휴대사 부도탑을 돌아보고 운상선원 앞을 지나 칠불사 경내로 들어선다.
칠불사 대웅전과 아자방.
◆지리산 불교문화 발상지 운상원과 칠불사
아자방으로도 유명한 칠불사. 칠불사는 불교의 지리산 최초 입산지이자 지리산 불교문화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칠불사 이전에 운상원이 있었다. 1800여 년 전, 가야 허왕후의 오라버니인 보옥선사가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를 거느리고 지리산 자락으로 들어, 이곳에 운상원을 세우고 수도 정진했다고 전해진다. 보옥선사는 악기에도 능해 운상원에서 옥피리를 즐겨 불었다고 하는데, 거문고의 거장 옥보고가 운상원에서 보옥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거나 아니면 동일 인물이라는 설도 있다. 이후 일곱 왕자는 성불했고 김수로왕은 성불한 일곱 왕자를 위해 운상원 앞에 절을 세우니 그 절이 칠불암이다. 칠불사 영지와 왕이 머문 범왕, 허왕후가 머문 대비마을 등 칠불사 전설을 뒷받침하는 지명이 지금까지 유래되고 있다.
칠불사는 임진왜란, 여순사건 등을 거치며 수차례 잿더미가 되기도 했지만 다시 복원돼 18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탐방팀은 경건한 마음으로 경내를 돌아본다. 천수백 년 세월 동안 고래가 한 번도 막히지 않았고 절이 잿더미로 변했을 때도 구들은 온전하게 전해져 왔다는 아자방과 칠불사는 지리산 문화의 아주 큰 자산이다. 탐방팀은 수리 중인 아자방과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고, 김수로왕과 허왕후가 애태우며 바라봤을 영지를 지나 칠불사 산문을 나서며 탐방산행을 마무리한다.'지리 박물관(역사,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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