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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역사문화 탐방 (26) 용수암골과 무착대
    지리 박물관(역사,문화,) 2022. 5. 16. 09:19

    오르고 오르면 집착과 탐욕은 멀어져 가겠지…




    계절은 어김이 없어 그토록 뜨거웠던 여름을 한순간에 밀어내고 가을을 맞고 있다. 들판은 점차 초록이 옅어지고 황금색으로 변해 간다. 가을의 문턱에서 탐방팀은 지리산 심산유곡 종녀촌의 전설을 찾아 떠난다. 탐방지는 피아골 상부의 깊숙한 심처 용수암골이다. 아울러 인근 불무장등 능선 아래 잊힌 절터, 무착대도 찾아보기로 한다.
    산행 기점은 피아골 초입에 위치한 구례군 토지면의 직전마을이다. 유난히 고운색의 단풍으로 널리 알려진 피아골, 이 골 역시 여타 지리산의 골과 마찬가지로 숱한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입구에는 화엄사와 더불어 지리산권 내에서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연곡사가 있고 주변에는 사라진 암자들도 많다. 탐방할 무착대도 그중 하나다. 역사 속의 연곡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왜에 맞섰고 참전한 승병들은 모두 장렬하게 산화했다. 또한 구한말에는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여순반란 사건 때에도 피아간 격전장이 되면서 그때마다 절은 잿더미로 변했다.

     


    계곡 한가운데 자리한 집채만한 바위 용수암.

    ▲숱한 사연 간직한 피아골= 지금은 많이 쇠락했지만 높았던 기개만큼 아픈 역사를 지닌 연곡사 앞을 지나 피아골로 접어들며 산행을 시작한다. 직전마을에서 피아골 대피소까지는 4㎞ 청아한 물소리를 들으며 계곡을 오른다. 예전에 피밭이 많아 피밭골로 불리다가 피아골이 되었고 그래서 마을이름도 직전(稷田)마을이다. 골짝에 논이 없어 밭에 기장 등을 많이 심었던 모양이다. 표고버섯도 많이 재배했는데 지금도 표고막 흔적이 남아 있다.

    표고막터를 지나고 삼홍소(三紅沼)를 지난다. 산이 붉게 타오르고, 계곡 물이 붉게 물들며, 사람의 얼굴까지 붉게 변한다고 했던가. 전화(戰火)와 수해 등으로 노거수 거목들이 많이 사라지고 징담도 변해 선인들이 감탄했던 그 명소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을이면 선홍으로 불타는 피아골이다. 직전마을에서 1시간 40분을 걸어 피아골대피소에 도착한다. 대피소는 삼각주 모양으로 두 골이 합쳐지는 합수부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풍수적으로 명당자리라고 한다. 돼지령, 질매재 쪽에서 흘러드는 좌골과 삼도봉, 임걸령 쪽에서 흘러드는 우골이 대피소 바로 아래에서 합수된다. 본류는 우골이다. 주변은 산세가 험하고 온통 바위투성이인데 대피소 부근만 평평하고 흙이 있다. 1984년 대피소 건립 당시 땅속에서 몇 트럭분의 인골이 나왔다고 할 정도로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대피소에 잠시 쉬었다가 임걸령 방향으로 오른다. 대피소에서 20여분 사면길을 걸어 지류를 횡단하는 불로교를 건너면 용수암골이 시작된다. 좌측 오름길은 주능선으로 향하고 용수암골은 직진이다. 계곡 좌측으로 난 등로를 따라 용수암골로 들어선다. 용수암골은 용수암(龍水岩)이란 바위가 있어 그렇게 부르는데, 계곡 주변 어디엔가 용수암이란 암자가 있었다는 설도 있다. 용수암골은 임걸령, 노루목,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과 삼도봉에서 남으로 뻗은 불무장등 능선 사이에 위치한 협곡으로 피아골의 본류를 이루고 있는데, 그 끝은 삼도봉으로 향하고 있다. 햇빛마저 차단하는 짙은 수림 속에 옥 같은 계류가 흐르고 초록이끼까지 어울리며 더욱 원시성과 신비감을 자아내는 용수암골이다.

     


    용수암골의 연폭.


    ▲용수암골과 종녀촌의 전설= 불로교에서 한 시간가량 계곡을 따라 올라 용수암에 이른다. 계곡 한가운데 자리한 집채만 한 바위, 바로 용수암이다. 바위 위에는 마치 정원처럼 관목류가 작은 숲을 이루고 있고, 그 곁에 일월비비추와 바위채송화, 일엽초 등 야생초도 붙어 자라고 있다. 용수암을 돌아보고 앞의 반석에 잠시 쉬며 종녀촌(種女村)의 전설을 떠올려 본다. 옛날 피아골 최상부 심처인 이 골에 씨받이 여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었다. 마을에는 성신(性神) 어머니로 불리는 절대자와 그녀의 시동(侍童), 그리고 종녀(種女)들이 살았는데, 아이를 못 낳는 집에 종녀를 보내 아이를 낳아주고 그 대가로 곡식이나 물품을 받아 연명하였다는 애환 서린 전설이다. 종녀촌 이야기는 전설에 불과하지만, 그 옛날에는 있을 법한 얘기다.


    용수암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고 천천히 계곡을 거슬러 오르길 20여분, 우측에서 지류가 흘러든다. 용수암골 우골이다. 탐방팀은 직진 방향의 용수암골 본류를 버리고 우골을 따라 불무장등 능선으로 향한다. 우골 초입에 멋진 폭포가 걸려 있다. 사방 이끼에 둘러싸인 암반으로 청류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다. 폭포를 뒤로하고 거친 골을 힘들여 오른다. 이내 골이 좁아지고 수량도 줄어든다. 반면 초록 이끼는 더욱 짙어져 원시성을 강하게 풍겨낸다. 가파른 골을 한동안 오르다가 날머리 부근에서 골 좌측 지능선으로 우회해 불무장등 능선에 안착한다. 우골로 접어든 지 2시간 만이다. 잠시 남쪽 방향으로 이동하니 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은 통꼭지봉, 우측은 직전마을 방향이다. 탐방팀은 우측의 직전마을 방향으로 향하며 버섯 재배 시 활용했던 표고듬벙을 찾아본다. 듬벙은 등로에서는 보이지 않고, 등로 우측으로 조금 내려서야 보인다.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고 주변에는 작은 습지가 형성돼 있다. 과거 이 부근에서 표고버섯을 재배할 당시, 이 샘물로 버섯재배용 목재의 습도를 유지했다고 전한다. 실제로 듬벙 반대편, 등로 좌측 우거진 수풀 속에는 축대를 쌓아 조성한 너른 공터가 있는데, 아마도 표고막터가 아니었을까.

     


    이끼에 둘러싸인 암반으로 물이 쏟아져 내리는 용수암골 비경.


    ▲집착과 번뇌가 없는 무착대= 표고듬벙을 둘러보고 무착대로 향한다. 불무장등 정상에서 30여분 직전마을 방향으로 내려서면 등로 우측으로 무착대 들머리가 열려 있다. 탐방팀은 우측으로 진입해 무착대로 향한다. 산죽과 너덜길을 20분가량 이어가니 우거진 잡목 속에 폐허로 변한 무착대가 나타난다. 무착대(無着臺)는 집착과 탐욕을 버리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 지리 10대 중의 하나로 해발 1170m에 위치한 명당이다. 불무장등 능선 아래 남향으로 자리 잡았다. 섬진강과 피아골이 한눈에 바라보이며 노고단, 문바위등, 왕시루봉, 그리고 춤추는 산너울이 장쾌하게 조망된다.

     


    우거진 잡목 속에 폐허로 변한 무착대.

    하지만 주변은 무상한 세월 속에 잡목이 우거져 알아보기조차 힘든 지경이다. 잡목을 뚫고 주변을 살펴본다. 옆에는 샘터 흔적도 있고 축대도 보인다. 오래전, 이곳에는 속세의 집착과 번뇌를 없애고 도를 구하는 암자가 있었던 곳인데, 접근조차 쉽지 않은 험지라 이어갈 후계를 잡지 못해 스러져 갔을까. 잠시 둘러보고 아래의 용바위로 향한다. 무착대에서 조금 내려서면 전망바위가 있고 그 아래 용바위가 있다. 용바위는 바위 형세가 용을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데, 바위에 올라서니 여기에도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피아골과 노고단, 왕시루봉 능선, 섬진강 건너 백운산까지 조망된다. 안타깝게도 뒤돌아본 무착대는 숲속에 묻혀 축대조차 보이지 않는다.

     


    지리 10대 중의 하나로 해발 1170m에 위치한 무착대 조망바위.

    용바위에서 잠시 파노라마 조망을 즐기다가 갈림길이 있는 안부로 되돌아 나온다. 갈림길에는 무착대 일주문 격인 돌탑이 있다. 암자는 사라지고 이 돌탑만 남은 것인가. 돌탑 앞의 우측 직진 길은 조망바위, 용바위 가는 길이고, 좌측은 피아골 하류, 표고막터 부근으로 내려서는 하산길이다. 탐방팀은 무착대와 용바위를 돌아보고 무착대 능선을 타고 하산한다. 경사는 급하지만 길이 의외로 뚜렷하고 어렵지 않다. 한 시간가량 걸어내려 삼홍소에서 표고막터로 이어지는 피아골 옛길에 이르고, 이내 피아골을 벗어나며 탐방산행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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